[재벌묘역①] 한진 편 : “내 조상은 우리 회사가 지킨다”…회삿돈으로 묘역 관리

입력 2018.09.24 (18:07) 수정 2018.09.2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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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맞아 성묘를 다녀오는 건 여전히 흔한 풍경이다. 미리 벌초도 하고, 정성스레 장만한 음식을 싸 들고 가 그동안 뵙지 못한 조상들에게 예를 표하기도 하고, 추모도 하고….
조상을 잘 모시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재벌들이라면? 능력만큼 좋은 곳에서 선친을 모시고자 하는 마음은 무어라 할 수 없지만,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떻게 선영 관리를 하고 있을까?


■ 조양호 회장 선친 묘역에 사는 사람

경기 용인 기흥구의 한 울창한 나무 숲.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3개의 분묘가 자리 잡고 있다. 정면으로는 대형 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누가 봐도 좋은 입지. 그곳에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전 회장 등 조양호 회장 조상들 묘역이 있다.

묘역을 직접 찾아가 봤다.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정체 모를 집 한 채. 그리고 맞은 편에 위치한 사당이었다. 병풍과 돗자리가 한편에 비치된 것을 보니 종종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등 추모 행사를 하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건 거주자가 누군지 모르는 집 한 채였다. 등기부등본상 사당과 집은 모두 대한항공 소유의 땅에 지어졌지만, 워낙 오래전에 지어진 터라 건물은 등기부에 등록 되지 않았다. 집이 비어 있어 주변 이웃을 찾았다.

("묘역 앞 건물은 누가 사시는 건가요?")
"1층짜리 작은 건물 말씀하시는 거죠? 여기 대한항공 땅 관리해 주시는 노부부가 살고 있어요."
(대한항공 가족분들이신 거예요?)
"그건 아닐 거예요."


■ 묘는 조양호 회장 가족 소유...관리는 회사가?

묘역 관리인의 집. 알고 보니 관리인은 이곳에 몇십 년을 넘게 거주한 토박이였다. 대한항공 소유 땅에 지어진 집에 살면서 조양호 회장 가족 묘역을 관리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냥 여길 지키고만 있는 거야, 경비처럼. 그냥 살고 있으니까 여기 지켜주는 거지. 농사도 짓고" (묘역 관리인)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가족도 아닌데 대체 왜 조 회장 일가의 묘역을 관리해주고 있는 것인가. 실제 등기부 등본을 보면 '묘역'은 조양호 회장 형제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엄연히 사유지이기 때문에 개인이 관리해야 하는 땅이다.

("공짜로 관리해주시는 건가요?")
"아니지, 공짜로 어떻게 해. 요즘 말썽 많은 '정석기업' 있잖아. 관리비 조금 받지."

관리인은 정석기업 소속. 회삿돈으로 조양호 회장의 자택 경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곳이다. 정석기업은 연 천만 원 이상을 묘역 관리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관리인은 자신이 경비 일만 할 뿐이고, 벌초를 하거나 사당을 보수하는 등 묘역 관리는 회사 측에서 따로 나와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차로 3분 거리에 위치한 한진그룹 연수원에서도 하루에 여러 차례씩 이 묘역을 찾아 순찰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연수원 직원이 묘역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대한항공 연수원 직원이 묘역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묘역 관리. 조양호 회장 가족 일에 회사의 돈과 인력을 동원하는 건 명백히 회사와 주주에 해를 끼치는 행위다. 경비 비용을 대납한 걸로 경찰이 수사를 하는 부분과 많은 지점이 닿아있다.

취재가 이어지자, 조 회장 측은 "계열사에서 부수적으로 선영관리를 했다"며 KBS 취재 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향후 묘역 관리는 회사에서 전혀 관여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의 사적 이용으로 이미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양호 회장, 본인 선친의 묘역을 관리하는 일마저도 회사를 동원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추가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연관기사]
[재벌묘역①] 한진 편 : “내 조상은 우리 회사가 지킨다”…회삿돈으로 묘역 관리
[재벌묘역②] 삼성 편 : 회사 땅에 가족 묘?…삼성의 ‘특수관리’
[재벌묘역③] 현대차 편 : ‘파견업체 소속’ 묘지기?…현대家의 은밀한 묘역관리
[재벌묘역④] 오리온 편 : 직원 땅에 부친 묘…재벌 묘역 ‘위법 투성이’
[재벌묘역⑤] 효성 편 : 그 땅엔 고급 한옥 3채가 있다
[재벌묘역⑥] 한화 편 : 회장님의 가족묘 사랑…법은 위반해도 괜찮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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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묘역①] 한진 편 : “내 조상은 우리 회사가 지킨다”…회삿돈으로 묘역 관리
    • 입력 2018-09-24 18:07:30
    • 수정2018-09-26 14:44:20
    취재K
추석. 명절을 맞아 성묘를 다녀오는 건 여전히 흔한 풍경이다. 미리 벌초도 하고, 정성스레 장만한 음식을 싸 들고 가 그동안 뵙지 못한 조상들에게 예를 표하기도 하고, 추모도 하고….
조상을 잘 모시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재벌들이라면? 능력만큼 좋은 곳에서 선친을 모시고자 하는 마음은 무어라 할 수 없지만,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떻게 선영 관리를 하고 있을까?


■ 조양호 회장 선친 묘역에 사는 사람

경기 용인 기흥구의 한 울창한 나무 숲.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3개의 분묘가 자리 잡고 있다. 정면으로는 대형 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누가 봐도 좋은 입지. 그곳에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전 회장 등 조양호 회장 조상들 묘역이 있다.

묘역을 직접 찾아가 봤다.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정체 모를 집 한 채. 그리고 맞은 편에 위치한 사당이었다. 병풍과 돗자리가 한편에 비치된 것을 보니 종종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등 추모 행사를 하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건 거주자가 누군지 모르는 집 한 채였다. 등기부등본상 사당과 집은 모두 대한항공 소유의 땅에 지어졌지만, 워낙 오래전에 지어진 터라 건물은 등기부에 등록 되지 않았다. 집이 비어 있어 주변 이웃을 찾았다.

("묘역 앞 건물은 누가 사시는 건가요?")
"1층짜리 작은 건물 말씀하시는 거죠? 여기 대한항공 땅 관리해 주시는 노부부가 살고 있어요."
(대한항공 가족분들이신 거예요?)
"그건 아닐 거예요."


■ 묘는 조양호 회장 가족 소유...관리는 회사가?

묘역 관리인의 집. 알고 보니 관리인은 이곳에 몇십 년을 넘게 거주한 토박이였다. 대한항공 소유 땅에 지어진 집에 살면서 조양호 회장 가족 묘역을 관리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냥 여길 지키고만 있는 거야, 경비처럼. 그냥 살고 있으니까 여기 지켜주는 거지. 농사도 짓고" (묘역 관리인)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가족도 아닌데 대체 왜 조 회장 일가의 묘역을 관리해주고 있는 것인가. 실제 등기부 등본을 보면 '묘역'은 조양호 회장 형제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엄연히 사유지이기 때문에 개인이 관리해야 하는 땅이다.

("공짜로 관리해주시는 건가요?")
"아니지, 공짜로 어떻게 해. 요즘 말썽 많은 '정석기업' 있잖아. 관리비 조금 받지."

관리인은 정석기업 소속. 회삿돈으로 조양호 회장의 자택 경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곳이다. 정석기업은 연 천만 원 이상을 묘역 관리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관리인은 자신이 경비 일만 할 뿐이고, 벌초를 하거나 사당을 보수하는 등 묘역 관리는 회사 측에서 따로 나와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차로 3분 거리에 위치한 한진그룹 연수원에서도 하루에 여러 차례씩 이 묘역을 찾아 순찰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연수원 직원이 묘역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묘역 관리. 조양호 회장 가족 일에 회사의 돈과 인력을 동원하는 건 명백히 회사와 주주에 해를 끼치는 행위다. 경비 비용을 대납한 걸로 경찰이 수사를 하는 부분과 많은 지점이 닿아있다.

취재가 이어지자, 조 회장 측은 "계열사에서 부수적으로 선영관리를 했다"며 KBS 취재 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향후 묘역 관리는 회사에서 전혀 관여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의 사적 이용으로 이미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양호 회장, 본인 선친의 묘역을 관리하는 일마저도 회사를 동원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추가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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