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異)판결]④ 이웃 ‘뒷담화’,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

입력 2019.06.20 (07:00) 수정 2019.06.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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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와 피고를 모두 만족하게 하는 판결은 없습니다. 법적인 판단은 국민 정서와도 자주 부딪칩니다. 그래도 우리가 판결에 관심을 갖는 건 세상사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異)란 '다르다' '기이하다' '뛰어나다'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연재로 소개될 판결들에 대한 평가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면서 나눈 연예인 험담이 형법상 명예훼손이 될까. 아파트 주민과 나눈 또 다른 주민에 대한 ‘디스’ 때문에 법정에 선다면….

당신에게는 벌어질 것 같지 않은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는 종종 생긴다.

KT위즈 프로야구단의 장성우 선수. 포수 유망주로 각광을 받던 그는 몇 년 전 여자친구와 나눈 문자 메시지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난에 직면했다. 이 일로 프로야구 50게임 출장 정지 등 징계는 물론 형사 법정에까지 섰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재판은 법조계에서는 많은 논쟁을 낳은 사건이기도 하다.

장 씨는 2015년 4월 스마트폰 메시지 앱을 이용해 당시 여자 친구에게 치어리더 박기량 씨에 대한 문자를 보냈다. 박 씨는 제법 인기를 끌던 치어리더였다. 내용은 “박 씨의 사생활이 좋지 않다”는 취지였는데, 허위였다. 통상적인 연인 사이였다면 그냥 묻혔을 법한 이 대화. 하지만 장씨와 여자친구 사이가 벌어지면서 문제가 됐다.

여자친구는 장성우와 결별한 뒤, 이 문자 메시지를 캡처해 SNS에 올렸고, 큰 파문을 일으킨다. 허위사실 유포로 피해를 본 박 씨는 두 사람을 고소했고, 검찰은 이 두 명을 정보통신망법 제70조 2항을 적용해 불구속기소 한다.


이 법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이 규정을 적용해 처벌하려면 ’‘비방의 목적’(⓵)과 ‘거짓 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는 것’(⓶)이 필요하다. 여기에다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파되거나 전파될 수 있는 공연성(公然性) 요건(③)을 충족해야 한다.

여자친구에게만 문자를 보낸 장성우


장 씨의 행위가 ⓵과⓶를 충족하고 있음은 인정됐지만, 문제는 ③이었다.

장성우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만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 뿐이다. 이 문자 메시지를 보관하고 있던 여자친구가 장성우와 사이가 벌어지자 이 문자를 캡처해 장성우와 상의 없이 SNS에 올렸다. 장 씨도 재판에서 “이 문자 메시지가 퍼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 씨에 대해서도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장 씨에게는 벌금 700만 원이 확정됐고, 그의 전 여자 친구에게는 이보다 중한 징역 4년,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프로야구 선수 장성우(왼쪽)와 치어리더 박기량 프로야구 선수 장성우(왼쪽)와 치어리더 박기량

한 명에게 얘기한 것도 공연성?

공연성은 명예훼손의 기본 요건 중 하나다. ‘불특정인 또는 다수인’이 당해 표현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야 명예훼손이 된다. 단적인 예로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 혼잣말로 특정인을 모욕하고 명예훼손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런데 장성우처럼 여자 친구 한 명에게 얘기한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원칙적으론 공연성은 없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침실에서 나눈 부부간 대화처럼 비밀 보장이 기대되는 사이에서의 대화는 과격한 언사와 거짓된 사실로 특정인을 비방해도, 윤리적 문제는 별도로 하고 최소한 법적인 처벌은 어렵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 명에게 말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내용을 퍼뜨릴 가능성이 있을 때는 처벌한다. 판례상 확립된 이른바 ‘전파성의 원칙’이다.

장성우 사건에서 검찰은 시민위원회 판단까지 거쳐 결국 그를 기소한다. 비록 연인끼리 메신저 대화였지만, 언급 대상이 유명인이어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질 만한 내용이라면 죄를 물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법원의 생각도 같았다. 재판부는 “장성우는 저속한 표현 등으로 전 여자친구에게 허위 사실을 전송함으로써 인터넷으로 급격하게 확산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즉 법원은 장성우가 직접적으로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유포 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했고, 피해자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을 들어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금태섭 “여자친구만 처벌했어야”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의원은 이 판결에 대해 SNS를 통해 여러 차례 이 판결을 비판했다. 금 의원도 “장성우의 행동은 야구팬으로 매우 실망스러운 일로, 기분 같아서는 최대한의 책임을 지우고 처벌했으면 싶다”고 했다. 그러나 “법적인 판단은 다르다”는 게 금 의원 얘기다.

금 의원이 변호사 시절 기고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많은 부부들이 퇴근하면서 서로 온갖 헛소문을 얘기하기도 한다. 점잖은 일은 아니지만 그런 재미도 없으면 무슨 즐거움으로 살아가겠나. 설사 부부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하게 된다고 해도 그때 한 얘기들에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다. 서로 주고받은 사적인 얘기를 공개해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폭로한 사람을 처벌하는 데 그쳐야 한다.



장성우의 경우를 보자. 그가 문제 된 카톡을 주고받았을 때 상대방은 그의 여자친구였다. 그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문제 된 문자를 주고받았을 때 여자 친구가 그것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검찰은 연인끼리 메신저 대화라 해도, 대상이 유명인이어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질 만한 내용이면 죄를 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연예계 뒷소문을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전하는 것도 처벌받아야 할까? ....명예훼손죄의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동네 슈퍼 주인과 나눈 대화도 명예훼손?


결국, 장성우 판결 취지를 본다면 1대 1로 나눈 대화도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 처벌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남광진 변호사가 소개하는 사건을 보자.

한 아파트 연합회 회원들이 강원도로 야유회를 다녀왔다. 이 모임은 남성들만으로 구성됐는데, 야유회에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임원인 여성 A씨도 참가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 B씨는 단지 내 슈퍼 주인에게 A씨 ‘뒷담화’를 했다. “남자들만 있는 모임에 여성이 가서 음주 가무를 즐겼다”는 취지였다. 이 말을 들은 슈퍼 주인은 다른 주민(C씨)에게 말했고, 이 사실은 결국 A씨의 귀에 들어갔다.

A씨는 B씨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고, 검찰은 그를 벌금 약식 명령 처분을 했다. 이에 B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법원은 B씨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렸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A씨, B씨, C씨, 그리고 슈퍼 주인 간의 친소 관계 등을 자세히 따졌다. 무죄 판결의 핵심적인 이유는 슈퍼주인과 A씨가 가깝게 지낸다는 점이었다.

재판부는 B씨의 발언이 A씨 귀로 흘러들어 가는 과정을 따지면서 “B씨가 슈퍼 주인 한 사람에게만 A씨에 대한 뒷담화를 한 것은, A씨와 친분이 깊은 슈퍼 주인이 이 이야기를 이리저리 아파트 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B씨의 뒷담화가 바람직한 태도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다.


술자리에서 나눈 연예인 얘기는?


남광진 변호사는 “법원은 명예훼손 사건에서 공연성을 따질 때 이 전파성 이론을 적용하면서 ‘청자(聽者)와 피해자의 관계를 많이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들은 사람이 피해자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전파 가능성은 크게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혼 소송 중에 남편 친구에게 남편의 명예를 훼손하는 서신을 보낸 아내에게 대법원은 공연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마을 여성의 사생활을 말한 동네 주민에 대해서는 청자와 피해자 가까운 사이가 아님을 감안해 전파성이 있다고 보는 식이다.

요약하면 법원은 전파 가능성을 판단할 때 ⓵언급한 내용이 유명인 관련 혹은 민감한 사생활 등 빠르게 퍼질 내용인지 그리고 ⓶ 청자와 피해자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자의 피해가 큰 경우 1대 1 대화라도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법원은 1대1 대화라도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 등은 기록으로 남을 수 있고, 쉽게 전달될 수 있어 전파 위험성이 큰 콘텐츠로 보고 있다.


장성우가 여자친구와 나눈 문자가 형사 처벌을 받은 것도 이런 원칙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시영 사건

배우 이시영 씨의 성관계 동영상이 있다는 허위 루머가 퍼지자 검찰은 수사에 착수해 루머의 최초 유포자를 구속했다. 루머의 시작은 전문지 기자가 작성한 사설 정보지(지라시)였다. 이 전문지 기자에게 법원이 징역형(징역 1년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로 볼 수 있다.

헌데 이 지라시가 만들어진 계기는 전날 있었던 술자리였다. 술자리에서 또 다른 지방지 기자는 참석자들에게 자신이 전해들은 얘기라며 이시영 동영상이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를 들은 다른 전문지 기자가 지라시를 만들어 카톡으로 돌리면서 문제가 커진 것이다.

법원은 지리시를 만들어 돌린 기자뿐 아니라, 이런 허위 사실을 술자리에서 말한 기자에게도 공연성을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쉽게 퍼질만한 유명인에 대한 민감한 얘기를, 기자에게 말한 것은 전파성이 높다고 본 데다, 이런 허위 루머 확산으로 여배우가 입은 피해가 작지 않았음을 감안한 판결이었다.


사실을 말해도 처벌?

이시영 동영상 사건이나 장성우 문자 메시지 사건은 유명인에 대한 거짓 사실 유포라 비난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거짓이 아닌 사실을 말해도 공연성이 있으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2011년 경기도 김포의 한 노인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노인회 임원이 회원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한 입주민은 이 사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 임원은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고소했다.

입주민이 올린 글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형법 307조와 정보통신망법 70조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한다. 결국, 입주민은 혐의가 인정돼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사실을 말한 것이 유죄 판결을 받자 입주민은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해 7대 2로 합헌 결정했다.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살면서 타인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경우가 없을 순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비판적 내용의 글을 카톡 등으로 나누는 경우도 왕왕 있다. 대부분은 문제가 없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그 이야기가 외부로 흘러나갈 가능성이 있다면 처벌될 수 있다고 보고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물론 명예훼손이 있어도, 진실한 사실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 (형법 제3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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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異)판결]④ 이웃 ‘뒷담화’,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
    • 입력 2019-06-20 07:00:17
    • 수정2019-06-25 16:44:37
    취재K
※원고와 피고를 모두 만족하게 하는 판결은 없습니다. 법적인 판단은 국민 정서와도 자주 부딪칩니다. 그래도 우리가 판결에 관심을 갖는 건 세상사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異)란 '다르다' '기이하다' '뛰어나다'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연재로 소개될 판결들에 대한 평가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면서 나눈 연예인 험담이 형법상 명예훼손이 될까. 아파트 주민과 나눈 또 다른 주민에 대한 ‘디스’ 때문에 법정에 선다면….

당신에게는 벌어질 것 같지 않은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는 종종 생긴다.

KT위즈 프로야구단의 장성우 선수. 포수 유망주로 각광을 받던 그는 몇 년 전 여자친구와 나눈 문자 메시지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난에 직면했다. 이 일로 프로야구 50게임 출장 정지 등 징계는 물론 형사 법정에까지 섰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재판은 법조계에서는 많은 논쟁을 낳은 사건이기도 하다.

장 씨는 2015년 4월 스마트폰 메시지 앱을 이용해 당시 여자 친구에게 치어리더 박기량 씨에 대한 문자를 보냈다. 박 씨는 제법 인기를 끌던 치어리더였다. 내용은 “박 씨의 사생활이 좋지 않다”는 취지였는데, 허위였다. 통상적인 연인 사이였다면 그냥 묻혔을 법한 이 대화. 하지만 장씨와 여자친구 사이가 벌어지면서 문제가 됐다.

여자친구는 장성우와 결별한 뒤, 이 문자 메시지를 캡처해 SNS에 올렸고, 큰 파문을 일으킨다. 허위사실 유포로 피해를 본 박 씨는 두 사람을 고소했고, 검찰은 이 두 명을 정보통신망법 제70조 2항을 적용해 불구속기소 한다.


이 법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이 규정을 적용해 처벌하려면 ’‘비방의 목적’(⓵)과 ‘거짓 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는 것’(⓶)이 필요하다. 여기에다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파되거나 전파될 수 있는 공연성(公然性) 요건(③)을 충족해야 한다.

여자친구에게만 문자를 보낸 장성우


장 씨의 행위가 ⓵과⓶를 충족하고 있음은 인정됐지만, 문제는 ③이었다.

장성우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만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 뿐이다. 이 문자 메시지를 보관하고 있던 여자친구가 장성우와 사이가 벌어지자 이 문자를 캡처해 장성우와 상의 없이 SNS에 올렸다. 장 씨도 재판에서 “이 문자 메시지가 퍼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 씨에 대해서도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장 씨에게는 벌금 700만 원이 확정됐고, 그의 전 여자 친구에게는 이보다 중한 징역 4년,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프로야구 선수 장성우(왼쪽)와 치어리더 박기량
한 명에게 얘기한 것도 공연성?

공연성은 명예훼손의 기본 요건 중 하나다. ‘불특정인 또는 다수인’이 당해 표현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야 명예훼손이 된다. 단적인 예로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 혼잣말로 특정인을 모욕하고 명예훼손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런데 장성우처럼 여자 친구 한 명에게 얘기한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원칙적으론 공연성은 없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침실에서 나눈 부부간 대화처럼 비밀 보장이 기대되는 사이에서의 대화는 과격한 언사와 거짓된 사실로 특정인을 비방해도, 윤리적 문제는 별도로 하고 최소한 법적인 처벌은 어렵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 명에게 말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내용을 퍼뜨릴 가능성이 있을 때는 처벌한다. 판례상 확립된 이른바 ‘전파성의 원칙’이다.

장성우 사건에서 검찰은 시민위원회 판단까지 거쳐 결국 그를 기소한다. 비록 연인끼리 메신저 대화였지만, 언급 대상이 유명인이어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질 만한 내용이라면 죄를 물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법원의 생각도 같았다. 재판부는 “장성우는 저속한 표현 등으로 전 여자친구에게 허위 사실을 전송함으로써 인터넷으로 급격하게 확산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즉 법원은 장성우가 직접적으로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유포 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했고, 피해자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을 들어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금태섭 “여자친구만 처벌했어야”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의원은 이 판결에 대해 SNS를 통해 여러 차례 이 판결을 비판했다. 금 의원도 “장성우의 행동은 야구팬으로 매우 실망스러운 일로, 기분 같아서는 최대한의 책임을 지우고 처벌했으면 싶다”고 했다. 그러나 “법적인 판단은 다르다”는 게 금 의원 얘기다.

금 의원이 변호사 시절 기고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많은 부부들이 퇴근하면서 서로 온갖 헛소문을 얘기하기도 한다. 점잖은 일은 아니지만 그런 재미도 없으면 무슨 즐거움으로 살아가겠나. 설사 부부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하게 된다고 해도 그때 한 얘기들에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다. 서로 주고받은 사적인 얘기를 공개해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폭로한 사람을 처벌하는 데 그쳐야 한다.



장성우의 경우를 보자. 그가 문제 된 카톡을 주고받았을 때 상대방은 그의 여자친구였다. 그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문제 된 문자를 주고받았을 때 여자 친구가 그것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검찰은 연인끼리 메신저 대화라 해도, 대상이 유명인이어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질 만한 내용이면 죄를 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연예계 뒷소문을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전하는 것도 처벌받아야 할까? ....명예훼손죄의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동네 슈퍼 주인과 나눈 대화도 명예훼손?


결국, 장성우 판결 취지를 본다면 1대 1로 나눈 대화도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 처벌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남광진 변호사가 소개하는 사건을 보자.

한 아파트 연합회 회원들이 강원도로 야유회를 다녀왔다. 이 모임은 남성들만으로 구성됐는데, 야유회에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임원인 여성 A씨도 참가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 B씨는 단지 내 슈퍼 주인에게 A씨 ‘뒷담화’를 했다. “남자들만 있는 모임에 여성이 가서 음주 가무를 즐겼다”는 취지였다. 이 말을 들은 슈퍼 주인은 다른 주민(C씨)에게 말했고, 이 사실은 결국 A씨의 귀에 들어갔다.

A씨는 B씨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고, 검찰은 그를 벌금 약식 명령 처분을 했다. 이에 B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법원은 B씨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렸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A씨, B씨, C씨, 그리고 슈퍼 주인 간의 친소 관계 등을 자세히 따졌다. 무죄 판결의 핵심적인 이유는 슈퍼주인과 A씨가 가깝게 지낸다는 점이었다.

재판부는 B씨의 발언이 A씨 귀로 흘러들어 가는 과정을 따지면서 “B씨가 슈퍼 주인 한 사람에게만 A씨에 대한 뒷담화를 한 것은, A씨와 친분이 깊은 슈퍼 주인이 이 이야기를 이리저리 아파트 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B씨의 뒷담화가 바람직한 태도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다.


술자리에서 나눈 연예인 얘기는?


남광진 변호사는 “법원은 명예훼손 사건에서 공연성을 따질 때 이 전파성 이론을 적용하면서 ‘청자(聽者)와 피해자의 관계를 많이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들은 사람이 피해자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전파 가능성은 크게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혼 소송 중에 남편 친구에게 남편의 명예를 훼손하는 서신을 보낸 아내에게 대법원은 공연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마을 여성의 사생활을 말한 동네 주민에 대해서는 청자와 피해자 가까운 사이가 아님을 감안해 전파성이 있다고 보는 식이다.

요약하면 법원은 전파 가능성을 판단할 때 ⓵언급한 내용이 유명인 관련 혹은 민감한 사생활 등 빠르게 퍼질 내용인지 그리고 ⓶ 청자와 피해자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자의 피해가 큰 경우 1대 1 대화라도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법원은 1대1 대화라도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 등은 기록으로 남을 수 있고, 쉽게 전달될 수 있어 전파 위험성이 큰 콘텐츠로 보고 있다.


장성우가 여자친구와 나눈 문자가 형사 처벌을 받은 것도 이런 원칙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시영 사건

배우 이시영 씨의 성관계 동영상이 있다는 허위 루머가 퍼지자 검찰은 수사에 착수해 루머의 최초 유포자를 구속했다. 루머의 시작은 전문지 기자가 작성한 사설 정보지(지라시)였다. 이 전문지 기자에게 법원이 징역형(징역 1년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로 볼 수 있다.

헌데 이 지라시가 만들어진 계기는 전날 있었던 술자리였다. 술자리에서 또 다른 지방지 기자는 참석자들에게 자신이 전해들은 얘기라며 이시영 동영상이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를 들은 다른 전문지 기자가 지라시를 만들어 카톡으로 돌리면서 문제가 커진 것이다.

법원은 지리시를 만들어 돌린 기자뿐 아니라, 이런 허위 사실을 술자리에서 말한 기자에게도 공연성을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쉽게 퍼질만한 유명인에 대한 민감한 얘기를, 기자에게 말한 것은 전파성이 높다고 본 데다, 이런 허위 루머 확산으로 여배우가 입은 피해가 작지 않았음을 감안한 판결이었다.


사실을 말해도 처벌?

이시영 동영상 사건이나 장성우 문자 메시지 사건은 유명인에 대한 거짓 사실 유포라 비난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거짓이 아닌 사실을 말해도 공연성이 있으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2011년 경기도 김포의 한 노인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노인회 임원이 회원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한 입주민은 이 사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 임원은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고소했다.

입주민이 올린 글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형법 307조와 정보통신망법 70조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한다. 결국, 입주민은 혐의가 인정돼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사실을 말한 것이 유죄 판결을 받자 입주민은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해 7대 2로 합헌 결정했다.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살면서 타인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경우가 없을 순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비판적 내용의 글을 카톡 등으로 나누는 경우도 왕왕 있다. 대부분은 문제가 없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그 이야기가 외부로 흘러나갈 가능성이 있다면 처벌될 수 있다고 보고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물론 명예훼손이 있어도, 진실한 사실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 (형법 제3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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