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異)판결]⑩ CCTV확인하는 경찰 목격후 한 고백은 ‘자진신고’일까

입력 2019.08.18 (12:03) 수정 2019.08.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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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는 다친 사람을 구호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자신의 인적 사항을 피해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경찰에게도 지체없이 신고해야 한다. 이런 조처를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을 때는 처벌을 받는다. 이 경우 경찰은 운전면허도 취소할 수 있다.

그러면서 법령(도교통법 시행규칙)은 사고 현장에서 즉시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그 후 일정 시간 안에 '자신 신고'를 할 때는 면허를 취소하지 않고 벌점만 부과해 선처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가해자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운전자의 자진 신고를 유도해서 사건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취지의 규정이라 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7세 어린아이를 차로 쳤다가 현장을 떠난 지 10분쯤 뒤에 현장에 돌아왔다. 그런데 현장에는 경찰이 도착해 CCTV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운전자가 그제야 이 교통사고가 자신과 관련됐다고 말한 것은 '자진신고'일까, 아닐까.

사건은 지난 2017년 11월 12일 인천시 부평구의 한 주택단지 도로에서 일어났다. 도로는 편도 1차로로 매우 비좁은 곳이다. 승용차를 약 10km 속도로 운전하던 운전자는 도로변에 불법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나타난 7세 어린이를 치었다.

차량의 우측 조수석 문이 어린이의 좌측 허벅지 부분과 부딪친 뒤 어린이는 넘어졌다. 어린이는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었다.

사고 직후 어린이는 넘어져 울었다. 운전자는 차에 내려서 울고 있는 어린이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고, 어린이는 "차에 부딪혔다"고 답했다. 운전자는 어린이가 계속 울자 어린이와 함께 있던 여자아이에게 어린이의 엄마를 부르도록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운전자는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근처에 있던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약 10분 후에 다시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운전자가 사고 현장에 오니 경찰관이 와 있었다. 경찰관은 도로 CCTV에 담긴 영상을 휴대전화를 이용해 시청하고 있었다. 운전자는 경찰 옆으로 다가가 함께 영상을 시청했다.

경찰이 보던 CCTV에는 사고 당시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차종과 색상은 확인됐지만, 차량번호는 잘 보이지 않았다. 화면을 반복적으로 보던 경찰관이 어린이가 쓰러지는 장면에 이르자 운전자는 "이 차 내 차인데"라고 말했고, 경찰관은 "예?"하고 반문한다. 경찰관은 운전자의 말을 듣고 운전자와 함께 아파트 주차장으로 가 가해 차량을 확인한다.

운전자의 '실토'에 따라 경찰은 가해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은 이 블랙박스 영상과 운전자 진술을 근거로 운전자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치상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후 운전자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이런 점이 반영돼 약식 기소돼 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경찰은 관련 법규에 따라 운전자의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그러나 운전자는 반발했다. 벌금 500만 원은 받아들이겠지만, 면허 취소는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사고를 자진신고한 만큼 관련 법규(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라 벌점 부과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전면허가 취소되면 운전면허가 필수인 직업 특성상 생계가 곤란하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운전자는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도주했고, 이후 경찰에게 곧바로 신고한 것이 아니라 경찰이 CCTV를 보는 것을 보고서야 사고를 이야기했다"며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나오는 '자진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엇갈린 1심과 2심

결국, 이 문제는 법적 소송으로 연결됐다.

1심은 경찰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운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행정4부는 운전자가 인천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자동차운전면허 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한 1심을 깨고 "면허취소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지난달 9일 내렸다.

재판부는 면허취소 처분이 옳지 않다며 이런 이유를 들었다.

①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48시간 이내 자진신고를 한 경우 면허취소를 하지 않고 벌점으로 감경처분 하게 한 취지는, 누가 사고를 일으켰는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런 상태를 초래한 사람이 스스로 해소하도록 유도하고자 함이다.

여기서 정한 자진신고라 함은 형법상 자수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운전자가 사고 후 현장을 이탈하면서 사고 야기자가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했다가 스스로 자신이 사고를 유발한 것임을 밝혀 사고 야기자의 확정이 이뤄지도록 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가해 운전자는 약 10분 만에 사고 현장으로 복귀해 자신의 차량이 사고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의 차량에 있는 블랙박스 영상도 임의 제출했고, 이에 따라 사고 야기자가 운전자로 확정됐다. 블랙박스 제출 전에 CCTV 영상만으로 사고차량을 확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③운전자가 사고 직후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고 사고 현장을 이탈한 잘못은 있다. 그렇다 해도 피해 어린이의 모친이 온 것을 보고 현장을 떠났고, 당시 사고 차량이 편도 1차선을 막고 있어 교통의 흐름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울러 사고 현장으로 돌아와 블랙박스 영상을 제출하는 등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피해자와 원만하게 합의했다.

④ 운전자는 운전면허 취소 처분으로 향후 4년간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게 돼 이 일로 직장을 잃게 될 경우 가족의 생계 곤란이 초래될 수 있다.

재판부는 이런 이유를 들어 운전자의 항소를 받아들여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운전자의 운전면허는 다시 살아나게 되고, 경찰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라 벌점 30점을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교통사고를 냈다가 3시간 이내 자진신고 시 면허를 취소나 정지시키지 않고 벌점 30점을, 48시간 이내에 신고하면 벌점 60점을 부과하는 데 그치도록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규정하고 있다.

운전하다 사고 나면?

운전을 하다 보면 누구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 이번 판결의 결과는 이렇게 났더라도 도로교통법상의 운전자 의무를 정확히 숙지할 필요가 있다.

차를 운전하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물건을 손괴한 경우 즉시 정차해 다친 사람을 구호하며 피해자에게 자신의 인적 사항을 알려야 한다. 또 경찰에 지체없이 사고를 신고해야 한다. 단 (사람이 다치지 않고) 차만 파손된 것이 분명하고 도로에서의 위험방지와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신고 의무는 면제된다(도로교통법 5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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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異)판결]⑩ CCTV확인하는 경찰 목격후 한 고백은 ‘자진신고’일까
    • 입력 2019-08-18 12:03:04
    • 수정2019-08-18 14:36:55
    취재K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는 다친 사람을 구호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자신의 인적 사항을 피해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경찰에게도 지체없이 신고해야 한다. 이런 조처를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을 때는 처벌을 받는다. 이 경우 경찰은 운전면허도 취소할 수 있다.

그러면서 법령(도교통법 시행규칙)은 사고 현장에서 즉시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그 후 일정 시간 안에 '자신 신고'를 할 때는 면허를 취소하지 않고 벌점만 부과해 선처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가해자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운전자의 자진 신고를 유도해서 사건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취지의 규정이라 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7세 어린아이를 차로 쳤다가 현장을 떠난 지 10분쯤 뒤에 현장에 돌아왔다. 그런데 현장에는 경찰이 도착해 CCTV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운전자가 그제야 이 교통사고가 자신과 관련됐다고 말한 것은 '자진신고'일까, 아닐까.

사건은 지난 2017년 11월 12일 인천시 부평구의 한 주택단지 도로에서 일어났다. 도로는 편도 1차로로 매우 비좁은 곳이다. 승용차를 약 10km 속도로 운전하던 운전자는 도로변에 불법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나타난 7세 어린이를 치었다.

차량의 우측 조수석 문이 어린이의 좌측 허벅지 부분과 부딪친 뒤 어린이는 넘어졌다. 어린이는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었다.

사고 직후 어린이는 넘어져 울었다. 운전자는 차에 내려서 울고 있는 어린이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고, 어린이는 "차에 부딪혔다"고 답했다. 운전자는 어린이가 계속 울자 어린이와 함께 있던 여자아이에게 어린이의 엄마를 부르도록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운전자는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근처에 있던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약 10분 후에 다시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운전자가 사고 현장에 오니 경찰관이 와 있었다. 경찰관은 도로 CCTV에 담긴 영상을 휴대전화를 이용해 시청하고 있었다. 운전자는 경찰 옆으로 다가가 함께 영상을 시청했다.

경찰이 보던 CCTV에는 사고 당시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차종과 색상은 확인됐지만, 차량번호는 잘 보이지 않았다. 화면을 반복적으로 보던 경찰관이 어린이가 쓰러지는 장면에 이르자 운전자는 "이 차 내 차인데"라고 말했고, 경찰관은 "예?"하고 반문한다. 경찰관은 운전자의 말을 듣고 운전자와 함께 아파트 주차장으로 가 가해 차량을 확인한다.

운전자의 '실토'에 따라 경찰은 가해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은 이 블랙박스 영상과 운전자 진술을 근거로 운전자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치상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후 운전자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이런 점이 반영돼 약식 기소돼 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경찰은 관련 법규에 따라 운전자의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그러나 운전자는 반발했다. 벌금 500만 원은 받아들이겠지만, 면허 취소는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사고를 자진신고한 만큼 관련 법규(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라 벌점 부과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전면허가 취소되면 운전면허가 필수인 직업 특성상 생계가 곤란하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운전자는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도주했고, 이후 경찰에게 곧바로 신고한 것이 아니라 경찰이 CCTV를 보는 것을 보고서야 사고를 이야기했다"며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나오는 '자진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엇갈린 1심과 2심

결국, 이 문제는 법적 소송으로 연결됐다.

1심은 경찰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운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행정4부는 운전자가 인천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자동차운전면허 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한 1심을 깨고 "면허취소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지난달 9일 내렸다.

재판부는 면허취소 처분이 옳지 않다며 이런 이유를 들었다.

①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48시간 이내 자진신고를 한 경우 면허취소를 하지 않고 벌점으로 감경처분 하게 한 취지는, 누가 사고를 일으켰는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런 상태를 초래한 사람이 스스로 해소하도록 유도하고자 함이다.

여기서 정한 자진신고라 함은 형법상 자수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운전자가 사고 후 현장을 이탈하면서 사고 야기자가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했다가 스스로 자신이 사고를 유발한 것임을 밝혀 사고 야기자의 확정이 이뤄지도록 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가해 운전자는 약 10분 만에 사고 현장으로 복귀해 자신의 차량이 사고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의 차량에 있는 블랙박스 영상도 임의 제출했고, 이에 따라 사고 야기자가 운전자로 확정됐다. 블랙박스 제출 전에 CCTV 영상만으로 사고차량을 확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③운전자가 사고 직후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고 사고 현장을 이탈한 잘못은 있다. 그렇다 해도 피해 어린이의 모친이 온 것을 보고 현장을 떠났고, 당시 사고 차량이 편도 1차선을 막고 있어 교통의 흐름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울러 사고 현장으로 돌아와 블랙박스 영상을 제출하는 등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피해자와 원만하게 합의했다.

④ 운전자는 운전면허 취소 처분으로 향후 4년간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게 돼 이 일로 직장을 잃게 될 경우 가족의 생계 곤란이 초래될 수 있다.

재판부는 이런 이유를 들어 운전자의 항소를 받아들여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운전자의 운전면허는 다시 살아나게 되고, 경찰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라 벌점 30점을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교통사고를 냈다가 3시간 이내 자진신고 시 면허를 취소나 정지시키지 않고 벌점 30점을, 48시간 이내에 신고하면 벌점 60점을 부과하는 데 그치도록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규정하고 있다.

운전하다 사고 나면?

운전을 하다 보면 누구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 이번 판결의 결과는 이렇게 났더라도 도로교통법상의 운전자 의무를 정확히 숙지할 필요가 있다.

차를 운전하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물건을 손괴한 경우 즉시 정차해 다친 사람을 구호하며 피해자에게 자신의 인적 사항을 알려야 한다. 또 경찰에 지체없이 사고를 신고해야 한다. 단 (사람이 다치지 않고) 차만 파손된 것이 분명하고 도로에서의 위험방지와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신고 의무는 면제된다(도로교통법 5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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