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異)판결]⑦ 아내앞 등기우편 뜯었다가 기소된 남편, 결과는?

입력 2019.07.02 (09:47) 수정 2019.07.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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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거주하는 A 씨는 졸지에 전과자의 굴레를 쓰게 됐다.

2017년 연말, 아파트 경비실에서 등기 우편물이 왔다는 연락이 왔다. 경비실에서 받은 우편물은 금융기관에서 아내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A 씨는 이 우편물을 뜯어봤다.

뒤늦게 이를 안 아내는 격분했다.

아내는 자신의 편지를 개봉한 남편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A 씨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불구속기소 했다.

법정에서 A 씨 측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부부 사이에 상대방 등기 우편물을 수령하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사회 통념에 위배되지 않고 (개봉에)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는 항변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혐의가 인정된다며 A 씨에 대해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1심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심에서도 1심 판결과 같은 벌금 50만 원이 선고됐다.


우편물 개봉이 유죄?

통상적인 부부라면 문제될 것 없는 우편물 개봉을 왜 법원은 유죄로 본 것일까.

'일심동체'인 부부는 무촌이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할 만큼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다. 민법 826조에는 부부의 의무를 규정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를 부양할 의무와 동거할 의무가 생긴다. 재산 관계에 있어서도 일상가사 대리권을 인정한다. 일정한 범위에서 일방이 부담하는 채무에 대해선 부부가 제3자에게 연대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민법 규정과는 달리 형법 316조(비밀침해죄)는 '봉함한 편지 개봉 행위'를 처벌한다고 규정하면서 특별히 부부를 예외로 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부부간 사이라도 명시적, 묵시적 동의가 없었다면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사건 재판에서 고려된 결정적인 변수는 두 사람 간의 관계였다. A 씨와 아내는 한 달 전부터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사이가 벌어져 갈라설 마음을 먹은 두 사람 사이에 등기 우편 개봉에까지 대리권이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실제로 이처럼 부부 사이가 벌어졌을 때 비밀침해죄 문제가 주로 생긴다. 이혼 시 재산분할이나 양육권 등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은밀한' 정보를 수집하려다 위법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형사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크다.

우리나라 법원은 배우자의 이메일을 열어본 것이 문제 된 사건에서도 "남편의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메일을 열어본 것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아내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정보통신망법 49조 규정을 들어 유죄판결을 했다. 부부라도 허락 없이 편지나 이메일을 열어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비밀침해죄는 친고죄

물론 보통의 부부라면 등기 우편을 개봉하는 정도의 행위가 문제가 될 일은 거의 없다.

비밀침해죄는 상대방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 제기가 가능한 친고죄다. 정상적인 부부라면 이런 일로 고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그러나 잘못된 배달된 남의 집 택배나 편지를 무심코 뜯어봤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내 것이 아닌 줄 알면서 뜯어보는건 '비밀침해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택배 상자를 뜯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까지 했을 때는 '점유이탈물 횡령죄'까지 추가된다.

물론 비밀침해죄가 되기 위해서는 '고의'가 있어야 한다. 남의 편지나 물건이라는 인식, 그리고 남의 비밀을 몰래 훔쳐보려는 고의가 인정돼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온 물건을 자기 것인 줄 착각해 무심코 열어봤다면 고의는 인정되기 어렵다.


남편 이름으로 아내가 돈을 빌렸을 때는?

부부라도 배우자 편지를 뜯어봤을 때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법은 일상 가사대리권을 인정한다. 일상의 가사에 대해 부부가 서로 간에 대리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범위가 모호해서 문제 될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관해 많은 판례가 쌓여있다.

흔히 문제 되는 것이 부부 일방이 일상가사에 관해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다른 일방이 이에 대한 채무를 부인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 명의로 아파트 분양을 받으면서 지인으로부터 분양 대금이 부족하다며 4,000만 원을 빌렸다. 이 아파트는 남편의 명의로 소유권 등기가 됐고,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경우 돈을 빌려준 지인은 남편에게 대여금 반환 청구를 할 수 있을까?

이럴 경우 법원은 이 집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합리적 규모의 아파트라면 일상가사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법원이 일상가사로 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원은 부인의 교회 건축헌금, 가게 인수대금, 장남의 주택임차보증금의 보조금 등의 명목으로 배우자 이름으로 돈을 빌린 행위는 일상 가사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부부라도 때로는 '남남처럼' 확실하게 선을 그을건 그으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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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異)판결]⑦ 아내앞 등기우편 뜯었다가 기소된 남편, 결과는?
    • 입력 2019-07-02 09:47:16
    • 수정2019-07-02 10:11:47
    취재K
대구에 거주하는 A 씨는 졸지에 전과자의 굴레를 쓰게 됐다.

2017년 연말, 아파트 경비실에서 등기 우편물이 왔다는 연락이 왔다. 경비실에서 받은 우편물은 금융기관에서 아내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A 씨는 이 우편물을 뜯어봤다.

뒤늦게 이를 안 아내는 격분했다.

아내는 자신의 편지를 개봉한 남편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A 씨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불구속기소 했다.

법정에서 A 씨 측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부부 사이에 상대방 등기 우편물을 수령하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사회 통념에 위배되지 않고 (개봉에)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는 항변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혐의가 인정된다며 A 씨에 대해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1심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심에서도 1심 판결과 같은 벌금 50만 원이 선고됐다.


우편물 개봉이 유죄?

통상적인 부부라면 문제될 것 없는 우편물 개봉을 왜 법원은 유죄로 본 것일까.

'일심동체'인 부부는 무촌이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할 만큼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다. 민법 826조에는 부부의 의무를 규정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를 부양할 의무와 동거할 의무가 생긴다. 재산 관계에 있어서도 일상가사 대리권을 인정한다. 일정한 범위에서 일방이 부담하는 채무에 대해선 부부가 제3자에게 연대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민법 규정과는 달리 형법 316조(비밀침해죄)는 '봉함한 편지 개봉 행위'를 처벌한다고 규정하면서 특별히 부부를 예외로 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부부간 사이라도 명시적, 묵시적 동의가 없었다면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사건 재판에서 고려된 결정적인 변수는 두 사람 간의 관계였다. A 씨와 아내는 한 달 전부터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사이가 벌어져 갈라설 마음을 먹은 두 사람 사이에 등기 우편 개봉에까지 대리권이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실제로 이처럼 부부 사이가 벌어졌을 때 비밀침해죄 문제가 주로 생긴다. 이혼 시 재산분할이나 양육권 등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은밀한' 정보를 수집하려다 위법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형사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크다.

우리나라 법원은 배우자의 이메일을 열어본 것이 문제 된 사건에서도 "남편의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메일을 열어본 것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아내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정보통신망법 49조 규정을 들어 유죄판결을 했다. 부부라도 허락 없이 편지나 이메일을 열어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비밀침해죄는 친고죄

물론 보통의 부부라면 등기 우편을 개봉하는 정도의 행위가 문제가 될 일은 거의 없다.

비밀침해죄는 상대방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 제기가 가능한 친고죄다. 정상적인 부부라면 이런 일로 고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그러나 잘못된 배달된 남의 집 택배나 편지를 무심코 뜯어봤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내 것이 아닌 줄 알면서 뜯어보는건 '비밀침해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택배 상자를 뜯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까지 했을 때는 '점유이탈물 횡령죄'까지 추가된다.

물론 비밀침해죄가 되기 위해서는 '고의'가 있어야 한다. 남의 편지나 물건이라는 인식, 그리고 남의 비밀을 몰래 훔쳐보려는 고의가 인정돼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온 물건을 자기 것인 줄 착각해 무심코 열어봤다면 고의는 인정되기 어렵다.


남편 이름으로 아내가 돈을 빌렸을 때는?

부부라도 배우자 편지를 뜯어봤을 때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법은 일상 가사대리권을 인정한다. 일상의 가사에 대해 부부가 서로 간에 대리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범위가 모호해서 문제 될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관해 많은 판례가 쌓여있다.

흔히 문제 되는 것이 부부 일방이 일상가사에 관해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다른 일방이 이에 대한 채무를 부인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 명의로 아파트 분양을 받으면서 지인으로부터 분양 대금이 부족하다며 4,000만 원을 빌렸다. 이 아파트는 남편의 명의로 소유권 등기가 됐고,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경우 돈을 빌려준 지인은 남편에게 대여금 반환 청구를 할 수 있을까?

이럴 경우 법원은 이 집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합리적 규모의 아파트라면 일상가사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법원이 일상가사로 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원은 부인의 교회 건축헌금, 가게 인수대금, 장남의 주택임차보증금의 보조금 등의 명목으로 배우자 이름으로 돈을 빌린 행위는 일상 가사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부부라도 때로는 '남남처럼' 확실하게 선을 그을건 그으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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