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異)판결]⑥ 경찰 얼굴에 펀치 날린 대학생…법원 “만취했으니 무죄”

입력 2019.06.26 (07:01) 수정 2019.06.2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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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와 피고를 모두 만족하게 하는 판결은 없습니다. 법적인 판단은 국민 정서와도 자주 부딪칩니다. 그래도 우리가 판결에 관심을 갖는 건 세상사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異)란 '다르다' '기이하다' '뛰어나다'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연재로 소개될 판결들에 대한 평가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경찰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20대 남성, 만일 이 남성이 술에 만취해 인사불성 상태였다면 이게 면죄부가 될까.

바로 이런 이유로 1,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무슨 일일까.

세모(歲暮)이던 2017년 12월 21일 밤, 사달이 벌어졌다. 청주의 한 빌라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벌이고 있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관할 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이 출동했다.

난동을 피우던 사람은 20대 대학생 A 씨였다. 그는 그날 저녁 후배 2명과 소주 8병을 마셨다고 한다. 술에 취해 3층 원룸에서 동료와 언쟁을 벌이며 난동을 피우던 그는 현장에 출동해 차에 태우려던 경찰관의 얼굴을 때렸다. 경찰관의 안경은 떨어졌고,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검찰은 A 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법원에 기소했다.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을 폭행하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된다.

그런데 1, 2심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형사법의 원칙은 범죄를 저지를 때 죄를 짓는다는 고의(故意)가 있어야 한다.

공무집행방해죄도 그렇다. 이 죄를 구성하려면 폭행이나 협박의 상대방이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에 대해 폭행 혹은 협박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범죄를 구성한다. 물론 이때의 ‘인식’이란 다소 불확정적인 경우라도 미필적 고의가 있으면 범죄가 된다.

그런데 법원은 A씨가 사건 당시 만취한 사실에 주목했다. 술에 너무 취해 상대방이 경찰관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폭행으로 공무 집행을 방해한다는 인식을 가졌다는 게 확실치 않다고 본 것이다.

1심 판결문을 보자(이해를 돕기 위해 취지를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판결문을 윤문, 재구성했고, 피고인이란 용어는 대학생 A 씨로 바꿈)

"출동했던 경찰은 대학생 A씨가 탈의한 채 누워 있었고, 계단에 가래침을 뱉고 욕설을 하는 등 인사불성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리고 경찰은 A 씨에게 대학교수 연락처가 나와 이를 보고 연락해 B 대학교수가 현장에 왔는데, A 씨는 교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욕까지 했다고 진술했다.”

1심은 이런 진술을 소개한 뒤 “(만취한) A 씨는 출동한 사람이 경찰공무원이고, 공무집행 중이라는 사실에 대한 범의(犯意)가 있었음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판결했다.

1심 판사는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판결로써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325조 규정을 들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2심 “만취해 정상적 판단 불가능”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검찰은 항소 이유로 “A 씨가 (술에 취해)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는 대학교수 B 씨의 진술을 1심이 너무 믿은 나머지 사실을 오인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주취 폭력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도 A 씨에게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심 판단도 1심과 같았다.

2심은 무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①A 씨는 일관되게 술에 취해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②출동 경찰관도 (사건 당시) A 씨가 제 발로 걷지 못해 대학교수 B씨와 출동 경찰관 등 3명이 함께 건물 복도를 데리고 내려왔다고 1심 법정에서 진술했다.

③ 사건 당시 A 씨는 속옷만 입고 있었는데, 12월 21일 한겨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A 씨는 만취해 정상적인 판단과 행동이 전혀 불가능했다.

이런 이유를 나열하며 2심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검사가 주장한 사실오인은 없었다"고 판시했다.

한마디로 두 번의 재판을 요약하면 법원은 “A 씨가 술에 취해 대학 교수도 못 알아봤다”(1심)는 사실과 “한겨울에 속옷만 입고 있었다”(2심) 등의 진술을 받아들여 대학생 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 판단은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의 생각은 하급심과는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13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청주지방법원에다 다시 심리하도록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해를 돕기위해 판결문의 취지를 살리면서 본문, 재구성)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살펴볼 때 A 씨가 주먹으로 경찰관의 얼굴을 때릴 당시 폭행 상대방이 공무를 집행 중인 경찰관이라는 점을 A씨가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들었다.

①당시 출동한 경찰관 2명은 경찰관 정복을 입고 있었고, A 씨에게 경찰관임을 알려 주었다.

②경찰관 출동 후 A 씨가 경찰관 허벅지를 손으로 때리자 다른 경찰관이 ‘(이렇게) 경찰을 폭행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형사 입건될 수 있다’고 하자 A 씨가 다소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③ A 씨가 경찰관의 얼굴을 때린 시점은 경찰관이 출동한 이후 약 1시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그 무렵 A 씨는 두 경찰관에게 소변을 보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했고, (실제로) 소변을 보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A 씨는 당시 경찰관 정복을 입은 사람을 경찰관으로 인식할 수는 있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의 주된 근거가 됐던 “A 학생이 자신도 못 알아봤다”는 B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원심과 다른 판단을 했다.

대법원은 “교수 B 씨는 A 씨를 직접 가르친 적이 없고, 그와는 다른 과 교수다. 일자리 추천 과정에서 명함을 한번 준 적이 있을 뿐이고, A 씨 소지품에서 연락처가 나와 경찰관이 연락했다. 그런데 교수는 경찰관 연락을 받고서는 처음에는 누구인지 기억도 못 하다가 전화번호를 찾아본 후에야 누군지 알게 되어 현장으로 오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A 씨가 교수 B 씨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달리 볼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공무집행방해죄에서 있어서 범의(犯意)는, 그 인식이 불확정적이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으면 성립한다"며 "이 사건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판단은 공무집행방해죄의 고의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원심판결은 법관의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청주지방법원에 되돌려 보냈다. 1년 반전 세모(歲暮)에 발생한 청주의 주취 난동은 다시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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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異)판결]⑥ 경찰 얼굴에 펀치 날린 대학생…법원 “만취했으니 무죄”
    • 입력 2019-06-26 07:01:07
    • 수정2019-06-26 08:18:21
    취재K
※원고와 피고를 모두 만족하게 하는 판결은 없습니다. 법적인 판단은 국민 정서와도 자주 부딪칩니다. 그래도 우리가 판결에 관심을 갖는 건 세상사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異)란 '다르다' '기이하다' '뛰어나다'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연재로 소개될 판결들에 대한 평가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경찰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20대 남성, 만일 이 남성이 술에 만취해 인사불성 상태였다면 이게 면죄부가 될까.

바로 이런 이유로 1,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무슨 일일까.

세모(歲暮)이던 2017년 12월 21일 밤, 사달이 벌어졌다. 청주의 한 빌라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벌이고 있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관할 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이 출동했다.

난동을 피우던 사람은 20대 대학생 A 씨였다. 그는 그날 저녁 후배 2명과 소주 8병을 마셨다고 한다. 술에 취해 3층 원룸에서 동료와 언쟁을 벌이며 난동을 피우던 그는 현장에 출동해 차에 태우려던 경찰관의 얼굴을 때렸다. 경찰관의 안경은 떨어졌고,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검찰은 A 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법원에 기소했다.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을 폭행하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된다.

그런데 1, 2심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형사법의 원칙은 범죄를 저지를 때 죄를 짓는다는 고의(故意)가 있어야 한다.

공무집행방해죄도 그렇다. 이 죄를 구성하려면 폭행이나 협박의 상대방이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에 대해 폭행 혹은 협박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범죄를 구성한다. 물론 이때의 ‘인식’이란 다소 불확정적인 경우라도 미필적 고의가 있으면 범죄가 된다.

그런데 법원은 A씨가 사건 당시 만취한 사실에 주목했다. 술에 너무 취해 상대방이 경찰관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폭행으로 공무 집행을 방해한다는 인식을 가졌다는 게 확실치 않다고 본 것이다.

1심 판결문을 보자(이해를 돕기 위해 취지를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판결문을 윤문, 재구성했고, 피고인이란 용어는 대학생 A 씨로 바꿈)

"출동했던 경찰은 대학생 A씨가 탈의한 채 누워 있었고, 계단에 가래침을 뱉고 욕설을 하는 등 인사불성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리고 경찰은 A 씨에게 대학교수 연락처가 나와 이를 보고 연락해 B 대학교수가 현장에 왔는데, A 씨는 교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욕까지 했다고 진술했다.”

1심은 이런 진술을 소개한 뒤 “(만취한) A 씨는 출동한 사람이 경찰공무원이고, 공무집행 중이라는 사실에 대한 범의(犯意)가 있었음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판결했다.

1심 판사는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판결로써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325조 규정을 들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2심 “만취해 정상적 판단 불가능”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검찰은 항소 이유로 “A 씨가 (술에 취해)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는 대학교수 B 씨의 진술을 1심이 너무 믿은 나머지 사실을 오인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주취 폭력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도 A 씨에게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심 판단도 1심과 같았다.

2심은 무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①A 씨는 일관되게 술에 취해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②출동 경찰관도 (사건 당시) A 씨가 제 발로 걷지 못해 대학교수 B씨와 출동 경찰관 등 3명이 함께 건물 복도를 데리고 내려왔다고 1심 법정에서 진술했다.

③ 사건 당시 A 씨는 속옷만 입고 있었는데, 12월 21일 한겨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A 씨는 만취해 정상적인 판단과 행동이 전혀 불가능했다.

이런 이유를 나열하며 2심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검사가 주장한 사실오인은 없었다"고 판시했다.

한마디로 두 번의 재판을 요약하면 법원은 “A 씨가 술에 취해 대학 교수도 못 알아봤다”(1심)는 사실과 “한겨울에 속옷만 입고 있었다”(2심) 등의 진술을 받아들여 대학생 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 판단은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의 생각은 하급심과는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13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청주지방법원에다 다시 심리하도록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해를 돕기위해 판결문의 취지를 살리면서 본문, 재구성)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살펴볼 때 A 씨가 주먹으로 경찰관의 얼굴을 때릴 당시 폭행 상대방이 공무를 집행 중인 경찰관이라는 점을 A씨가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들었다.

①당시 출동한 경찰관 2명은 경찰관 정복을 입고 있었고, A 씨에게 경찰관임을 알려 주었다.

②경찰관 출동 후 A 씨가 경찰관 허벅지를 손으로 때리자 다른 경찰관이 ‘(이렇게) 경찰을 폭행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형사 입건될 수 있다’고 하자 A 씨가 다소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③ A 씨가 경찰관의 얼굴을 때린 시점은 경찰관이 출동한 이후 약 1시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그 무렵 A 씨는 두 경찰관에게 소변을 보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했고, (실제로) 소변을 보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A 씨는 당시 경찰관 정복을 입은 사람을 경찰관으로 인식할 수는 있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의 주된 근거가 됐던 “A 학생이 자신도 못 알아봤다”는 B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원심과 다른 판단을 했다.

대법원은 “교수 B 씨는 A 씨를 직접 가르친 적이 없고, 그와는 다른 과 교수다. 일자리 추천 과정에서 명함을 한번 준 적이 있을 뿐이고, A 씨 소지품에서 연락처가 나와 경찰관이 연락했다. 그런데 교수는 경찰관 연락을 받고서는 처음에는 누구인지 기억도 못 하다가 전화번호를 찾아본 후에야 누군지 알게 되어 현장으로 오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A 씨가 교수 B 씨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달리 볼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공무집행방해죄에서 있어서 범의(犯意)는, 그 인식이 불확정적이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으면 성립한다"며 "이 사건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판단은 공무집행방해죄의 고의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원심판결은 법관의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청주지방법원에 되돌려 보냈다. 1년 반전 세모(歲暮)에 발생한 청주의 주취 난동은 다시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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