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7년의 기록]⑧ 학대 증가 못 따라가는 ‘땜질’ 대책…“실행이라도 제대로”

입력 2020.08.30 (08:03) 수정 2020.10.0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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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이의 죽음 뒤에도…학대는 반복됐다!

2013년 10월, 서현이가 생을 마쳤습니다. 주먹과 발로 의붓엄마에게 10여 차례 폭행당해 갈비뼈 16개가 골절된 서현이를, 의붓엄마는 멍을 빨리 빼겠다며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넣었습니다. 서현이는 겁에 질린 채 호흡곤란과 피하출혈로 욕조 안에서 숨졌습니다. 이날은 서현이가 몹시 기다렸던 소풍날. ‘2천 원을 가져가 놓고 안 가져갔다고 거짓말했다’는 게 서현이가 맞은 이유였습니다. 훗날 ‘이서현 사건’으로 이름 붙은 사건입니다.

서현이의 죽음은 파장이 컸습니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아동학대를 근절하겠다며 넉 달 만에 방대한 범정부 대책을 내놨습니다. 아동학대처벌법의 제정을 바탕으로 신고 활성화와 피해 아동 격리보호, 가해자 처벌 강화 방안 등이 담겼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15년, 인천에서는 아빠와 아빠의 동거녀에게 2년을 감금돼 살다 맨발로 탈출한 11살 여자아이가 발견됐습니다. 석 달 뒤 다시 정부 대책이 나왔습니다. 2017년 친부와 계모에게 고준희 양이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벌어진 뒤에도, 올해 6월 여행 가방에 아이가 갇혀 숨지고, 의붓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다 탈출하는 초등학생이 잇따라 발견된 뒤에도 정부 대책은 반복적으로 발표됐습니다.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나면 ‘반짝’ 관심이 커지고, 범정부 대책이 얼른 뒤를 잇는 양상이 반복되는 겁니다.


■ '땜질식' 정책 거듭…시행 안 된 정책도

2014년부터 올해까지, 2년 간격으로 나온 네 차례의 범정부 대책에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아동학대 사건의 처리 기준과 양형 기준이 조금씩 강화되면서, 아동학대를 범죄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수가 늘어나는 등 기본 인프라도 조금씩 늘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아동학대 신고접수와 조사를 공무원이 맡게 돼 그동안 민간에게 일임해왔던 아동학대 업무를 공공이 분담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속성으로 발표한 대책이다 보니, 이전 대책을 조금씩 보완하거나 반복하는 데 그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학대 아동 파악을 위한 가정 방문과 일제 점검은 대책마다 단골 메뉴였지만, 대상이나 기간이 한정된 경우가 많아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범정부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범부처 아동학대대책추진협의회(2016년)와 아동학대점검단(2018년)은 한시적으로만 운영되거나 검토 단계에서 사라졌습니다. 신고 의무자의 신고를 늘리겠다면서, 제재 조항을 만들기보다는 신고 대상과 과태료 인상만 반복하는 데 그쳤고, 관계 기관의 협력 강화나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이용한 아동학대 감시 등은 내용이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매번 반복됐습니다.


아예 발표만 되고 실행되지 않은 정책들도 많습니다. 2016년에 나온 학대 가해자에 대한 상담 교육 강화 방안은 법제화되지 못하고 사라졌고, 2016년과 2018년에 나온 아동복지시설 인프라 확충을 예산에 반영하는 방안도 실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을 위탁운영하는 굿네이버스 이순기 부장은 “정책에 언급은 돼 있지만, 후속 과제로 나와야 할 구체적인 확대실행계획은 발표된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 대책 쏟아져 나왔지만 실행 점수는 ‘물음표’

화려한 대책들이 실행 가능성을 전제로 만들어졌는지도 의문입니다. 제도 도입을 위해 뒷받침돼야 할 예산이나 인력 등을 고려하지 않은 듯한 대책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재학대 우려가 커지면서, 2014년과 2016년에는 학대 아동의 분리 보호 강화가 대책에 포함됐습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가정에서 분리된 아이들을 맡길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였습니다. 2018년 12월 기준 전국의 아동복지시설 현황을 보면 보호치료시설은 전국에 11곳, 일시보호시설은 12곳에 불과합니다. 부산, 울산, 세종, 충남, 경북, 제주에는 두 시설 모두가 한 곳도 없었습니다.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전국에 72곳인데, 보호하는 연인원이 한 해 9백에서 천 명 수준입니다.


당연히 정원을 초과해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 대부분이고 추가 수용은 언감생심입니다. 황은희 학대피해아동쉼터협의회장은 “원가정에서 분리된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쉼터에 자리가 날 때까지 하염없이 대기하는 실정”이라고 말합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원가정 복귀 조건을 강화하면서 대기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합니다. 정원이 초과하면 생활이 불편해지는 건 물론이고 안전사고도 우려됩니다. 황 회장은 “상해보험 등 각종 보험은 정원인 7명까지만 보장받을 수 있다. 사고가 나면 초과 인원은 보호를 못 받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가 학대를 일일이 확인하겠다며 대책마다 발표했던 가정 방문 확대도 마찬가집니다. 방문할 인력도 부족하고 가해자가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은데 보완책에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2018년 빅데이터를 통해 학대를 조기 발견할 목적으로 새롭게 개통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도 이런 문제가 반복됩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빅데이터 기반이라 일정 연령대 이상의 아이들이 주로 포착되고, 형제가 없거나 사망 가능성이 높은 영아들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보완을 위해서는 결국 읍면동 공무원이 일일이 방문해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나올 만큼 나왔다”며 “새로운 대책을 만들기보다는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잘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협업 강조했지만…손발 못 맞추는 정부 기관들

정부가 내놓은 네 번의 대책은 아동학대 관계기관 간의 협업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물론,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법무부와 지자체, 경찰, 검찰까지 다양한 기관들이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2014년부터 정부는 기관들이 공동운영지침을 사용해 아동학대에 대한 일관된 인식을 공유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6년이 지나도록 개선은 미미합니다. 당장 현장 출동에서부터 이견이 생깁니다. 학대 신고를 받고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함께 출동하면 상담원들은 가벼운 외상이나 방임도 학대로 인식하는 반면, 형법을 토대로 움직이는 경찰은 범죄나 피해 사실이 분명치 않으면 나서는데 주저하는 식입니다. 아래 그림이 보여주는 사례 역시 이견이 생겨 결국 해결되지 못한 사례입니다.


부처 간 정보 공유도 원활하지 못합니다. 아동학대의 피해자는 보건복지부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처벌받은 가해자는 법무부가 소관인데 ‘피의사실 공표’ 등을 이유로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동학대는 가해자가 보호자인 경우가 많은데,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면 피해아동을 가해자에 섣불리 노출할 우려가 커집니다. 기관 간의 벽을 낮출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 혹은 법적으로 명시된 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복권이 많이 팔려야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다?

2014년 정부 대책이 처음 발표되기 전, 참고가 됐던 민간 보고서가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나서 서현이 사망사건을 분석한 한국 유일의 아동학대 사망보고서, <이서현 보고서>입니다. 보고서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서현 보고서>의 제안들 중 핵심 사항은 정부 정책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아 학대 사망 방지를 위한 출생 등록 의무화, 아동 보호서비스를 위한 인프라 확충, 학대행위자 등록제 등입니다. 공교롭게도 대부분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는 항목들입니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이 불안정하다는 점은 매번 지적이 나오는 단골 문제점입니다. 예산의 액수가 많지도 않지만, 예산 대부분이 국가의 정식 예산인 일반회계가 아닌 기금으로 채워져 있다는 게 더 문제라는 겁니다. 법무부의 범죄피해자기금과 기재부의 복권기금이 그것입니다. 복권을 많이 못 팔면 아동학대 예산이 줄어드는 식인 겁니다. 올해 아동학대에 책정된 일반회계 예산은 11억여 원, 전체 예산의 3.9%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일반회계 예산은 실제 아동학대 사례관리에 쓰이기보다는 홍보비에 주로 쓰였습니다.


<이서현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 예방 사업의 운영부처는 보건복지부인데, 재원은 법무부와 기획재정부의 기금에서 나오는 상황"이라며 "기금 규모가 점차 축소돼온 데다 적정 예산 확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어, 일관된 사업 추진을 위해 보건복지부 일반회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장기 계획 없는 아동학대 정부 대책…“더 심각해질 것”

학대 피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깊은 고민 없이 땜질식 정책만 반복되는 사이, 학대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사례는 지난해 처음으로 3만 건을 넘었습니다. 한 전문가는 아동학대를 두고 “둑이 터지듯 늘어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정책이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라는 겁니다. 나아지기는커녕 계속 나빠질 거라는 게 이 전문가의 진단입니다.

아이들이 희생될 때만 반복돼 나온 단발성 정책, 실행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해 오지 못하는 사이 곳곳에서 아이들이 숨죽인 채 아파하다 숨졌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KBS데이터저널리즘팀이 분석한 7년간의 아동학대 데이터는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다 떠난 그 많은 아이들의 마지막 발자국이었습니다.



[연관기사]
[인터랙티브] 아동학대, 7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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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7년의 기록]①아동학대로 멍든 10만...숨진 아동 3분의 1은 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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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7년의 기록]②데이터가 말해주는 아동학대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3709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③ 태어나자마자 '학대'부터…데이터가 말하는 가해자의 민낯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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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7년의 기록]④ 눈감은 신고의무자…아동보호전문기관은 태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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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7년의 기록]⑤ 학대 확인돼도 '속수무책'…처벌도 주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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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7년의 기록]⑥ 학대 10%는 재발…악순환 계속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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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7년의 기록]⑦ 통계 공개 ‘반토막’…기준도 들쭉날쭉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7853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⑧ 학대 증가 못 따라가는 ‘땜질’ 대책…“실행이라도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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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수집·분석: 윤지희, 이지연
데이터 시각화: 권세라, 강준희
인터랙티브 UX/UI 디자인&개발: 김명윤, 공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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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⑧ 학대 증가 못 따라가는 ‘땜질’ 대책…“실행이라도 제대로”
    • 입력 2020-08-30 08:03:44
    • 수정2020-10-05 13: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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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이의 죽음 뒤에도…학대는 반복됐다!

2013년 10월, 서현이가 생을 마쳤습니다. 주먹과 발로 의붓엄마에게 10여 차례 폭행당해 갈비뼈 16개가 골절된 서현이를, 의붓엄마는 멍을 빨리 빼겠다며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넣었습니다. 서현이는 겁에 질린 채 호흡곤란과 피하출혈로 욕조 안에서 숨졌습니다. 이날은 서현이가 몹시 기다렸던 소풍날. ‘2천 원을 가져가 놓고 안 가져갔다고 거짓말했다’는 게 서현이가 맞은 이유였습니다. 훗날 ‘이서현 사건’으로 이름 붙은 사건입니다.

서현이의 죽음은 파장이 컸습니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아동학대를 근절하겠다며 넉 달 만에 방대한 범정부 대책을 내놨습니다. 아동학대처벌법의 제정을 바탕으로 신고 활성화와 피해 아동 격리보호, 가해자 처벌 강화 방안 등이 담겼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15년, 인천에서는 아빠와 아빠의 동거녀에게 2년을 감금돼 살다 맨발로 탈출한 11살 여자아이가 발견됐습니다. 석 달 뒤 다시 정부 대책이 나왔습니다. 2017년 친부와 계모에게 고준희 양이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벌어진 뒤에도, 올해 6월 여행 가방에 아이가 갇혀 숨지고, 의붓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다 탈출하는 초등학생이 잇따라 발견된 뒤에도 정부 대책은 반복적으로 발표됐습니다.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나면 ‘반짝’ 관심이 커지고, 범정부 대책이 얼른 뒤를 잇는 양상이 반복되는 겁니다.


■ '땜질식' 정책 거듭…시행 안 된 정책도

2014년부터 올해까지, 2년 간격으로 나온 네 차례의 범정부 대책에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아동학대 사건의 처리 기준과 양형 기준이 조금씩 강화되면서, 아동학대를 범죄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수가 늘어나는 등 기본 인프라도 조금씩 늘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아동학대 신고접수와 조사를 공무원이 맡게 돼 그동안 민간에게 일임해왔던 아동학대 업무를 공공이 분담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속성으로 발표한 대책이다 보니, 이전 대책을 조금씩 보완하거나 반복하는 데 그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학대 아동 파악을 위한 가정 방문과 일제 점검은 대책마다 단골 메뉴였지만, 대상이나 기간이 한정된 경우가 많아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범정부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범부처 아동학대대책추진협의회(2016년)와 아동학대점검단(2018년)은 한시적으로만 운영되거나 검토 단계에서 사라졌습니다. 신고 의무자의 신고를 늘리겠다면서, 제재 조항을 만들기보다는 신고 대상과 과태료 인상만 반복하는 데 그쳤고, 관계 기관의 협력 강화나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이용한 아동학대 감시 등은 내용이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매번 반복됐습니다.


아예 발표만 되고 실행되지 않은 정책들도 많습니다. 2016년에 나온 학대 가해자에 대한 상담 교육 강화 방안은 법제화되지 못하고 사라졌고, 2016년과 2018년에 나온 아동복지시설 인프라 확충을 예산에 반영하는 방안도 실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을 위탁운영하는 굿네이버스 이순기 부장은 “정책에 언급은 돼 있지만, 후속 과제로 나와야 할 구체적인 확대실행계획은 발표된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 대책 쏟아져 나왔지만 실행 점수는 ‘물음표’

화려한 대책들이 실행 가능성을 전제로 만들어졌는지도 의문입니다. 제도 도입을 위해 뒷받침돼야 할 예산이나 인력 등을 고려하지 않은 듯한 대책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재학대 우려가 커지면서, 2014년과 2016년에는 학대 아동의 분리 보호 강화가 대책에 포함됐습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가정에서 분리된 아이들을 맡길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였습니다. 2018년 12월 기준 전국의 아동복지시설 현황을 보면 보호치료시설은 전국에 11곳, 일시보호시설은 12곳에 불과합니다. 부산, 울산, 세종, 충남, 경북, 제주에는 두 시설 모두가 한 곳도 없었습니다.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전국에 72곳인데, 보호하는 연인원이 한 해 9백에서 천 명 수준입니다.


당연히 정원을 초과해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 대부분이고 추가 수용은 언감생심입니다. 황은희 학대피해아동쉼터협의회장은 “원가정에서 분리된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쉼터에 자리가 날 때까지 하염없이 대기하는 실정”이라고 말합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원가정 복귀 조건을 강화하면서 대기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합니다. 정원이 초과하면 생활이 불편해지는 건 물론이고 안전사고도 우려됩니다. 황 회장은 “상해보험 등 각종 보험은 정원인 7명까지만 보장받을 수 있다. 사고가 나면 초과 인원은 보호를 못 받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가 학대를 일일이 확인하겠다며 대책마다 발표했던 가정 방문 확대도 마찬가집니다. 방문할 인력도 부족하고 가해자가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은데 보완책에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2018년 빅데이터를 통해 학대를 조기 발견할 목적으로 새롭게 개통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도 이런 문제가 반복됩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빅데이터 기반이라 일정 연령대 이상의 아이들이 주로 포착되고, 형제가 없거나 사망 가능성이 높은 영아들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보완을 위해서는 결국 읍면동 공무원이 일일이 방문해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나올 만큼 나왔다”며 “새로운 대책을 만들기보다는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잘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협업 강조했지만…손발 못 맞추는 정부 기관들

정부가 내놓은 네 번의 대책은 아동학대 관계기관 간의 협업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물론,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법무부와 지자체, 경찰, 검찰까지 다양한 기관들이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2014년부터 정부는 기관들이 공동운영지침을 사용해 아동학대에 대한 일관된 인식을 공유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6년이 지나도록 개선은 미미합니다. 당장 현장 출동에서부터 이견이 생깁니다. 학대 신고를 받고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함께 출동하면 상담원들은 가벼운 외상이나 방임도 학대로 인식하는 반면, 형법을 토대로 움직이는 경찰은 범죄나 피해 사실이 분명치 않으면 나서는데 주저하는 식입니다. 아래 그림이 보여주는 사례 역시 이견이 생겨 결국 해결되지 못한 사례입니다.


부처 간 정보 공유도 원활하지 못합니다. 아동학대의 피해자는 보건복지부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처벌받은 가해자는 법무부가 소관인데 ‘피의사실 공표’ 등을 이유로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동학대는 가해자가 보호자인 경우가 많은데,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면 피해아동을 가해자에 섣불리 노출할 우려가 커집니다. 기관 간의 벽을 낮출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 혹은 법적으로 명시된 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복권이 많이 팔려야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다?

2014년 정부 대책이 처음 발표되기 전, 참고가 됐던 민간 보고서가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나서 서현이 사망사건을 분석한 한국 유일의 아동학대 사망보고서, <이서현 보고서>입니다. 보고서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서현 보고서>의 제안들 중 핵심 사항은 정부 정책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아 학대 사망 방지를 위한 출생 등록 의무화, 아동 보호서비스를 위한 인프라 확충, 학대행위자 등록제 등입니다. 공교롭게도 대부분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는 항목들입니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이 불안정하다는 점은 매번 지적이 나오는 단골 문제점입니다. 예산의 액수가 많지도 않지만, 예산 대부분이 국가의 정식 예산인 일반회계가 아닌 기금으로 채워져 있다는 게 더 문제라는 겁니다. 법무부의 범죄피해자기금과 기재부의 복권기금이 그것입니다. 복권을 많이 못 팔면 아동학대 예산이 줄어드는 식인 겁니다. 올해 아동학대에 책정된 일반회계 예산은 11억여 원, 전체 예산의 3.9%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일반회계 예산은 실제 아동학대 사례관리에 쓰이기보다는 홍보비에 주로 쓰였습니다.


<이서현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 예방 사업의 운영부처는 보건복지부인데, 재원은 법무부와 기획재정부의 기금에서 나오는 상황"이라며 "기금 규모가 점차 축소돼온 데다 적정 예산 확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어, 일관된 사업 추진을 위해 보건복지부 일반회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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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희생될 때만 반복돼 나온 단발성 정책, 실행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해 오지 못하는 사이 곳곳에서 아이들이 숨죽인 채 아파하다 숨졌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KBS데이터저널리즘팀이 분석한 7년간의 아동학대 데이터는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다 떠난 그 많은 아이들의 마지막 발자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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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수집·분석: 윤지희, 이지연
데이터 시각화: 권세라, 강준희
인터랙티브 UX/UI 디자인&개발: 김명윤, 공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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