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끔찍한 피해 지속에도 “거기 말고는 갈 데가 없어요”

입력 2020.09.16 (11:30) 수정 2020.09.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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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탐사K] 우리가 외면해온 지적장애

도심 한복판 지적장애인 간 범죄…“우리는 책임이 없는 걸까?”

제주시청 일대에서 장기간 범죄 피해를 당한 지적장애인들. 가해자 역시 절반 이상이 지적장애인이었는데, 지난해 말부터 반년 넘게 피해자들을 폭행하거나 협박해왔습니다. 가해자들은 말을 듣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의 입에 담뱃재를 털어 넣거나 라이터로 머리카락을 태우고 감금을 하는 등의 가혹행위를 일삼았습니다.

최근 법원은 소위 ‘조폭’ 행세를 하며 폭행을 일삼은 이들에게 가담 정도에 따라 최소 벌금 3백만 원에서 최대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들을 잠시 사회에서 격리해놓는 것만으로 지적장애인 범죄 문제가 해결된 걸까요? 시청 주변에서 장기간에 걸쳐 사회적 약자 간에 벌어진 이 범죄에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요? 탐사K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문제’ 알았지만, 그 누구도 팔 걷지 않아


취재 대상이 장애인이다 보니 접근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장애인 피해 지원 기관들도 당사자 인권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지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언론의 접근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피해 지원 기관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취재를 시작할 수 있었고, 피해와 가해 당사자들과도 직접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취재진은 사회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사회의 무관심 속에 범죄는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피해 사실을 알고 직접 찾아가 봤지만 개선이 어려웠다”, “1~2년 된 문제가 아니다 보니 지적장애여성들에게 시청 주변 우범 지역에 가지 말라고 당부해왔다”, “폭행으로 출동한 적이 여러 번 있는데, 지적장애인 피해자가 어느 날은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어렴풋하게라도 ‘문제’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누구도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팔을 걷진 않았습니다.

드러난 범죄 ‘빙산의 일각’…성폭행에 조건만남, 강제 혼인까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강제추행 피해자는 3년 전 지적장애 남성 2명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가해자들이 해코지할까 봐 걱정돼 혼자 속앓이만 하고 있었던 겁니다.

또 다른 지적장애여성은 같은 지적장애인 지인 때문에 소위 ‘조건만남’에 내몰렸다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지인이 채팅으로 알게 된 남성들에게 돈을 받고 자신을 소개했다는 건데, 이 남성들은 하나같이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같은 주장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이 밖에도 지적장애남성의 강요 때문에 억지로 혼인신고를 올렸다가 가족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던 사례 등 상상하기 힘든 피해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피해만 이 정도일 뿐, 실제 범죄는 더 많았을 겁니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범죄는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뒷짐 진 사법체계, 지적장애인 재범 키운 꼴


한편, 이번 사건 우두머리인 박 모 씨의 범죄 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동생과 함께 지적장애인을 공갈 협박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에 처해 보호관찰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이처럼 일당 11명 가운데 7명은 이미 폭행 등의 전과가 있었지만,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처벌 이후에도 지적장애인의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사법체계’가 이유로 꼽힙니다. 지적장애인에게 적용되는 현재의 사법체계는 비장애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재판을 거쳐 징역형 외에 치료감호나 보호관찰 등의 처분이 내려지지만, 장애 특성을 고려한 교육이나 절차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단순히 처벌을 내리는 판결로서의 의미 말고, 재발 방지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윱니다.

일례로 지적장애인 가해자에게 보호관찰 제도나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운영되기도 하지만, 장애 특성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정작 교육 등을 수행하는 보호관찰소에는 장애 여부 등의 정보가 전달되지 않다 보니 비장애인과 함께 집단교육을 받는 실정입니다. 비장애인 가해자들과 똑같이 받는 이 교육이 과연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상담가는 “전문가에게 바로 연결해서 눈높이에 맞게 개입했을 경우 많은 행동 수정이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결국, 지적장애인에 대한 적절한 재범 방지 대책을 운영하지 않은 사법체계의 방관이 재범을 키운 꼴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대1 교육과 함께 상담을 제공하는 맞춤형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도 마련됐지만, 실제 도입된 지역은 대전 등 일부에 불과합니다. 지적장애인 범죄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장애 특성에 맞는 재범 방지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이번 보도 이후 제주도는 제주지방검찰청에 프로그램 도입을 요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에도 우범 지역에 나가는 이유 ‘외로움’…“갈 곳이 없어요”


취재하면서 가장 의아했던 건 피해자들이 피해를 겪으면서도 가해자들이 있는 제주시청 일대로 계속 향했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물음에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외롭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대화를 나눌 존재가 없기 때문에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또래들이 모이는 제주시청 일대를 계속해서 찾게 된다는 겁니다.

“왜 그 친구(가해자)가 너를 놀리는데 같이 어울리냐고 물었더니 그나마 그 친구만 우리 애랑 얘기를 나눠주는 거라고 하더라”는 한 발달장애인 당사자 어머니의 말에 순간 울컥했습니다. 대인관계가 단절된 지적장애인들에게는 가해자들만이 대화 상대였던 겁니다.

지적장애인들이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오면 취업은 고사하고 친구를 만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취업을 하더라도 일하는 시간보다 일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더 많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여가생활에 대한 고민은 뒷전입니다.

복지관은 평일 저녁이나 주말엔 운영하지 않고, 공공 체육시설에서는 장애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배제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이용이 쉽지 않습니다. 정부가 생애주기별 지원계획을 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애초에 누릴 수 있는 서비스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그나마 이번 보도 이후 제주도는 성인 발달장애인이 일과 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중 야간이나 주말 여가 프로그램 운영기관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아울러 제주도는 청소년을 위한 여가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것처럼,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여가시설 운영을 고려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관건은 수요자 중심의 복지체계…제주도 “자조모임 확대” 약속


취재 과정에 눈에 띈 사례가 바로 대구지역의 자조모임입니다. 이 모임에는 20살에서 39살 사이의 지적장애인들이 참여하는데, 당사자들이 하고 싶은 것을 직접 결정합니다. 그동안에는 학교나 복지관에서 정한 틀에 따랐지만, 성인이 되면서 욕구가 다양해진 만큼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겁니다. 함께 모여 가볍게 술도 마시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연애하면서 문제가 생길 때는 전문가들이 상담을 해주기도 합니다.

이 모임이 지적장애 당사자와 학부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건 최소한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면서도 실제 성인이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주목해야 할 건, 복지체계는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주도는 올해 4천 3백만 원을 투입해 도내 3개 기관에서 당사자 자조모임을 운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아직은 참여 인원이 적은 데다 당사자 스스로의 결정보다는 기관 중심으로 운영되는 실정입니다. 온전히 당사자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데, 제주도가 향후 확대 지원을 통해 성인 발달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촉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외면해 온 지적장애인 범죄…“모두의 관심 필요”

이번 취재를 통해 지적장애인 범죄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관심 때문에 되풀이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보도가 더이상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게끔, 행정과 사법기관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개개인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한번쯤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취재하면서 당사자 부모나 기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했던 게 있습니다. 지적장애인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범죄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게 되면, 지적장애인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겁니다. 가뜩이나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는 건 아닐지 우려했습니다.

그런데 ‘재범 가능성’은 지적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적장애인의 경우 앞서 말했다시피 맞춤형 교육과 보호관찰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행동 수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갈 곳이 없어 도심의 그늘 아래 모인 지적장애인들에게 우리가 내밀어야 하는 건 부정적인 시선이 아니라 세심한 관심의 손길입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한 지적장애인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서 무언가 즐겁게 어울릴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며,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평범한 삶’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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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6 11: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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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원은 소위 ‘조폭’ 행세를 하며 폭행을 일삼은 이들에게 가담 정도에 따라 최소 벌금 3백만 원에서 최대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들을 잠시 사회에서 격리해놓는 것만으로 지적장애인 범죄 문제가 해결된 걸까요? 시청 주변에서 장기간에 걸쳐 사회적 약자 간에 벌어진 이 범죄에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요? 탐사K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문제’ 알았지만, 그 누구도 팔 걷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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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피해 지원 기관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취재를 시작할 수 있었고, 피해와 가해 당사자들과도 직접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취재진은 사회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사회의 무관심 속에 범죄는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피해 사실을 알고 직접 찾아가 봤지만 개선이 어려웠다”, “1~2년 된 문제가 아니다 보니 지적장애여성들에게 시청 주변 우범 지역에 가지 말라고 당부해왔다”, “폭행으로 출동한 적이 여러 번 있는데, 지적장애인 피해자가 어느 날은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어렴풋하게라도 ‘문제’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누구도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팔을 걷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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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지적장애여성은 같은 지적장애인 지인 때문에 소위 ‘조건만남’에 내몰렸다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지인이 채팅으로 알게 된 남성들에게 돈을 받고 자신을 소개했다는 건데, 이 남성들은 하나같이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같은 주장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이 밖에도 지적장애남성의 강요 때문에 억지로 혼인신고를 올렸다가 가족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던 사례 등 상상하기 힘든 피해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피해만 이 정도일 뿐, 실제 범죄는 더 많았을 겁니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범죄는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뒷짐 진 사법체계, 지적장애인 재범 키운 꼴


한편, 이번 사건 우두머리인 박 모 씨의 범죄 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동생과 함께 지적장애인을 공갈 협박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에 처해 보호관찰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이처럼 일당 11명 가운데 7명은 이미 폭행 등의 전과가 있었지만,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처벌 이후에도 지적장애인의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사법체계’가 이유로 꼽힙니다. 지적장애인에게 적용되는 현재의 사법체계는 비장애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재판을 거쳐 징역형 외에 치료감호나 보호관찰 등의 처분이 내려지지만, 장애 특성을 고려한 교육이나 절차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단순히 처벌을 내리는 판결로서의 의미 말고, 재발 방지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윱니다.

일례로 지적장애인 가해자에게 보호관찰 제도나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운영되기도 하지만, 장애 특성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정작 교육 등을 수행하는 보호관찰소에는 장애 여부 등의 정보가 전달되지 않다 보니 비장애인과 함께 집단교육을 받는 실정입니다. 비장애인 가해자들과 똑같이 받는 이 교육이 과연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상담가는 “전문가에게 바로 연결해서 눈높이에 맞게 개입했을 경우 많은 행동 수정이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결국, 지적장애인에 대한 적절한 재범 방지 대책을 운영하지 않은 사법체계의 방관이 재범을 키운 꼴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대1 교육과 함께 상담을 제공하는 맞춤형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도 마련됐지만, 실제 도입된 지역은 대전 등 일부에 불과합니다. 지적장애인 범죄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장애 특성에 맞는 재범 방지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이번 보도 이후 제주도는 제주지방검찰청에 프로그램 도입을 요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에도 우범 지역에 나가는 이유 ‘외로움’…“갈 곳이 없어요”


취재하면서 가장 의아했던 건 피해자들이 피해를 겪으면서도 가해자들이 있는 제주시청 일대로 계속 향했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물음에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외롭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대화를 나눌 존재가 없기 때문에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또래들이 모이는 제주시청 일대를 계속해서 찾게 된다는 겁니다.

“왜 그 친구(가해자)가 너를 놀리는데 같이 어울리냐고 물었더니 그나마 그 친구만 우리 애랑 얘기를 나눠주는 거라고 하더라”는 한 발달장애인 당사자 어머니의 말에 순간 울컥했습니다. 대인관계가 단절된 지적장애인들에게는 가해자들만이 대화 상대였던 겁니다.

지적장애인들이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오면 취업은 고사하고 친구를 만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취업을 하더라도 일하는 시간보다 일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더 많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여가생활에 대한 고민은 뒷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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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번 보도 이후 제주도는 성인 발달장애인이 일과 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중 야간이나 주말 여가 프로그램 운영기관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아울러 제주도는 청소년을 위한 여가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것처럼,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여가시설 운영을 고려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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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취재하면서 당사자 부모나 기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했던 게 있습니다. 지적장애인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범죄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게 되면, 지적장애인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겁니다. 가뜩이나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는 건 아닐지 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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