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색깔없는 전술, 희생정신 잊은 선수”

"지난 1년 6개월 동안 진화 없는 축구가 이어졌다."(김대길 KBS N 해설위원)

"한국 축구의 색깔이 없어졌다."(신문선 명지대 교수)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5일(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치른 레바논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6차전에서 졸전 끝에 1-1 무승부를 거뒀다.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김치우(서울)의 프리킥 동점골이 아니었다면 완패에 가까운 경기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29위에 불과한데다 승부조작에 따른 징계로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빠진 레바논을 상대로 끌려가는 경기를 펼친 선수들은 물론 답답한 전술로 일관한 최 감독의 지도력을 비판하는 팬들의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축구 전문가들도 '압박-속도-체력'에서 모두 레바논 선수들에게 뒤진 태극전사들의 무기력한 경기력과 '진화 없는' 전술로 어려움을 자초한 최 감독의 '무색-무취' 전술에 대해 안타까운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사령탑의 '필승 카드 부재'와 희생정신을 잃은 선수들의 의욕 부족을 들었다.

신 교수는 "솔직히 한국 축구의 색깔이 없어졌다"며 "공수의 빠른 전환은 물론 강한 압박과 강인한 체력 모두 대표팀에서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 3월 카타르와의 최종예선 5차전 홈 경기에서도 공수 간격이 크게 벌어지면서 상대의 역습에 고전했는데 이번에도 나아진 게 없었다"며 "한국 축구의 장점인 스피드를 활용한 공간 침투도 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경기력 저하의 원인으로 베스트 11의 잦은 변화를 한가지 요인으로 꼽았다. 약속된 플레이는 말이 아닌 몸으로 익히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선수 변화의 폭이 너무 컸다고 지적했다.

레바논전에서 중원 미드필더를 맡은 김남일(인천)-한국영(쇼난 벨마레)과 김치우-곽태휘(알 샤밥)-김기희(알 샤일라)-신광훈(포항)으로 이뤄진 포백(4-back)은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췄다.

신 교수는 "개인 전술만 따지면 한국이 레바논을 앞서지만 팀 전술에서는 밀렸다"며 "약속된 플레이가 나오지 못했다. 감독과 선수, 선수와 선수 간의 신뢰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수들도 팀에 보탬이 되겠다는 강한 희생정신이 흐려진 것 같다"며 "이근호(상주)와 손흥민(함부르크) 등 빠른 공격수들의 장점을 살려줄 수 있는 전술의 가동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은 대표팀의 '모래알 조직력'과 전술 부재를 지적하고 나섰다.

김 위원은 "경기력이 좋은 선수들을 뽑은 것은 맞지만 이들을 조직적으로 묶지 못한 코칭스태프의 책임이 크다"며 "패스도 안 되고 옛날 축구를 답습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강희 축구'가 과연 어떤 것인지 평가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라며 "최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1년 6개월 동안 대표팀에서 진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걱정했다.

레바논전에 가동한 대표팀의 전술에 대해서도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을 중앙에 나란히 배치했다는 것은 측면 공격에 집중하겠다는 전술인데 풀백들의 오버래핑이 제대로 되지 못해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이동국(전북)이 최전방에 큰 움직임 없이 머물면서 오히려 측면 공격수들이 공간으로 침투하기 어려워졌다"며 "전방에서 1차 수비 가담을 제대로 해주지 않다 보니 중앙 미드필더에게 수비 부담을 많이 줬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최종예선만 치르고 대표팀 지휘봉을 놓기로 한 최강희 감독의 결정 때문에 선수들의 결속력이 흐트러진 측면도 강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박 위원은 "최종예선 3차전부터 대표팀의 경기 내용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며 "최종예선만 끝내고 그만두겠다는 사령탑과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바라보는 선수들의 관계에 괴리감이 생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팀 감독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설 23명의 선수를 뽑는 게 최고의 권한이지만 지금 대표팀에서는 그런 긴장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