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피격 46명 전사

입력 2010.12.27 (22:15) 수정 2010.12.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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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 어떤 사건이 ’화제’가 됐을까요?



KBS가 ’2010 사건 그 이후’ 순서를 마련했습니다.



그 첫순서 바로 ’천안함 사태’입니다.



충격적이고 안타까웠던 사건. 하나 하나 재구성해 봤습니다.



<질문>



네, 바로 어제 일처럼 아직도 그 충격이 생생합니다.



이영현 기자 나왔습니다.



이 기자, ’살아남은 장병들’ 걱정이 되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답변>



천안함 생존장병은 모두 58명입니다.



이 가운데 5명은 전역했지만 나머지 53명은 천안함 사건의 고통을 이기며 해군에서 복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귀수 기자가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생존 장병들을 지금까지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전우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입니다.



<녹취> 안재근 병장(전 천안함 승조원) : "전우들을 같이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슬프고 힘들고 괜히 내가 못 구한 것 같아서..."



전역한 장병들도 아직 그 날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 최성진(전 천안함 승조원/전역) : "외상후 스트레스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그런 상황들이 자꾸 떠올라 잠이 안오고 그럽니다."



무엇보다 생존 장병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한다는 일각의 주장, 불신이었습니다.



<녹취> 허순행 :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 말을 해서 그 사람들을 이해시킬지는 모르겠지만..."



함장이던 최원일 중령은 함상 근무를 떠나 해군 전투사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녹취> 최원일 : "연평도 포격에서 보셨겠지만 적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생존장병 58명 중 6명은 고통을 딛고 다시 함정 근무를 자원하는 위대한 용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녹취> 김효형 하사(전 천안함 승조원) : "적이 다시 도발한다면 철저히 박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배에 탔습니다."



<앵커 멘트>



조국을 위해 꽃다운 목숨을 바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순직장병들과 고 한주호 준위에 대해선 어떻게 예우하고 있는지 이번엔 김주한 기자가 짚어 봅니다.



<리포트>



속 깊은 사연들을 검은 바다에 남겨놓고 떠난지 9개월. 46명 용사들은 끝내 침묵으로 돌아왔습니다.



고 최한권 원사 등 6명은 시신도 찾지 못했습니다.



유족들은 아직도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씨는 생전 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으며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고통을 달랩니다.



<녹취> 윤청자(故 민평기 상사 어머니) : "안 당해 본 사람이 그 심정을 누가 알까요. 자다가도 울컥 생각나고..."



실종 장병들을 수색하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 해군 특수전여단의 전설이었던 그는 우리 사회의 영웅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녹취> 김말순(故 한주호 준위 부인) : "생각하면 할 수록 너무 가슴 아픈 일이고, 저희 아저씨가 왜 그랬을까, 가족들은 항상..."



이들의 고귀한 희생은 다양한 공익사업의 토대가 될 천안함 재단으로 부활했습니다.



<녹취> 조용근(천안함재단 이사장) : "우리 자녀들이 국가를 위해서 희생 됐구나, 영원히 우리의 자년인 것같이 우리가 책임을 져야 된다..."



바다보다 푸른 꿈을 꾸던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우리 시대의 귀감으로 영원히 남게 됐습니다.



<질문>



워낙 엄청난 일이어서겠죠.



천안함 사태 후 우리 사회와 군도 참 많은 변화를 겪었죠?



<답변>



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실체를 일깨워주고 안보태세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침몰 원인 등을 둘러싼 의혹과 책임 논란으로 우리 사회는 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녹취> 백승주 : "북한이 가장 노리는 도발의 심리학적 측면은 전쟁과 관련된 여러가지 여론이 분열되고 정치 지도자들이 분열되는 것이 거든요 남남갈등이 벌어지고..."



서해 5도 지역입니다. 천안함 사태 후 우리 군의 눈에 띠는 대비태세 강화는 유감스럽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연평도 도발이라는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나서야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K-9 자주포가 증강되고 다연장 로켓포와 스파이크 미사일 70기 등 최신예 무기가 새로 배치됐습니다.



북한이 또 도발한다면 우리 전투기가 20분 만에 도발 원점을 즉시 타격해 초토화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또 이를 역 이용해 다른 곳에서 도발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천안함은 우리에게 준비와 단합만이 도발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영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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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피격 46명 전사
    • 입력 2010-12-27 22:15:50
    • 수정2010-12-29 23:00:11
    뉴스 9
<앵커 멘트>

올해 어떤 사건이 ’화제’가 됐을까요?

KBS가 ’2010 사건 그 이후’ 순서를 마련했습니다.

그 첫순서 바로 ’천안함 사태’입니다.

충격적이고 안타까웠던 사건. 하나 하나 재구성해 봤습니다.

<질문>

네, 바로 어제 일처럼 아직도 그 충격이 생생합니다.

이영현 기자 나왔습니다.

이 기자, ’살아남은 장병들’ 걱정이 되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답변>

천안함 생존장병은 모두 58명입니다.

이 가운데 5명은 전역했지만 나머지 53명은 천안함 사건의 고통을 이기며 해군에서 복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귀수 기자가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생존 장병들을 지금까지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전우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입니다.

<녹취> 안재근 병장(전 천안함 승조원) : "전우들을 같이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슬프고 힘들고 괜히 내가 못 구한 것 같아서..."

전역한 장병들도 아직 그 날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 최성진(전 천안함 승조원/전역) : "외상후 스트레스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그런 상황들이 자꾸 떠올라 잠이 안오고 그럽니다."

무엇보다 생존 장병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한다는 일각의 주장, 불신이었습니다.

<녹취> 허순행 :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 말을 해서 그 사람들을 이해시킬지는 모르겠지만..."

함장이던 최원일 중령은 함상 근무를 떠나 해군 전투사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녹취> 최원일 : "연평도 포격에서 보셨겠지만 적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생존장병 58명 중 6명은 고통을 딛고 다시 함정 근무를 자원하는 위대한 용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녹취> 김효형 하사(전 천안함 승조원) : "적이 다시 도발한다면 철저히 박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배에 탔습니다."

<앵커 멘트>

조국을 위해 꽃다운 목숨을 바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순직장병들과 고 한주호 준위에 대해선 어떻게 예우하고 있는지 이번엔 김주한 기자가 짚어 봅니다.

<리포트>

속 깊은 사연들을 검은 바다에 남겨놓고 떠난지 9개월. 46명 용사들은 끝내 침묵으로 돌아왔습니다.

고 최한권 원사 등 6명은 시신도 찾지 못했습니다.

유족들은 아직도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씨는 생전 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으며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고통을 달랩니다.

<녹취> 윤청자(故 민평기 상사 어머니) : "안 당해 본 사람이 그 심정을 누가 알까요. 자다가도 울컥 생각나고..."

실종 장병들을 수색하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 해군 특수전여단의 전설이었던 그는 우리 사회의 영웅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녹취> 김말순(故 한주호 준위 부인) : "생각하면 할 수록 너무 가슴 아픈 일이고, 저희 아저씨가 왜 그랬을까, 가족들은 항상..."

이들의 고귀한 희생은 다양한 공익사업의 토대가 될 천안함 재단으로 부활했습니다.

<녹취> 조용근(천안함재단 이사장) : "우리 자녀들이 국가를 위해서 희생 됐구나, 영원히 우리의 자년인 것같이 우리가 책임을 져야 된다..."

바다보다 푸른 꿈을 꾸던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우리 시대의 귀감으로 영원히 남게 됐습니다.

<질문>

워낙 엄청난 일이어서겠죠.

천안함 사태 후 우리 사회와 군도 참 많은 변화를 겪었죠?

<답변>

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실체를 일깨워주고 안보태세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침몰 원인 등을 둘러싼 의혹과 책임 논란으로 우리 사회는 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녹취> 백승주 : "북한이 가장 노리는 도발의 심리학적 측면은 전쟁과 관련된 여러가지 여론이 분열되고 정치 지도자들이 분열되는 것이 거든요 남남갈등이 벌어지고..."

서해 5도 지역입니다. 천안함 사태 후 우리 군의 눈에 띠는 대비태세 강화는 유감스럽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연평도 도발이라는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나서야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K-9 자주포가 증강되고 다연장 로켓포와 스파이크 미사일 70기 등 최신예 무기가 새로 배치됐습니다.

북한이 또 도발한다면 우리 전투기가 20분 만에 도발 원점을 즉시 타격해 초토화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또 이를 역 이용해 다른 곳에서 도발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천안함은 우리에게 준비와 단합만이 도발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영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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