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화재’ 형제 뒤에 도사린 코로나 시대 ‘방임학대’ 그늘
입력 2020.09.19 (08:01)
수정 2020.09.1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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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리손으로 라면 끓이던 아이들…부모는 어디에
10살과 8살 초등학생 형제만 있는 집에 불이 난 건 평일인 14일 오전 11시 쯤이었습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사고가 났습니다. 간신히 119에 전화를 건 형제는 “살려주세요”만 반복하다 전화를 끊었습니다. 휴대전화 추적으로 집을 찾은 소방관들이 서둘러 불을 껐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연기 가득한 집에서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처음에는 코로나19로 등교를 하지 못했던 형제가 끼니를 때우려다 변을 당한 안타까운 사고로 알려졌던 화재. 그 뒤에 의외의 '아동학대'가 있었다는 정황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화재 당시 집을 비웠던 형제의 엄마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2년 전 형제가 방임으로 인한 학대를 받고 있다는 신고가 처음 들어온 이래, 학대 신고가 무려 세 차례나 있었습니다. 올해 5월 세 번째 신고가 접수되자 그동안 상담을 진행해오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형제를 엄마에게서 분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했습니다. 수사도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엄마와 살고 싶다고 말했고, 법원도 “격리보다는 상담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해 분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탓에 상담도 미뤄진 사이 사고가 났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리 중이던 아동학대 사례를 수사나 법원 결정 단계로 넘기는 건 대부분 법적 처분 없이는 더 이상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법으로 다뤄야 할 만큼 급한 처분이 필요하거나 학대 수준이 가벼운 단계를 넘어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화재 피해를 입은 형제의 아동학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입니다.
■ 코로나19 시대, '방임 학대' 늘어나나
2년 전 형제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처음 들어왔을 때 신고 내용은 ‘아이들이 방임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뒤 두 번째 신고가 들어왔을 때는 집안 청소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화재가 났을 때, 엄마는 전날부터 집을 비우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동학대 유형 상 ‘방임’에 해당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아동복지법상 ‘방임’의 정의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불결한 환경에 아동을 방치하는 행위’, 즉 아동에게 필요한 돌봄이 이뤄지지 않고 방치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방임은 다른 아동학대 유형들, 즉 신체·정서학대나 성적 학대 등보다 외적으로 덜 드러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그간 방임 피해 아동의 비율이 꾸준히 줄어온 것도 사회적 관심이 멀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2012~2018년 통계를 보면, 2012년에는 전체 학대 가운데 44.5%에 달했던 방임의 비중이 2018년에는 17.6%까지 줄었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특히 초등학교 입학 이후 방임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선생님과 친구 등 사회적 관계를 맺게 돼 방임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게 눈에 띄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준비물을 잘 챙겨오지 않거나,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고 밥을 잘 먹지 못하는 아동을 선생님이 눈치채게 되는 경우 등입니다.
■ 학교 울타리 사라지고, 경제 어려움까지…아이들이 위험하다
문제는 코로나19입니다. 그동안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아이들의 ‘방임’ 위험은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등교가 제한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가 남의 눈에 띌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입니다.
화재 피해를 입은 형제의 엄마 경우에도, 코로나19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동안 보육이 필요한 아동에게 제공되는 긴급돌봄서비스조차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학대 위험 가정에 대한 대면 상담이나 방문 조사도 제한을 받으면서 아동학대 증가 위험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2~2018년까지 통계를 보면, 학대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압도적입니다. 평균 79%의 아동학대 사례가 부모에게 학대당한 경우입니다. 특히 2017년 기준, 부모에게 당하는 학대 중 방임 학대의 비중은 약 22%(중복 포함)로, 다른 사람에게서 학대를 받을 때보다 방임의 비중이 높습니다. 학대 위험이 큰 가정의 경우,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지금 방임 학대가 늘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코로나19로 각종 경제 활동들이 제한을 받는 상황에서 아동학대가 증가할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아동학대 가해자의 3분의 1은 무직이며(2012~2017년 합계 기준), 비교적 저임금군으로 꼽히는 단순노무직 역시 17%를 차지합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아동학대 증가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고사리손으로 라면을 끓이던 형제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으로 매달 16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았고, 엄마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집에 혼자 둔 채 일을 나가야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방임하고 싶지 않아도 아이들이 방임 학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형제의 비극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달 동안 취약계층 사례 관리 아동에 대한 집중 점검을 하고, 아동들이 돌봄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각별한 관찰과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연관기사]
[인터랙티브] 아동학대, 7년의 기록
https://bit.ly/327IGPM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①아동학대로 멍든 10만...숨진 아동 3분의 1은 영아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3580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②데이터가 말해주는 아동학대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3709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③ 태어나자마자 '학대'부터…데이터가 말하는 가해자의 민낯은?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4583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④ 눈감은 신고의무자…아동보호전문기관은 태부족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5557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⑤ 학대 확인돼도 '속수무책'…처벌도 주저, 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6178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⑥ 학대 10%는 재발…악순환 계속되는 이유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6991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⑦ 통계 공개 ‘반토막’…기준도 들쭉날쭉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7853
[아동학대 7년의 기록]⑧ 학대 증가 못 따라가는 ‘땜질’ 대책…“실행이라도 제대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8151
10살과 8살 초등학생 형제만 있는 집에 불이 난 건 평일인 14일 오전 11시 쯤이었습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사고가 났습니다. 간신히 119에 전화를 건 형제는 “살려주세요”만 반복하다 전화를 끊었습니다. 휴대전화 추적으로 집을 찾은 소방관들이 서둘러 불을 껐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연기 가득한 집에서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처음에는 코로나19로 등교를 하지 못했던 형제가 끼니를 때우려다 변을 당한 안타까운 사고로 알려졌던 화재. 그 뒤에 의외의 '아동학대'가 있었다는 정황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화재 당시 집을 비웠던 형제의 엄마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2년 전 형제가 방임으로 인한 학대를 받고 있다는 신고가 처음 들어온 이래, 학대 신고가 무려 세 차례나 있었습니다. 올해 5월 세 번째 신고가 접수되자 그동안 상담을 진행해오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형제를 엄마에게서 분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했습니다. 수사도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엄마와 살고 싶다고 말했고, 법원도 “격리보다는 상담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해 분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탓에 상담도 미뤄진 사이 사고가 났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리 중이던 아동학대 사례를 수사나 법원 결정 단계로 넘기는 건 대부분 법적 처분 없이는 더 이상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법으로 다뤄야 할 만큼 급한 처분이 필요하거나 학대 수준이 가벼운 단계를 넘어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화재 피해를 입은 형제의 아동학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입니다.
■ 코로나19 시대, '방임 학대' 늘어나나
2년 전 형제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처음 들어왔을 때 신고 내용은 ‘아이들이 방임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뒤 두 번째 신고가 들어왔을 때는 집안 청소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화재가 났을 때, 엄마는 전날부터 집을 비우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동학대 유형 상 ‘방임’에 해당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아동복지법상 ‘방임’의 정의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불결한 환경에 아동을 방치하는 행위’, 즉 아동에게 필요한 돌봄이 이뤄지지 않고 방치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방임은 다른 아동학대 유형들, 즉 신체·정서학대나 성적 학대 등보다 외적으로 덜 드러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그간 방임 피해 아동의 비율이 꾸준히 줄어온 것도 사회적 관심이 멀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2012~2018년 통계를 보면, 2012년에는 전체 학대 가운데 44.5%에 달했던 방임의 비중이 2018년에는 17.6%까지 줄었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특히 초등학교 입학 이후 방임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선생님과 친구 등 사회적 관계를 맺게 돼 방임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게 눈에 띄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준비물을 잘 챙겨오지 않거나,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고 밥을 잘 먹지 못하는 아동을 선생님이 눈치채게 되는 경우 등입니다.
■ 학교 울타리 사라지고, 경제 어려움까지…아이들이 위험하다
문제는 코로나19입니다. 그동안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아이들의 ‘방임’ 위험은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등교가 제한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가 남의 눈에 띌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입니다.
화재 피해를 입은 형제의 엄마 경우에도, 코로나19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동안 보육이 필요한 아동에게 제공되는 긴급돌봄서비스조차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학대 위험 가정에 대한 대면 상담이나 방문 조사도 제한을 받으면서 아동학대 증가 위험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2~2018년까지 통계를 보면, 학대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압도적입니다. 평균 79%의 아동학대 사례가 부모에게 학대당한 경우입니다. 특히 2017년 기준, 부모에게 당하는 학대 중 방임 학대의 비중은 약 22%(중복 포함)로, 다른 사람에게서 학대를 받을 때보다 방임의 비중이 높습니다. 학대 위험이 큰 가정의 경우,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지금 방임 학대가 늘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코로나19로 각종 경제 활동들이 제한을 받는 상황에서 아동학대가 증가할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아동학대 가해자의 3분의 1은 무직이며(2012~2017년 합계 기준), 비교적 저임금군으로 꼽히는 단순노무직 역시 17%를 차지합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아동학대 증가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고사리손으로 라면을 끓이던 형제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으로 매달 16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았고, 엄마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집에 혼자 둔 채 일을 나가야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방임하고 싶지 않아도 아이들이 방임 학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형제의 비극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달 동안 취약계층 사례 관리 아동에 대한 집중 점검을 하고, 아동들이 돌봄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각별한 관찰과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연관기사]
[인터랙티브] 아동학대, 7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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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7년의 기록]①아동학대로 멍든 10만...숨진 아동 3분의 1은 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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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9-19 0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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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리손으로 라면 끓이던 아이들…부모는 어디에
10살과 8살 초등학생 형제만 있는 집에 불이 난 건 평일인 14일 오전 11시 쯤이었습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사고가 났습니다. 간신히 119에 전화를 건 형제는 “살려주세요”만 반복하다 전화를 끊었습니다. 휴대전화 추적으로 집을 찾은 소방관들이 서둘러 불을 껐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연기 가득한 집에서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처음에는 코로나19로 등교를 하지 못했던 형제가 끼니를 때우려다 변을 당한 안타까운 사고로 알려졌던 화재. 그 뒤에 의외의 '아동학대'가 있었다는 정황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화재 당시 집을 비웠던 형제의 엄마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2년 전 형제가 방임으로 인한 학대를 받고 있다는 신고가 처음 들어온 이래, 학대 신고가 무려 세 차례나 있었습니다. 올해 5월 세 번째 신고가 접수되자 그동안 상담을 진행해오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형제를 엄마에게서 분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했습니다. 수사도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엄마와 살고 싶다고 말했고, 법원도 “격리보다는 상담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해 분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탓에 상담도 미뤄진 사이 사고가 났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리 중이던 아동학대 사례를 수사나 법원 결정 단계로 넘기는 건 대부분 법적 처분 없이는 더 이상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법으로 다뤄야 할 만큼 급한 처분이 필요하거나 학대 수준이 가벼운 단계를 넘어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화재 피해를 입은 형제의 아동학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입니다.
■ 코로나19 시대, '방임 학대' 늘어나나
2년 전 형제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처음 들어왔을 때 신고 내용은 ‘아이들이 방임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뒤 두 번째 신고가 들어왔을 때는 집안 청소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화재가 났을 때, 엄마는 전날부터 집을 비우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동학대 유형 상 ‘방임’에 해당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아동복지법상 ‘방임’의 정의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불결한 환경에 아동을 방치하는 행위’, 즉 아동에게 필요한 돌봄이 이뤄지지 않고 방치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방임은 다른 아동학대 유형들, 즉 신체·정서학대나 성적 학대 등보다 외적으로 덜 드러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그간 방임 피해 아동의 비율이 꾸준히 줄어온 것도 사회적 관심이 멀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2012~2018년 통계를 보면, 2012년에는 전체 학대 가운데 44.5%에 달했던 방임의 비중이 2018년에는 17.6%까지 줄었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특히 초등학교 입학 이후 방임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선생님과 친구 등 사회적 관계를 맺게 돼 방임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게 눈에 띄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준비물을 잘 챙겨오지 않거나,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고 밥을 잘 먹지 못하는 아동을 선생님이 눈치채게 되는 경우 등입니다.
■ 학교 울타리 사라지고, 경제 어려움까지…아이들이 위험하다
문제는 코로나19입니다. 그동안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아이들의 ‘방임’ 위험은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등교가 제한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가 남의 눈에 띌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입니다.
화재 피해를 입은 형제의 엄마 경우에도, 코로나19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동안 보육이 필요한 아동에게 제공되는 긴급돌봄서비스조차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학대 위험 가정에 대한 대면 상담이나 방문 조사도 제한을 받으면서 아동학대 증가 위험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2~2018년까지 통계를 보면, 학대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압도적입니다. 평균 79%의 아동학대 사례가 부모에게 학대당한 경우입니다. 특히 2017년 기준, 부모에게 당하는 학대 중 방임 학대의 비중은 약 22%(중복 포함)로, 다른 사람에게서 학대를 받을 때보다 방임의 비중이 높습니다. 학대 위험이 큰 가정의 경우,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지금 방임 학대가 늘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코로나19로 각종 경제 활동들이 제한을 받는 상황에서 아동학대가 증가할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아동학대 가해자의 3분의 1은 무직이며(2012~2017년 합계 기준), 비교적 저임금군으로 꼽히는 단순노무직 역시 17%를 차지합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아동학대 증가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고사리손으로 라면을 끓이던 형제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으로 매달 16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았고, 엄마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집에 혼자 둔 채 일을 나가야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방임하고 싶지 않아도 아이들이 방임 학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형제의 비극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달 동안 취약계층 사례 관리 아동에 대한 집중 점검을 하고, 아동들이 돌봄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각별한 관찰과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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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코로나19로 등교를 하지 못했던 형제가 끼니를 때우려다 변을 당한 안타까운 사고로 알려졌던 화재. 그 뒤에 의외의 '아동학대'가 있었다는 정황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화재 당시 집을 비웠던 형제의 엄마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2년 전 형제가 방임으로 인한 학대를 받고 있다는 신고가 처음 들어온 이래, 학대 신고가 무려 세 차례나 있었습니다. 올해 5월 세 번째 신고가 접수되자 그동안 상담을 진행해오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형제를 엄마에게서 분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했습니다. 수사도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엄마와 살고 싶다고 말했고, 법원도 “격리보다는 상담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해 분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탓에 상담도 미뤄진 사이 사고가 났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리 중이던 아동학대 사례를 수사나 법원 결정 단계로 넘기는 건 대부분 법적 처분 없이는 더 이상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법으로 다뤄야 할 만큼 급한 처분이 필요하거나 학대 수준이 가벼운 단계를 넘어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화재 피해를 입은 형제의 아동학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입니다.
■ 코로나19 시대, '방임 학대' 늘어나나
2년 전 형제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처음 들어왔을 때 신고 내용은 ‘아이들이 방임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뒤 두 번째 신고가 들어왔을 때는 집안 청소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화재가 났을 때, 엄마는 전날부터 집을 비우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동학대 유형 상 ‘방임’에 해당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아동복지법상 ‘방임’의 정의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불결한 환경에 아동을 방치하는 행위’, 즉 아동에게 필요한 돌봄이 이뤄지지 않고 방치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방임은 다른 아동학대 유형들, 즉 신체·정서학대나 성적 학대 등보다 외적으로 덜 드러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그간 방임 피해 아동의 비율이 꾸준히 줄어온 것도 사회적 관심이 멀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2012~2018년 통계를 보면, 2012년에는 전체 학대 가운데 44.5%에 달했던 방임의 비중이 2018년에는 17.6%까지 줄었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특히 초등학교 입학 이후 방임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선생님과 친구 등 사회적 관계를 맺게 돼 방임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게 눈에 띄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준비물을 잘 챙겨오지 않거나,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고 밥을 잘 먹지 못하는 아동을 선생님이 눈치채게 되는 경우 등입니다.
■ 학교 울타리 사라지고, 경제 어려움까지…아이들이 위험하다
문제는 코로나19입니다. 그동안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아이들의 ‘방임’ 위험은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등교가 제한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가 남의 눈에 띌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입니다.
화재 피해를 입은 형제의 엄마 경우에도, 코로나19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동안 보육이 필요한 아동에게 제공되는 긴급돌봄서비스조차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학대 위험 가정에 대한 대면 상담이나 방문 조사도 제한을 받으면서 아동학대 증가 위험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2~2018년까지 통계를 보면, 학대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압도적입니다. 평균 79%의 아동학대 사례가 부모에게 학대당한 경우입니다. 특히 2017년 기준, 부모에게 당하는 학대 중 방임 학대의 비중은 약 22%(중복 포함)로, 다른 사람에게서 학대를 받을 때보다 방임의 비중이 높습니다. 학대 위험이 큰 가정의 경우,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지금 방임 학대가 늘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코로나19로 각종 경제 활동들이 제한을 받는 상황에서 아동학대가 증가할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아동학대 가해자의 3분의 1은 무직이며(2012~2017년 합계 기준), 비교적 저임금군으로 꼽히는 단순노무직 역시 17%를 차지합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아동학대 증가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고사리손으로 라면을 끓이던 형제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으로 매달 16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았고, 엄마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집에 혼자 둔 채 일을 나가야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방임하고 싶지 않아도 아이들이 방임 학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형제의 비극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달 동안 취약계층 사례 관리 아동에 대한 집중 점검을 하고, 아동들이 돌봄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각별한 관찰과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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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ma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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