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러시아의 오늘을 집중 조명해 보는 줌 인 러시아,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러시아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과격 민족주의, 이른바 스킨헤드 범죄의 심각성을 살펴봅니다.
해마다 4월은 러시아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공포의 달입니다. 히틀러의 생일인 내일과 사망일인 30일을 즈음해서 나치즘을 숭배하는 스킨헤드족에 의한 외국인 테러가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리기 때문인데요.
러시아에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된 이래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와 이로 인한 좌절감이 외국인 혐오증으로 이어지면서 폭력적인 스킨헤드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김태욱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 바실리 섬의 한 거리... 근처에 국립대 기숙사가 있어 외국인 유학생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난달 12일 저녁 귀가 중이던 20살의 가나 유학생이 이곳에서 무려 30군데나 흉기에 찔려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정체불명의 청년 3명이 길을 가던 흑인 유학생에게 갑자기 흉기를 휘두른 것입니다.
<녹취> 주변 카페 종업원: "죽지는 않았다고 하던데요. 직접 보지는 못하고 들었어요. 저쪽 근처라던데..."
이곳에 사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이런 사건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닙니다. 잊을 만하면 한번 씩 이렇게 외국인을 노린 강력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 타이완 유학생: "몇 번 정도 그런 사건이 있었어요. 기숙사 근처에서도 많이 일어나요."
심지어 지난해 8월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외국인을 살해하는 동영상까지 올라 와 러시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검은 복면을 한 괴한들이 타지키스탄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을 무참히 살해한 뒤 나치식 경례를 하는 영상입니다.
<인터뷰> 가누쉬키나(인권단체 대표): "끔찍한 일입니다. 이건 인터넷 상에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올해 들어 러시아 전역에서 이런 외국인 대상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두 달 동안에만 아무 이유 없이 폭행피해를 입은 외국인 사상자가 벌써 90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가운데 무려 36명이 숨졌고 58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들어서도 다시 5명의 외국인이 숨지면서 단 석 달 만에 지난해 전체 희생자 수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이틀에 한 명 꼴로 외국인이 희생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러시아 최대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범죄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스킨헤드족입니다. 지난 2년여 간 스킨헤드 조직을 추적해 온 프리랜서 기자 예브게니 씨, 그들이 외국인을 공격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예브게니(탐사기자협회장): "그들은 러시아에 순수 러시아인만 살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러시아인과 같은 코를 가져야 하고, 정확한 러시아어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한 스킨헤드 조직이 자체적으로 만든 잡지입니다. 총으로 중무장한 백인 가족의 모습을 묘사한 이 그림은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상입니다.
잡지의 내용 중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을 마약을 퍼뜨리는 인종으로 비하하며 버젓이 폭력을 조장하는 문구도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에서 이런 스킨헤드족은 추정치만 무려 6만여 명, 극단적 민족주의인 나치즘을 추종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입니다.
특히 매년 4월이 되면서 러시아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공포심이 더욱 커집니다. 히틀러의 생일인 내일 20일과 사망일인 오는 30일을 즈음해 스킨헤드의 활동이 가장 극성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송스위(중국 유학생): "4월 20일쯤이 가장 위험해서 대부분 집에서 나오지 않아요. 교수님과 의논해서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는데 학교도 이를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스킨헤드의 범죄의 급증은 최근 러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는 민족주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습니다.
'강한 러시아'를 내세운 푸틴 정부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민족주의 정당들은 각종 집회에서 인종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녹취> 알렉산더 벨로프(불법이주반대운동(DPNI) 대표): "우리의 최고 목표는 우리 인종과 국민, 국가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가야말로 가장 높은 가치입니다."
이들의 정치 집회에서는 어김없이 나치식 경례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스킨헤드와 같은 극단적 과격 민족주의는 보다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러시아 극우주의의 확산은 심각한 사회양극화와 이에 따른 좌절감에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소련 붕괴 뒤 급속한 자본주의로의 전환 속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는 빈부격차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외국인 혐오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스킨헤드 청년 대부분이 불우한 집안의 무직자라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가난이 러시아의 국부를 빼내가는 외국인 탓이라고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터뷰> 드미트리 이바노프(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사회학부 교수): "(그들은) 외국인이 일자리를 뺏고, 자신들의 삶을 방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외국인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는 데 분노하죠."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기만 합니다. 수사 당국은 이런 범죄를 단순히 불량배의 폭력사건으로 치부할 뿐 인종차별 공격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드미트리(북서경찰청 국제협력과장): "대부분은 그저 평범한 폭력행위일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폭행사건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는 러시아 정부가 오히려 극우민족주의 세력을 자신들의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면서 증오범죄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마저 일고 있습니다.
<인터뷰> 예브게니(탐사기자협회장):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이 있지만 잘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제대로 일을 안 하는 겁니다."
구시대의 폐쇄성을 벗고 세계 속에서 갈수록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 러시아, 그러나 그 사회의 밑바닥에선 위험하고도 불길한 징조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국수주의에 빠진 정치세력, 자본화의 물결 속에서 빚어진 극심한 빈부격차와 좌절감... 이런 토양에서 증식하고 있는 러시아 스킨헤드의 극단적 인종주의와 위험수위를 넘어선 폭력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21세기 세계화의 시대, '인종 순혈주의'라는 과거의 망령이 러시아 사회를 떠돌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오늘을 집중 조명해 보는 줌 인 러시아,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러시아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과격 민족주의, 이른바 스킨헤드 범죄의 심각성을 살펴봅니다.
해마다 4월은 러시아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공포의 달입니다. 히틀러의 생일인 내일과 사망일인 30일을 즈음해서 나치즘을 숭배하는 스킨헤드족에 의한 외국인 테러가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리기 때문인데요.
러시아에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된 이래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와 이로 인한 좌절감이 외국인 혐오증으로 이어지면서 폭력적인 스킨헤드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김태욱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 바실리 섬의 한 거리... 근처에 국립대 기숙사가 있어 외국인 유학생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난달 12일 저녁 귀가 중이던 20살의 가나 유학생이 이곳에서 무려 30군데나 흉기에 찔려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정체불명의 청년 3명이 길을 가던 흑인 유학생에게 갑자기 흉기를 휘두른 것입니다.
<녹취> 주변 카페 종업원: "죽지는 않았다고 하던데요. 직접 보지는 못하고 들었어요. 저쪽 근처라던데..."
이곳에 사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이런 사건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닙니다. 잊을 만하면 한번 씩 이렇게 외국인을 노린 강력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 타이완 유학생: "몇 번 정도 그런 사건이 있었어요. 기숙사 근처에서도 많이 일어나요."
심지어 지난해 8월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외국인을 살해하는 동영상까지 올라 와 러시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검은 복면을 한 괴한들이 타지키스탄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을 무참히 살해한 뒤 나치식 경례를 하는 영상입니다.
<인터뷰> 가누쉬키나(인권단체 대표): "끔찍한 일입니다. 이건 인터넷 상에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올해 들어 러시아 전역에서 이런 외국인 대상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두 달 동안에만 아무 이유 없이 폭행피해를 입은 외국인 사상자가 벌써 90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가운데 무려 36명이 숨졌고 58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들어서도 다시 5명의 외국인이 숨지면서 단 석 달 만에 지난해 전체 희생자 수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이틀에 한 명 꼴로 외국인이 희생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러시아 최대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범죄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스킨헤드족입니다. 지난 2년여 간 스킨헤드 조직을 추적해 온 프리랜서 기자 예브게니 씨, 그들이 외국인을 공격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예브게니(탐사기자협회장): "그들은 러시아에 순수 러시아인만 살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러시아인과 같은 코를 가져야 하고, 정확한 러시아어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한 스킨헤드 조직이 자체적으로 만든 잡지입니다. 총으로 중무장한 백인 가족의 모습을 묘사한 이 그림은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상입니다.
잡지의 내용 중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을 마약을 퍼뜨리는 인종으로 비하하며 버젓이 폭력을 조장하는 문구도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에서 이런 스킨헤드족은 추정치만 무려 6만여 명, 극단적 민족주의인 나치즘을 추종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입니다.
특히 매년 4월이 되면서 러시아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공포심이 더욱 커집니다. 히틀러의 생일인 내일 20일과 사망일인 오는 30일을 즈음해 스킨헤드의 활동이 가장 극성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송스위(중국 유학생): "4월 20일쯤이 가장 위험해서 대부분 집에서 나오지 않아요. 교수님과 의논해서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는데 학교도 이를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스킨헤드의 범죄의 급증은 최근 러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는 민족주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습니다.
'강한 러시아'를 내세운 푸틴 정부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민족주의 정당들은 각종 집회에서 인종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녹취> 알렉산더 벨로프(불법이주반대운동(DPNI) 대표): "우리의 최고 목표는 우리 인종과 국민, 국가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가야말로 가장 높은 가치입니다."
이들의 정치 집회에서는 어김없이 나치식 경례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스킨헤드와 같은 극단적 과격 민족주의는 보다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러시아 극우주의의 확산은 심각한 사회양극화와 이에 따른 좌절감에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소련 붕괴 뒤 급속한 자본주의로의 전환 속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는 빈부격차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외국인 혐오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스킨헤드 청년 대부분이 불우한 집안의 무직자라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가난이 러시아의 국부를 빼내가는 외국인 탓이라고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터뷰> 드미트리 이바노프(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사회학부 교수): "(그들은) 외국인이 일자리를 뺏고, 자신들의 삶을 방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외국인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는 데 분노하죠."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기만 합니다. 수사 당국은 이런 범죄를 단순히 불량배의 폭력사건으로 치부할 뿐 인종차별 공격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드미트리(북서경찰청 국제협력과장): "대부분은 그저 평범한 폭력행위일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폭행사건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는 러시아 정부가 오히려 극우민족주의 세력을 자신들의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면서 증오범죄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마저 일고 있습니다.
<인터뷰> 예브게니(탐사기자협회장):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이 있지만 잘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제대로 일을 안 하는 겁니다."
구시대의 폐쇄성을 벗고 세계 속에서 갈수록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 러시아, 그러나 그 사회의 밑바닥에선 위험하고도 불길한 징조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국수주의에 빠진 정치세력, 자본화의 물결 속에서 빚어진 극심한 빈부격차와 좌절감... 이런 토양에서 증식하고 있는 러시아 스킨헤드의 극단적 인종주의와 위험수위를 넘어선 폭력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21세기 세계화의 시대, '인종 순혈주의'라는 과거의 망령이 러시아 사회를 떠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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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드는 인종주의 망령
-
- 입력 2008-04-20 07:58:06

<앵커 멘트>
러시아의 오늘을 집중 조명해 보는 줌 인 러시아,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러시아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과격 민족주의, 이른바 스킨헤드 범죄의 심각성을 살펴봅니다.
해마다 4월은 러시아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공포의 달입니다. 히틀러의 생일인 내일과 사망일인 30일을 즈음해서 나치즘을 숭배하는 스킨헤드족에 의한 외국인 테러가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리기 때문인데요.
러시아에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된 이래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와 이로 인한 좌절감이 외국인 혐오증으로 이어지면서 폭력적인 스킨헤드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김태욱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 바실리 섬의 한 거리... 근처에 국립대 기숙사가 있어 외국인 유학생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난달 12일 저녁 귀가 중이던 20살의 가나 유학생이 이곳에서 무려 30군데나 흉기에 찔려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정체불명의 청년 3명이 길을 가던 흑인 유학생에게 갑자기 흉기를 휘두른 것입니다.
<녹취> 주변 카페 종업원: "죽지는 않았다고 하던데요. 직접 보지는 못하고 들었어요. 저쪽 근처라던데..."
이곳에 사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이런 사건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닙니다. 잊을 만하면 한번 씩 이렇게 외국인을 노린 강력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 타이완 유학생: "몇 번 정도 그런 사건이 있었어요. 기숙사 근처에서도 많이 일어나요."
심지어 지난해 8월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외국인을 살해하는 동영상까지 올라 와 러시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검은 복면을 한 괴한들이 타지키스탄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을 무참히 살해한 뒤 나치식 경례를 하는 영상입니다.
<인터뷰> 가누쉬키나(인권단체 대표): "끔찍한 일입니다. 이건 인터넷 상에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올해 들어 러시아 전역에서 이런 외국인 대상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두 달 동안에만 아무 이유 없이 폭행피해를 입은 외국인 사상자가 벌써 90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가운데 무려 36명이 숨졌고 58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들어서도 다시 5명의 외국인이 숨지면서 단 석 달 만에 지난해 전체 희생자 수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이틀에 한 명 꼴로 외국인이 희생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러시아 최대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범죄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스킨헤드족입니다. 지난 2년여 간 스킨헤드 조직을 추적해 온 프리랜서 기자 예브게니 씨, 그들이 외국인을 공격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예브게니(탐사기자협회장): "그들은 러시아에 순수 러시아인만 살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러시아인과 같은 코를 가져야 하고, 정확한 러시아어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한 스킨헤드 조직이 자체적으로 만든 잡지입니다. 총으로 중무장한 백인 가족의 모습을 묘사한 이 그림은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상입니다.
잡지의 내용 중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을 마약을 퍼뜨리는 인종으로 비하하며 버젓이 폭력을 조장하는 문구도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에서 이런 스킨헤드족은 추정치만 무려 6만여 명, 극단적 민족주의인 나치즘을 추종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입니다.
특히 매년 4월이 되면서 러시아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공포심이 더욱 커집니다. 히틀러의 생일인 내일 20일과 사망일인 오는 30일을 즈음해 스킨헤드의 활동이 가장 극성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송스위(중국 유학생): "4월 20일쯤이 가장 위험해서 대부분 집에서 나오지 않아요. 교수님과 의논해서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는데 학교도 이를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스킨헤드의 범죄의 급증은 최근 러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는 민족주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습니다.
'강한 러시아'를 내세운 푸틴 정부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민족주의 정당들은 각종 집회에서 인종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녹취> 알렉산더 벨로프(불법이주반대운동(DPNI) 대표): "우리의 최고 목표는 우리 인종과 국민, 국가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가야말로 가장 높은 가치입니다."
이들의 정치 집회에서는 어김없이 나치식 경례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스킨헤드와 같은 극단적 과격 민족주의는 보다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러시아 극우주의의 확산은 심각한 사회양극화와 이에 따른 좌절감에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소련 붕괴 뒤 급속한 자본주의로의 전환 속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는 빈부격차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외국인 혐오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스킨헤드 청년 대부분이 불우한 집안의 무직자라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가난이 러시아의 국부를 빼내가는 외국인 탓이라고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터뷰> 드미트리 이바노프(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사회학부 교수): "(그들은) 외국인이 일자리를 뺏고, 자신들의 삶을 방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외국인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는 데 분노하죠."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기만 합니다. 수사 당국은 이런 범죄를 단순히 불량배의 폭력사건으로 치부할 뿐 인종차별 공격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드미트리(북서경찰청 국제협력과장): "대부분은 그저 평범한 폭력행위일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폭행사건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는 러시아 정부가 오히려 극우민족주의 세력을 자신들의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면서 증오범죄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마저 일고 있습니다.
<인터뷰> 예브게니(탐사기자협회장):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이 있지만 잘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제대로 일을 안 하는 겁니다."
구시대의 폐쇄성을 벗고 세계 속에서 갈수록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 러시아, 그러나 그 사회의 밑바닥에선 위험하고도 불길한 징조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국수주의에 빠진 정치세력, 자본화의 물결 속에서 빚어진 극심한 빈부격차와 좌절감... 이런 토양에서 증식하고 있는 러시아 스킨헤드의 극단적 인종주의와 위험수위를 넘어선 폭력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21세기 세계화의 시대, '인종 순혈주의'라는 과거의 망령이 러시아 사회를 떠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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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욱 기자 tw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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