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2020 美 대선 엿보기]① 트럼프 vs 바이든…‘공격’ vs ‘공격’

입력 2020.08.24 (14:20) 수정 2020.10.2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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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전당대회)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전당대회)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난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미국 민주당의 정·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가 끝났습니다. 전당대회 기간 미국 내 코로나 19로 확진자가 560만 명이 넘고 사망자가 17만 명이 넘어서일까요, 단순 시청률로만 본다면 전당대회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4년 전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을 인용해서 나흘간 민주당 전당대회 평균 시청률이 지난 2016년 전당대회에 비해 20% 가까이 하락했다고 전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행사가 취소되고 온라인으로 진행된 탓에 대회장의 열기나 박수 소리, 환호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대략 천9백70만 명의 미국인이 민주당 전당대회를 TV로 지켜봤다고 합니다. 4년 전 2천6백만 명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죠.

하지만 온라인 전당대회로 치르다 보니 바이든의 정치적 근거지인 델라웨어주 윌밍턴, 뉴욕과 LA, 그리고 당초 오프라인 전당대회를 열기로 했던 위스콘신주 밀워키 등을 연결하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지지연설과 영상물들을 내보낸 것 등은 나름 참신한 시도로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전당대회 셋째날 미국 내 이른바 'Z세대'(2000년 이후 태어난 신세대)를 대표하는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가 등장해 신곡을 부르기도 했었죠.

빌리 아일리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특별공연 2020.8.19.빌리 아일리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특별공연 2020.8.19.

전당대회가 끝난 뒤 미 ABC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된 바이든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감도는 전당대회 전에 비해 5% 포인트정도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른바 '컨벤션 효과'가 아주 없었다고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 바이든의 공식 후보수락연설이 민주당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올해 2월 당원대회인 아이오와 코커스, 일반 유권자들도 참여 가능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유세 현장 등을 취재하면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봐왔던 그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목소리엔 힘이 넘쳤고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 19 대응 등을 비판할 때는 차분하면서도 전례 없이 단호한 어조였습니다.

지난 2월 뉴햄프셔에서 그의 연설 직전에 트럼프 지지자가 그의 유세현장에 몰래(?) 들어와 있다가 바이든이 등장하자 "미국의 대통령은 트럼프다. 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외치며 느닷없이 앞으로 뛰어 나올 때 당황해 하던, 그래서 아내인 질 바이든이 가로막으며 트럼프 지지자를 내보낼 때 속절없이 무심히 지켜보던 '그 바이든'이 아니었습니다.


바이든이 수락연설을 위해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체육관 주차장 앞에서 사전에 초대된 당원들 앞에 섰을 때, 그는 작심한 듯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분열과 어둠의 시대'로 규정했습니다. "현 대통령이 미국을 어둠의 시대로 밀어 넣고 너무 많은 분노와 공포를, 그리고 분열을 조장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에게 대통령직을 맡겨준다면 최악이 아닌 최선을 이끌어 내겠다" 면서 "나는 어둠이 아닌 빛의 동맹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을 보호하고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지켜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 19 대응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가면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도 했습니다.

바이든은 1972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직후에 교통사고로 첫 번째 부인과 딸이, 그리고 4년 전 아들 보 바이든이 암으로 숨지면서 크게 실의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아픈 과거를 상기하면서 코로나 19로 인한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전염병 확산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함께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친 겁니다.


24분 정도 되는 그의 연설 도중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 '중소기업 6곳 가운데 1곳 파산' '누적 5천만 명 실업수당 신청' 등을 언급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인들을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밀어 넣었다고 비난했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계속되던 기간 발표된 미국 내 실업률은 10.2%이었는데요.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지표,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이든 후보는, 연설 내내 '트럼프'라는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내용은 이른바 '트럼프의 실정'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바이든은 대신 '그' 또는 '현직 대통령'으로 불렀습니다. 트럼프의 이름조차 언급하는 것이 싫어서일까요. 아마도 트럼프를 직접 언급하면서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을 이루자고 강조하는 민주당 후보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도 후보 수락연설에서 "트럼프 리더십의 실패로 미국인들의 생명과 생계가 희생됐다"고 트럼프를 공격했지만 과격한 비판은 자제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비통하게 생각한다면서, 위기의 순간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트럼프 대신 바이든을 선택해 달라는 메시지로 보였습니다.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전체기조는 지난 2016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공식지명된 전당대회와는 많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면이 있어 보였습니다. '다른 것'은 지난 2016년에는 민주당 후보가 집권당 후보로서 '수비'하는 입장이었다면 이번엔 '공격'으로 전환했다는 것이겠죠.

'같다고 보이는 것'은 4년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의 인상적인 지지연설 중에 나왔던 "They go low, We go high"의 기조, 즉 "그들이 낮게(저열하게) 가더라도 우리는 높게 가자"는 분위기는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셸 오바마는 이번에도 지지연설을 했습니다. 작심하듯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지만 역시 기조는 '품격'을 지켰다는 평가입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와 미셀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연설 모습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와 미셀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연설 모습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민주당 전당대회기간, 그야말로 20세기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상대 당의 전당대회기간 조용히 지켜보던 관례를 여지없이 깨버린 것이죠. 경합주는 물론이고 바이든이 태어난 펜실베이니아주에 가서는 "바이든은 여기 떠나고는 이곳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전당대회 전에는 '바이든이 지하실에 숨어있다'며 조롱하기도 했었는데요.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가급적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바이든과 달리 자신은 역동적으로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과 같이 상대 당 후보를 '공격'하고 '또 공격'하면서 쉴 새 없이 깎아내리는 이른바 '네거티브 전략'을 이번에도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로, 4년 전 대선의 일등공신이자 네거티브 전략을 입안한 스티브 배넌(Bannon)이 최근 기금 유용혐의로 전격 기소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그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지금도 배넌의 전략이나 그 기조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0.8.20. 펜실베이니아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0.8.20. 펜실베이니아

코로나 19로 인한 사망자가 17만 명이 넘어섰는데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냥 그것일 뿐(It is what it is)"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코로나 19 대응에 대한 비판에 대해선,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을 언급하면서 '치명률이 낮다. 훌륭히 대응했다'는 식의 다소 황당한 논리를 계속 밀어붙이면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듯 보입니다. 지난 22일 느닷없이 미 식품의약국 FDA의 누군가가 "고의로 백신 개발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트윗 글을 올린 것을 보면 11월 3일 대선 전에 백신을 바라는 그의 절박함이 묻어나 보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19로 2020년 미 대선 열기는 한풀 꺾여 있는 듯 보이지만,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이번 대선에 사활을 걸고 임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민주당은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층의 표를 흡수하지 못하고 흑인 유권자층을 투표장으로 끌이들이는 데 실패했다고 보고, 전례 없이 '단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 기간 샌더스 의원은 물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경선기간 바이든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던 후보들이 총출동해서 바이든 지지를 강력히 호소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입니다.

왼쪽부터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왼쪽부터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공화당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로 보듯, 전통이나 관례를 지킬 여유가 없다는 절박함이 엿보입니다. 선거가 임박할수록 지지층을 결집해야 하는데, 공화당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으면서도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 지지연설을 한 콜린 파월처럼 트럼프에 등을 돌린 공화당 성향의 바이든 지지층의 숨어있는 영향력도 지켜볼 대목입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트럼프와 바이든의 지지율 격차는 여론조사기관마다 각각 다르지만 5%~7% 포인트 정도로 바이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 달 전만 해도 지지율 격차가 10% 포인트 이상이던 때에 비하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주 공화당 전당대회는 물론, 앞으로도 다양한 변수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지지층의 결집, 경제지표, 경합주(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10여 개 주)에서의 표심 등 전통적인 핵심변수들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인 이번 2020년 대선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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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2020 美 대선 엿보기]① 트럼프 vs 바이든…‘공격’ vs ‘공격’
    • 입력 2020-08-24 14:20:36
    • 수정2020-10-29 11: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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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전당대회)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난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미국 민주당의 정·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가 끝났습니다. 전당대회 기간 미국 내 코로나 19로 확진자가 560만 명이 넘고 사망자가 17만 명이 넘어서일까요, 단순 시청률로만 본다면 전당대회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4년 전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을 인용해서 나흘간 민주당 전당대회 평균 시청률이 지난 2016년 전당대회에 비해 20% 가까이 하락했다고 전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행사가 취소되고 온라인으로 진행된 탓에 대회장의 열기나 박수 소리, 환호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대략 천9백70만 명의 미국인이 민주당 전당대회를 TV로 지켜봤다고 합니다. 4년 전 2천6백만 명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죠.

하지만 온라인 전당대회로 치르다 보니 바이든의 정치적 근거지인 델라웨어주 윌밍턴, 뉴욕과 LA, 그리고 당초 오프라인 전당대회를 열기로 했던 위스콘신주 밀워키 등을 연결하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지지연설과 영상물들을 내보낸 것 등은 나름 참신한 시도로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전당대회 셋째날 미국 내 이른바 'Z세대'(2000년 이후 태어난 신세대)를 대표하는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가 등장해 신곡을 부르기도 했었죠.

빌리 아일리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특별공연 2020.8.19.
전당대회가 끝난 뒤 미 ABC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된 바이든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감도는 전당대회 전에 비해 5% 포인트정도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른바 '컨벤션 효과'가 아주 없었다고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 바이든의 공식 후보수락연설이 민주당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올해 2월 당원대회인 아이오와 코커스, 일반 유권자들도 참여 가능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유세 현장 등을 취재하면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봐왔던 그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목소리엔 힘이 넘쳤고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 19 대응 등을 비판할 때는 차분하면서도 전례 없이 단호한 어조였습니다.

지난 2월 뉴햄프셔에서 그의 연설 직전에 트럼프 지지자가 그의 유세현장에 몰래(?) 들어와 있다가 바이든이 등장하자 "미국의 대통령은 트럼프다. 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외치며 느닷없이 앞으로 뛰어 나올 때 당황해 하던, 그래서 아내인 질 바이든이 가로막으며 트럼프 지지자를 내보낼 때 속절없이 무심히 지켜보던 '그 바이든'이 아니었습니다.


바이든이 수락연설을 위해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체육관 주차장 앞에서 사전에 초대된 당원들 앞에 섰을 때, 그는 작심한 듯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분열과 어둠의 시대'로 규정했습니다. "현 대통령이 미국을 어둠의 시대로 밀어 넣고 너무 많은 분노와 공포를, 그리고 분열을 조장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에게 대통령직을 맡겨준다면 최악이 아닌 최선을 이끌어 내겠다" 면서 "나는 어둠이 아닌 빛의 동맹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을 보호하고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지켜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 19 대응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가면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도 했습니다.

바이든은 1972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직후에 교통사고로 첫 번째 부인과 딸이, 그리고 4년 전 아들 보 바이든이 암으로 숨지면서 크게 실의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아픈 과거를 상기하면서 코로나 19로 인한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전염병 확산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함께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친 겁니다.


24분 정도 되는 그의 연설 도중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 '중소기업 6곳 가운데 1곳 파산' '누적 5천만 명 실업수당 신청' 등을 언급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인들을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밀어 넣었다고 비난했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계속되던 기간 발표된 미국 내 실업률은 10.2%이었는데요.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지표,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이든 후보는, 연설 내내 '트럼프'라는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내용은 이른바 '트럼프의 실정'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바이든은 대신 '그' 또는 '현직 대통령'으로 불렀습니다. 트럼프의 이름조차 언급하는 것이 싫어서일까요. 아마도 트럼프를 직접 언급하면서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을 이루자고 강조하는 민주당 후보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도 후보 수락연설에서 "트럼프 리더십의 실패로 미국인들의 생명과 생계가 희생됐다"고 트럼프를 공격했지만 과격한 비판은 자제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비통하게 생각한다면서, 위기의 순간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트럼프 대신 바이든을 선택해 달라는 메시지로 보였습니다.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전체기조는 지난 2016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공식지명된 전당대회와는 많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면이 있어 보였습니다. '다른 것'은 지난 2016년에는 민주당 후보가 집권당 후보로서 '수비'하는 입장이었다면 이번엔 '공격'으로 전환했다는 것이겠죠.

'같다고 보이는 것'은 4년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의 인상적인 지지연설 중에 나왔던 "They go low, We go high"의 기조, 즉 "그들이 낮게(저열하게) 가더라도 우리는 높게 가자"는 분위기는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셸 오바마는 이번에도 지지연설을 했습니다. 작심하듯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지만 역시 기조는 '품격'을 지켰다는 평가입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와 미셀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연설 모습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민주당 전당대회기간, 그야말로 20세기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상대 당의 전당대회기간 조용히 지켜보던 관례를 여지없이 깨버린 것이죠. 경합주는 물론이고 바이든이 태어난 펜실베이니아주에 가서는 "바이든은 여기 떠나고는 이곳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전당대회 전에는 '바이든이 지하실에 숨어있다'며 조롱하기도 했었는데요.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가급적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바이든과 달리 자신은 역동적으로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과 같이 상대 당 후보를 '공격'하고 '또 공격'하면서 쉴 새 없이 깎아내리는 이른바 '네거티브 전략'을 이번에도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로, 4년 전 대선의 일등공신이자 네거티브 전략을 입안한 스티브 배넌(Bannon)이 최근 기금 유용혐의로 전격 기소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그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지금도 배넌의 전략이나 그 기조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0.8.20. 펜실베이니아
코로나 19로 인한 사망자가 17만 명이 넘어섰는데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냥 그것일 뿐(It is what it is)"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코로나 19 대응에 대한 비판에 대해선,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을 언급하면서 '치명률이 낮다. 훌륭히 대응했다'는 식의 다소 황당한 논리를 계속 밀어붙이면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듯 보입니다. 지난 22일 느닷없이 미 식품의약국 FDA의 누군가가 "고의로 백신 개발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트윗 글을 올린 것을 보면 11월 3일 대선 전에 백신을 바라는 그의 절박함이 묻어나 보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19로 2020년 미 대선 열기는 한풀 꺾여 있는 듯 보이지만,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이번 대선에 사활을 걸고 임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민주당은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층의 표를 흡수하지 못하고 흑인 유권자층을 투표장으로 끌이들이는 데 실패했다고 보고, 전례 없이 '단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 기간 샌더스 의원은 물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경선기간 바이든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던 후보들이 총출동해서 바이든 지지를 강력히 호소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입니다.

왼쪽부터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공화당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로 보듯, 전통이나 관례를 지킬 여유가 없다는 절박함이 엿보입니다. 선거가 임박할수록 지지층을 결집해야 하는데, 공화당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으면서도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 지지연설을 한 콜린 파월처럼 트럼프에 등을 돌린 공화당 성향의 바이든 지지층의 숨어있는 영향력도 지켜볼 대목입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트럼프와 바이든의 지지율 격차는 여론조사기관마다 각각 다르지만 5%~7% 포인트 정도로 바이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 달 전만 해도 지지율 격차가 10% 포인트 이상이던 때에 비하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주 공화당 전당대회는 물론, 앞으로도 다양한 변수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지지층의 결집, 경제지표, 경합주(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10여 개 주)에서의 표심 등 전통적인 핵심변수들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인 이번 2020년 대선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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