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2020 美 대선 엿보기]③ “법과 질서”로 보수층 결집하던 트럼프…‘참전용사 조롱’으로 타격 받나

입력 2020.09.07 (14:48) 수정 2020.10.2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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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는 시위 중...오리건 주 포틀랜드 시위 100일 넘게 계속

오는 11월 3일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사회는 시위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말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사건이 있었죠. 이 일이 도화선이 돼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었죠. 북서부의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는데요. 사건 발생 100일이 훨씬 더 지났지만, 이곳 포틀랜드의 시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씨가 "숨을 쉴 수가 없어요"라고 힘겹게 비명을 지르다 결국 숨을 거둔 뒤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Balck Lives Matter)는 외침이 전국적으로 퍼졌습니다. 수도 워싱턴 D.C.의 흑인 여성 시장은 백악관 바로 코앞의 거리 이름을 아예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로 바꾸기까지 했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플로이드 씨 사망의 여파가 잠잠해지나 싶었는데요. 이번엔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 씨가 어린 세 자녀 앞에서 경찰에 의해 총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또 한 번 미국 사회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트럼프,'법과 질서' 강조....'보수층 끌어안기 전략'

그런데 지난 1일(미 현지시각) 트럼프 미 대통령이 블레이크 씨가 경찰에 의해 등에 총격을 받은 위스콘신주 커노샤를 찾았습니다. 위스콘신 주지사와 커노샤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지 말아달라'고 했는데도 말이죠. 주지사와 시장이 이렇게까지 말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사건 이후 뒤숭숭한 흑인사회의 반발과 시위 확산을 우려했기 때문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반신 마비로 병원에 입원 중인 브레이크 씨를 만나지도 않았고, 그의 가족과도 일절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전화통화도 없었고요. 대신 커노샤의 시위가 약탈로 비화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본 상인을 지원하고 경찰의 공공안전 임무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4천만 달러가 넘는 연방기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폭력시위는 이웃에 대한 테러나 다름없다", "경찰을 혐오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면서 말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가 일어난 '원인'보다는 '결과'와 '현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것도 약탈과 방화 같은 '극단적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탈과 방화' 관련 영상은 지난달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 기간 내내 방영이 될 정도였습니다. 블레이크 씨가 아이들 앞에서 등에 총을 맞은 뒤 시위가 확산된 커노샤에서도 상점 약탈과 방화 등이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해 '법과 질서'를 강조한 것입니다. 안정을 희구하는 보수층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으로 보였는데요.

지난 1일 블룸버그 통신이 미 투자전략회사 JP모건의 한 분석가를 인용해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에 대비해야"라는 제목으로 출고한 기사는, 실제 트럼프가 '법과 질서'를 강하게 내세운 '보수층 끌어안기 전략'으로 바이든과의 지지율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질서의 수호자'로 이미지화하고 이를 부각하면서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의 표심도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분석 지표를 갖고 있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주지사와 시장의 만류에도 커노샤를 방문했던 것일까요.

시사지 애틀랜틱 (The Atlantic), "트럼프, 1차대전 중 프랑스에서 전사한 미군에 '패배자' '머저리' 표현"

그런데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시사전문지 <애틀랜틱(The Atlantic)>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프랑스를 방문했을 당시 미군 묘지 방문 일정을 취소하면서 프랑스 땅에 잠들어있는 참전 미군들을 '패배자'와 '머저리'로 언급했다고 보도했는데요. 비가 오던 당일,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됐던 미군묘지 참배 일정을 취소하면서 "내가 왜 패배자들의 묘지에 가야 하나"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20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였고, 미국이 유럽의 전쟁에 개입해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상징성도 있어 프랑스를 방문했던 것인데,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100년 전 미군 전사자들을 모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쓴 제프리 골드버그 애틀랜틱 편집장은 뉴스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왜 희생된 미군을 위해 헌사를 바쳐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악천후 속에서 머리카락이 헝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고도 했습니다. 취재원은 복수의 국방부 관계자라고 했습니다. 물론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았고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1월 프랑스 방문 당시 파리 외곽에 있는 쉐렌 미군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모습(왼쪽).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벨로의 엔마른 묘지를 참배하려했다가 취소한 뒤 비난여론이 일자 이튿날 장소를 바꿔 이 곳을 방문했다. 우측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일정이 잡혀있던 엔마른 미군 묘지. 1차 대전 당시 치열했던 벨로(Belleau) 숲 전투에서 전사한 미 해병대 1800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오른쪽 사진)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1월 프랑스 방문 당시 파리 외곽에 있는 쉐렌 미군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모습(왼쪽).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벨로의 엔마른 묘지를 참배하려했다가 취소한 뒤 비난여론이 일자 이튿날 장소를 바꿔 이 곳을 방문했다. 우측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일정이 잡혀있던 엔마른 미군 묘지. 1차 대전 당시 치열했던 벨로(Belleau) 숲 전투에서 전사한 미 해병대 1800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오른쪽 사진)

이 기사가 나가자 퇴역 장성 등이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사실이라면 '소중한 생명을 희생한 군인들에 대한 무례'라는 것이죠.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경이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회 전반적으로도 그렇지만 백인 보수층은 특히 군의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애틀랜틱의 보도는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타격이 될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트럼프, "가짜 뉴스"..."스티브 잡스는 부인이 망해가는 극좌 잡지에 유산 쓴 것 기분 나쁠 것"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이 보도의 내용을 부인했습니다. "가짜뉴스며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했습니다. 또 이틀 뒤에는 트윗을 통해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부인이 망해가는 극좌 잡지에 유산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할 것"이라고도 했는데요.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렌 잡스가 비영리재단을 통해 <애틀랜틱>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비난한 것입니다. 로렌은 지난 2017년, 160년 전통의 잡지 애틀랜틱을 인수해 세간의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전 군인을 모욕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여타의 민주국가들처럼 미국도 포로로 잡혔다가 귀환한 장병들을 존중합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싸우다 잡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갖은 협박과 강요에도 자신의 존엄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지켰다고 위로하지요. 지난해 사망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붙잡혀 고초를 치른 뒤 미국에 돌아와 존경받는 정치인의 반열에 오른 바탕이기도 합니다.

왼쪽은 의정활동 당시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 모습 / 오른쪽은 해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당시의 존 매케인왼쪽은 의정활동 당시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 모습 / 오른쪽은 해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당시의 존 매케인

그런데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하기 전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공화당의 원로이기도 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조롱한 바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15년 7월에는 "매케인은 패배한 사람입니다. 나는 패배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이 말이 단순히 매케인이란 한 개인뿐 아니라 참전했다 포로로 잡혔던 모든 미군을 비하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전쟁터에서 작전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고, 또 군인이기 때문에 자신과 동료들이 희생되거나 포로로 붙잡힐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이는데도 묵묵히 임무를 받아들이고 '사지'로 가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군인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만큼 트럼프의 당시 발언은 '최고 사령관'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의 발언으로는 부적절한 언급으로 여겨졌었죠.

이미 고인이 된 매케인 상원의원은 4년 전 대선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의 후보로 선정된 만큼,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가 트럼프의 여성비하 발언 녹취록이 공개되자 지지를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매케인 상원의원에 대한 감정이 악화됐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8월 매케인 상원의원 사망 당시, 백악관 조기 게양을 탐탁치 않아 했다는 보도에서부터 장례식 불참(또는 초대받지 못한) 상황까지 이어지면서, 미국 사회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매케인 의원에 대한 '결례'를 사과할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보수층 결집 시도 중 터져나온 '전몰 미군장병에 대한 결례 논란'…미 대선에 미칠 파장은?

이런 가운데 또 터져 나온 '전몰 미군에 대한 결례' 논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 될지도 이번 대선 국면에서 지켜볼 대목입니다. 물론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시위에 대한 엄정대처와 '법과 질서'를 전면에 내세운 '보수층 끌어안기 전략'이 성공할지도 말이죠.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요원 투입까지 경고했음에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의 '인종차별 반대'시위는 100일이 넘어가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백인우월주의자 등 시위에 반대하는 '친트럼프 성향'의 사람들이 이른바 '자경단'을 만들어 흑백차별 철폐를 외치는 시위대와 대치하다 인명피해가 나는 상황을 포함해서 말이죠. 경찰에 의해 얼굴에 두건이 씌워져 결국 '질식사'로 숨진 흑인 남성이 지난 3월 체포될 당시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뉴욕에서는 지난주 대규모 항의집회가 있었고요.

뉴욕주에서 지난 3월 경찰에 체포당시 머리에 두건에 씌워진 푸르드씨의 모습(왼쪽). 최근 공개된 동영상에는 '숨을 쉴 수 없다'며 괴로워하는 푸르드씨의 모습과 음성이 담겨 있는데, 푸르드씨는 이후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인은 '질식사'로 판명. 당시 출동한 경찰 7명은 코로나 19가 의심돼 두건을 씌웠다고 진술했고 최근 정직처분을 받았다. 경찰의 체포과정이 담긴 동영상은 가족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냈고, 영상이 공개된 뒤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뉴욕주에서 지난 3월 경찰에 체포당시 머리에 두건에 씌워진 푸르드씨의 모습(왼쪽). 최근 공개된 동영상에는 '숨을 쉴 수 없다'며 괴로워하는 푸르드씨의 모습과 음성이 담겨 있는데, 푸르드씨는 이후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인은 '질식사'로 판명. 당시 출동한 경찰 7명은 코로나 19가 의심돼 두건을 씌웠다고 진술했고 최근 정직처분을 받았다. 경찰의 체포과정이 담긴 동영상은 가족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냈고, 영상이 공개된 뒤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의 격렬함' '약탈과 방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민주당 바이든 후보는 시위를 촉발한 '원인'과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는 지난 3일 블레이크 씨가 총격을 당한 위스콘신주 커노샤를 방문해 하반신 마비로 병원에서 치료 중인 블레이크 씨와 통화하고 그의 가족들과는 비공개 면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앞서 방문해 지지자들에게 '법과 질서'를 강조한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였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과 이 사건에서 촉발된 시위들이 대선을 앞둔 미국 사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 선거결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분석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후보 바이든 전 부통령의 입장 차가 뚜렷이 부각됐다는 것입니다. 시위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더욱 뚜렷해진 것이죠. 그런 만큼 올해 미 대선 레이스에서도 지속적인 '쟁점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지만 미국 내에선 벌써부터 선거 이후 분열과 갈등이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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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2020 美 대선 엿보기]③ “법과 질서”로 보수층 결집하던 트럼프…‘참전용사 조롱’으로 타격 받나
    • 입력 2020-09-07 14:48:00
    • 수정2020-10-29 11: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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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는 시위 중...오리건 주 포틀랜드 시위 100일 넘게 계속

오는 11월 3일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사회는 시위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말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사건이 있었죠. 이 일이 도화선이 돼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었죠. 북서부의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는데요. 사건 발생 100일이 훨씬 더 지났지만, 이곳 포틀랜드의 시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씨가 "숨을 쉴 수가 없어요"라고 힘겹게 비명을 지르다 결국 숨을 거둔 뒤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Balck Lives Matter)는 외침이 전국적으로 퍼졌습니다. 수도 워싱턴 D.C.의 흑인 여성 시장은 백악관 바로 코앞의 거리 이름을 아예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로 바꾸기까지 했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플로이드 씨 사망의 여파가 잠잠해지나 싶었는데요. 이번엔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 씨가 어린 세 자녀 앞에서 경찰에 의해 총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또 한 번 미국 사회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트럼프,'법과 질서' 강조....'보수층 끌어안기 전략'

그런데 지난 1일(미 현지시각) 트럼프 미 대통령이 블레이크 씨가 경찰에 의해 등에 총격을 받은 위스콘신주 커노샤를 찾았습니다. 위스콘신 주지사와 커노샤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지 말아달라'고 했는데도 말이죠. 주지사와 시장이 이렇게까지 말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사건 이후 뒤숭숭한 흑인사회의 반발과 시위 확산을 우려했기 때문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반신 마비로 병원에 입원 중인 브레이크 씨를 만나지도 않았고, 그의 가족과도 일절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전화통화도 없었고요. 대신 커노샤의 시위가 약탈로 비화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본 상인을 지원하고 경찰의 공공안전 임무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4천만 달러가 넘는 연방기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폭력시위는 이웃에 대한 테러나 다름없다", "경찰을 혐오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면서 말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가 일어난 '원인'보다는 '결과'와 '현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것도 약탈과 방화 같은 '극단적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탈과 방화' 관련 영상은 지난달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 기간 내내 방영이 될 정도였습니다. 블레이크 씨가 아이들 앞에서 등에 총을 맞은 뒤 시위가 확산된 커노샤에서도 상점 약탈과 방화 등이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해 '법과 질서'를 강조한 것입니다. 안정을 희구하는 보수층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으로 보였는데요.

지난 1일 블룸버그 통신이 미 투자전략회사 JP모건의 한 분석가를 인용해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에 대비해야"라는 제목으로 출고한 기사는, 실제 트럼프가 '법과 질서'를 강하게 내세운 '보수층 끌어안기 전략'으로 바이든과의 지지율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질서의 수호자'로 이미지화하고 이를 부각하면서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의 표심도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분석 지표를 갖고 있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주지사와 시장의 만류에도 커노샤를 방문했던 것일까요.

시사지 애틀랜틱 (The Atlantic), "트럼프, 1차대전 중 프랑스에서 전사한 미군에 '패배자' '머저리' 표현"

그런데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시사전문지 <애틀랜틱(The Atlantic)>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프랑스를 방문했을 당시 미군 묘지 방문 일정을 취소하면서 프랑스 땅에 잠들어있는 참전 미군들을 '패배자'와 '머저리'로 언급했다고 보도했는데요. 비가 오던 당일,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됐던 미군묘지 참배 일정을 취소하면서 "내가 왜 패배자들의 묘지에 가야 하나"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20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였고, 미국이 유럽의 전쟁에 개입해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상징성도 있어 프랑스를 방문했던 것인데,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100년 전 미군 전사자들을 모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쓴 제프리 골드버그 애틀랜틱 편집장은 뉴스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왜 희생된 미군을 위해 헌사를 바쳐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악천후 속에서 머리카락이 헝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고도 했습니다. 취재원은 복수의 국방부 관계자라고 했습니다. 물론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았고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1월 프랑스 방문 당시 파리 외곽에 있는 쉐렌 미군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모습(왼쪽).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벨로의 엔마른 묘지를 참배하려했다가 취소한 뒤 비난여론이 일자 이튿날 장소를 바꿔 이 곳을 방문했다. 우측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일정이 잡혀있던 엔마른 미군 묘지. 1차 대전 당시 치열했던 벨로(Belleau) 숲 전투에서 전사한 미 해병대 1800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오른쪽 사진)
이 기사가 나가자 퇴역 장성 등이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사실이라면 '소중한 생명을 희생한 군인들에 대한 무례'라는 것이죠.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경이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회 전반적으로도 그렇지만 백인 보수층은 특히 군의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애틀랜틱의 보도는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타격이 될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트럼프, "가짜 뉴스"..."스티브 잡스는 부인이 망해가는 극좌 잡지에 유산 쓴 것 기분 나쁠 것"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이 보도의 내용을 부인했습니다. "가짜뉴스며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했습니다. 또 이틀 뒤에는 트윗을 통해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부인이 망해가는 극좌 잡지에 유산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할 것"이라고도 했는데요.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렌 잡스가 비영리재단을 통해 <애틀랜틱>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비난한 것입니다. 로렌은 지난 2017년, 160년 전통의 잡지 애틀랜틱을 인수해 세간의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전 군인을 모욕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여타의 민주국가들처럼 미국도 포로로 잡혔다가 귀환한 장병들을 존중합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싸우다 잡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갖은 협박과 강요에도 자신의 존엄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지켰다고 위로하지요. 지난해 사망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붙잡혀 고초를 치른 뒤 미국에 돌아와 존경받는 정치인의 반열에 오른 바탕이기도 합니다.

왼쪽은 의정활동 당시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 모습 / 오른쪽은 해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당시의 존 매케인
그런데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하기 전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공화당의 원로이기도 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조롱한 바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15년 7월에는 "매케인은 패배한 사람입니다. 나는 패배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이 말이 단순히 매케인이란 한 개인뿐 아니라 참전했다 포로로 잡혔던 모든 미군을 비하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전쟁터에서 작전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고, 또 군인이기 때문에 자신과 동료들이 희생되거나 포로로 붙잡힐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이는데도 묵묵히 임무를 받아들이고 '사지'로 가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군인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만큼 트럼프의 당시 발언은 '최고 사령관'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의 발언으로는 부적절한 언급으로 여겨졌었죠.

이미 고인이 된 매케인 상원의원은 4년 전 대선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의 후보로 선정된 만큼,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가 트럼프의 여성비하 발언 녹취록이 공개되자 지지를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매케인 상원의원에 대한 감정이 악화됐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8월 매케인 상원의원 사망 당시, 백악관 조기 게양을 탐탁치 않아 했다는 보도에서부터 장례식 불참(또는 초대받지 못한) 상황까지 이어지면서, 미국 사회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매케인 의원에 대한 '결례'를 사과할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보수층 결집 시도 중 터져나온 '전몰 미군장병에 대한 결례 논란'…미 대선에 미칠 파장은?

이런 가운데 또 터져 나온 '전몰 미군에 대한 결례' 논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 될지도 이번 대선 국면에서 지켜볼 대목입니다. 물론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시위에 대한 엄정대처와 '법과 질서'를 전면에 내세운 '보수층 끌어안기 전략'이 성공할지도 말이죠.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요원 투입까지 경고했음에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의 '인종차별 반대'시위는 100일이 넘어가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백인우월주의자 등 시위에 반대하는 '친트럼프 성향'의 사람들이 이른바 '자경단'을 만들어 흑백차별 철폐를 외치는 시위대와 대치하다 인명피해가 나는 상황을 포함해서 말이죠. 경찰에 의해 얼굴에 두건이 씌워져 결국 '질식사'로 숨진 흑인 남성이 지난 3월 체포될 당시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뉴욕에서는 지난주 대규모 항의집회가 있었고요.

뉴욕주에서 지난 3월 경찰에 체포당시 머리에 두건에 씌워진 푸르드씨의 모습(왼쪽). 최근 공개된 동영상에는 '숨을 쉴 수 없다'며 괴로워하는 푸르드씨의 모습과 음성이 담겨 있는데, 푸르드씨는 이후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인은 '질식사'로 판명. 당시 출동한 경찰 7명은 코로나 19가 의심돼 두건을 씌웠다고 진술했고 최근 정직처분을 받았다. 경찰의 체포과정이 담긴 동영상은 가족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냈고, 영상이 공개된 뒤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의 격렬함' '약탈과 방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민주당 바이든 후보는 시위를 촉발한 '원인'과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는 지난 3일 블레이크 씨가 총격을 당한 위스콘신주 커노샤를 방문해 하반신 마비로 병원에서 치료 중인 블레이크 씨와 통화하고 그의 가족들과는 비공개 면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앞서 방문해 지지자들에게 '법과 질서'를 강조한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였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과 이 사건에서 촉발된 시위들이 대선을 앞둔 미국 사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 선거결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분석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후보 바이든 전 부통령의 입장 차가 뚜렷이 부각됐다는 것입니다. 시위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더욱 뚜렷해진 것이죠. 그런 만큼 올해 미 대선 레이스에서도 지속적인 '쟁점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지만 미국 내에선 벌써부터 선거 이후 분열과 갈등이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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