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여름의 경고]④ “감태, 전복 사라지고 그물코돌산호가 많아진 제주바다”

입력 2020.10.07 (14:00) 수정 2020.10.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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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동안, 특히 여름철을 중심으로 한반도는 여러가지 자연 재난으로 신음했습니다. 2018년엔 강원도 홍천 기온이 41도까지 올라가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왔었고, 2019년엔 여름과 가을에 걸쳐 태풍이 7개나 들이닥쳤습니다. 1950년 관측 이후 역대 최다 태풍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54일 동안 역대 최장 기간 장마가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습니다.
몇 년간 잇따르고 있는 자연 재난은 우리나라도 이미 '기후의 위기'가 다가왔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KBS는 '지난 3년 여름의 경고'라는 제목으로 KBS 1TV 9시 뉴스와 디지털 뉴스를 통해 연속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 해녀는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그냥 전복이 없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제주 동쪽 성산 앞바다로 풍덩 들어가는 해녀들. 장비라고는 수경과 오리발이 전부입니다. 바다에 떠다니며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길 수십 차례, 서너 시간은 거뜬합니다. 놀랍게도 박태춘 할머니는 82살, 60년 넘도록 이렇게 물질을 했습니다. 잡아 올리는 건 소라, 그리고 감태 조금이 전부입니다. 커다란 망태기에 반도 안 찼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잡은 거다.”라며 좋아하시길래 그래서 이것들 팔면 얼마쯤 되냐고 물었더니 “한 2만 원 되려나? 옛날엔 전복도 있고 문어도 있고 그랬는데 이젠 하나도 없어. 내가 늙어서 잘 못 찾는 건지도 모르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제주 앞바다 수온이 높아져서 그렇다고 설명했더니 “모르겠다. 바다는 겨울에 춥고 여름엔 덜 춥고 그렇다. 그런데 전복이랑 오분자기가 없어. 감태도 없고 톳도 없고.”

제주 바다의 수온 상승 (출처:국립수산과학원) 제주 바다의 수온 상승 (출처:국립수산과학원)
바다의 수온 상승을 해녀들은 못 느낄 수 있습니다. 1926년부터 최근까지 일 년에 평균 0.01도씩 올랐습니다. 해녀들이 처음 바다에 들어갔을 때 즈음부터 지금까지 1.5도에서 2도 정도 오른 겁니다. 그런데 바닷속 생물들은 달랐습니다. 사람보다 수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 제주 토착종은 떠나고 외래종은 늘고
KBS 홍성백 촬영기자가 제주 서귀포시 범섬 앞바다로 들어가고 있다.KBS 홍성백 촬영기자가 제주 서귀포시 범섬 앞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법환포구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가면 범섬이 나옵니다. 범섬 인근 협곡에 제주의 토착어종인 감태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에 가서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했습니다.

2016년 KBS 취재진이 촬영했을 땐 길고 풍성하게 늘어져 있던 감태였는데, 지금은 초라했습니다. 크기도 작았고, 그마저도 자라지 못해 바위가 그대로 노출된 곳이 많았습니다. 제주 바닷속엔 감태, 톳, 미역 같은 갈조류들이 풍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먹고 사는 전복이나 오분자기 등이 유명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근해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연관기사] [지난 3년, 여름의 경고]② “이렇게 뜨거운 바다는 처음”…슈퍼태풍이 온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19305

2014년 그물코 돌산호 지름 측정 2014년 그물코 돌산호 지름 측정

2019년 그물코 돌산호 지름 측정2019년 그물코 돌산호 지름 측정

감태가 있던 자리엔 여러 가지 산호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그물코돌산호'의 정착입니다. 제주 바다에서 발견된 그물코돌산호의 지름은 2014년 6.6cm였습니다. 그때부터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에서는 이 산호를 추적 관찰했습니다. 아열대성 생물인 그물코돌산호가 제주의 추운 바다를 견디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돌산호는 지금까지 계속 자라서 지난해 27cm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제주 바다 여기저기로 퍼져서 개체 수까지 늘려가고 있습니다. 가을철 포자를 뿌리고 번식하는 돌산호에겐 그동안 우리나라의 추운 겨울 바다가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주 바다가 살만한 곳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제주 바다에 사는 아열대성 어종제주 바다에 사는 아열대성 어종

어류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제주 바다에 많이 살던 자리돔 등은 수온이 올라가면서 더 추운 바다를 찾아 북쪽으로, 동해 쪽으로 서식지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아열대성 어종인 청줄돔, 아홉 동가리, 떼로 몰려다니는 주걱치 등 외래어종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오키나와 등 우리나라보다 더운 바다에 주로 사는 어종으로 1900년대 이전에는 제주 바다에 없던 것들입니다.

■ 우리나라 바다 수온 상승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아

지금의 제주 바다 상황은 걱정스럽습니다. 수온 상승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곤 하지만, 우리나라 인근 해역의 최근 50년간 상승한 수온의 평균은 1.23도로 전 세계 바다 평균 0.49도보다 2배 넘게 높습니다. 우리나라 인근 해역이 특히 더 빠르게 수온이 올라가고 있는 겁니다. 지금 같은 속도로 계속 더워지면 2100년엔 2도에서 최대 4도가 높아질 전망입니다.

제주대학교 태풍연구센터 문일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은 데우기도 어렵지만 잘 안 식어요. 바다가 0.5도 올라간다는 건 바다에 0.5도에 엄청난 열을 저장해서 기후에 영향을 줍니다. 생태계뿐만 아니라 기후 시스템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의 변화입니다.”

제주는 태풍의 길목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주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력한 '초강력' 태풍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타이완 인근에서 가장 강해진 태풍이 그보다 수온이 낮은 제주 바다를 지나면서 세력이 약해지는 게 지금까지의 일반론이었는데, 미래에는 제주 바다를 지나면서 계속 세력을 유지하며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2003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매미’가 2100년에 오면 어떻게 되나 모의실험을 했더니 최대 풍속이 시속 64m로 매미보다 초속 10m나 세졌습니다. 이 정도면 바위도 날아다니는 정도의 강도입니다. 말 그대로 ‘슈퍼 태풍’입니다. 이미 올해 우리나라로 북상한 태풍 ‘바비’ 때 가거도에서는 초속 66m의 강풍이 불어 기록을 세웠던 만큼 그렇게 과장된 결과도 아닙니다.

앞으로 다가올 태풍이 우리나라 바다의 만조 시기와 겹쳐 북상하면서 해일을 일으키거나, 한반도 서쪽의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에 근접해 온다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제주나 가거도에서보다 더 많은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올해 기상청은 강도에 따라 나누는 태풍의 등급에 최고 등급인 ‘슈퍼 태풍’을 신설했습니다. 우연은 아닐 겁니다. 제주 바다는 언젠가 우리나라에 올 슈퍼태풍에 대한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수온 상승을 막을 순 없지만, 태풍에 대한 대비책은 준비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가 당장 내년 여름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지금부터 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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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년 여름의 경고]④ “감태, 전복 사라지고 그물코돌산호가 많아진 제주바다”
    • 입력 2020-10-07 14:00:06
    • 수정2020-10-08 16:50:48
    취재K

지난 3년 동안, 특히 여름철을 중심으로 한반도는 여러가지 자연 재난으로 신음했습니다. 2018년엔 강원도 홍천 기온이 41도까지 올라가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왔었고, 2019년엔 여름과 가을에 걸쳐 태풍이 7개나 들이닥쳤습니다. 1950년 관측 이후 역대 최다 태풍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54일 동안 역대 최장 기간 장마가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습니다.
몇 년간 잇따르고 있는 자연 재난은 우리나라도 이미 '기후의 위기'가 다가왔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KBS는 '지난 3년 여름의 경고'라는 제목으로 KBS 1TV 9시 뉴스와 디지털 뉴스를 통해 연속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 해녀는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그냥 전복이 없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제주 동쪽 성산 앞바다로 풍덩 들어가는 해녀들. 장비라고는 수경과 오리발이 전부입니다. 바다에 떠다니며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길 수십 차례, 서너 시간은 거뜬합니다. 놀랍게도 박태춘 할머니는 82살, 60년 넘도록 이렇게 물질을 했습니다. 잡아 올리는 건 소라, 그리고 감태 조금이 전부입니다. 커다란 망태기에 반도 안 찼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잡은 거다.”라며 좋아하시길래 그래서 이것들 팔면 얼마쯤 되냐고 물었더니 “한 2만 원 되려나? 옛날엔 전복도 있고 문어도 있고 그랬는데 이젠 하나도 없어. 내가 늙어서 잘 못 찾는 건지도 모르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제주 앞바다 수온이 높아져서 그렇다고 설명했더니 “모르겠다. 바다는 겨울에 춥고 여름엔 덜 춥고 그렇다. 그런데 전복이랑 오분자기가 없어. 감태도 없고 톳도 없고.”

제주 바다의 수온 상승 (출처:국립수산과학원) 바다의 수온 상승을 해녀들은 못 느낄 수 있습니다. 1926년부터 최근까지 일 년에 평균 0.01도씩 올랐습니다. 해녀들이 처음 바다에 들어갔을 때 즈음부터 지금까지 1.5도에서 2도 정도 오른 겁니다. 그런데 바닷속 생물들은 달랐습니다. 사람보다 수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 제주 토착종은 떠나고 외래종은 늘고
KBS 홍성백 촬영기자가 제주 서귀포시 범섬 앞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법환포구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가면 범섬이 나옵니다. 범섬 인근 협곡에 제주의 토착어종인 감태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에 가서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했습니다.

2016년 KBS 취재진이 촬영했을 땐 길고 풍성하게 늘어져 있던 감태였는데, 지금은 초라했습니다. 크기도 작았고, 그마저도 자라지 못해 바위가 그대로 노출된 곳이 많았습니다. 제주 바닷속엔 감태, 톳, 미역 같은 갈조류들이 풍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먹고 사는 전복이나 오분자기 등이 유명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근해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연관기사] [지난 3년, 여름의 경고]② “이렇게 뜨거운 바다는 처음”…슈퍼태풍이 온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19305

2014년 그물코 돌산호 지름 측정
2019년 그물코 돌산호 지름 측정
감태가 있던 자리엔 여러 가지 산호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그물코돌산호'의 정착입니다. 제주 바다에서 발견된 그물코돌산호의 지름은 2014년 6.6cm였습니다. 그때부터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에서는 이 산호를 추적 관찰했습니다. 아열대성 생물인 그물코돌산호가 제주의 추운 바다를 견디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돌산호는 지금까지 계속 자라서 지난해 27cm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제주 바다 여기저기로 퍼져서 개체 수까지 늘려가고 있습니다. 가을철 포자를 뿌리고 번식하는 돌산호에겐 그동안 우리나라의 추운 겨울 바다가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주 바다가 살만한 곳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제주 바다에 사는 아열대성 어종
어류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제주 바다에 많이 살던 자리돔 등은 수온이 올라가면서 더 추운 바다를 찾아 북쪽으로, 동해 쪽으로 서식지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아열대성 어종인 청줄돔, 아홉 동가리, 떼로 몰려다니는 주걱치 등 외래어종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오키나와 등 우리나라보다 더운 바다에 주로 사는 어종으로 1900년대 이전에는 제주 바다에 없던 것들입니다.

■ 우리나라 바다 수온 상승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아

지금의 제주 바다 상황은 걱정스럽습니다. 수온 상승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곤 하지만, 우리나라 인근 해역의 최근 50년간 상승한 수온의 평균은 1.23도로 전 세계 바다 평균 0.49도보다 2배 넘게 높습니다. 우리나라 인근 해역이 특히 더 빠르게 수온이 올라가고 있는 겁니다. 지금 같은 속도로 계속 더워지면 2100년엔 2도에서 최대 4도가 높아질 전망입니다.

제주대학교 태풍연구센터 문일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은 데우기도 어렵지만 잘 안 식어요. 바다가 0.5도 올라간다는 건 바다에 0.5도에 엄청난 열을 저장해서 기후에 영향을 줍니다. 생태계뿐만 아니라 기후 시스템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의 변화입니다.”

제주는 태풍의 길목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주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력한 '초강력' 태풍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타이완 인근에서 가장 강해진 태풍이 그보다 수온이 낮은 제주 바다를 지나면서 세력이 약해지는 게 지금까지의 일반론이었는데, 미래에는 제주 바다를 지나면서 계속 세력을 유지하며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2003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매미’가 2100년에 오면 어떻게 되나 모의실험을 했더니 최대 풍속이 시속 64m로 매미보다 초속 10m나 세졌습니다. 이 정도면 바위도 날아다니는 정도의 강도입니다. 말 그대로 ‘슈퍼 태풍’입니다. 이미 올해 우리나라로 북상한 태풍 ‘바비’ 때 가거도에서는 초속 66m의 강풍이 불어 기록을 세웠던 만큼 그렇게 과장된 결과도 아닙니다.

앞으로 다가올 태풍이 우리나라 바다의 만조 시기와 겹쳐 북상하면서 해일을 일으키거나, 한반도 서쪽의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에 근접해 온다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제주나 가거도에서보다 더 많은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올해 기상청은 강도에 따라 나누는 태풍의 등급에 최고 등급인 ‘슈퍼 태풍’을 신설했습니다. 우연은 아닐 겁니다. 제주 바다는 언젠가 우리나라에 올 슈퍼태풍에 대한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수온 상승을 막을 순 없지만, 태풍에 대한 대비책은 준비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가 당장 내년 여름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지금부터 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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