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버스 운행 포기한 아동센터…못 오는 아이들

입력 2022.02.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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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린이 학원차 사망사고' 이후, 경찰이 어린이 통학버스에 동승자가 탑승했는지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습니다. 학원들도 하나둘 동승자를 구하고 있는데, 오는 11월부터는 차량에 동승자가 반드시 타야 하는 시설이 더 늘어납니다. 2020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의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관련 시설이 12종 더 추가되는 건데요, 현장에선 혼선도 우려됩니다.


좁은 방 안에, 앳된 얼굴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이날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춤 수업 시간.

선생님이 도착하자 아이들이 익숙한 듯 대열을 정돈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선생님 동작을 따라 합니다. 쑥스러운 듯 주저하던 아이도 인기 아이돌 음악이 흘러나오자 눈빛을 반짝거리며 집중합니다.

같은 시간, 방과 맞붙어 있는 거실에서도 수업이 한창입니다.

음악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학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아이들. 도통 풀리지 않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선생님 도움에 다시 연필을 들고 한참을 고민합니다.

이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보는 아이들은 10여 명. 대부분 저소득·취약계층 아이들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대부분 시간을 이 센터에서 보냅니다.

■ 지역아동센터, 동승자 없어 통학버스 운행 포기

이 지역아동센터는 지난달부터 어린이 통학버스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통학버스를 운행하려면 동승자를 둬야 하는데, 직원이 센터장을 포함해 단 두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임진희 센터장은 "직원이랑 아이들을 태우러 나가면, 센터에 아이들이 방치된다"며 "11월까지는 동승자를 태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때 가서 통학버스 운행을 못 하겠다고 안내하기도 난감해 아예 운행을 중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임진희 센터장은 "동승자를 둬야 한다는 법의 취지야 이해되지만, 지금 상황에선 마른 수건에 물 짜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렇다고 동승자를 따로 채용하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지역아동센터들이 매달 500만 원 안팎의 지자체 예산과 후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 취약계층 아이들, 통학버스 없어 센터 못 와

이러다 보니 먼 지역에 사는 취약계층 아이들을 받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센터의 도움이 절실한 저소득·취약계층 아이들이 많지만, 통학버스로 직접 데리러 오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정작 도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겁니다.

임진희 센터장은 "형편이 어려워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 돼 센터를 찾아온 분이 있었다"며 "하지만 통학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결국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어린이 통학버스를 운영하는 제주도 내 지역아동센터는 59곳.

오는 11월부터 이 지역아동센터에서 운영하는 통학버스 63대에도 반드시 동승자가 있어야 합니다. 도로교통법상 유예기간이 끝나면 동승자가 필요한 시설에 지역아동센터 등 12종이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동승자가 필요한 어린이 통학버스도 1,670대로 늘어납니다.

하지만 대부분 제주도 내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직원이 센터장을 포함해 2명 안팎입니다. 30명 미만 아이들을 돌보는 곳은 2명, 30명 이상인 곳은 3명에 그치는 등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장 연말이 되면 동승자가 없어 통학버스 운행에 어려움을 겪을 시설이 더 늘어날 수 있는 겁니다.

9일 제주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수업을 듣는 아이들9일 제주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수업을 듣는 아이들

■ 한시적으로 지원하던 돌봄 인력도 '중단'

정부가 지원한 돌봄 인력도 중단된 상황입니다.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사회복지사를 지원했지만, 올해 들어 예산 등을 이유로 중단됐습니다.

센터의 경우 사회복무요원을 신청해 지원받을 수 있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엔 근무하지 않고, 군 복무가 끝나면 인력을 추가로 신청할 때까지 공백이 생긴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주말엔 사회복무요원이 없다 보니 아이들을 통학버스로 데리러 가면, 센터가 비어버리는 상황"이라며 "걸어서 오는 아이들을 돌볼 선생님이 없어, 개학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어르신 인력 지원도 대안으로 언급되지만, 현장의 만족도는 높지 않습니다. 아이들 안전을 책임질 역할을 맡기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11월부터 동승자 필수 시설 확대…관련 논의는 더뎌

당장 연말부터 혼선이 우려되지만, 관련 논의는 더딘 상황입니다. 동승자를 반드시 둬야 하는 시설이 여럿인 만큼, 주무 기관들도 산재해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관계 기관과 시설, 학부모 등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 현장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미숙 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 교수는 "같은 학원이더라도, 일반 미술과 음악 학원은 교육지원청, 체육시설은 지자체가 관리하는 등 주무 기관이 제각각인 상황"이라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관련 기관이 조속히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현장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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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학버스 운행 포기한 아동센터…못 오는 아이들
    • 입력 2022-02-11 07:00:15
    취재K

'제주 어린이 학원차 사망사고' 이후, 경찰이 어린이 통학버스에 동승자가 탑승했는지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습니다. 학원들도 하나둘 동승자를 구하고 있는데, 오는 11월부터는 차량에 동승자가 반드시 타야 하는 시설이 더 늘어납니다. 2020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의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관련 시설이 12종 더 추가되는 건데요, 현장에선 혼선도 우려됩니다.


좁은 방 안에, 앳된 얼굴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이날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춤 수업 시간.

선생님이 도착하자 아이들이 익숙한 듯 대열을 정돈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선생님 동작을 따라 합니다. 쑥스러운 듯 주저하던 아이도 인기 아이돌 음악이 흘러나오자 눈빛을 반짝거리며 집중합니다.

같은 시간, 방과 맞붙어 있는 거실에서도 수업이 한창입니다.

음악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학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아이들. 도통 풀리지 않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선생님 도움에 다시 연필을 들고 한참을 고민합니다.

이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보는 아이들은 10여 명. 대부분 저소득·취약계층 아이들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대부분 시간을 이 센터에서 보냅니다.

■ 지역아동센터, 동승자 없어 통학버스 운행 포기

이 지역아동센터는 지난달부터 어린이 통학버스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통학버스를 운행하려면 동승자를 둬야 하는데, 직원이 센터장을 포함해 단 두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임진희 센터장은 "직원이랑 아이들을 태우러 나가면, 센터에 아이들이 방치된다"며 "11월까지는 동승자를 태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때 가서 통학버스 운행을 못 하겠다고 안내하기도 난감해 아예 운행을 중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임진희 센터장은 "동승자를 둬야 한다는 법의 취지야 이해되지만, 지금 상황에선 마른 수건에 물 짜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렇다고 동승자를 따로 채용하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지역아동센터들이 매달 500만 원 안팎의 지자체 예산과 후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 취약계층 아이들, 통학버스 없어 센터 못 와

이러다 보니 먼 지역에 사는 취약계층 아이들을 받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센터의 도움이 절실한 저소득·취약계층 아이들이 많지만, 통학버스로 직접 데리러 오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정작 도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겁니다.

임진희 센터장은 "형편이 어려워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 돼 센터를 찾아온 분이 있었다"며 "하지만 통학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결국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어린이 통학버스를 운영하는 제주도 내 지역아동센터는 59곳.

오는 11월부터 이 지역아동센터에서 운영하는 통학버스 63대에도 반드시 동승자가 있어야 합니다. 도로교통법상 유예기간이 끝나면 동승자가 필요한 시설에 지역아동센터 등 12종이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동승자가 필요한 어린이 통학버스도 1,670대로 늘어납니다.

하지만 대부분 제주도 내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직원이 센터장을 포함해 2명 안팎입니다. 30명 미만 아이들을 돌보는 곳은 2명, 30명 이상인 곳은 3명에 그치는 등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장 연말이 되면 동승자가 없어 통학버스 운행에 어려움을 겪을 시설이 더 늘어날 수 있는 겁니다.

9일 제주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수업을 듣는 아이들
■ 한시적으로 지원하던 돌봄 인력도 '중단'

정부가 지원한 돌봄 인력도 중단된 상황입니다.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사회복지사를 지원했지만, 올해 들어 예산 등을 이유로 중단됐습니다.

센터의 경우 사회복무요원을 신청해 지원받을 수 있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엔 근무하지 않고, 군 복무가 끝나면 인력을 추가로 신청할 때까지 공백이 생긴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주말엔 사회복무요원이 없다 보니 아이들을 통학버스로 데리러 가면, 센터가 비어버리는 상황"이라며 "걸어서 오는 아이들을 돌볼 선생님이 없어, 개학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어르신 인력 지원도 대안으로 언급되지만, 현장의 만족도는 높지 않습니다. 아이들 안전을 책임질 역할을 맡기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11월부터 동승자 필수 시설 확대…관련 논의는 더뎌

당장 연말부터 혼선이 우려되지만, 관련 논의는 더딘 상황입니다. 동승자를 반드시 둬야 하는 시설이 여럿인 만큼, 주무 기관들도 산재해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관계 기관과 시설, 학부모 등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 현장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미숙 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 교수는 "같은 학원이더라도, 일반 미술과 음악 학원은 교육지원청, 체육시설은 지자체가 관리하는 등 주무 기관이 제각각인 상황"이라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관련 기관이 조속히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현장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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