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⑥ “제발 그만하세요”…학대 피해 아동들이 말한 ‘악몽 같은 고통’

입력 2022.02.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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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KBS 창원총국 아동학대 특별취재팀(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은 최근 2년간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0여 건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아동학대 범죄의 실태와 특수성, 대안을 살펴보는 다큐멘터리가 KBS '시사기획 창'(2월 6일)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핵심 내용과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인터넷판 특별기사 시리즈로 정리했습니다.

6번째 순서는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피해를 직접 알리기도 어렵고, 학대가 드러나도 자신의 심경과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여건입니다. 가족한테 학대를 받을 경우, 두려움과 애착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도, 충분히 보호받지도 못했던 아이들은 학대의 기억이 상흔으로 남아 어른이 되어서도 고통을 받습니다.

학대의 고통 속,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취재진에게 전달된 이야기들을 기사에 조심스럽게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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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 '학대 피해 아동'…아이들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이다. 아동학대가 잘 드러나지 않는 ‘암수범죄’가 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아이는 너무도 어려서, 어떤 아이는 가해자가 무서워서, 어떤 아이는 두려움 끝에 용기 내려 해도 기댈 곳을 찾지 못해 끝내 피해를 말하거나 알리지 못한다. 그 사이, 어떤 아이들의 목소리는 어른들에 의해 쉽사리 왜곡되거나, 대체된다.

취재진이 전수조사했던 아동학대 판결문 1,406건 속 아이들이 그랬다. 아버지에게 학대당해 숨진 10개월 아기를 대신해 어머니는 선처를 탄원했고, 할아버지에게 수년 동안 성적 학대를 당한 손녀는 피해를 알리지 못하도록 가족들로부터 회유를 받았고, 운동부 코치에게 수십 차례 학대당한 10대 선수들은 어렵사리 피해를 알렸지만, 진로를 걱정한 주변의 설득에 진술을 바꾸거나 대가 없이 합의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말하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KBS 아동학대 특별취재팀은 굿네이버스와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 등을 통해 학대 피해로 쉼터에서 보호받는 10대 아이들과 어른이 되고도 어린 시절 학대의 아픔을 지우지 못한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심경을 물었다. 11명의 아이가 취재진이 보낸 질문지에 손 글씨로 답해줬고, 학대 피해를 겪고 어른이 된 3명은 서면과 통화 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아동학대인 줄도 몰랐어요.”…아이들은 스스로 피해를 깨닫기까지도 수년이 걸렸다.

수년간 반복된 학대 속에 커간 아이들은 자신이 학대받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려웠다.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하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고, 두려움에 떨다가 피해가 심각해지고서야 스스로 경찰이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21살 A씨 (중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아동학대를) 인지한 시점은 17살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잦은 폭력이 있었지만 집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생과 엄마가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가 몸싸움으로 번져 강도 높은 폭행을 당하는 상황에서 저도 무서웠습니다. 어른의 도움이 필요해 신고했습니다."

"매일 집 안이 엄청 시끄러웠던 적이 많았는데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도와준다거나 신고를 한다거나 한 번은 있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그 한 번이 없었으니까 그냥 관심이 없구나….”

22살 B씨 (초등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부모님 비위를 못 맞추거나 실수를 하면 많이 혼났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 있었고 혼나지 않고 넘어가는 날에는 안도의 한숨으로 눕고 혼나는 날은 눈물로 지새우곤 했습니다. 가장 편안해야 할 공간인 집이 저에게는 가장 불편하고 숨 막히는 공간이었습니다.”

“관심과 도움을 받는 데는 5년 정도 걸렸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에 가정폭력을 알리고 자살을 생각한다는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매뉴얼대로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저는 더욱 집요한 감시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제 가정환경을 아시고 신고를 권유했지만 전 거부했습니다. 학대가 점점 심해지고 제 상태가 점점 악화 되어 선생님이 신고하시게 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됐지만, 학대의 고통은 여전히 악몽처럼 쫓아왔다.

21살 A씨 (중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동생과 어머니의 잦은 다툼으로 심리적인 압박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판정을 받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가늠할 수 없이 크고 영원히 지울 순 없겠지만, 앞으로는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2살 B씨 (초등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처음에 집을 나오고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살았던 동네를 버스로 지나갈 때 숨을 못 쉬고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지나가야 했습니다. 부모님과 비슷한 체형, 나이대가 지나갈 때면 몸이 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지고 담담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픈 시간들을 마주하기가 아직은 고통스럽고 생각만으로 지치는 과거입니다.”

25살 C씨 (중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가해자인 학원 원장이 운영한) 그 학원이 있던 자리는 아예 보지도 않고 지나가거나 옛날에는 그 자리만 지나가도 숨 막히는 것 같고 떨렸어요. 대학교 가고 얼마 안 돼서까지도 꿈에도 나오고 계속 신경 쓰였거든요. 그건 지워질 수는 없는 것 같고… 이런 일을 안 겪는 게 사실은 최선이긴 하죠.”


■ '두려움과 애정 사이'…아이들은 학대의 '두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바랐다.

이제 막 학대 피해에서 구조된 아이들의 심경은 어른이 된 이들보다 더욱 혼란스러워 보였다.

아이들은 ‘집’과 ‘가족’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움 속에 갈등했고, 어떤 아이들은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했다. 두려움 속에서 아이들이 바란 것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이 자신을 때리지 않고 조금만 더 챙겨주길 바랐다.

<학대 피해 쉼터 아동 질문지>

Q: 집과 가족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15살 ▷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는 불안한 마음이 들고 언니랑 오빠는 안전한 마음이 든다."
16살 ▷ "엄마와 있는 모든 날이 무섭고 두려워 언제 맞을지 몰라 긴장한 경험들이다."
17살 ▷ "저와 부모님은 거의 싸웠습니다. 학대라고 생각해도 제 잘못이니 참고 넘겼지만, 욕설까지 들으니 더 힘들었습니다. 너무 죽고 싶었습니다."
15살 ▷ "집에 있을 때는 기분이 좋은 날이 얼마 없었다. 적어도 한 달에 2번씩은 심하게 맞고 혼났다."
14살 ▷ "집에 있을 때는 언제 맞을지 몰라 부담감이 있었다."

학대 피해 아동 손글씨 답변지학대 피해 아동 손글씨 답변지
<학대 피해 쉼터 아동 질문지>

Q: 가족들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15살 ▷ "집으로 돌아가고는 싶다. 다시 가족들이랑 잘 지내보고 싶어서. 그냥 친절하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15살 ▷ "보고 싶고 집에 간다면 정말 잘해야겠고 슬프고 이런 감정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잘 챙겨줬으면 좋겠지만 어색하지만 않으면 바뀌는 것도 안 바라요."
16살 ▷ "절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조금씩 용서가 되고 빨리 만나고 싶다. 내가 집에서 놀지만 말고 공부도 하고 집안일도 도와주고 엄마는 내가 잘못해도 때리거나 너무 세게 말하지 말고 친근하게 잘 대해주셨음 좋겠다."
15살 ▷ "집에 남은 가족들이 보고 싶다. 아빠가 술을 안 마시고 안 때리면 좋겠다."
14살 ▷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어서 고치려고 벌을 택하신 건데 그 벌만 아니면 잘해주셔서 원래 일상으로 빨리 가고 싶다. 때리지 않고 말로 좋게 얘기해주셨으면…."


학대 피해 아동 손글씨 답변지학대 피해 아동 손글씨 답변지

■ 아이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했을까?…"분리조치, 안전한 시설, 주변의 신고"

가족과 집이 너무도 두려웠던 피해자는 확실한 ‘분리 조치’와 안전하게 머물 시설을 원했다. 학원장에게 수년간 가혹한 학대를 겪었던 피해자는 당시 너무도 두려워 신고할 수 없었다며, 주변 어른들이 아이들을 세심하게 살펴보며 도와주길 간절히 바랐다.

22살 B씨 (초등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다시 집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부모님이 갑자기 제 앞에 찾아오시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제 우울증과 스트레스, 공황의 주요 요인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께서 제 앞에 함부로 나타나지 않게 해주실 거라는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만약에 나타났더라도 대처방법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25살 C씨 (중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어리고 아직 생각이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게 무섭거든요. 말해도 무섭고 말을 안 하자니 계속 당하고 있어야 할 것 같고 벗어날 수 없어요. 그래서 아이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없고 주변에서 좀 알아보고 조치를 취해줘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 구해주길 바라며 속수무책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아이들. 자신을 괴롭힌 어른들에게 건넨 아이들의 진심은 학대의 상처만큼이나 처절하고 뼈아팠다.

<학대 피해 쉼터 아동 질문지>

Q: 나를 괴롭힌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제발 그만 하세요. 너무 아파요.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파요.
- 학대는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것이고, 그랬던 당신들이 역겨워요.
- 걱정돼서 혼내는 건 알지만, 폭력으로 인해 오히려 제가 부모님을 무서워하고
꿈에서도 나와서 일상이 지옥이에요. 너무 두렵고 무서워요.
- 제발 본인들의 세대와 세상에 머물러 있지 마세요.
- 괴롭히거나 폭력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이 기분 좋게 말로 합시다.


학대 피해 아동 손글씨 답변지학대 피해 아동 손글씨 답변지

숨겨진 곳에서 아이들의 고통이 계속되는 한, 모든 어른은 유죄다. 아동학대 사회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 힘겹더라도 아이들이 겪는 학대의 실체를 온전히 마주하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이들의 눈에서 학대를 되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할 것이다. 누군가의 몫이 아니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모든 어른의 책무이다.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7Qp3Lb0G60

아동학대 심층취재 인터랙티브 페이지 보기
https://news.KBS.co.kr/special/childabuse/index.html

아동학대 판결문 전수분석 아카이브 보기
http://lab.KBS.co.kr/2022/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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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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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전수조사했던 아동학대 판결문 1,406건 속 아이들이 그랬다. 아버지에게 학대당해 숨진 10개월 아기를 대신해 어머니는 선처를 탄원했고, 할아버지에게 수년 동안 성적 학대를 당한 손녀는 피해를 알리지 못하도록 가족들로부터 회유를 받았고, 운동부 코치에게 수십 차례 학대당한 10대 선수들은 어렵사리 피해를 알렸지만, 진로를 걱정한 주변의 설득에 진술을 바꾸거나 대가 없이 합의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말하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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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반복된 학대 속에 커간 아이들은 자신이 학대받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려웠다.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하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고, 두려움에 떨다가 피해가 심각해지고서야 스스로 경찰이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21살 A씨 (중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아동학대를) 인지한 시점은 17살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잦은 폭력이 있었지만 집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생과 엄마가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가 몸싸움으로 번져 강도 높은 폭행을 당하는 상황에서 저도 무서웠습니다. 어른의 도움이 필요해 신고했습니다."

"매일 집 안이 엄청 시끄러웠던 적이 많았는데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도와준다거나 신고를 한다거나 한 번은 있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그 한 번이 없었으니까 그냥 관심이 없구나….”

22살 B씨 (초등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부모님 비위를 못 맞추거나 실수를 하면 많이 혼났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 있었고 혼나지 않고 넘어가는 날에는 안도의 한숨으로 눕고 혼나는 날은 눈물로 지새우곤 했습니다. 가장 편안해야 할 공간인 집이 저에게는 가장 불편하고 숨 막히는 공간이었습니다.”

“관심과 도움을 받는 데는 5년 정도 걸렸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에 가정폭력을 알리고 자살을 생각한다는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매뉴얼대로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저는 더욱 집요한 감시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제 가정환경을 아시고 신고를 권유했지만 전 거부했습니다. 학대가 점점 심해지고 제 상태가 점점 악화 되어 선생님이 신고하시게 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됐지만, 학대의 고통은 여전히 악몽처럼 쫓아왔다.

21살 A씨 (중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동생과 어머니의 잦은 다툼으로 심리적인 압박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판정을 받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가늠할 수 없이 크고 영원히 지울 순 없겠지만, 앞으로는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2살 B씨 (초등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처음에 집을 나오고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살았던 동네를 버스로 지나갈 때 숨을 못 쉬고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지나가야 했습니다. 부모님과 비슷한 체형, 나이대가 지나갈 때면 몸이 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지고 담담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픈 시간들을 마주하기가 아직은 고통스럽고 생각만으로 지치는 과거입니다.”

25살 C씨 (중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가해자인 학원 원장이 운영한) 그 학원이 있던 자리는 아예 보지도 않고 지나가거나 옛날에는 그 자리만 지나가도 숨 막히는 것 같고 떨렸어요. 대학교 가고 얼마 안 돼서까지도 꿈에도 나오고 계속 신경 쓰였거든요. 그건 지워질 수는 없는 것 같고… 이런 일을 안 겪는 게 사실은 최선이긴 하죠.”


■ '두려움과 애정 사이'…아이들은 학대의 '두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바랐다.

이제 막 학대 피해에서 구조된 아이들의 심경은 어른이 된 이들보다 더욱 혼란스러워 보였다.

아이들은 ‘집’과 ‘가족’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움 속에 갈등했고, 어떤 아이들은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했다. 두려움 속에서 아이들이 바란 것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이 자신을 때리지 않고 조금만 더 챙겨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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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 "엄마와 있는 모든 날이 무섭고 두려워 언제 맞을지 몰라 긴장한 경험들이다."
17살 ▷ "저와 부모님은 거의 싸웠습니다. 학대라고 생각해도 제 잘못이니 참고 넘겼지만, 욕설까지 들으니 더 힘들었습니다. 너무 죽고 싶었습니다."
15살 ▷ "집에 있을 때는 기분이 좋은 날이 얼마 없었다. 적어도 한 달에 2번씩은 심하게 맞고 혼났다."
14살 ▷ "집에 있을 때는 언제 맞을지 몰라 부담감이 있었다."

학대 피해 아동 손글씨 답변지
<학대 피해 쉼터 아동 질문지>

Q: 가족들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15살 ▷ "집으로 돌아가고는 싶다. 다시 가족들이랑 잘 지내보고 싶어서. 그냥 친절하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15살 ▷ "보고 싶고 집에 간다면 정말 잘해야겠고 슬프고 이런 감정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잘 챙겨줬으면 좋겠지만 어색하지만 않으면 바뀌는 것도 안 바라요."
16살 ▷ "절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조금씩 용서가 되고 빨리 만나고 싶다. 내가 집에서 놀지만 말고 공부도 하고 집안일도 도와주고 엄마는 내가 잘못해도 때리거나 너무 세게 말하지 말고 친근하게 잘 대해주셨음 좋겠다."
15살 ▷ "집에 남은 가족들이 보고 싶다. 아빠가 술을 안 마시고 안 때리면 좋겠다."
14살 ▷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어서 고치려고 벌을 택하신 건데 그 벌만 아니면 잘해주셔서 원래 일상으로 빨리 가고 싶다. 때리지 않고 말로 좋게 얘기해주셨으면…."


학대 피해 아동 손글씨 답변지
■ 아이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했을까?…"분리조치, 안전한 시설, 주변의 신고"

가족과 집이 너무도 두려웠던 피해자는 확실한 ‘분리 조치’와 안전하게 머물 시설을 원했다. 학원장에게 수년간 가혹한 학대를 겪었던 피해자는 당시 너무도 두려워 신고할 수 없었다며, 주변 어른들이 아이들을 세심하게 살펴보며 도와주길 간절히 바랐다.

22살 B씨 (초등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다시 집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부모님이 갑자기 제 앞에 찾아오시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제 우울증과 스트레스, 공황의 주요 요인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께서 제 앞에 함부로 나타나지 않게 해주실 거라는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만약에 나타났더라도 대처방법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25살 C씨 (중학생 때부터 아동학대 피해)
“어리고 아직 생각이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게 무섭거든요. 말해도 무섭고 말을 안 하자니 계속 당하고 있어야 할 것 같고 벗어날 수 없어요. 그래서 아이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없고 주변에서 좀 알아보고 조치를 취해줘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 구해주길 바라며 속수무책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아이들. 자신을 괴롭힌 어른들에게 건넨 아이들의 진심은 학대의 상처만큼이나 처절하고 뼈아팠다.

<학대 피해 쉼터 아동 질문지>

Q: 나를 괴롭힌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제발 그만 하세요. 너무 아파요.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파요.
- 학대는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것이고, 그랬던 당신들이 역겨워요.
- 걱정돼서 혼내는 건 알지만, 폭력으로 인해 오히려 제가 부모님을 무서워하고
꿈에서도 나와서 일상이 지옥이에요. 너무 두렵고 무서워요.
- 제발 본인들의 세대와 세상에 머물러 있지 마세요.
- 괴롭히거나 폭력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이 기분 좋게 말로 합시다.


학대 피해 아동 손글씨 답변지
숨겨진 곳에서 아이들의 고통이 계속되는 한, 모든 어른은 유죄다. 아동학대 사회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 힘겹더라도 아이들이 겪는 학대의 실체를 온전히 마주하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이들의 눈에서 학대를 되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할 것이다. 누군가의 몫이 아니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모든 어른의 책무이다.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7Qp3Lb0G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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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special/childabuse/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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