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곳에 ‘쉼터’…겉도는 배달노동자 폭염 대책

입력 2022.07.21 (21:35) 수정 2022.07.2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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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온열 질환으로 최근 6년 동안 산재 인정을 받은 노동자가 백여든 두 명입니다.

숨진 사람만 스물아홉 명이고 대부분, 장소는 야외입니다.

'자연재해'면서 동시에 '산업재해'가 될 수도 있는 폭염은 올해부터 '중대재해 처벌법' 대상입니다.

정부는 사업장마다 '자율점검표'를 나눠주는데 물과 의자를 제공하고, 그늘에서 충분히 쉴 수 있는지 살펴보게 돼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자율'이라서, 지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위한 폭염 대책이라는 것도, 대체로 이렇게 형식적입니다.

예를 들어, 끊임 없이 이동해야 하는 배달 라이더들에게 여기, 여기 '쉼터'를 만들었으니 찾아가 쉬라고 하면 실제 쓸모가 있을까요?

이 문제 짚어봅니다.

김민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스팔트 열기를 그대로 껴안고 달리는 사람들.

한여름 계단을 쉼 없이 오르내리는 사람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배달 노동자들입니다.

["안녕하세요."]

첫 배달과 동시에 땀에 젖는 몸.

열화상 카메라로 비춰봤더니, 배달 네 건을 뛰는 사이 체온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김정훈/배달노동자 : "오늘은 좀 날씨가 습해서 가만히 있어도 막 이렇게 끈적끈적해지는 것 같아요."]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때문에 안 더울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헬멧의 답답함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특히 버스 뒤에 있으면 정말 덥거든요. 제가 사막에 안 가봤지만, 사막에 있는 느낌 일 거 같아요."]

가장 더운 점심 시간에 가장 많은 일이 몰립니다.

["피크시간대에는 하나라도 더 배달하려고 막 뛰어다니는 거예요."]

잠시라도 햇볕을 피하고 땀을 식힐 수 있는 공간으로, 지자체가 만들어 놓은 '쉼터'가 있긴 합니다.

그런데, 김정훈 씨가 일하는 구로 일대에서 제일 가까운 데가, 오토바이로 30분이나 떨어진, 상권도 아닌 곳입니다.

라이더들이 찾아올 리 없습니다.

["(왕복) 1시간이 이동하는 데만 가는거니까 메리트(가치)가 별로 없는거 같아요. 이 근처에 '콜'이 별로 많이 없어서 배달만 보면 '기피 지역'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좀 더 번화가에 있는 쉼터는 어떨까.

건물 5층까지 올라가야 하고, 당장 오토바이를 주차할 곳도 마땅찮습니다.

시간이 곧 돈인 라이더들에게, 선뜻 찾아갈 만한 환경은 아닙니다.

서울시는 민간에 위탁해 이동노동자 쉼터를 운영하는데, 서울 전역에 5곳뿐이고, 그중 배달라이더 전용은 2곳이 전부입니다.

더위를 피할 장소도, 시간도 없는 야외 노동자들.

지난해 천 명 이상이 온열 질환을 앓았습니다.

[이성종/서울노동권익센터 쉼터운영위원장 : "배달하는 분들이 언제든지 자기 주변에 있는 쉼터를 방문할 수 있도록 그렇게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만, 그게 지방정부들이 관심 좀 더 갖고 있어야 하는데 아직 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물, 그늘, 휴식.

옥외 노동자를 위한 3대 기본수칙입니다.

하지만 '이동'이 곧 '일'인 배달 노동자들에게, 그런 형식적 가이드라인은 그저 '먼 얘기'일 뿐입니다.

KBS 뉴스 김민혁입니다.

촬영기자:최하운/영상편집:서정혁/그래픽:최창준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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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엉뚱한 곳에 ‘쉼터’…겉도는 배달노동자 폭염 대책
    • 입력 2022-07-21 21:35:43
    • 수정2022-07-21 22:09:34
    뉴스 9
[앵커]

온열 질환으로 최근 6년 동안 산재 인정을 받은 노동자가 백여든 두 명입니다.

숨진 사람만 스물아홉 명이고 대부분, 장소는 야외입니다.

'자연재해'면서 동시에 '산업재해'가 될 수도 있는 폭염은 올해부터 '중대재해 처벌법' 대상입니다.

정부는 사업장마다 '자율점검표'를 나눠주는데 물과 의자를 제공하고, 그늘에서 충분히 쉴 수 있는지 살펴보게 돼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자율'이라서, 지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위한 폭염 대책이라는 것도, 대체로 이렇게 형식적입니다.

예를 들어, 끊임 없이 이동해야 하는 배달 라이더들에게 여기, 여기 '쉼터'를 만들었으니 찾아가 쉬라고 하면 실제 쓸모가 있을까요?

이 문제 짚어봅니다.

김민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스팔트 열기를 그대로 껴안고 달리는 사람들.

한여름 계단을 쉼 없이 오르내리는 사람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배달 노동자들입니다.

["안녕하세요."]

첫 배달과 동시에 땀에 젖는 몸.

열화상 카메라로 비춰봤더니, 배달 네 건을 뛰는 사이 체온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김정훈/배달노동자 : "오늘은 좀 날씨가 습해서 가만히 있어도 막 이렇게 끈적끈적해지는 것 같아요."]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때문에 안 더울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헬멧의 답답함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특히 버스 뒤에 있으면 정말 덥거든요. 제가 사막에 안 가봤지만, 사막에 있는 느낌 일 거 같아요."]

가장 더운 점심 시간에 가장 많은 일이 몰립니다.

["피크시간대에는 하나라도 더 배달하려고 막 뛰어다니는 거예요."]

잠시라도 햇볕을 피하고 땀을 식힐 수 있는 공간으로, 지자체가 만들어 놓은 '쉼터'가 있긴 합니다.

그런데, 김정훈 씨가 일하는 구로 일대에서 제일 가까운 데가, 오토바이로 30분이나 떨어진, 상권도 아닌 곳입니다.

라이더들이 찾아올 리 없습니다.

["(왕복) 1시간이 이동하는 데만 가는거니까 메리트(가치)가 별로 없는거 같아요. 이 근처에 '콜'이 별로 많이 없어서 배달만 보면 '기피 지역'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좀 더 번화가에 있는 쉼터는 어떨까.

건물 5층까지 올라가야 하고, 당장 오토바이를 주차할 곳도 마땅찮습니다.

시간이 곧 돈인 라이더들에게, 선뜻 찾아갈 만한 환경은 아닙니다.

서울시는 민간에 위탁해 이동노동자 쉼터를 운영하는데, 서울 전역에 5곳뿐이고, 그중 배달라이더 전용은 2곳이 전부입니다.

더위를 피할 장소도, 시간도 없는 야외 노동자들.

지난해 천 명 이상이 온열 질환을 앓았습니다.

[이성종/서울노동권익센터 쉼터운영위원장 : "배달하는 분들이 언제든지 자기 주변에 있는 쉼터를 방문할 수 있도록 그렇게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만, 그게 지방정부들이 관심 좀 더 갖고 있어야 하는데 아직 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물, 그늘, 휴식.

옥외 노동자를 위한 3대 기본수칙입니다.

하지만 '이동'이 곧 '일'인 배달 노동자들에게, 그런 형식적 가이드라인은 그저 '먼 얘기'일 뿐입니다.

KBS 뉴스 김민혁입니다.

촬영기자:최하운/영상편집:서정혁/그래픽:최창준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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