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격차]① 쪽방촌 표면 온도 ‘30도 더 뜨거웠다’

입력 2022.07.23 (11:00) 수정 2022.07.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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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18년 폭염은 법적인 '자연 재난'이 됐습니다. 그러나 "여름은 원래 더운 것"이라는 가벼운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폭염 피해가 '특정 계층'에 집중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합니다. KBS는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당사자들을 차례로 점검하고 해법을 고민해봅니다.


"땀이 말도 못하게 나요" "답답해서 방에 못 있어요"

더위를 피해 골목으로 나온 노인들. 여름마다 반복되는 쪽방촌 풍경입니다.

1평 남짓한 쪽방. 한여름 실내 온도는 30도 안팎입니다. 에어컨은커녕 바람 통할 작은 창문도 없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장마철에는 습도까지 높아집니다. 방 안은 '찜통'입니다. 방보다 바깥이 더 시원합니다.

"여름에 장난 아니에요. 답답해서 방에 못 있어요. 하루 종일 나와 있지. 여기 있는 사람들 더워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요. 다 설잠 자요."
- 돈의동 쪽방촌 주민

■ 쪽방촌 얼마나 뜨겁나? 드론을 띄웠습니다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띄웠습니다. 내리쬐는 불볕이 쪽방촌을 얼마나 달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상의 왼쪽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입니다. 지붕의 표면 온도가 50도 안팎을 오르내리더니, 65도까지 치솟습니다. 이 시각 서울의 평균 기온은 29도였습니다.

오른쪽은 5년 전에 지어진 인근 아파트입니다. 표면 온도는 평균 30도, 최고 37도였습니다.

쪽방촌의 표면 온도가 신축 아파트보다 30도 가까이 높았습니다.

이렇게 차이 나는 건, 건축 자재의 차이입니다. 쪽방촌의 낡은 지붕은 단열 효과가 약합니다. 불볕의 열기를 거의 그대로 흡수합니다.

녹지의 격차도 큽니다. 아파트는 조경이 잘 돼 있습니다. 요즘은 옥상 정원도 많이 가꿉니다. 나무와 풀은 열을 잘 흡수해줍니다. 반면, 돈의동 쪽방촌에는 녹지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신축 아파트는 고성능 콘크리트나 단열재를 사용해서 건물 자체의 열 차단 효과가 높고요. 쪽방촌은 오래된 슬레이트나 균열이 간 콘크리트의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는 옥상에 녹화를 해놨습니다. 옥상 녹화로 인해서 열 차단 효과가 있고요. 아파트 안에 녹지가 조성돼 있어서 그 영향도 있을 겁니다."
-손승우 박사/한국환경연구원


표면이 뜨거우면 실내도 뜨거울 수 밖에 없겠죠. 한국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한여름 쪽방의 실내 최고 온도는 34.9도로,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보다 평균 3도 안팎 높았습니다.

■ 너도나도 쪽방부터 챙기는데…

정부와 지자체의 폭염대책에서 쪽방촌의 사실상 0순위입니다. 매년 대책이 나옵니다. 에어컨 등 냉방기기를 설치해주고, 전기요금도 지원합니다.

서울시는 올해 남대문, 창신동 등 5개 쪽방촌에 에어컨 150대를 단계적으로 설치할 예정입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을 찾아 폭염 대책을 점검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을 찾아 폭염 대책을 점검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정치인들도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쪽방촌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왜? 실질적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의동 쪽방촌의 경우 에어컨 설치율은 아직 30% 정도입니다.

'그래도 에어컨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취재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현장에 가봤더니, 에어컨 대부분이 방안이 아니라 통로에 설치돼 있었습니다. 에어컨을 두기엔 쪽방이 너무 좁을 뿐만 아니라, 모든 방에 설치하기엔 예산도 부족합니다.

"에어컨은 방에 있는 게 아니고 바깥에 있는데. 1층, 2층 하나씩 있는데 바깥에 있어서 그냥 통로만 시원한 거지."
"방도 시원해지려면 문을 열어놔야 하는데, 좀도둑이 있잖아요. 문 열고 자면 피해 볼 수도 있는데 그런 점에 대한 보완책도 있어야지."
- 돈의동 쪽방촌 주민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는 "정부가 쪽방촌에 관심을 갖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근본적 원인인 주거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에어컨만 설치하는 건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 쪽방촌 주민에게 더 급한 것은

주민들이 원하는 건 단순합니다. 통로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폭염 대책이 아닌, 주민을 위한 실질적 대책입니다.


취재팀이 만난 한 쪽방촌 주민은 "주민 간담회 자리가 자주 있었으면 한다"면서 "구조 때문에 설치가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서울시가 집주인이 아닌 주민들이 불편한 게 무엇인지 들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쪽방촌 폭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면밀한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연관기사]
○ 뉴스9
하늘에서 본 ‘폭염 격차’…더위는 ‘불평등한 재난’
열기·습기·악취에 무방비 노출…실내작업 온열질환 속출
빈곤 학생들 폭염 사각에 방치…“차라리 학교에 있고 싶어요”
엉뚱한 곳에 ‘쉼터’…겉도는 배달노동자 폭염 대책
폭염 대책, “거창한 구호보다 사소한 배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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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격차]① 쪽방촌 표면 온도 ‘30도 더 뜨거웠다’
    • 입력 2022-07-23 11:00:09
    • 수정2022-07-24 11:54:27
    취재K
<strong>2018년 폭염은 법적인 '자연 재난'이 됐습니다. 그러나 "여름은 원래 더운 것"이라는 가벼운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폭염 피해가 '특정 계층'에 집중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합니다. KBS는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당사자들을 차례로 점검하고 해법을 고민해봅니다.<br /></strong>

"땀이 말도 못하게 나요" "답답해서 방에 못 있어요"

더위를 피해 골목으로 나온 노인들. 여름마다 반복되는 쪽방촌 풍경입니다.

1평 남짓한 쪽방. 한여름 실내 온도는 30도 안팎입니다. 에어컨은커녕 바람 통할 작은 창문도 없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장마철에는 습도까지 높아집니다. 방 안은 '찜통'입니다. 방보다 바깥이 더 시원합니다.

"여름에 장난 아니에요. 답답해서 방에 못 있어요. 하루 종일 나와 있지. 여기 있는 사람들 더워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요. 다 설잠 자요."
- 돈의동 쪽방촌 주민

■ 쪽방촌 얼마나 뜨겁나? 드론을 띄웠습니다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띄웠습니다. 내리쬐는 불볕이 쪽방촌을 얼마나 달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상의 왼쪽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입니다. 지붕의 표면 온도가 50도 안팎을 오르내리더니, 65도까지 치솟습니다. 이 시각 서울의 평균 기온은 29도였습니다.

오른쪽은 5년 전에 지어진 인근 아파트입니다. 표면 온도는 평균 30도, 최고 37도였습니다.

쪽방촌의 표면 온도가 신축 아파트보다 30도 가까이 높았습니다.

이렇게 차이 나는 건, 건축 자재의 차이입니다. 쪽방촌의 낡은 지붕은 단열 효과가 약합니다. 불볕의 열기를 거의 그대로 흡수합니다.

녹지의 격차도 큽니다. 아파트는 조경이 잘 돼 있습니다. 요즘은 옥상 정원도 많이 가꿉니다. 나무와 풀은 열을 잘 흡수해줍니다. 반면, 돈의동 쪽방촌에는 녹지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신축 아파트는 고성능 콘크리트나 단열재를 사용해서 건물 자체의 열 차단 효과가 높고요. 쪽방촌은 오래된 슬레이트나 균열이 간 콘크리트의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는 옥상에 녹화를 해놨습니다. 옥상 녹화로 인해서 열 차단 효과가 있고요. 아파트 안에 녹지가 조성돼 있어서 그 영향도 있을 겁니다."
-손승우 박사/한국환경연구원


표면이 뜨거우면 실내도 뜨거울 수 밖에 없겠죠. 한국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한여름 쪽방의 실내 최고 온도는 34.9도로,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보다 평균 3도 안팎 높았습니다.

■ 너도나도 쪽방부터 챙기는데…

정부와 지자체의 폭염대책에서 쪽방촌의 사실상 0순위입니다. 매년 대책이 나옵니다. 에어컨 등 냉방기기를 설치해주고, 전기요금도 지원합니다.

서울시는 올해 남대문, 창신동 등 5개 쪽방촌에 에어컨 150대를 단계적으로 설치할 예정입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을 찾아 폭염 대책을 점검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정치인들도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쪽방촌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왜? 실질적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의동 쪽방촌의 경우 에어컨 설치율은 아직 30% 정도입니다.

'그래도 에어컨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취재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현장에 가봤더니, 에어컨 대부분이 방안이 아니라 통로에 설치돼 있었습니다. 에어컨을 두기엔 쪽방이 너무 좁을 뿐만 아니라, 모든 방에 설치하기엔 예산도 부족합니다.

"에어컨은 방에 있는 게 아니고 바깥에 있는데. 1층, 2층 하나씩 있는데 바깥에 있어서 그냥 통로만 시원한 거지."
"방도 시원해지려면 문을 열어놔야 하는데, 좀도둑이 있잖아요. 문 열고 자면 피해 볼 수도 있는데 그런 점에 대한 보완책도 있어야지."
- 돈의동 쪽방촌 주민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는 "정부가 쪽방촌에 관심을 갖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근본적 원인인 주거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에어컨만 설치하는 건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 쪽방촌 주민에게 더 급한 것은

주민들이 원하는 건 단순합니다. 통로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폭염 대책이 아닌, 주민을 위한 실질적 대책입니다.


취재팀이 만난 한 쪽방촌 주민은 "주민 간담회 자리가 자주 있었으면 한다"면서 "구조 때문에 설치가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서울시가 집주인이 아닌 주민들이 불편한 게 무엇인지 들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쪽방촌 폭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면밀한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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