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격차]⑤ 급식 조리실과 물류센터의 공통점은?

입력 2022.07.27 (08:02) 수정 2022.07.27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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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18년 폭염은 법적인 '자연 재난'이 됐습니다. 그러나 "여름은 원래 더운 것"이라는 가벼운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폭염 피해가 '특정 계층'에 집중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합니다. KBS는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당사자들을 차례로 점검하고 해법을 고민해봅니다.


급식 조리실과 물류센터. 두 곳의 공통점은?

"쿠팡물류센터는 에어컨이 안에 없어요. 물먹거나 식염 포도당 알약 같은 거 먹으면서 버티죠."
- 정동헌/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동탄센터 대표

"튀기고 고온에 볶고 삶다 보니까 급식실 안은 40도, 50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통에 시달리고 탈진이 오고..."
- 손경숙/전국교육공무직본부 급식조리분과장

정답은 '실내지만 덥다'입니다.

이달에만 경기도의 학교 급식 조리실 두 곳에서 두 명,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또 다른 두 명이 일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여름마다 속출하는 온열질환자 신고. 그 중 '실내 작업장'은 7% 수준입니다. 당연히 실외가 더 위험지대인 건 부인할 수 없지만, 7%도 무시할 수 있는 비중은 아닙니다.

그래서 정부도 올해 실내노동자를 위한 '열사병 예방 수칙'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수칙의 핵심은 '환기'와 '냉방'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이마저도 지키기 어려운 현장은 수두룩했습니다.

■ 에어컨, '있지만 없다'


동탄 쿠팡 물류센터, 복층 구조의 철제 건축물입니다. 철은 낮에 머금은 열을 밤에 내뿜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뜨겁습니다.

환기도 쉽지 않습니다. 선반에 물건들이 빼곡히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은 금세 사그라듭니다.

건물인데 에어컨이 있지 않으냐? 당연한 궁금증입니다. 쿠팡 물류센터는 '에어컨이 있지만 없는 곳'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우선, 쿠팡 회사 측의 입장입니다.

"물류센터는 축구장 50개 넓이에 아파트 3,4층 높이입니다. 지게차나 출입차들이 들락날락해서 에어컨 설치를 해도 무의미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동식 에어컨은 천 대 이상 설치돼 있고, 폭염 때 자율적으로 쉴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 쿠팡 관계자

천 대가 넘는다는 이동식 에어컨, 현장 노동자들의 체감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 일한 데 33점 몇도더라, 저번에 34.9도였어. 방수 잘 안되는 옷 입으면 그림 그려요, 소금 그림."
- 쿠팡 노동자, 익명

"제습기 같은 작은 에어컨이 있는데, 다리만 시원해지는 현실입니다. 도난을 막는다며 창문을 다 닫아놔서 뜨거운 바람이 순환할 뿐입니다. 건물 특성에 맞는 산업용 에어컨이 필요하죠. 화장실 가거나 물 뜨러 가는 시간도 재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자율휴식'은 어렵고요."
- 김혜윤/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차장(쿠팡 물류센터)

■ 에어컨, 습기에 막히다


학교 급식 조리실에도 에어컨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습도 98%의 현장. 1,500인분 식사 준비에서 나오는 수증기는 천장형 에어컨의 바람 정도는 손쉽게 막습니다.

특히나 학교는 급식 노동자 1명이 담당하는 식사 인원이 많습니다. 공공기관은 보통 60명을 맡는데, 학교는 120명 이상입니다. 쉴 틈이 잘 안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겨우 마련한 자구책은 '폭염 때는 튀김 요리를 줄이자' '이온 음료를 자주 마시자' 수준입니다.

"참는 방법은 사실 따로 없습니다 그냥... 얼음물 마시다 보면 배앓이 할 때도 있고 머리도 사실 아프기도 하고요. (영양사)선생님께서 안타까워서 이온음료를 사주셨어요."
- 정미형 / 급식 노동자

■ 너무 더우면 조금 쉬자…당연한 권리를 위해

"다른 데 일할 데가 없기도 하고. 다른 데서 일 전혀 못 하는 사람들인데 오면은 돈 주니까, 그 다음 날 그 돈이 바로 나와요."
- 쿠팡 노동자, 익명

'폭염 약자'들이 무더위를 참고 일하는 이유, 단순하게 압축하면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단편적 대책도 좋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야를 더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몰라서 못쉬는 게 아니니까. 쉬어도 내 소득은 어느 정도는 유지될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사회전체 구조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이라든가, 근로환경이라든가, 더웠을 때는 좀 쉬어가도 생계에 큰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들이 필요한 거죠."
-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채여라 박사

우리 집은 에어컨 '빵빵'하니까, 우리 회사는 대체 인력이 충분하니까 괜찮다고요? 폭염은 취약계층의 온열질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돌고 돌아 모두의 일상에 영향을 줍니다.

"폭염이 일어난 해에는 김장철에 배추 파동이 납니다. 그때 잘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배추값이 매우 상승하죠. 돼지고기 가격도 좀 약간 시점을 두면 그 다음부터 상승하는 일들이 또 생기더라고요."
-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채여라 박사

폭염은 낯선 재난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무관심합니다. 언뜻 보면 '폭염 약자'만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괴롭힘은 돌고 돕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약자'로 만들 겁니다.

폭염 격차, 이대로 둬도 될까요.

[연관기사]
[폭염격차]① 쪽방촌 표면 온도 ‘30도 더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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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격차]② 지구를 지키는 ‘재활용’ 노동자, 폭염 속 건강은 지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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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격차]③ “차라리 학교에 더 있고 싶어요”…민서와 은하의 여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16798
[폭염격차]④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배달 라이더 쉼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17844

○ 뉴스9
하늘에서 본 ‘폭염 격차’…더위는 ‘불평등한 재난’
열기·습기·악취에 무방비 노출…실내작업 온열질환 속출
빈곤 학생들 폭염 사각에 방치…“차라리 학교에 있고 싶어요”
엉뚱한 곳에 ‘쉼터’…겉도는 배달노동자 폭염 대책
폭염 대책, “거창한 구호보다 사소한 배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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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격차]⑤ 급식 조리실과 물류센터의 공통점은?
    • 입력 2022-07-27 08:02:10
    • 수정2022-07-27 08:04:16
    취재K
<strong>2018년 폭염은 법적인 '자연 재난'이 됐습니다. 그러나 "여름은 원래 더운 것"이라는 가벼운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폭염 피해가 '특정 계층'에 집중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합니다. KBS는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당사자들을 차례로 점검하고 해법을 고민해봅니다.</strong>

급식 조리실과 물류센터. 두 곳의 공통점은?

"쿠팡물류센터는 에어컨이 안에 없어요. 물먹거나 식염 포도당 알약 같은 거 먹으면서 버티죠."
- 정동헌/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동탄센터 대표

"튀기고 고온에 볶고 삶다 보니까 급식실 안은 40도, 50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통에 시달리고 탈진이 오고..."
- 손경숙/전국교육공무직본부 급식조리분과장

정답은 '실내지만 덥다'입니다.

이달에만 경기도의 학교 급식 조리실 두 곳에서 두 명,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또 다른 두 명이 일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여름마다 속출하는 온열질환자 신고. 그 중 '실내 작업장'은 7% 수준입니다. 당연히 실외가 더 위험지대인 건 부인할 수 없지만, 7%도 무시할 수 있는 비중은 아닙니다.

그래서 정부도 올해 실내노동자를 위한 '열사병 예방 수칙'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수칙의 핵심은 '환기'와 '냉방'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이마저도 지키기 어려운 현장은 수두룩했습니다.

■ 에어컨, '있지만 없다'


동탄 쿠팡 물류센터, 복층 구조의 철제 건축물입니다. 철은 낮에 머금은 열을 밤에 내뿜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뜨겁습니다.

환기도 쉽지 않습니다. 선반에 물건들이 빼곡히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은 금세 사그라듭니다.

건물인데 에어컨이 있지 않으냐? 당연한 궁금증입니다. 쿠팡 물류센터는 '에어컨이 있지만 없는 곳'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우선, 쿠팡 회사 측의 입장입니다.

"물류센터는 축구장 50개 넓이에 아파트 3,4층 높이입니다. 지게차나 출입차들이 들락날락해서 에어컨 설치를 해도 무의미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동식 에어컨은 천 대 이상 설치돼 있고, 폭염 때 자율적으로 쉴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 쿠팡 관계자

천 대가 넘는다는 이동식 에어컨, 현장 노동자들의 체감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 일한 데 33점 몇도더라, 저번에 34.9도였어. 방수 잘 안되는 옷 입으면 그림 그려요, 소금 그림."
- 쿠팡 노동자, 익명

"제습기 같은 작은 에어컨이 있는데, 다리만 시원해지는 현실입니다. 도난을 막는다며 창문을 다 닫아놔서 뜨거운 바람이 순환할 뿐입니다. 건물 특성에 맞는 산업용 에어컨이 필요하죠. 화장실 가거나 물 뜨러 가는 시간도 재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자율휴식'은 어렵고요."
- 김혜윤/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차장(쿠팡 물류센터)

■ 에어컨, 습기에 막히다


학교 급식 조리실에도 에어컨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습도 98%의 현장. 1,500인분 식사 준비에서 나오는 수증기는 천장형 에어컨의 바람 정도는 손쉽게 막습니다.

특히나 학교는 급식 노동자 1명이 담당하는 식사 인원이 많습니다. 공공기관은 보통 60명을 맡는데, 학교는 120명 이상입니다. 쉴 틈이 잘 안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겨우 마련한 자구책은 '폭염 때는 튀김 요리를 줄이자' '이온 음료를 자주 마시자' 수준입니다.

"참는 방법은 사실 따로 없습니다 그냥... 얼음물 마시다 보면 배앓이 할 때도 있고 머리도 사실 아프기도 하고요. (영양사)선생님께서 안타까워서 이온음료를 사주셨어요."
- 정미형 / 급식 노동자

■ 너무 더우면 조금 쉬자…당연한 권리를 위해

"다른 데 일할 데가 없기도 하고. 다른 데서 일 전혀 못 하는 사람들인데 오면은 돈 주니까, 그 다음 날 그 돈이 바로 나와요."
- 쿠팡 노동자, 익명

'폭염 약자'들이 무더위를 참고 일하는 이유, 단순하게 압축하면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단편적 대책도 좋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야를 더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몰라서 못쉬는 게 아니니까. 쉬어도 내 소득은 어느 정도는 유지될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사회전체 구조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이라든가, 근로환경이라든가, 더웠을 때는 좀 쉬어가도 생계에 큰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들이 필요한 거죠."
-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채여라 박사

우리 집은 에어컨 '빵빵'하니까, 우리 회사는 대체 인력이 충분하니까 괜찮다고요? 폭염은 취약계층의 온열질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돌고 돌아 모두의 일상에 영향을 줍니다.

"폭염이 일어난 해에는 김장철에 배추 파동이 납니다. 그때 잘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배추값이 매우 상승하죠. 돼지고기 가격도 좀 약간 시점을 두면 그 다음부터 상승하는 일들이 또 생기더라고요."
-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채여라 박사

폭염은 낯선 재난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무관심합니다. 언뜻 보면 '폭염 약자'만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괴롭힘은 돌고 돕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약자'로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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