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新풍속도] (16) 연차 독려?…“갑질문화부터 고쳐라”

입력 2016.05.06 (08:59) 수정 2016.06.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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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앞두고 몸에 이상 증세가 생겨도 병원이 아닌 사무실로 향한다. 일하던 중 호흡이 가빠지거나 머리가 아프더라도 속으로만 끙끙 앓을 뿐 퇴근 전까지 내색하지 못한다. 갑자기 집안일이 생겨 연차휴가를 쓰려면 상사 앞에서 진땀을 흘려야 한다.

직장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차 사용 현황을 파악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생(未生)'인 우리 시대 직장인들의 실상을 알 수 있다. 설문에 응답한 직장인들의 연차 사용률은 62.4%. 대부분 연차를 쓰려고 해도 상사의 눈치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보다는 회사에 밉보일까 봐, 인사 평가에 나쁘게 반영될까 봐 연차 사용을 주저하고 있다.



경총의 '연차 사용' 권장...부작용 우려

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연차 휴가 사용 촉진을 위한 경영계 지침'을 발표했다. '근로기준법의 연차 휴가는 근로자에게 재충전과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휴식 시간을 부여하자는 취지의 제도'인 만큼 기업들이 연차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라는 당부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취지에는 직장인들도 공감한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기업문화를 도외시한 일방적인 연차 사용 독려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실을 살펴보자.

아직도 여러 기업에서 이른바 '무늬만 연차' 관행이 공공연하다. 많은 직장인은 여전히 연차를 내고도 집에서 일하거나 여행지에 컴퓨터를 들고 가곤 한다. 설문조사가 말해 주듯, 상사의 눈치 때문이다. 휴가지에서도 수시로 내려오는 업무 지시에 따르느라 가족의 눈치를 봐야 하고, 혹시 답장을 늦게 하면 출근 후 마음을 졸여야 한다.

설문조사를 보면 이런 직장인들이 10명 중 6명에 이른다. 지난달 고용노동부 공식블로그 글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실상과 무관하지 않다. 오죽하면 고용환경을 개선한다는 고용노동부 블로그에 휴가 중 업무에 시달린 직장인 이야기가 미담처럼 게시됐겠는가?



병원 등 일부 업종에서 반복되는 이른바 '강제 휴식'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새벽에 예약 상황을 파악한 다음 출근 직전에야 '일이 없으니 연차를 내고 쉬라'는 통보를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항변하기 쉽지 않은 게 우리 실정 아닌가?

"프리젠티즘은 막대한 손실 야기"

몸이 아파 쉬려는 직원에게 눈치를 주는 직장 상사, 급한 일로 대휴를 신청하는 직원을 불편하게 만드는 회사에서 오히려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이른바 프리젠티즘(Presenteeism)현상이다.

직원들이 회사에 출근은 했지만, 육체적·정신적 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할 때 업무 성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프리젠티즘은 결근을 함으로써 생기는 생산성 저하를 일컫는 말인 앱센티즘(Absenteeism)과는 달리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 왜냐고?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과연 어느 쪽이 기업 생산성에 더 큰 문제일까? 미국 코넬 대학의 연구와 록히드 마틴사의 분석 등 그동안 여러 사례를 통해 프리젠티즘의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점이 입증됐다. 최근에는 프리젠티즘으로 인한 기업의 생산성 하락으로 연간 34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호주 ABC 방송의 보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덴마크 우체국 집배원과 그들의 상사를 분석해 지난달 '일과 스트레스(Work and Stress)'지에 공개한 동앵글리아대의 연구 결과는 더욱 구체적이다.

[바로가기] '상사가 당신을 아프게 합니까?' (데일리 메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편집장. 데일리 메일은 미란다처럼 무리하게 업무를 시키는 직장 상사 밑에서 일할 경우 건강이 악화한다는 동앵글리아대 연구 결과를 전하고 있다.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편집장. 데일리 메일은 미란다처럼 무리하게 업무를 시키는 직장 상사 밑에서 일할 경우 건강이 악화한다는 동앵글리아대 연구 결과를 전하고 있다.


'변혁적 리더', 직원 건강 악화

연구진은 최근 기업들이 이상적 관리자로 여기고 있는 이른바 '변혁적 리더(Transformational leader)'에 초점을 맞췄다. 단기 성과를 강조하는 전통적 관리자인 '거래적 리더'와 다른 유형의 리더다. 변혁적 리더란 조직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다음, 구성원을 이끌어가는 관리자, 직장 상사 유형이다.

연구진은 지난 3년 동안 관찰한 결과 이러한 유형의 관리자들이 직원에게 추가적인 노력을 하도록 지나친 압력을 가함으로써 직원들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야심에 찬 목표를 제시한 다음 일하는 시간을 늘리라고 요구하면 직원들이 이를 따라가느라 건강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사와 일하는 직원들은 눈치를 보느라 병가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러다 3년 정도 지난 후 한꺼번에 병가가 쏟아져 결국 기업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연구진의 권고는 우리 기업 관리자들도 새겨야 할 내용이다. 지난달 취업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를 보면 우리 직장인들은 직속상사로부터 이런저런 '갑질'을 가장 많이 당한다고(52.4%, 복수 응답) 하소연한다. 10명 중 9명이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각종 질병을 겪고 있다.



눈치 보여 '갑질'에 이의제기 못 해

이 때문에 직장을 옮기거나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대다수 직장인은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다. 어차피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다들 참고 있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상사와 제대로 된 소통이 불가능한, 군대식 조직문화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기업문화에서는 구조적으로 상사는 '갑', 직장인은 '을'일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 블로그의 김 대리처럼 휴가 중에 일하느라 부부싸움을 해놓고도 상사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과연 어느 쪽이 더 시급한 문제일까?
①연차 사용을 독려해 인건비를 줄인다
②'갑질 문화'를 바꾼다

김종명 에디터의 [사무실 新풍속도] 시리즈
☞ ① “점심은 얼간이들이나 먹는거야”
☞ ② 변기보다 400배 지저분한 ‘세균 폭탄’…그곳에서 음식을?
☞ ③ 당신의 점심시간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 ④ ‘유령 회사’의 시대…일자리는 어디로?
☞ ⑤ 아인슈타인과 처칠, 구글과 나이키의 공통점?
☞ ⑥ 당당히 즐기는 낮잠…NASA의 ‘26분’ 법칙
☞ ⑦ 직장인이 듣고 싶은 '하얀 거짓말'
☞ ⑧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는 무엇입니까?
☞ ⑨ 남자는 키 여자는 체중?…직장인과 나폴레옹 콤플렉스
☞ ⑩ 직장 내 ‘폭탄’들의 승승장구 비결…왜?
☞ ⑪ 2016 한국인 행복곡선은 L자형?
☞ ⑫ 미래 기업에 ‘사무실은 놀이터다’
☞ ⑬ ‘눈물의 비디오’와 4차 산업혁명
☞ ⑭ “월요일이 너무 싫어”…극복법은?
☞ ⑮ 직장 상사의 ‘갑질’은 전염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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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무실 新풍속도] (16) 연차 독려?…“갑질문화부터 고쳐라”
    • 입력 2016-05-06 08:59:53
    • 수정2016-06-17 11:31:13
    사무실 新 풍속도 시즌1
출근을 앞두고 몸에 이상 증세가 생겨도 병원이 아닌 사무실로 향한다. 일하던 중 호흡이 가빠지거나 머리가 아프더라도 속으로만 끙끙 앓을 뿐 퇴근 전까지 내색하지 못한다. 갑자기 집안일이 생겨 연차휴가를 쓰려면 상사 앞에서 진땀을 흘려야 한다. 직장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차 사용 현황을 파악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생(未生)'인 우리 시대 직장인들의 실상을 알 수 있다. 설문에 응답한 직장인들의 연차 사용률은 62.4%. 대부분 연차를 쓰려고 해도 상사의 눈치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보다는 회사에 밉보일까 봐, 인사 평가에 나쁘게 반영될까 봐 연차 사용을 주저하고 있다. 경총의 '연차 사용' 권장...부작용 우려 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연차 휴가 사용 촉진을 위한 경영계 지침'을 발표했다. '근로기준법의 연차 휴가는 근로자에게 재충전과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휴식 시간을 부여하자는 취지의 제도'인 만큼 기업들이 연차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라는 당부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취지에는 직장인들도 공감한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기업문화를 도외시한 일방적인 연차 사용 독려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실을 살펴보자. 아직도 여러 기업에서 이른바 '무늬만 연차' 관행이 공공연하다. 많은 직장인은 여전히 연차를 내고도 집에서 일하거나 여행지에 컴퓨터를 들고 가곤 한다. 설문조사가 말해 주듯, 상사의 눈치 때문이다. 휴가지에서도 수시로 내려오는 업무 지시에 따르느라 가족의 눈치를 봐야 하고, 혹시 답장을 늦게 하면 출근 후 마음을 졸여야 한다. 설문조사를 보면 이런 직장인들이 10명 중 6명에 이른다. 지난달 고용노동부 공식블로그 글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실상과 무관하지 않다. 오죽하면 고용환경을 개선한다는 고용노동부 블로그에 휴가 중 업무에 시달린 직장인 이야기가 미담처럼 게시됐겠는가? 병원 등 일부 업종에서 반복되는 이른바 '강제 휴식'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새벽에 예약 상황을 파악한 다음 출근 직전에야 '일이 없으니 연차를 내고 쉬라'는 통보를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항변하기 쉽지 않은 게 우리 실정 아닌가? "프리젠티즘은 막대한 손실 야기" 몸이 아파 쉬려는 직원에게 눈치를 주는 직장 상사, 급한 일로 대휴를 신청하는 직원을 불편하게 만드는 회사에서 오히려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이른바 프리젠티즘(Presenteeism)현상이다. 직원들이 회사에 출근은 했지만, 육체적·정신적 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할 때 업무 성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프리젠티즘은 결근을 함으로써 생기는 생산성 저하를 일컫는 말인 앱센티즘(Absenteeism)과는 달리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 왜냐고?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과연 어느 쪽이 기업 생산성에 더 큰 문제일까? 미국 코넬 대학의 연구와 록히드 마틴사의 분석 등 그동안 여러 사례를 통해 프리젠티즘의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점이 입증됐다. 최근에는 프리젠티즘으로 인한 기업의 생산성 하락으로 연간 34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호주 ABC 방송의 보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덴마크 우체국 집배원과 그들의 상사를 분석해 지난달 '일과 스트레스(Work and Stress)'지에 공개한 동앵글리아대의 연구 결과는 더욱 구체적이다. [바로가기] '상사가 당신을 아프게 합니까?' (데일리 메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편집장. 데일리 메일은 미란다처럼 무리하게 업무를 시키는 직장 상사 밑에서 일할 경우 건강이 악화한다는 동앵글리아대 연구 결과를 전하고 있다. '변혁적 리더', 직원 건강 악화 연구진은 최근 기업들이 이상적 관리자로 여기고 있는 이른바 '변혁적 리더(Transformational leader)'에 초점을 맞췄다. 단기 성과를 강조하는 전통적 관리자인 '거래적 리더'와 다른 유형의 리더다. 변혁적 리더란 조직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다음, 구성원을 이끌어가는 관리자, 직장 상사 유형이다. 연구진은 지난 3년 동안 관찰한 결과 이러한 유형의 관리자들이 직원에게 추가적인 노력을 하도록 지나친 압력을 가함으로써 직원들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야심에 찬 목표를 제시한 다음 일하는 시간을 늘리라고 요구하면 직원들이 이를 따라가느라 건강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사와 일하는 직원들은 눈치를 보느라 병가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러다 3년 정도 지난 후 한꺼번에 병가가 쏟아져 결국 기업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연구진의 권고는 우리 기업 관리자들도 새겨야 할 내용이다. 지난달 취업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를 보면 우리 직장인들은 직속상사로부터 이런저런 '갑질'을 가장 많이 당한다고(52.4%, 복수 응답) 하소연한다. 10명 중 9명이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각종 질병을 겪고 있다. 눈치 보여 '갑질'에 이의제기 못 해 이 때문에 직장을 옮기거나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대다수 직장인은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다. 어차피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다들 참고 있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상사와 제대로 된 소통이 불가능한, 군대식 조직문화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기업문화에서는 구조적으로 상사는 '갑', 직장인은 '을'일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 블로그의 김 대리처럼 휴가 중에 일하느라 부부싸움을 해놓고도 상사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과연 어느 쪽이 더 시급한 문제일까? ①연차 사용을 독려해 인건비를 줄인다 ②'갑질 문화'를 바꾼다 김종명 에디터의 [사무실 新풍속도] 시리즈 ☞ ① “점심은 얼간이들이나 먹는거야” ☞ ② 변기보다 400배 지저분한 ‘세균 폭탄’…그곳에서 음식을? ☞ ③ 당신의 점심시간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 ④ ‘유령 회사’의 시대…일자리는 어디로? ☞ ⑤ 아인슈타인과 처칠, 구글과 나이키의 공통점? ☞ ⑥ 당당히 즐기는 낮잠…NASA의 ‘26분’ 법칙 ☞ ⑦ 직장인이 듣고 싶은 '하얀 거짓말' ☞ ⑧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는 무엇입니까? ☞ ⑨ 남자는 키 여자는 체중?…직장인과 나폴레옹 콤플렉스 ☞ ⑩ 직장 내 ‘폭탄’들의 승승장구 비결…왜? ☞ ⑪ 2016 한국인 행복곡선은 L자형? ☞ ⑫ 미래 기업에 ‘사무실은 놀이터다’ ☞ ⑬ ‘눈물의 비디오’와 4차 산업혁명 ☞ ⑭ “월요일이 너무 싫어”…극복법은? ☞ ⑮ 직장 상사의 ‘갑질’은 전염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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