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 가다⑧] ‘남극의 신사’ 황제펭귄을 만나다

입력 2019.01.10 (14:04) 수정 2019.02.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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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 가다]
KBS 사회부 기획팀 막내 기자가 연재하는 남극 취재기입니다. KBS 신년기획으로 추진되는 남극 취재는 80일 이상이 걸리는 장기 여정입니다. 아라온호와 함께한 항해 열흘 후 남극 장보고 기지에 도착해 현장에서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뉴스 리포트 속에는 담지 못하는 취재기를 온라인 기사로 연재합니다. 남극 여정에 궁금한 점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남극 장보고 기지에 머물고 있는 양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남극 대륙에 도착한지 2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장보고 과학기지 인근에 있는 케이프 워싱턴으로 향했다. 이곳은 남극 황제펭귄의 주요 서식지로 꼽힌다. 모든 펭귄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큰 황제펭귄. 다 자란 어른 황제펭귄의 키는 120cm가 넘고 몸무게는 20kg에서 45kg 사이쯤 된다. 덩치 큰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떠올리면 되겠다. '황제(emperor)'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큰 체구 때문이다. 까만색 날개와 흰색 몸통 때문에 턱시도를 입고 있는 신사처럼 보인다고 해서 '남극의 신사'로도 불린다. 수명은 20년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펭귄 서식지를 찾은 12월 말은 황제펭귄의 '육추(育雛)' 기간이었다. 펭귄 등 조류가 알을 까고 나온 이후 집중적으로 길러지는 시기라는 뜻이다. 통통한 아기 펭귄들은 회색 빛깔을 띈다. 아기 펭귄들은 '구구구구' 소리를 내며 뒤뚱뒤뚱 걷는데, 와락 안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귀엽다(물론 실제로 안지는 않았다. 펭귄이 스트레스를 받을 까봐).

회색빛, 새끼 황제펭귄들회색빛, 새끼 황제펭귄들

어른 펭귄들은 위엄이 넘친다. 거대한 몸집으로 천천히 걷거나, 아니면 배를 깔고 눈밭 위에서 슬라이딩을 한다. 슬라이딩하는 펭귄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위풍당당한 어른 황제펭귄 모습위풍당당한 어른 황제펭귄 모습

바다에서 직접 먹이 사냥을 하지 못하는 새끼 펭귄을 위해 부모 펭귄은 뱃속에 음식을 저장해 놓고 있다가 필요할 때 토해내 먹여주는데, 이를 '펭귄 밀크'라고 한다. 새끼는 '구구구구'소리를 내며 밥달라고 자꾸 보챈다. 어른 펭귄은 펭귄 밀크를 꺼내줄 때 울음소리를 통해 자기 자기 새끼가 맞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먹이를 주기 시작한다. 차디찬 남극의 언 바다, 해빙 위에서 부리에 부리를 맞대고 이어지는 황제 펭귄들의 먹이주기를 바라보는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의 새끼들이 잘 자라도록 바라는 어미들의 마음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모양이다.


모든 야생동물이 그렇듯 새끼 펭귄들도 살아남기 위해 빨리 자라야 한다. 남극의 한여름, 1월 중순이 되면 지금 펭귄들이 서 있는 해빙들이 모두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성장 속도가 느린 펭귄들은 거센 바다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자연은 이들이 준비될 때 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얍삽한 황제펭귄’…네가 먼저 들어가〉

바다 앞에는 어른 황제펭귄 수십마리가 줄지어 서 있다.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볼 뿐 아무도 먼저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밀면서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먼저 들어가기를 바란다. 먼저 바다에 들어가면 바다표범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다 제일 배고픈 황제펭귄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들면 우르르 먹이를 구하러 뒤따라 들어간다. 황제펭귄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투명하면서 붉은 빛을 내는 크릴 새우다.

펭귄들이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펭귄들이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먹이를 구한 뒤, 다시 물 위로 뛰어든 어른 펭귄들에게는 약간의 위풍당당함마저 느껴진다.
"얘들아. 엄마 물질하고 돌아왔다"

〈황제를 지켜라!〉

너무 귀여운 황제펭귄들이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안녕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황제펭귄의 주식인 크릴 새우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크릴 새우는 빙하에 붙은 해조류를 먹고 사는데, 빙하가 녹으면서 이 해조류가 크게 줄었다.

지구온난화는 빙하를 줄어들게 만들고, 빙하의 감소는 해조류의 감소, 해조류의 감소는 크릴 새우의 감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영향은 황제펭귄들도 받게 된다. 기후변화 탓에 크릴새우가 2100년까지 지금의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황제펭귄 개체수도 지금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펭귄들이 이동하고 있다펭귄들이 이동하고 있다

황제펭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남극의 빙하가 녹아버린 지구라면, 인간은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황제펭귄들이 지금처럼 바다로 뛰어들어 먹이를 찾고 새끼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환경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하나 더. 황제펭귄은 인간으로부터 시달린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천천히 다가가면 그저 익숙한 친구인양 가만히 곁에 머무른다. 가끔 헬기가 펭귄 근처에 내리면 '정찰' 목적으로 펭귄들이 몰려들기도 한단다. 나는 남극의 황제펭귄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사를 썼다. 취재가 끝나고 시간은 조금 흘렀지만, 나와 눈이 마주쳤던 황제펭귄들의 눈망울은 잊혀지지 않았다. 부디.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황제펭귄 옆에서 가만히 서 보았다황제펭귄 옆에서 가만히 서 보았다

펭귄들의 방송링크는 아래에서 볼 수 있다.
“먹이 구하기 힘들어져”…지구 끝에서 펭귄 지키는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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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에 가다⑧] ‘남극의 신사’ 황제펭귄을 만나다
    • 입력 2019-01-10 14:04:10
    • 수정2019-02-05 11:16:52
    취재K
[남극에 가다]
KBS 사회부 기획팀 막내 기자가 연재하는 남극 취재기입니다. KBS 신년기획으로 추진되는 남극 취재는 80일 이상이 걸리는 장기 여정입니다. 아라온호와 함께한 항해 열흘 후 남극 장보고 기지에 도착해 현장에서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뉴스 리포트 속에는 담지 못하는 취재기를 온라인 기사로 연재합니다. 남극 여정에 궁금한 점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남극 장보고 기지에 머물고 있는 양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남극 대륙에 도착한지 2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장보고 과학기지 인근에 있는 케이프 워싱턴으로 향했다. 이곳은 남극 황제펭귄의 주요 서식지로 꼽힌다. 모든 펭귄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큰 황제펭귄. 다 자란 어른 황제펭귄의 키는 120cm가 넘고 몸무게는 20kg에서 45kg 사이쯤 된다. 덩치 큰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떠올리면 되겠다. '황제(emperor)'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큰 체구 때문이다. 까만색 날개와 흰색 몸통 때문에 턱시도를 입고 있는 신사처럼 보인다고 해서 '남극의 신사'로도 불린다. 수명은 20년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펭귄 서식지를 찾은 12월 말은 황제펭귄의 '육추(育雛)' 기간이었다. 펭귄 등 조류가 알을 까고 나온 이후 집중적으로 길러지는 시기라는 뜻이다. 통통한 아기 펭귄들은 회색 빛깔을 띈다. 아기 펭귄들은 '구구구구' 소리를 내며 뒤뚱뒤뚱 걷는데, 와락 안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귀엽다(물론 실제로 안지는 않았다. 펭귄이 스트레스를 받을 까봐).

회색빛, 새끼 황제펭귄들
어른 펭귄들은 위엄이 넘친다. 거대한 몸집으로 천천히 걷거나, 아니면 배를 깔고 눈밭 위에서 슬라이딩을 한다. 슬라이딩하는 펭귄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위풍당당한 어른 황제펭귄 모습
바다에서 직접 먹이 사냥을 하지 못하는 새끼 펭귄을 위해 부모 펭귄은 뱃속에 음식을 저장해 놓고 있다가 필요할 때 토해내 먹여주는데, 이를 '펭귄 밀크'라고 한다. 새끼는 '구구구구'소리를 내며 밥달라고 자꾸 보챈다. 어른 펭귄은 펭귄 밀크를 꺼내줄 때 울음소리를 통해 자기 자기 새끼가 맞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먹이를 주기 시작한다. 차디찬 남극의 언 바다, 해빙 위에서 부리에 부리를 맞대고 이어지는 황제 펭귄들의 먹이주기를 바라보는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의 새끼들이 잘 자라도록 바라는 어미들의 마음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모양이다.


모든 야생동물이 그렇듯 새끼 펭귄들도 살아남기 위해 빨리 자라야 한다. 남극의 한여름, 1월 중순이 되면 지금 펭귄들이 서 있는 해빙들이 모두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성장 속도가 느린 펭귄들은 거센 바다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자연은 이들이 준비될 때 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얍삽한 황제펭귄’…네가 먼저 들어가〉

바다 앞에는 어른 황제펭귄 수십마리가 줄지어 서 있다.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볼 뿐 아무도 먼저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밀면서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먼저 들어가기를 바란다. 먼저 바다에 들어가면 바다표범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다 제일 배고픈 황제펭귄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들면 우르르 먹이를 구하러 뒤따라 들어간다. 황제펭귄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투명하면서 붉은 빛을 내는 크릴 새우다.

펭귄들이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먹이를 구한 뒤, 다시 물 위로 뛰어든 어른 펭귄들에게는 약간의 위풍당당함마저 느껴진다.
"얘들아. 엄마 물질하고 돌아왔다"

〈황제를 지켜라!〉

너무 귀여운 황제펭귄들이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안녕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황제펭귄의 주식인 크릴 새우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크릴 새우는 빙하에 붙은 해조류를 먹고 사는데, 빙하가 녹으면서 이 해조류가 크게 줄었다.

지구온난화는 빙하를 줄어들게 만들고, 빙하의 감소는 해조류의 감소, 해조류의 감소는 크릴 새우의 감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영향은 황제펭귄들도 받게 된다. 기후변화 탓에 크릴새우가 2100년까지 지금의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황제펭귄 개체수도 지금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펭귄들이 이동하고 있다
황제펭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남극의 빙하가 녹아버린 지구라면, 인간은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황제펭귄들이 지금처럼 바다로 뛰어들어 먹이를 찾고 새끼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환경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하나 더. 황제펭귄은 인간으로부터 시달린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천천히 다가가면 그저 익숙한 친구인양 가만히 곁에 머무른다. 가끔 헬기가 펭귄 근처에 내리면 '정찰' 목적으로 펭귄들이 몰려들기도 한단다. 나는 남극의 황제펭귄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사를 썼다. 취재가 끝나고 시간은 조금 흘렀지만, 나와 눈이 마주쳤던 황제펭귄들의 눈망울은 잊혀지지 않았다. 부디.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황제펭귄 옆에서 가만히 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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