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곳 없는 상담원들…감정노동자의 안전한 일터는?

입력 2020.01.16 (21:33) 수정 2020.01.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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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른바 '김용균법' 오늘(16일)부터 시행됐습니다.

허점이 많지만, 안전한 일터 만들기의 시작인 건 분명합니다.

다치지 않게, 죽지 않게, 보통 신체의 안전을 떠올리지만, 감정노동자들에게 안전한 일터는 어떤 곳일까요?

한 콜센터 상담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청원입니다.

악성 소비자보다 업무환경이 더 힘들다, 인간 이하 취급을 받는 게 끔찍하다,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들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오늘(16일)은 정신질환까지 얻게 된 한 상담원의 사례와 함께, 관련 기관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변진석, 최은진 기자가 차례로 짚어드립니다.

[리포트]

콜센터 상담원 A 씨는 지난해 10월 받은 전화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콜센터 상담원 A씨/음성변조 : "(폭언 고객이)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너 목소리가 지금 딱딱해졌어'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울컥하더라고요."]

한 악성 고객의 집요한 폭언 전화, 결국 병으로 이어졌습니다.

[콜센터 상담원 A씨/음성변조 : "두통이나 구역질, 이명까지 오더라고요. 삐 소리가 나면서 머리가 멈춘다거나... 그냥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럴 경우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노동자보호법은 노동자에게 장해가 우려될 경우 업무를 중단하거나 휴식시간을 주고, 치료나 상담을 지원하도록 돼 있습니다.

회사의 조치는 정반대였습니다.

녹음된 통화를 듣고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다시 들어보라고 했다는 겁니다.

[콜센터 상담원 A씨/음성변조 : "'파트장님, 저 그 고객이랑 통화를 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그 통화내용을 (다시) 들어보면 저 죽습니다'..."]

급기야 회사 지시로 사과 전화도 해야 했습니다.

고객이 무조건 왕이라는 회사의 인식 앞에 법은 소용없었습니다.

[정현철/직장갑질119 상근활동가 : "(노동자보다) 고객이 우선인 거죠. 그러니까 네가 조금 더 참아야 된다든지 이런 식의 접근이기 때문에 감정노동자보호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객에 당하고 회사에 당하고, 상담원들의 호소를 들어줄 곳은 어딜까.

결국 국가인권위의 문을 두드려 봤지만 돌아온 건 절망 뿐이었습니다.

KBS 뉴스 변진석입니다.

인권위 진정했더니…1년만의 답은 “진정 어렵다”

[리포트]

지난해 1월, 상담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화장실도 못가는 이석열차 증거도 넣고, 말투까지 압박하는 관리자의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사업장에 대한 현장 조사도 요청했습니다.

[이윤선/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 : "인권 문제가 많이 있어서, 제가 대표로 해서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증거가 명확해 곧바로 조치가 있을 줄 알았지만, 감감 무소식, 1년이 다 된 지난 달에야 첫 반응이 왔는데, 답은 '진정 사건 처리 불가'였습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윤선/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 : "1년이 다 돼서 미팅을 했다는 자체도 굉장히 서운한 느낌도 들고, (다른) 상담사가 입은 피해를 진정을 넣은 것이기 때문에 제가 당사자가 아니라는거죠."]

인권위는 진정 처리가 3개월 이상 늦어질 경우 진정인에게 지연 사유를 설명하도록 돼 있습니다.

[김형완/인권정책연구소 소장 : "거의 1년이 지난 시점에 안내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내부 진정사건 처리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진정을 취하하는 대신, 내년도 사업계획에 넣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조사 사건이 아닌 정책 과제로 삼겠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따랐지만 이후엔 또 연락이 없었습니다.

[이윤선/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 : "정책으로 선정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다시 검토해서 1년이 지나가고. 그 사이에 콜센터 노동자들은 그 상황에서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거든요."]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14개월,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시행 6개월, 고용노동부도 콜센터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한 번 나가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최은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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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댈 곳 없는 상담원들…감정노동자의 안전한 일터는?
    • 입력 2020-01-16 21:38:06
    • 수정2020-01-20 11:06:41
    뉴스 9
[앵커]

이른바 '김용균법' 오늘(16일)부터 시행됐습니다.

허점이 많지만, 안전한 일터 만들기의 시작인 건 분명합니다.

다치지 않게, 죽지 않게, 보통 신체의 안전을 떠올리지만, 감정노동자들에게 안전한 일터는 어떤 곳일까요?

한 콜센터 상담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청원입니다.

악성 소비자보다 업무환경이 더 힘들다, 인간 이하 취급을 받는 게 끔찍하다,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들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오늘(16일)은 정신질환까지 얻게 된 한 상담원의 사례와 함께, 관련 기관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변진석, 최은진 기자가 차례로 짚어드립니다.

[리포트]

콜센터 상담원 A 씨는 지난해 10월 받은 전화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콜센터 상담원 A씨/음성변조 : "(폭언 고객이)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너 목소리가 지금 딱딱해졌어'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울컥하더라고요."]

한 악성 고객의 집요한 폭언 전화, 결국 병으로 이어졌습니다.

[콜센터 상담원 A씨/음성변조 : "두통이나 구역질, 이명까지 오더라고요. 삐 소리가 나면서 머리가 멈춘다거나... 그냥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럴 경우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노동자보호법은 노동자에게 장해가 우려될 경우 업무를 중단하거나 휴식시간을 주고, 치료나 상담을 지원하도록 돼 있습니다.

회사의 조치는 정반대였습니다.

녹음된 통화를 듣고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다시 들어보라고 했다는 겁니다.

[콜센터 상담원 A씨/음성변조 : "'파트장님, 저 그 고객이랑 통화를 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그 통화내용을 (다시) 들어보면 저 죽습니다'..."]

급기야 회사 지시로 사과 전화도 해야 했습니다.

고객이 무조건 왕이라는 회사의 인식 앞에 법은 소용없었습니다.

[정현철/직장갑질119 상근활동가 : "(노동자보다) 고객이 우선인 거죠. 그러니까 네가 조금 더 참아야 된다든지 이런 식의 접근이기 때문에 감정노동자보호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객에 당하고 회사에 당하고, 상담원들의 호소를 들어줄 곳은 어딜까.

결국 국가인권위의 문을 두드려 봤지만 돌아온 건 절망 뿐이었습니다.

KBS 뉴스 변진석입니다.

인권위 진정했더니…1년만의 답은 “진정 어렵다”

[리포트]

지난해 1월, 상담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화장실도 못가는 이석열차 증거도 넣고, 말투까지 압박하는 관리자의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사업장에 대한 현장 조사도 요청했습니다.

[이윤선/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 : "인권 문제가 많이 있어서, 제가 대표로 해서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증거가 명확해 곧바로 조치가 있을 줄 알았지만, 감감 무소식, 1년이 다 된 지난 달에야 첫 반응이 왔는데, 답은 '진정 사건 처리 불가'였습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윤선/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 : "1년이 다 돼서 미팅을 했다는 자체도 굉장히 서운한 느낌도 들고, (다른) 상담사가 입은 피해를 진정을 넣은 것이기 때문에 제가 당사자가 아니라는거죠."]

인권위는 진정 처리가 3개월 이상 늦어질 경우 진정인에게 지연 사유를 설명하도록 돼 있습니다.

[김형완/인권정책연구소 소장 : "거의 1년이 지난 시점에 안내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내부 진정사건 처리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진정을 취하하는 대신, 내년도 사업계획에 넣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조사 사건이 아닌 정책 과제로 삼겠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따랐지만 이후엔 또 연락이 없었습니다.

[이윤선/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 지부장 : "정책으로 선정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다시 검토해서 1년이 지나가고. 그 사이에 콜센터 노동자들은 그 상황에서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거든요."]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14개월,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시행 6개월, 고용노동부도 콜센터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한 번 나가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최은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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