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제한 일주일째…비정규직 문제 점검

입력 2009.07.06 (11:53)

비정규직법의 고용기간 2년 제한 조항이 발효된 지 일주일 째 접어들었으나 해법을 둘러싼 논쟁은 원점을 맴돌고 있다.
사업장에서는 계약 2년이 만료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또는 계약해지를 두고 혼란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정치권은 기간 유예 가부를 놓고 힘겨루기만 이어가고 있다.
정부도 애초 주장했던 기간 연장 방안이 타결되거나 차선책인 적용 중단이라도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정치권에 호소하면서도 혼란을 잠재우거나 피해를 완화할 대책 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 `해고대란' 있나 없나 = 정부는 고용기간 제한의 적용으로 70만∼100만명이 앞으로 1년 동안 실직 위기에 놓일 것이라며 대란을 예고해왔다.
하지만 현재 이렇다 할 대란의 실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정규직 전환 사례도 만만찮게 나타나고 있어 논쟁의 초점이 혼란의 해결책보다는 대란 여부에 대한 공방으로 옮겨가는 모습도 보인다.
노동부가 5일까지 내놓은 사례를 집계하면 62개 사업장의 근로자 1천146명이 계약해지를 당했거나 조만간 당할 예정이다.
이는 그러나 비정규직법 적용 대상이 5인 이상 사업장의 계약해지자 전원을 집계한 것도 아니고 일부 사례의 단순 합산에 불과해 실태 자료로 별반 의미가 없다.
한국노총이 산하 공공연맹을 통해 수집한 자료도 일부 사례에 그치고 있고, 정부와 달리 정규직 전환 사례에 방점을 두고 있다.
공공기관 73곳 가운데 도로공사, 주택공사, 토지공사, 폴리텍 등이 217명과 계약을 해지했지만 인천항만공사, 광물자원공사, 수원시설관리공단, 대구시설관리공단 등은 162명의 고용을 유지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50만개에 달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개별 계약 만료일에 따라 하나둘씩 떠나기 때문에 대란은 대란이지만 `조용한 대란'이라는 견해를 고수한다.
◇ 비정규직법 원점서 같은 타령만 = 애초 정부가 주장한 비정규직법 개정의 필요성은 법이 가진 구조적 문제점과 경제위기에 따른 고용불안이 주요 근거였다.
현행 기간제한 2년은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기에 아깝다는 점을 체감할 수준의 숙련기간인 `4년 정도'에 못 미치기 때문에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었다.
또 작년 말부터 본격화한 경제위기가 지속하면 기간 제한에 걸린 비정규직 근로자의 운명에 대한 기업의 결정이 정규직 전환보다는 해고 쪽으로 쏠릴 것이라는 관측도 일단 기간을 연장하고 경제상황을 보자는 논리에 힘을 실어줬었다.
물론 밑바탕에는 급변하는 경제상황에 기업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고용조정을 쉽게 해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더해야 한다는 취지도 자리 잡고 있다.
정부와 여당도 이런 논리로 비정규직법 기간제한 적용을 최소한의 기간으로 중단하고 나서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자는 틀에서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노동계는 기간제한 적용 중단은 미봉책이고, 기간연장은 비정규직만 양산할 뿐이라는 원론을 강조하며 여권의 논의 틀을 거부하고 있다.
나아가 사용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곳에만 비정규직을 쓰도록 하는 사유제한, 현행법을 그대로 시행하면서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는 지원금 도입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갈림길에 선 사업장 혼란 지속 = 정치권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사업장들은 정규직 전환이냐, 해고냐의 갈림길에서 혼란만 거듭하고 있다.
비정규직법 고용기간 제한이 적용되는 근로자의 수는 310만명이고, 앞으로 1년 동안 실직 위기를 겪을 비정규직이 각각 70만∼100만명(정부), 34만8천명(노동계)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장 대란이 현실화하건 그렇지 않건 분명히 일선 산업 현장에 고용 불안이라는 `덩어리'가 있음에도 이를 외면한 채 정치권은 논쟁만 되풀이하고 정부는 기간제한 적용 이후 대책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은 셈이다.
정부는 비정규직법 개정이 해결책이라고 설파하면서 이미 엄연히 발효된 법 조항을 준수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는 행보를 보여 혼란을 부추기는 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업장에서는 근로자와 밀약해 정년을 보장하는 무기계약을 맺지 않고 2년 이상 계속 고용하는 방안, 기간제 근로자를 파견 근로자로 바꿔 계속 사용하는 방안, 형식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나중에 다시 고용하는 방안 등 편법 사례가 실제 일어나고 있거나 앞으로 비일비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6일 평화방송과 인터뷰에서 "파견 전환 등 편법 고용사례는 악용이지만 근로자로서는 고마운 일일 수도 있다. 나중에 법적 문제가 불거져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만 재차 강조했다.
이렇듯 정부조차 혼란에 빠진 가운데 비정규직을 대거 고용한 일부 사업장은 `아노미'(규범 붕괴로 인한 대혼돈) 상태로 빠져들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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