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우승하면 ‘된장찌개 대접?’

입력 2011.05.1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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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꽉 쥐는 사람 있어 경기 중엔 악수 피해"

"마스터스 우승하면 챔프 디너로 된장찌개·굴비백반 대접할 것"



 최경주(41·SK텔레콤)와 주스 잔을 놓고 마주한 것은 17일 오후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제주 롯데호텔에서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의 쾌거를 이뤄낸 최경주의 검게 탄 얼굴에는 강인한 승부사의 기운이 녹아 있는 듯했다.



미국 시카고를 출발해 장시간 비행 끝에 17일 오후 4시가 넘어 인천공항에 내린 최경주는 일정을 쪼개 귀국 인터뷰를 하고 바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서귀포에 도착해서는 SK텔레콤 오픈의 프로암 대회 전야제에 참석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빡빡한 일정 탓에 피곤할 만도 할 텐데도 활기가 넘쳤다.



최경주는 "여기서 가장 맛있게 하는 과일 주스 주세요"라며 호쾌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그러고 나서 그동안 못다 한 얘기를 술술 쏟아냈다.



'필 플레이어'는 자신의 스윙을 설명하면서 꺼낸 단어다.



최경주는 "지금의 내 셋업 자세는 서 있는 듯하면서도 편해 보이는 스타일"이라며 "어딘가 사람이 위축되면 몸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반대로 편해지면 자세가 딱 벌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탁 서서 툭 치면 되게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쉬운 것이 아니다"라며 "자기 스윙이 어떻게 갔다가 오는지를 알고 리드미컬하게 연습해야 한다"고 좋은 스윙의 정의를 내렸다.



율동적이게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스윙이 나오고, 그런 점에서 "나는 100% (느낌으로 치는) 필 플레이어(Feel Player)다"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요즘 젊은 선수들은 스윙을 아름답게 하고 멀리 치려고만 하는데 꼭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똑바로 치려고 노력하기보다 삐뚤게 많이 치면서 자연스럽게 목표 지점을 삐뚤게 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면서 자신의 리듬을 잡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사진을 잔뜩 찍어놨는데 한순간 실수로 뭘 잘못 눌러서 다 지워지면 얼마나 허무하겠어요. 골프도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느낌을 여러 방법으로 저장해야 합니다."



최경주는 은근히 아내 자랑도 했다.



그는 "위트 감각을 키우기 위해 책을 따로 본 적은 없다"고 운을 떼고 나서 "와이프가 원래 국문과 지망생이었을 정도로 언어 능력이 좋다"고 했다.



인터뷰 요령 등에 관해 아내가 냉정하게 조언도 해주고 써야 할 적절한 단어를 골라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최경주는 생애 8번째 PGA 우승컵을 거머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최종 라운드로 다시 시간을 되돌렸다.



가장 긴장됐던 순간으로 18번 홀 파 퍼트 순간을 꼽았다.



"1.5m 정도 거리였는데 들어가야 연장전이기 때문에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못 넣었다면 전 세계적으로 X 팔림을 당할 뻔한 거죠."



최경주는 웃으면서 "그날 그 거리에서 퍼트를 4~5번 했는데 사실 그거 하나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퍼트 능력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퍼트 능력이 없는 편이라 연습을 많이 하지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 프로답지 않은 말을 했다.



최경주는 "내가 만일 퍼트를 잘하는 선수였다면 미국에서 되게 미움을 받았을 것"이라며 "영어도 잘 못하는 이방인이 와서 휘젓고 다니면 좋게 보이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화제가 됐던 미국인 응원단 '초이스 보이스(Choi's Bois)'에 대해서 최경주는 "팬들에게 잘 해주고, 안 되는 영어로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도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갤러리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지적하자 "사실 손 한 번 들어주는 것은 힘이 안 든다. 그런데 팬들은 되게 좋아한다"고 자신의 팬 철학을 소개했다.



7~8년 전에 아들(호준)과 미국프로농구(NBA) 휴스턴 로키츠의 경기를 보러 갔다는 최경주는 "나는 이름도 모르는 선수들이 손목 보호대를 벗어 던져주니 팬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더라. 우리 애랑 친구 4명이 같이 갔는데 얘네들이 그것을 하나 잡더니 아주 미치고 환장을 하더라"고 회상했다.



최경주는 "그걸 보면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팬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공도 주고, 아이들을 보면 안아주는 작은 표현들이 이제는 몸에 뱄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사람들이 와서 '10년 전 당신이 우리 애를 안아주고 갔다. 우리 애를 안아준 선수는 KJ(최경주의 영어 이름 이니셜) 당신뿐이다'라거나 '그때 나에게 사인해줬던 것을 기억하느냐'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소개했다.



"사실 이방인인데 내가 여기서 채 집어던지고, 욕하고, 팬들에게 짜증 내고 그랬으면 어땠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가끔 손을 너무 꽉 쥐는 사람들이 있어 경기 중에 악수는 될 수 있으면 하지 않는다는 비밀도 털어놨다.



40개월 만에 PGA 투어에서 우승하기까지 겪었던 슬럼프도 화제로 올랐다.



그는 "안 되는데 안 된다고 얘기하기도 참 그랬다"고 입을 열었다.



최경주는 "몸도 아팠고 클럽도 (계약 탓에)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등 여러 사정이 있었다"며 "변화 과정에서 성적까지 잘 나오면 누가 변화를 두려워하겠느냐고도 생각했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돌아봤다.



"2008년 1월 소니오픈 우승을 하고 몸무게를 84㎏(185파운드)까지 줄이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몇 개월은 몸이 관성에 따라 가더니 재생 능력이 없어졌어요. 그러고 나서 빌드 업(Build-up) 과정이 2년 걸린 겁니다."



몸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생한방병원 신준식 원장에 대한 감사의 뜻도 전했다.



그는 "허리 부상 때문에 고생했는데 신 원장께는 어떻게 돈으로도 해줄 수가 없을 정도로 고맙다. 이렇게 우승해서 언급해주는 것이 유일한 보답의 방

법"이라며 "몸 상태가 좋아지면서 숨어 있던 기술, 능력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그 과정에서 남들은 '최경주는 이제 갔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편견을 빨리 극복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사실 올해 연초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이 나에게 절정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다"는 최경주는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골프에 대한 직감이 있는 편인데 지금 샷 감각이나 몸 상태가 참 좋다. 메이저 대회 우승에도 근접해 있다"고 자신했다.



이번에 우승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도 '챔피언스 디너'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전년도 우승자가 대회 개막을 앞두고 개최하는 만찬이 챔피언스 디너인데, 최경주는 내년도 디너의 메인 메뉴로 '갈비 버거(가칭)'를 생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통적이면서 외국 사람의 입에도 맞는 음식을 생각 중"이라는 최경주는 평생의 꿈인 마스터스대회에서 우승하면 '전통 한국식'으로 메뉴를 짜보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이전의 한 인터뷰에서 "청국장을 올리겠다"고 했던 최경주는 그러나 이번엔 "솔직히 청국장은 (외국인들에게는) 무리다. 된장찌개에 굴비 백반, 갈비, 육회, 등심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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