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200m에서 2회 연속 은메달을 수확한 박태환(23·SK텔레콤)은 자신의 어깨에 걸머쥔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 보였다.
박태환은 30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대회 남자 자유형 200m에서 1분44초93으로 쑨양(중국)과 공동 은메달을 차지했다.
금메달은 1분43초14를 기록한 야닉 아넬(프랑스)에게 돌아갔다.
박태환은 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록 색깔은 금(金)이 아니지만 올림픽 메달을 걸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실 박태환은 자유형 200m 경기를 앞두고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실격 파동과 자유형 400m 은메달로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가다듬고자 경기 당일에는 거의 입을 떼지 않을 정도였다.
자유형 200m에서 비록 금메달은 아니지만 은메달을 따내며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박태환은 그래서인지 무척 홀가분해 보였다.
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무려 40분 이상 진행할 정도였다. 진행요원의 제지가 없었다면 인터뷰는 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박태환은 "자신감이 많지는 않았다"면서 "사실 야닉과 쑨양, 라이언 록티(미국)가 메달 싸움을 할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런데 감독님이 기분이 가라앉은 걸 알고 마지막까지 기운을 북돋워줬다"며 "'훈련을 잘 소화했으니까 훈련한 만큼만 하면 된다'고 말씀해줬다"고 덧붙였다.
이어 "감독님 말씀이 힘이 됐고 (국민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박태환은 공동 은메달이라는 결과보다는 쑨양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와 함께 레이스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야닉도 마찬가지고 언제 이런 선수들과 대결해보겠는가. 세계적인 선수인 쑨양과 같이 시상대에 함께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좋다"면서 "색깔은 금이 아니지만 저는 올림픽 메달을 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태환과의 일문일답.
--쑨양과 공동 은메달을 차지했는데
▲마지막 5m를 남겨두고 야닉에게는 뒤졌지만 쑨양에게는 조금 이기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 마지막 5m를 정말 못 가겠더라.
쑨양의 막판 스퍼트가 워낙 좋다 보니 마지막에 처진 것 같다. 똑같이 해도 (쑨양이) 저보다 신체가 크잖아요.(웃음)(실제로 쑨양의 신장은 198㎝로 박태환보다 무려 15㎝가 크다)
어떻게 보면 되게 공동으로 시상대에 올라간 것이 수영 인생에서 처음이라 이것도 뜻깊은 것 같다. 같은 동양인이 같이 시상대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의미가 큰 것 같다.
--시상대에서 쑨양과 무슨 얘기를 나눴나
▲우리나라 국기만 올라가고 너희 국기는 안 올라간다고 그런 얘기를 해줬다. 저도 영어를 못하지만 쑨양도 영어를 못해서 많은 얘기는 못 했다.
제가 쑨양에게 키가 얼마인지 물어보니까 2m라네요.
--몸 상태는 어땠나.
▲오늘 경기에서는 금메달이나 그런 걸 걱정한 것이 아니라 200m에서는 제대로 된 경기를 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400m에서 많이 못 보여드린 것 같았다.
기대에 부응을 못한 것 같아서 국민들을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게 긴장으로 연결된 것 같다. 떨리더라.
200m에서는 비록 은메달을 땄지만, 단거리 종목에서 은메달을 딴 게 값진 것 같다. 신체조건이 좋아야 하잖아요? 열심히 한 게 뒷받침이 돼서 좋은 결과로 연결된 것 같다.
저보다는 라이언 록티가 50m 턴하고 100m 턴할 때 약간 몸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워낙 쟁쟁한 후배들과 레이스를 펼쳐서 긴장한 느낌이었다. 록티가 마지막에 잘했다고 축하해줬다.
--결과에 만족하는지
▲최선을 다했다. 기록을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기록도 나오지 않았네'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저는 최선을 다했다. 메달도 목에 걸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해서 행운인 것 같다.
--혹시나 메달을 못 딸 수 있다는 부담감은 없었나.
▲사실 준결승 끝나고 나서 자기 전에 많이 했다. 내가 내일 과연 기록은 어느 정도 나올 것이며 메달을 딸 수 있을까,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마음을 비웠던 것 같다. 메달을 못 따도 이런 선수들과 함께 레이스한다는 것이 어느 누구한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데, 이게 정말 축복인 것 같다.
스타트하는 순간부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점심때 인터넷을 했는데 도박사들이 5위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기사를 봤다. 5위를 하면 그들의 예측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 것 같아서 4등을 하든 3등을 하든 최소한 5위는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교회는 안 다니는데 하느님이 하늘에서 값진 은메달을 주신 것 같다.
--앞으로 1,500m 경기가 남았는데.
▲1,500m에서도 좋은 기록을 내고 싶고, 좋게 마무리하고 싶다.
--IOC 위원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저는 정치 쪽으로는 잘 모르고 튀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이름이 알려져서 그런지 그런 게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아시아 선수가 200m에서 함께 은메달을 딴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처음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의미를 두고 싶다. 그런데 쑨양은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들어왔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웃음)
더 멋있는 것 같다.
--볼 코치와 관계는 어땠나
▲볼 코치 눈에는 제가 '하기 싫다, 못하겠다' 하는 게 보여요. 그러면 일단 나오라고 해요. '뭐가 문제가 있느냐, 훈련을 하기 싫으냐' 이렇게 물어요. 볼 코치는 '내가 볼 때는 훈련하기 싫은 것 같아 보인다. 오늘은 쉬고 내일 다시 오라'고 하는데, 오히려 그런 게 '내가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무섭지는 않다. 우리나라 코치와는 혼내는 방식이 다르다. '야! 나와' 이렇게 화부터 내는 국내 코치들과는 달리 볼 코치는 '뭐가 문제가 있느냐'는 말부터 먼저 한다. 문제가 없는데 네가 이러면 잘못된 거다. 다른 선수들한테는 얼마나 좋은 기회냐, 올림픽을 앞두고 도전자가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해준다.
2년 넘게 볼 감독님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준 것 같다. 심리적이나 정신적이나 행동이나 말하는 것이나 한층 절 성숙하게 만들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