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너먼트로 치러지는 단기전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 선수보다 많은 경험을 보유한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마침내 저력을 발휘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이 4일 타이완 타이중 인터컨티넨탈 구장에서 계속된 WBC B조 본선 1라운드 2차전에서 호주를 6-0으로 물리치고 벼랑 끝에서 탈출했다.
한국은 네덜란드와 1승1패로 동률을 이뤘으나 득점과 실점 차에서 여전히 네덜란드에 밀려 2라운드(8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이틀 전 1차전에서 네덜란드에 0-5로 패한 충격에서 벗어나 5일 타이완과의 최종전에서 막판 뒤집기를 노려볼 기회를 잡았다.
결연한 각오로 호주와의 경기에 임한 한국 선수들은 국내에서 단기전을 숱하게 치르면서 터득한 필승 공식을 그대로 시범 보였다.
이기는 해답은 선취점을 빨리 얻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철벽 계투로 상대 타선을 꽁꽁 묶는 것에 있다.
1차전에서 빈타와 실책으로 졸전을 자초한 한국 타자들은 1회부터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몸으로 보였다.
선구안과 정교한 방망이 컨트롤을 앞세워 상대 투수 괴롭히기로 유명한 톱타자 이용규(KIA)가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한국은 찬스를 얻었다.
후속 정근우(SK)의 타구는 유격수 정면으로 흘러 병살타가 유력했으나 정근우가 젖먹던 힘으로 내 쏜살같이 달려 1루에서 살면서 득점 기회를 이어갔다.
'해결사' 이승엽(삼성)의 큼지막한 중월 2루타, 이대호(일본프로야구 오릭스)의 볼넷으로 절호의 만루 상황에서 김현수(두산)가 타석에 들어섰다.
김현수는 볼 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의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바깥쪽에 떨어지는 변화구를 퍼올려 3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적시타로 두 명의 주자를 홈에 불러들였다.
밀어치고 당겨치기에 능한 교타자 김현수가 범타로 물러났다면 한국은 난관에 봉착할 뻔했다.
다행히 김현수가 물꼬를 트면서 한국은 상승세를 타고 게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최정(SK)의 몸 맞는 볼로 이어간 1사 만루에서 손아섭(롯데)이 3루수 앞 병살타성 타구를 때렸으나 전력질주로 1루에서 세이프되면서 한국은 귀중한 1점을 보탰다.
2회 이승엽이 총알같이 뻗어가는 1타점 우선상 2루타를 날리고, 이대호가 7회 좌전 1타점 적시타로 쐐기를 박는 등 기대를 건 3∼5번 중심 타자들이 4타점을 합작한 장면은 무척 고무적이다.
타선이 힘을 내자 투수진도 전력투구로 화답했다.
"태극기에 먹칠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우완 선발 투수 송승준(롯데)은 체인지업의 일종인 스플리터, 낙차 큰 커브, 직구를 앞세워 4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솎아내며 혼신의 역투를 펼쳤다.
송승준의 뒤를 이어 등판한 박희수(SK·5회), 노경은(두산·6회)도 기대에 부응했다.
1∼2회 대회보다 마운드가 약한 상황에서 한국 계투진의 키 플레이어로 꼽힌 두 투수가 2⅔이닝 동안 삼진 4개를 합작하고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류중일 감독도 불펜 운용에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박희수의 체인지업과 투심 패스트볼, 노경은의 묵직한 직구와 포크볼은 호주 타자들의 눈을 속였다.
'잠수함' 정대현(롯데·⅔이닝), 손승락(넥센·⅔이닝)에 이어 9회 마운드에 오른 '끝판대장' 오승환(삼성·1이닝) 등 국내 정상급 마무리 트리오도 실점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영봉승에 힘을 보탰다.
6명의 투수들은 모두 합쳐 삼진 12개를 낚았다.
타이완과의 일전에서 6점차 이상의 대승을 거둬야 일본 도쿄행 티켓을 거머쥐는 한국이 여세를 몰아 기적을 연출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