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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역사부정 실체]④ “조선인은 범죄 집단”…램지어 논문은 ‘혐오 백화점’
입력 2021.04.13 (06:00) 수정 2021.04.13 (06:12) 취재K
미국 램지어 교수가 일본 훈장 '욱일장'을 수상한 건 2018년이다. 일본 문화홍보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다. 램지어 사태가 발생하고 KBS는 국내 위안부 전문가 10명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램지어가 문제의 올해 논문 외에도 2019년 이후 재일조선인과 한국을 깎아내리고 왜곡하는 논문을 최소 3건 발표한 것을 확인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조선인의 범죄 때문"

램지어는 문제의 위 주장을 담은 논문을 2019년 발표한다. <경찰을 사영화하기: 일본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자경단 PRIVATIZING POLICE: JAPANESE POLICE, THE KOREAN MASSACRE, AND PRIVATE SECURITY FIRM, 2019>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램지어는 이 논문에서 "역사가들은 조선인 범죄에 대한 말들을 순전히 유언비어로 일축한다."(논문 7쪽)며 기존 연구가 부실하다고 비꼰다. 그러면서 "1920년 41,000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고, 대부분 젊은 남자들었다. 젊은 남자들은 어디에서든 높은 범죄율을 나타내는 집단이었다."(논문 7쪽)고 설명한다.

1920~30년대 '일본 사법성'의 조선인 범죄자 검거 기록 등을 근거로 제시하는데, 100년 전 식민지 통치에 활용된 자료를 아무런 비판적 검토 없이 '사실'로 강조하고 있다.


KBS 공동연구에 참여한 성공회대 조경희 교수는 "램지어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조선인 범죄에 대한 일본인의 보복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며 "자경단의 만행은 물론 공권력과 언론 또한 조선인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조장하거나 방치했던 점이 그동안 많이 밝혀져 왔다. 램지어 교수의 글은 선행연구의 축적을 무시하고 당시 유언비어를 21세기에 재생산해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램지어는 공식 통계를 중심으로 기존 연구에서 6,000명 정도로 추산하는 조선인 학살 피해자 수도 축소한다.

"400명보다는 상당히 많고, 5,100명보다는 상당히 적다. 근본적으로 살해된 조선인들의 숫자를 산정하는 일은 조선인 파괴공작의 규모를 산정하는 일과 같은 과제"(논문 10쪽)라고 설명한다.

조 교수는 "학살 피해를 왜곡하는 명백한 역사 부정으로 학살된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독립운동 = 테러리스트, 폭도"

삼일운동 이후 더 활발해진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램지어는 '조선인 범죄'라는 관점으로 설명한다. 같은 논문에서 독립운동을 설명하며 사용한 단어를 보자. '갱들(gangs)' '무장단체들(militants)''공작원들(saboteurs)' '테러리스트' '폭도(mob)' 등이다.

당시 일본과 한반도 사이 권력–지배 관계를 전혀 보지 않고, 피지배 조선인들의 저항 운동을 불법화, 범죄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수천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 자경단에 대해서는 경찰력을 대신한 ‘사적 결사들(private bands)’이라고 설명한다.

램지어는 또 "지진 후 도시 전역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해 조선인 좌파들은 자신들의 공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상하이에서 재난을 보며 황홀해 했다"(논문 8쪽)고 설명한다. 출처를 조선총독부 자료라고 밝혔는데, 정확하게 어떤 문헌, 몇 쪽에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상하이에서 황홀해 했다"는 상상과 허구를 논문에 담은 것이다.

4.3 항쟁 왜곡 .. "1957년 제주 인구 3만 명?"

램지어는 제주 4.3 항쟁도 왜곡한다. 올 2월 발표한 <사회적 자본과 기회주의적 리더십의 문제: 재일 한국인 사례, SOCIAL CAPITAL AND THE PROBLEM OF OPPORTUNISTIC LEADERSHIP: THE EXAMPLE OF KOREANS IN JAPAN> 논문에서다.

"(1947년 4.3 당시 제주 인구는) 29만 명이다. 제주에서 살아남은 좌익들은 그 직후 은밀하게 일본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불법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숫자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1957년 제주에 겨우 3만 명이 살았다."(논문 14쪽)

램지어가 4.3 항쟁이 끝난 1957년 제주 인구가 3만 명이라고 한 근거는 무엇일까? 램지어는 자료 출처를 달았다.

성공회대 조경희 교수는 램지어가 인용한 자료의 출처를 추적했다. <국제정세 분석과 예측 国際情勢の分析と予測>이라는 익명 블로그였다. 이 블로그는 또 일본어판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 이 정보를 퍼왔다.

위키피디아는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 뉴스 레터를 출처로 달았다. 일본 효고 현의 '성토마스대학'이다. 그런데 이 대학은 2015년 폐교했다. 그러니까 폐교한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에서 기재한 잘못된 내용이 위키피디아와 익명 블로그를 거쳐, 하버드대 교수 논문에 인용된 셈이다.

그럼 실제 1957년 제주 인구는 몇 명일까? 제주 연감을 확인해 보니 당시 제주 인구는 258,961명이었다. 남자 116,163명, 여자 142,798명이다. 램지어 학문 능력에 근본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제주도 인구 29만 명이 3만 명으로 감소했다는 램지어의 엉터리 주장은 단지 오독이었을까? 그 속내는 2019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논문을 보면 연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30년 후 재일조선인들은 단연 제대로 된 파괴 공작과 테러를 개시하게 된다. 30년 후에 1923년(관동 대지진)의 과장된 유언비어가 사실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논문 13쪽)

30년 뒤 일본에 밀항한 제주도 사람들이 테러를 일으킨다는 주장이다. 램지어는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원인을 조선인들의 '범죄성'에 귀착시키기 위해, 1950년대 있지도 않은 사례를 만들어서 그 근거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관통하는 램지어 인식 = 계급·인종 혐오

조경희 교수는 "램지어는 일관되게 소수 집단(재일조선인, 오키나와인, 부라쿠민)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을 그 집단의 '범죄적 성향'을 피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처럼 풀어가고 있다. 아시아의 하층집단에 대한 계급혐오와 인종혐오가 결합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은 일제 행위를 부정하는 일본 역사부정주의 관점과 궤를 같이한다. 조경희 교수는 "최근 10년 동안 일본에서 혐한 서적이 증가하고, 일본발 '위안부' 부정론이 국제사회로 확산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년 발생한 하버드대 교수 램지어 파문이 단순히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일본정부, 일본 역사부정론과의 유착을 전제로 한 활동이라는 거다. 제2, 제3의 램지어가 또 등장할 수 있는 이유다.
  • [日역사부정 실체]④ “조선인은 범죄 집단”…램지어 논문은 ‘혐오 백화점’
    • 입력 2021-04-13 06:00:15
    • 수정2021-04-13 06:12:24
    취재K
미국 램지어 교수가 일본 훈장 '욱일장'을 수상한 건 2018년이다. 일본 문화홍보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다. 램지어 사태가 발생하고 KBS는 국내 위안부 전문가 10명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램지어가 문제의 올해 논문 외에도 2019년 이후 재일조선인과 한국을 깎아내리고 왜곡하는 논문을 최소 3건 발표한 것을 확인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조선인의 범죄 때문"

램지어는 문제의 위 주장을 담은 논문을 2019년 발표한다. <경찰을 사영화하기: 일본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자경단 PRIVATIZING POLICE: JAPANESE POLICE, THE KOREAN MASSACRE, AND PRIVATE SECURITY FIRM, 2019>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램지어는 이 논문에서 "역사가들은 조선인 범죄에 대한 말들을 순전히 유언비어로 일축한다."(논문 7쪽)며 기존 연구가 부실하다고 비꼰다. 그러면서 "1920년 41,000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고, 대부분 젊은 남자들었다. 젊은 남자들은 어디에서든 높은 범죄율을 나타내는 집단이었다."(논문 7쪽)고 설명한다.

1920~30년대 '일본 사법성'의 조선인 범죄자 검거 기록 등을 근거로 제시하는데, 100년 전 식민지 통치에 활용된 자료를 아무런 비판적 검토 없이 '사실'로 강조하고 있다.


KBS 공동연구에 참여한 성공회대 조경희 교수는 "램지어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조선인 범죄에 대한 일본인의 보복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며 "자경단의 만행은 물론 공권력과 언론 또한 조선인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조장하거나 방치했던 점이 그동안 많이 밝혀져 왔다. 램지어 교수의 글은 선행연구의 축적을 무시하고 당시 유언비어를 21세기에 재생산해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램지어는 공식 통계를 중심으로 기존 연구에서 6,000명 정도로 추산하는 조선인 학살 피해자 수도 축소한다.

"400명보다는 상당히 많고, 5,100명보다는 상당히 적다. 근본적으로 살해된 조선인들의 숫자를 산정하는 일은 조선인 파괴공작의 규모를 산정하는 일과 같은 과제"(논문 10쪽)라고 설명한다.

조 교수는 "학살 피해를 왜곡하는 명백한 역사 부정으로 학살된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독립운동 = 테러리스트, 폭도"

삼일운동 이후 더 활발해진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램지어는 '조선인 범죄'라는 관점으로 설명한다. 같은 논문에서 독립운동을 설명하며 사용한 단어를 보자. '갱들(gangs)' '무장단체들(militants)''공작원들(saboteurs)' '테러리스트' '폭도(mob)' 등이다.

당시 일본과 한반도 사이 권력–지배 관계를 전혀 보지 않고, 피지배 조선인들의 저항 운동을 불법화, 범죄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수천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 자경단에 대해서는 경찰력을 대신한 ‘사적 결사들(private bands)’이라고 설명한다.

램지어는 또 "지진 후 도시 전역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해 조선인 좌파들은 자신들의 공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상하이에서 재난을 보며 황홀해 했다"(논문 8쪽)고 설명한다. 출처를 조선총독부 자료라고 밝혔는데, 정확하게 어떤 문헌, 몇 쪽에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상하이에서 황홀해 했다"는 상상과 허구를 논문에 담은 것이다.

4.3 항쟁 왜곡 .. "1957년 제주 인구 3만 명?"

램지어는 제주 4.3 항쟁도 왜곡한다. 올 2월 발표한 <사회적 자본과 기회주의적 리더십의 문제: 재일 한국인 사례, SOCIAL CAPITAL AND THE PROBLEM OF OPPORTUNISTIC LEADERSHIP: THE EXAMPLE OF KOREANS IN JAPAN> 논문에서다.

"(1947년 4.3 당시 제주 인구는) 29만 명이다. 제주에서 살아남은 좌익들은 그 직후 은밀하게 일본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불법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숫자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1957년 제주에 겨우 3만 명이 살았다."(논문 14쪽)

램지어가 4.3 항쟁이 끝난 1957년 제주 인구가 3만 명이라고 한 근거는 무엇일까? 램지어는 자료 출처를 달았다.

성공회대 조경희 교수는 램지어가 인용한 자료의 출처를 추적했다. <국제정세 분석과 예측 国際情勢の分析と予測>이라는 익명 블로그였다. 이 블로그는 또 일본어판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 이 정보를 퍼왔다.

위키피디아는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 뉴스 레터를 출처로 달았다. 일본 효고 현의 '성토마스대학'이다. 그런데 이 대학은 2015년 폐교했다. 그러니까 폐교한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에서 기재한 잘못된 내용이 위키피디아와 익명 블로그를 거쳐, 하버드대 교수 논문에 인용된 셈이다.

그럼 실제 1957년 제주 인구는 몇 명일까? 제주 연감을 확인해 보니 당시 제주 인구는 258,961명이었다. 남자 116,163명, 여자 142,798명이다. 램지어 학문 능력에 근본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제주도 인구 29만 명이 3만 명으로 감소했다는 램지어의 엉터리 주장은 단지 오독이었을까? 그 속내는 2019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논문을 보면 연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30년 후 재일조선인들은 단연 제대로 된 파괴 공작과 테러를 개시하게 된다. 30년 후에 1923년(관동 대지진)의 과장된 유언비어가 사실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논문 13쪽)

30년 뒤 일본에 밀항한 제주도 사람들이 테러를 일으킨다는 주장이다. 램지어는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원인을 조선인들의 '범죄성'에 귀착시키기 위해, 1950년대 있지도 않은 사례를 만들어서 그 근거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관통하는 램지어 인식 = 계급·인종 혐오

조경희 교수는 "램지어는 일관되게 소수 집단(재일조선인, 오키나와인, 부라쿠민)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을 그 집단의 '범죄적 성향'을 피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처럼 풀어가고 있다. 아시아의 하층집단에 대한 계급혐오와 인종혐오가 결합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은 일제 행위를 부정하는 일본 역사부정주의 관점과 궤를 같이한다. 조경희 교수는 "최근 10년 동안 일본에서 혐한 서적이 증가하고, 일본발 '위안부' 부정론이 국제사회로 확산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년 발생한 하버드대 교수 램지어 파문이 단순히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일본정부, 일본 역사부정론과의 유착을 전제로 한 활동이라는 거다. 제2, 제3의 램지어가 또 등장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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