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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역사부정 실체]⑧ “위안부 강제연행 없었다”…‘역사부정 3종 세트’ 이래서 허구
입력 2021.04.14 (07:01) 수정 2021.04.14 (07:48) 취재K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한 역사부정주의자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세 가지 주장이 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 "성노예가 아니다" "위안부 20만 명은 근거 없다". 이른바 '역사부정 3종세트'라 불린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 해결 과제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 일본 우익은 줄곧 이 역사부정 3종세트를 되뇌왔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국제사회 조사보고서, 미국 의회의 사죄 요구 결의안 등이 잇따랐지만 역사부정주의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민간단체나 학계의 주장으로 시작된 위안부 부정은 2006년 1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점차 일본 정부 입장으로 공식화돼 간다.

2010년대 들어 일본 우익은 국내에서는 이러한 역사부정주의 시각이 미디어를 지배하는 등 역사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보고, 국제사회에서의 전파 활동을 넓혀갔다.

일본 정부도 이에 편승했다. 2016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일본 정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20만 명'이라는 숫자도 구체적 증거가 없는 숫자다" "또한 '성노예'라는 식의 표현은 사실에 반한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하던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 국제기구에서 역사 부정주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됐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게시 ‘위안부 문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게시 ‘위안부 문제’
https://www.mofa.go.jp/mofaj/files/000472256.pdf

현재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시된 '위안부 문제'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일본어와 영어, 독일어, 한국어본이 있다. 이 문건에서 일본 정부는 한일 간 위안부 문제의 경과와 자체 해결 노력을 설명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른바 '3종세트'를 끄집어낸다.


위안부를 '성매매 업주와 자발적 계약을 맺은 매춘부'로 규정하는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왜곡 논문도 사실 이런 역사부정주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고 위안부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일본 정부와 우파의 역사부정 3종세트가 왜 허구인지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을 토대로 살펴본다.

■ "강제연행은 없었다"?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에 대해 아베 총리는 2007년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 사람을 유괴하듯이 끌어간다고 하는 그런 강제성"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김창록 교수는 "이른바 '협의의 강제성'을 전제로 하는 '강제연행'이란, 강제연행이라는 단어의 법적·상식적 의미에 반하는 것이며, 아베의 일본이 발명해낸 일본에서만 통하는 어설픈 은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강제연행의 법적·상식적 의미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고 가는 것으로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일본 정부의 강제연행 인정은 끝났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고노 담화'는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고, 나아가 관헌 등이 직접 이 일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고 명시했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소 생활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서 이뤄진 가혹한 것이었던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당시 국제법을 위반했고, 그것만으로 일본의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 "성노예가 아니다"?

"노예제의 요체는 사람에 대한 지배이며, 여기에서의 지배란 사람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심대하게 박탈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고노 담화가 인정하듯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에서의 가혹한 위안부 생활"만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

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사실은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1998년 게이 맥두걸 보고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 등에서 널리 인정돼 국제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또 "2015년 합의 당시 한국 정부가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일본 정부의 기술도 사실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 당시 우리 측이 확인한 것은 위안부 문제 관련 우리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라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증거가 없다"?

실제 '20만 명'이라는 숫자의 명확한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고, 위안부의 총수를 제시하는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위안부 숫자는 2만, 8만, 20만, 40만 이상 등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추산되고 있다.

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심문한 미중연합군 소속 원 로이 챈 대위는 1986년 발간한 '버마-비화'라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조선인 위안부 포로를 심문하고 있는 원 로이 챈 대위(맨 왼쪽/1944년 8월)조선인 위안부 포로를 심문하고 있는 원 로이 챈 대위(맨 왼쪽/1944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제국 일본군이 이 불행한 젊은 여성들을 얼마나 많이 위안부로 강요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20만 명 넘게 추산된다…일본인들은 제국군의 역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파괴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수많은'이라는 의미를 담기 위한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김창록 교수는 말한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에게 증거가 있는 숫자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20만이 아니다'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일본의 공문서를 열심히 뒤져서 '증거가 있는 숫자'를 밝히면 된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역사부정 3종세트'. 우익세력의 주장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된 데 이어, '하버드 대학'과 '국제학술지'라는 권위를 차용한 법경제학자의 논문으로 왜곡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 [日역사부정 실체]⑧ “위안부 강제연행 없었다”…‘역사부정 3종 세트’ 이래서 허구
    • 입력 2021-04-14 07:01:37
    • 수정2021-04-14 07:48:36
    취재K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한 역사부정주의자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세 가지 주장이 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 "성노예가 아니다" "위안부 20만 명은 근거 없다". 이른바 '역사부정 3종세트'라 불린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 해결 과제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 일본 우익은 줄곧 이 역사부정 3종세트를 되뇌왔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국제사회 조사보고서, 미국 의회의 사죄 요구 결의안 등이 잇따랐지만 역사부정주의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민간단체나 학계의 주장으로 시작된 위안부 부정은 2006년 1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점차 일본 정부 입장으로 공식화돼 간다.

2010년대 들어 일본 우익은 국내에서는 이러한 역사부정주의 시각이 미디어를 지배하는 등 역사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보고, 국제사회에서의 전파 활동을 넓혀갔다.

일본 정부도 이에 편승했다. 2016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일본 정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20만 명'이라는 숫자도 구체적 증거가 없는 숫자다" "또한 '성노예'라는 식의 표현은 사실에 반한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하던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 국제기구에서 역사 부정주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됐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게시 ‘위안부 문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게시 ‘위안부 문제’
https://www.mofa.go.jp/mofaj/files/000472256.pdf

현재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시된 '위안부 문제'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일본어와 영어, 독일어, 한국어본이 있다. 이 문건에서 일본 정부는 한일 간 위안부 문제의 경과와 자체 해결 노력을 설명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른바 '3종세트'를 끄집어낸다.


위안부를 '성매매 업주와 자발적 계약을 맺은 매춘부'로 규정하는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왜곡 논문도 사실 이런 역사부정주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고 위안부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일본 정부와 우파의 역사부정 3종세트가 왜 허구인지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을 토대로 살펴본다.

■ "강제연행은 없었다"?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에 대해 아베 총리는 2007년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 사람을 유괴하듯이 끌어간다고 하는 그런 강제성"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김창록 교수는 "이른바 '협의의 강제성'을 전제로 하는 '강제연행'이란, 강제연행이라는 단어의 법적·상식적 의미에 반하는 것이며, 아베의 일본이 발명해낸 일본에서만 통하는 어설픈 은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강제연행의 법적·상식적 의미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고 가는 것으로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일본 정부의 강제연행 인정은 끝났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고노 담화'는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고, 나아가 관헌 등이 직접 이 일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고 명시했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소 생활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서 이뤄진 가혹한 것이었던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당시 국제법을 위반했고, 그것만으로 일본의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 "성노예가 아니다"?

"노예제의 요체는 사람에 대한 지배이며, 여기에서의 지배란 사람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심대하게 박탈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고노 담화가 인정하듯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에서의 가혹한 위안부 생활"만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

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사실은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1998년 게이 맥두걸 보고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 등에서 널리 인정돼 국제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또 "2015년 합의 당시 한국 정부가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일본 정부의 기술도 사실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 당시 우리 측이 확인한 것은 위안부 문제 관련 우리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라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증거가 없다"?

실제 '20만 명'이라는 숫자의 명확한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고, 위안부의 총수를 제시하는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위안부 숫자는 2만, 8만, 20만, 40만 이상 등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추산되고 있다.

1944년 8월 버마 미치나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심문한 미중연합군 소속 원 로이 챈 대위는 1986년 발간한 '버마-비화'라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조선인 위안부 포로를 심문하고 있는 원 로이 챈 대위(맨 왼쪽/1944년 8월)조선인 위안부 포로를 심문하고 있는 원 로이 챈 대위(맨 왼쪽/1944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제국 일본군이 이 불행한 젊은 여성들을 얼마나 많이 위안부로 강요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20만 명 넘게 추산된다…일본인들은 제국군의 역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파괴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수많은'이라는 의미를 담기 위한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김창록 교수는 말한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에게 증거가 있는 숫자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20만이 아니다'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일본의 공문서를 열심히 뒤져서 '증거가 있는 숫자'를 밝히면 된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역사부정 3종세트'. 우익세력의 주장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된 데 이어, '하버드 대학'과 '국제학술지'라는 권위를 차용한 법경제학자의 논문으로 왜곡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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