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역사부정 실체]⑦ 日 역사부정주의자가 ‘미국’으로 달려간 이유

입력 2021.04.14 (06:01) 수정 2021.04.14 (06:1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 공개 증언 이후 국제사회는 30년 간의 추적 끝에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동원한 성노예"라는 정설을 확립했다.

그런데 역사학자도 아닌 하버드대 한 경제법학자가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버드대라는 명망성 때문에 파장도 만만찮다. 물론 램지어 논문은 학계 검증에서 최소한의 증거도, 학문 윤리도 갖추지 못한 글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그런데 '램지어'라는 인물이 왜, 갑자기 등장한 걸까? 혹시 또 다른 시작의 전초가 아닐까?

日 역사부정주의자 "가자! 미국으로! 유엔으로!"

일본 산케이신문은 2014년 '위안부 문제'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를 정리한 책 <역사전>을 발간하며 "위안부 문제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일본 역사부정주의 대부 하타 이쿠히코는 한 걸음 더 나가 2015년 "일본은 주 전쟁터(主戰場)인 미국 본토에서 방어하면서, 반격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 현 상태"라고 진단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주 전쟁터가 '미국'이라는 거다. 왜 미국일까?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2007년 7월 미국 하원에서 결의안 121호가 통과하고, 이를 시작으로 각 국에서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잇따라 채택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미국에 설립된 일본 역사부정주의 단체는 메라 고이치 등이 주도한 <일본재생연구회>다. 메라 고이치는 『맥아더의 저주에서 깨어나라, 일본인!』을 출간한 인물이다.

미국 내 역사부정 활동은 2013년 글랜데일 소녀상 설치를 분기점으로 일본 영사관 등 관(官)이 함께 참여하는 관민일체 운동으로 확대된다.


일본 역사부정주의자들은 '미국'에서 '승리'하지 않고서는 위안부 문제를 끝낼 수 없다고 인식한다. 미국 지도층 인사들에게 '위안부=매춘부'라고 주장하는 영어 번역판 책을 발송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들을 대신해 미국에서 발언해 줄 '스피커'도 필요하다.

램지어는 2018년 일본 훈장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을 수상한다. 일본학에 대한 공헌과 일본 문화 홍보에 공헌했다는 이유다. 역사부정주의 학자들의 집결지 '일본 레이타쿠 대학' 재단 '모럴로지' 초청으로 2019년 특별 강연도 한다. 일본이 램지어를 얼마나 애지중지 대하는 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日 용병 급 '미국 스피커' 한둘이 아니다.

미국엔 일본 극우파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사실상 용병에 가까운 스피커도 많다. 대표적인 몇 명의 주장을 들여다보자.




일본은 '미국 용병 스피커'를 어떻게 키웠나?

위안부 다큐멘터리 '주전장(主戰場)'을 제작한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은 켄트 길버트, 토니 마라노, 제이슨 모건 등은 하나 같이 일본에서 책이나 강연 등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 역사부정주의자들은 미국인 용병의 입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용병들은 돈과 명성을 얻는 구조다. 실제 일본에선 이들이 발간한 '한국인 혐오, 위안부 부정' 관련 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본 역사부정주의자는 무엇을 노리는가?

2017년 유네스코는 한국 등 8개 나라 단체가 신청한 '위안부 기록'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보류한다.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던 소위원회 사전 심사와 정반대 결정이 난 것이다. 막판 결정이 뒤집힌 것은 일본 역사부정주의 세력의 맞불 때문이다.

위안부 진실을 부정해 온 일본의 <위안부의 진실 국민운동> 등 4개 단체가 주도했다. 이들은 일본 국적 위안부 33명의 증언집을 제출하며 "위안부는 민간 대행업자가 모집해 근무지에 보냈고, 많은 보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유네스코는 "양측이 먼저 대화하라"며 등재를 보류한다. 결과적으로는 위안부 진실을 은폐하려는 일본 역사부정주의 세력의 주장이 먹혀든 셈이다. 유엔 인권이사회, 미국 하원 등 국제사회의 잇단 주문, 그리고 소녀상 설치 반대 소송 등에서 연전연패 했던 일본 역사부정주의 세력이 사실상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

2013년 주 전쟁터 미국에 진출한 일본 역사부정주의 세력의 노림수는 이런 것이 아닐까? 그들의 역사 뒤집기, 진실 은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日역사부정 실체]⑦ 日 역사부정주의자가 ‘미국’으로 달려간 이유
    • 입력 2021-04-14 06:01:13
    • 수정2021-04-14 06:14:05
    취재K
1991년 김학순 할머니 공개 증언 이후 국제사회는 30년 간의 추적 끝에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동원한 성노예"라는 정설을 확립했다.

그런데 역사학자도 아닌 하버드대 한 경제법학자가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버드대라는 명망성 때문에 파장도 만만찮다. 물론 램지어 논문은 학계 검증에서 최소한의 증거도, 학문 윤리도 갖추지 못한 글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그런데 '램지어'라는 인물이 왜, 갑자기 등장한 걸까? 혹시 또 다른 시작의 전초가 아닐까?

日 역사부정주의자 "가자! 미국으로! 유엔으로!"

일본 산케이신문은 2014년 '위안부 문제'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를 정리한 책 <역사전>을 발간하며 "위안부 문제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일본 역사부정주의 대부 하타 이쿠히코는 한 걸음 더 나가 2015년 "일본은 주 전쟁터(主戰場)인 미국 본토에서 방어하면서, 반격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 현 상태"라고 진단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주 전쟁터가 '미국'이라는 거다. 왜 미국일까?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2007년 7월 미국 하원에서 결의안 121호가 통과하고, 이를 시작으로 각 국에서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잇따라 채택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미국에 설립된 일본 역사부정주의 단체는 메라 고이치 등이 주도한 <일본재생연구회>다. 메라 고이치는 『맥아더의 저주에서 깨어나라, 일본인!』을 출간한 인물이다.

미국 내 역사부정 활동은 2013년 글랜데일 소녀상 설치를 분기점으로 일본 영사관 등 관(官)이 함께 참여하는 관민일체 운동으로 확대된다.


일본 역사부정주의자들은 '미국'에서 '승리'하지 않고서는 위안부 문제를 끝낼 수 없다고 인식한다. 미국 지도층 인사들에게 '위안부=매춘부'라고 주장하는 영어 번역판 책을 발송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들을 대신해 미국에서 발언해 줄 '스피커'도 필요하다.

램지어는 2018년 일본 훈장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을 수상한다. 일본학에 대한 공헌과 일본 문화 홍보에 공헌했다는 이유다. 역사부정주의 학자들의 집결지 '일본 레이타쿠 대학' 재단 '모럴로지' 초청으로 2019년 특별 강연도 한다. 일본이 램지어를 얼마나 애지중지 대하는 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日 용병 급 '미국 스피커' 한둘이 아니다.

미국엔 일본 극우파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사실상 용병에 가까운 스피커도 많다. 대표적인 몇 명의 주장을 들여다보자.




일본은 '미국 용병 스피커'를 어떻게 키웠나?

위안부 다큐멘터리 '주전장(主戰場)'을 제작한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은 켄트 길버트, 토니 마라노, 제이슨 모건 등은 하나 같이 일본에서 책이나 강연 등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 역사부정주의자들은 미국인 용병의 입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용병들은 돈과 명성을 얻는 구조다. 실제 일본에선 이들이 발간한 '한국인 혐오, 위안부 부정' 관련 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본 역사부정주의자는 무엇을 노리는가?

2017년 유네스코는 한국 등 8개 나라 단체가 신청한 '위안부 기록'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보류한다.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던 소위원회 사전 심사와 정반대 결정이 난 것이다. 막판 결정이 뒤집힌 것은 일본 역사부정주의 세력의 맞불 때문이다.

위안부 진실을 부정해 온 일본의 <위안부의 진실 국민운동> 등 4개 단체가 주도했다. 이들은 일본 국적 위안부 33명의 증언집을 제출하며 "위안부는 민간 대행업자가 모집해 근무지에 보냈고, 많은 보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유네스코는 "양측이 먼저 대화하라"며 등재를 보류한다. 결과적으로는 위안부 진실을 은폐하려는 일본 역사부정주의 세력의 주장이 먹혀든 셈이다. 유엔 인권이사회, 미국 하원 등 국제사회의 잇단 주문, 그리고 소녀상 설치 반대 소송 등에서 연전연패 했던 일본 역사부정주의 세력이 사실상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

2013년 주 전쟁터 미국에 진출한 일본 역사부정주의 세력의 노림수는 이런 것이 아닐까? 그들의 역사 뒤집기, 진실 은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