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7대 조사 대상을 선정하고 본격적인 규명활동에 들어갔습니다.
9시뉴스에서는 각 사건들의 정황과 의혹을 자세히 되짚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먼저 박정희 정부 때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했던 김형욱 실종사건입니다.
조일수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69년까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6년 3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이 보여주듯 정권의 2인자였습니다.
재임 시절 주요 사건은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한일수교 반대시위, 사카린 밀수사건과 동백림사건, 그리고 69년 3선개헌.
중정은 온갖 분야에 개입했고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웠습니다.
⊙이동원(당시 외무장관): 박 대통령이 이런 문제는 제거됐으면 하는데 자기가 지시하기에는 낯이 뜨거운, 얼굴이 뜨거운 문제도 김형욱이는 미리 알아채서 제거해서...
⊙기자: 그러던 그가 69년 10월 전격 해임됐습니다.
⊙김상현(당시 신민당 의원):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이건 꿈이다라고 생각해서 자기 허벅지를 얼마나 양쪽을 뜯었던지 나중에 멍이 들어서 상당기간 동안에 멍이 안 빠졌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기자: 결국 미국 망명을 택한 김형욱은 김대중 납치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박동선에 대한 증언을 하는 등 반유신활동을 벌였습니다.
⊙김형욱(전 중앙정보부장 미 청문회 출석): 10월 유신헌법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이 워싱턴 지역에 통할 만한 사람들은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할 것없이 여기 많이 보냈던 것으로...
⊙기자: 게다가 정권의 온갖 치부를 담은 회고록 집필을 시작하자 박 대통령측은 회유책을 썼습니다.
⊙김경재(김형욱 회고록 저자): 한국 정부와 거래를 해서 처음 50만부를 받고 나머지 100만부를 받기 위해서 파리를 간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자: 하지만 79년 10월 파리에서 김형욱은 실종됩니다.
국내에서는 돈을 노린 현지 폭력배 살해설이 많았지만 현지에서 떠돌던 얘기는 달랐고 이것이 오작교작전으로 불리는 한국 정부의 납치 살해설입니다.
⊙방준모(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 공군 대위의 김 모라는 사람이 두 손으로 결박시킨 김형욱 씨를 직접 권총을 이마에 대고 발사해서 죽였다는 증언을 받았으며...
⊙기자: 청와대 지하실에서 살해됐다는 설과 파리에서 청부살해당했다는 설도 나왔고 2인자 자리를 노린 당시 실력자들의 충성경쟁이 배경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최대 의혹은 김형욱의 실종에 당시 정권이 개입했는지, 개입했다면 누가 지시했고 박 대통령은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김형욱 중정부장 실종 20여 일 만에 박정희 대통령은 또 다른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에 생을 마감합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밝혀지면 박정희 정부하에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과 그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수단이었던 중앙정보부의 두 수장, 나아가 결국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권력 내부의 상황이 단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KBS뉴스 조일수입니다.
9시뉴스에서는 각 사건들의 정황과 의혹을 자세히 되짚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먼저 박정희 정부 때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했던 김형욱 실종사건입니다.
조일수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69년까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6년 3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이 보여주듯 정권의 2인자였습니다.
재임 시절 주요 사건은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한일수교 반대시위, 사카린 밀수사건과 동백림사건, 그리고 69년 3선개헌.
중정은 온갖 분야에 개입했고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웠습니다.
⊙이동원(당시 외무장관): 박 대통령이 이런 문제는 제거됐으면 하는데 자기가 지시하기에는 낯이 뜨거운, 얼굴이 뜨거운 문제도 김형욱이는 미리 알아채서 제거해서...
⊙기자: 그러던 그가 69년 10월 전격 해임됐습니다.
⊙김상현(당시 신민당 의원):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이건 꿈이다라고 생각해서 자기 허벅지를 얼마나 양쪽을 뜯었던지 나중에 멍이 들어서 상당기간 동안에 멍이 안 빠졌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기자: 결국 미국 망명을 택한 김형욱은 김대중 납치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박동선에 대한 증언을 하는 등 반유신활동을 벌였습니다.
⊙김형욱(전 중앙정보부장 미 청문회 출석): 10월 유신헌법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이 워싱턴 지역에 통할 만한 사람들은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할 것없이 여기 많이 보냈던 것으로...
⊙기자: 게다가 정권의 온갖 치부를 담은 회고록 집필을 시작하자 박 대통령측은 회유책을 썼습니다.
⊙김경재(김형욱 회고록 저자): 한국 정부와 거래를 해서 처음 50만부를 받고 나머지 100만부를 받기 위해서 파리를 간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자: 하지만 79년 10월 파리에서 김형욱은 실종됩니다.
국내에서는 돈을 노린 현지 폭력배 살해설이 많았지만 현지에서 떠돌던 얘기는 달랐고 이것이 오작교작전으로 불리는 한국 정부의 납치 살해설입니다.
⊙방준모(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 공군 대위의 김 모라는 사람이 두 손으로 결박시킨 김형욱 씨를 직접 권총을 이마에 대고 발사해서 죽였다는 증언을 받았으며...
⊙기자: 청와대 지하실에서 살해됐다는 설과 파리에서 청부살해당했다는 설도 나왔고 2인자 자리를 노린 당시 실력자들의 충성경쟁이 배경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최대 의혹은 김형욱의 실종에 당시 정권이 개입했는지, 개입했다면 누가 지시했고 박 대통령은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김형욱 중정부장 실종 20여 일 만에 박정희 대통령은 또 다른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에 생을 마감합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밝혀지면 박정희 정부하에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과 그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수단이었던 중앙정보부의 두 수장, 나아가 결국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권력 내부의 상황이 단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KBS뉴스 조일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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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욱 실종 사건
-
- 입력 2005-02-04 21:15:46
- 수정2018-08-29 15:00:00

⊙앵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7대 조사 대상을 선정하고 본격적인 규명활동에 들어갔습니다.
9시뉴스에서는 각 사건들의 정황과 의혹을 자세히 되짚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먼저 박정희 정부 때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했던 김형욱 실종사건입니다.
조일수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69년까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6년 3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이 보여주듯 정권의 2인자였습니다.
재임 시절 주요 사건은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한일수교 반대시위, 사카린 밀수사건과 동백림사건, 그리고 69년 3선개헌.
중정은 온갖 분야에 개입했고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웠습니다.
⊙이동원(당시 외무장관): 박 대통령이 이런 문제는 제거됐으면 하는데 자기가 지시하기에는 낯이 뜨거운, 얼굴이 뜨거운 문제도 김형욱이는 미리 알아채서 제거해서...
⊙기자: 그러던 그가 69년 10월 전격 해임됐습니다.
⊙김상현(당시 신민당 의원):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이건 꿈이다라고 생각해서 자기 허벅지를 얼마나 양쪽을 뜯었던지 나중에 멍이 들어서 상당기간 동안에 멍이 안 빠졌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기자: 결국 미국 망명을 택한 김형욱은 김대중 납치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박동선에 대한 증언을 하는 등 반유신활동을 벌였습니다.
⊙김형욱(전 중앙정보부장 미 청문회 출석): 10월 유신헌법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이 워싱턴 지역에 통할 만한 사람들은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할 것없이 여기 많이 보냈던 것으로...
⊙기자: 게다가 정권의 온갖 치부를 담은 회고록 집필을 시작하자 박 대통령측은 회유책을 썼습니다.
⊙김경재(김형욱 회고록 저자): 한국 정부와 거래를 해서 처음 50만부를 받고 나머지 100만부를 받기 위해서 파리를 간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자: 하지만 79년 10월 파리에서 김형욱은 실종됩니다.
국내에서는 돈을 노린 현지 폭력배 살해설이 많았지만 현지에서 떠돌던 얘기는 달랐고 이것이 오작교작전으로 불리는 한국 정부의 납치 살해설입니다.
⊙방준모(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 공군 대위의 김 모라는 사람이 두 손으로 결박시킨 김형욱 씨를 직접 권총을 이마에 대고 발사해서 죽였다는 증언을 받았으며...
⊙기자: 청와대 지하실에서 살해됐다는 설과 파리에서 청부살해당했다는 설도 나왔고 2인자 자리를 노린 당시 실력자들의 충성경쟁이 배경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최대 의혹은 김형욱의 실종에 당시 정권이 개입했는지, 개입했다면 누가 지시했고 박 대통령은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김형욱 중정부장 실종 20여 일 만에 박정희 대통령은 또 다른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에 생을 마감합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밝혀지면 박정희 정부하에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과 그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수단이었던 중앙정보부의 두 수장, 나아가 결국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권력 내부의 상황이 단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KBS뉴스 조일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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