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조사할 7대 의혹사건, 오늘은 30년이 넘도록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살펴봅니다.
박전식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73년 8월 김대중 당시 야당 지도자가 일본 도쿄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됩니다.
10달 전 국내에서 선포된 유신체제에 반발해 귀국을 거부한 채 한민통 결성 준비 등 반 독재활동을 활발히 벌이던 터였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용금호라는 배편으로 국내로 끌려온 뒤 동교동 자택 부근에서 닷새만에 상처 투성이로 발견됩니다.
⊙김대중(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 그야말로 죽음의 길에서 살아왔고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자: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는 반공청년단의 소행일 뿐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며 함구했습니다.
오히려 일본측이 사건현장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이었던 김동운 1등 서기관의 지문을 확보해 관련자 출두를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함으로써 양국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하됐습니다.
이후 막후 절충을 통해 양국 관계는 정상화됐고 80년대 들어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도 납치지시를 간접 시인했습니다.
⊙이후락(전 중앙정보부장): 나로 하여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그러한 궁지에 들어가서 이야기하게 된 것이고 내가 아무런 뜻없이...
⊙기자: 하지만 이 사건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거치는 동안 더 이상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난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으로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정치공작의 본산이었던 중정의 개입사실이 좀더 분명해지기는 했지만 커다란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한승헌(진상규명 시민모임 전 대표): 정부가 제대로 규명할 거 규명하고 공개할 거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피해자가 집권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 우리가 진상규명과 자료 공개를 계속 요구했습니다.
⊙기자: 당시 중정이 왜 이 같은 일을 꾸몄을까.
박 정권에 대한 이후락 부장의 과잉 충성의 산물이라는 설 속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직접 개입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상현(당시 신민당 의원):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위협이고 또 망명정부까지도 만들 수가 있다, 그러니까 김대중이를 제거하는 것이 박 정권을 장기집권, 영구집권할 수가 있다...
⊙기자: 이와 관련해 지난 79년에 작성된 중앙정보부 문건이 98년에 공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작전명을 따라 KT사건 일람표라 불리는 이 문서에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사인과 박정희 대통령 보고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납치에서부터 구출까지 30년이 넘도록 정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이 사건이 이번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에서 베일을 벗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KBS뉴스 박전식입니다.
박전식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73년 8월 김대중 당시 야당 지도자가 일본 도쿄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됩니다.
10달 전 국내에서 선포된 유신체제에 반발해 귀국을 거부한 채 한민통 결성 준비 등 반 독재활동을 활발히 벌이던 터였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용금호라는 배편으로 국내로 끌려온 뒤 동교동 자택 부근에서 닷새만에 상처 투성이로 발견됩니다.
⊙김대중(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 그야말로 죽음의 길에서 살아왔고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자: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는 반공청년단의 소행일 뿐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며 함구했습니다.
오히려 일본측이 사건현장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이었던 김동운 1등 서기관의 지문을 확보해 관련자 출두를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함으로써 양국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하됐습니다.
이후 막후 절충을 통해 양국 관계는 정상화됐고 80년대 들어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도 납치지시를 간접 시인했습니다.
⊙이후락(전 중앙정보부장): 나로 하여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그러한 궁지에 들어가서 이야기하게 된 것이고 내가 아무런 뜻없이...
⊙기자: 하지만 이 사건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거치는 동안 더 이상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난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으로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정치공작의 본산이었던 중정의 개입사실이 좀더 분명해지기는 했지만 커다란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한승헌(진상규명 시민모임 전 대표): 정부가 제대로 규명할 거 규명하고 공개할 거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피해자가 집권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 우리가 진상규명과 자료 공개를 계속 요구했습니다.
⊙기자: 당시 중정이 왜 이 같은 일을 꾸몄을까.
박 정권에 대한 이후락 부장의 과잉 충성의 산물이라는 설 속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직접 개입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상현(당시 신민당 의원):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위협이고 또 망명정부까지도 만들 수가 있다, 그러니까 김대중이를 제거하는 것이 박 정권을 장기집권, 영구집권할 수가 있다...
⊙기자: 이와 관련해 지난 79년에 작성된 중앙정보부 문건이 98년에 공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작전명을 따라 KT사건 일람표라 불리는 이 문서에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사인과 박정희 대통령 보고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납치에서부터 구출까지 30년이 넘도록 정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이 사건이 이번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에서 베일을 벗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KBS뉴스 박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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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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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5-02-07 21:12:10
- 수정2018-08-29 15:00:00

⊙앵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조사할 7대 의혹사건, 오늘은 30년이 넘도록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살펴봅니다.
박전식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73년 8월 김대중 당시 야당 지도자가 일본 도쿄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됩니다.
10달 전 국내에서 선포된 유신체제에 반발해 귀국을 거부한 채 한민통 결성 준비 등 반 독재활동을 활발히 벌이던 터였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용금호라는 배편으로 국내로 끌려온 뒤 동교동 자택 부근에서 닷새만에 상처 투성이로 발견됩니다.
⊙김대중(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 그야말로 죽음의 길에서 살아왔고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자: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는 반공청년단의 소행일 뿐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며 함구했습니다.
오히려 일본측이 사건현장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이었던 김동운 1등 서기관의 지문을 확보해 관련자 출두를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함으로써 양국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하됐습니다.
이후 막후 절충을 통해 양국 관계는 정상화됐고 80년대 들어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도 납치지시를 간접 시인했습니다.
⊙이후락(전 중앙정보부장): 나로 하여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그러한 궁지에 들어가서 이야기하게 된 것이고 내가 아무런 뜻없이...
⊙기자: 하지만 이 사건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거치는 동안 더 이상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난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으로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정치공작의 본산이었던 중정의 개입사실이 좀더 분명해지기는 했지만 커다란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한승헌(진상규명 시민모임 전 대표): 정부가 제대로 규명할 거 규명하고 공개할 거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피해자가 집권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 우리가 진상규명과 자료 공개를 계속 요구했습니다.
⊙기자: 당시 중정이 왜 이 같은 일을 꾸몄을까.
박 정권에 대한 이후락 부장의 과잉 충성의 산물이라는 설 속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직접 개입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상현(당시 신민당 의원):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위협이고 또 망명정부까지도 만들 수가 있다, 그러니까 김대중이를 제거하는 것이 박 정권을 장기집권, 영구집권할 수가 있다...
⊙기자: 이와 관련해 지난 79년에 작성된 중앙정보부 문건이 98년에 공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작전명을 따라 KT사건 일람표라 불리는 이 문서에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사인과 박정희 대통령 보고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납치에서부터 구출까지 30년이 넘도록 정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이 사건이 이번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에서 베일을 벗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KBS뉴스 박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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