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 ‘차근차근’ 빅리그 꿈 이루다

입력 2006.07.12 (13:15)

수정 2006.07.12 (23:11)

[인터넷 독점]

2000년 7월. 한국의 젊은 축구 선수 한 명이 낯선 벨기에 리그에 서 자신의 프로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유럽 선수 못지 않는 탄탄한 체격과 왕성한 체력, 필요한 순간 터져 나오는 크로스와 골 결정력을 선보여 기대를 모은 유망주 설기현은 로열 앤트워프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6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설기현은 본인이 그토록 열망했던 ‘축구 종가’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게 됐습니다.
올시즌 창단 후 135년만에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레딩FC는 지난 7일 홈페이지를 통해 “ 1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울버햄프턴의 설기현을 영입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레딩FC와 원칙적인 연봉 협상을 마무리한 설기현은 12일 전 소속팀 울버햄프턴 등 3자간에 이적 조건을 놓고 최종 협상을 벌여 합의해 도달했습니다.
앞서 설기현은 10일 실시된 구단 메디컬테스트를 통과해 홈구장인 마데스키 스타디움에서 레딩 동료들과 첫 훈련을 실시한 바 있습니다.
이로써 레딩FC의 프리미어리그 첫 도전에 설기현이 함께 가세하게 됐습니다.
또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토트넘 홋스퍼)에 이어 한국인 3호 프리미어리그가 되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로열 앤트워프를 시작으로 벨기에 명문 안더레흐트, 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 울버햄프턴을 거쳐 설기현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유럽의 3대 빅리그’프리미어리그 그라운드를 밟게 된 것입니다.
결코 짧지 않은 6년여의 시간동안 묵묵히 자신의 꿈을 키워, 마침내 세계 최고 수준의 무대에 도달한 설기현.
가슴 설레는 새출발을 앞둔 설기현이 대표팀과 벨기에 리그, 울버햄프턴에서 활약했던 순간을 [인터넷 독점]에 담았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한국-이탈리아 경기에서 한국의 설기현이 이탈리아 선수를 따돌리고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고 있다.[사진 / 연합뉴스]

■ 말그대로 차근차근 빅리그 입성

설기현은 레딩FC와 협상을 위해 지난 9일 영국으로 출국하기 전“설레임과 두려움이 반반씩 있다” 며 “쉽지 않겠지만 열심히 뛰어서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주전 경쟁에서 이기겠다" 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동안 줄곧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꿈이라고 밝혀왔던 설기현이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특유의 담담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설기현은 화려한 조명보다는 그만의 뚝심과 소신을 앞세워 결코 쉽지 않았을 유럽 무대에서 7년 간 변함없는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벨기에리그 안더레흐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설기현의 모습.[사진 / 연합뉴스]

국내에서 비슷한 연배인 이동국, 김은중이 천재급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차세대 공격수’로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데 비해 설기현은 상대적으로 체격 조건과 돌파력이 준수한 2인자 정도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비록 타고난 재능면에서 앞서 언급한 두 선수에게 뒤떨어질지 모르지만 설기현만이 보유한 경쟁력은 2000년 7월 벨기에 리그 로열 앤트워프 입단 이후 본격적으로 빛을 발합니다.
대한축구협회가 2002년 한일월드컵을 대비해 추진했던 축구 유망주 해외진출 계획에 따라 유럽에 진출한 설기현은 첫 시즌에 25경기, 10골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보냈습니다.
1년만에 리그 우승팀 안더레흐트로 이적한 설기현은 본격적으로 성공시대를 열었습니다.
안더레흐트 데뷔전이었던 슈퍼컵(2001년 8월)에서 12분 만에 해트트릭을 성공시키며 충격을 던졌던 설기현은 이후 첫 시즌 3골, 다음 시즌 12골을 터트리며 팀의 중심 공격수로 착실하게 성장했습니다.
2001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라운드 원정경기에서는 할름슈타트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 한국 선수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출전과 득점을 동시에 신고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설기현은 2003-2004 시즌 후 계약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몇몇 프리미어리그 구단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전초 단계로 챔피언십리그(2부리그 격) 울버햄프턴으로 이적해 일단 자신의 꿈에 한발 더 다가섰습니다.
설기현은 울버햄프턴 소속으로 2시즌 동안 57경기, 10골을 기록했고 마침내 레딩FC와 계약을 성사시키며 그토록 원하던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 레딩FC의 선택, 설기현 기회 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달성이후 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 무대를 밟았지만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한국의 4강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 리그 PSV 에인트호벤으로 건너간 박지성과 이영표가 실력을 인정받아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하는 성공기를 썼고 이을용(트라브존스포르), 차두리(마인츠) 등이 소속팀에서 어느정도 입지를 다진 반면 송종국(페예노르트), 김남일(페예노르트, 엑셀시오르 임대), 이천수(레알 소시에다드) 등은 적응 실패로 몇 시즌을 못 버틴 채 국내로 복귀했습니다.
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2부) 울버햄프턴 소속으로 골을 넣고 환호하는 설기현의 모습.[사진 / 연합뉴스]

유럽리그에서의 성공은 본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현지 적응과 감독, 부상 등 변수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경우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준 히딩크 감독의 존재가 자신있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지만 설기현은 말그대로 본인의 땀과 노력으로 한 단계씩 올라서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희망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인기와 유명세를 얻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지난 시즌 리그 전통 강호로 재도약에 성공한 토트넘 홋스퍼에 비교해 볼때 창단이후 하위리그를 맴돌다 135년만에 1부리그에 올라선 레딩FC는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단의 명성과 단순히 선수간의 이적료 비교를 떠나서 중요한 것은 레딩FC가 설기현을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레딩FC는 설기현과 계약이후 수비수 3-4명을 추가로 영입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실적으로 레딩FC의 올시즌 목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지난 시즌 승격이후 곧바로 중위권에 자리잡은 위건의 돌풍은 레딩FC가 꿈꿔볼만한 목표지만 일단 초반 몇 경기에서 얼마나 승점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리그 잔류의 운명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기현과 마찬가지로 레딩FC도 프리미어리그는 첫 경험입니다. 야심찬 첫 시즌을 준비하며 공격 자원으로 설기현을 영입한 레딩FC의 선택은 설기현의 활약에 따라 주전은 물론 팀의 중심 선수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설기현은 비교적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레딩FC의 기존 공격- 미드필더진과 주전 경쟁을 펼치게 됩니다.
간판 공격수인 데이브 키슨(80년생 / 22골)을 비롯해 아일랜드 청소년 대표 출신 유망주 케빈 도일(83년생 / 18골), 독일월드컵에 미국 대표로 출전한 바비 컨베이(83년생), 아스널 유소년·잉글랜드 청소년 대표(21세 이하) 경력을 자랑하는 스티브 시웰(82년생) 등이 설기현이 넘어서야 할 존재들입니다.
설기현은 좌·우 측면 공격수는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독일월드컵 G조 예선, 프랑스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측면 돌파에 이은 날카로운 크로스로 박지성의 동점골을 견인했던 순간에서 볼 수 있듯 돌파력과 크로스,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이 더 한층 향상됐습니다.
무엇보다 두 번의 월드컵과 다양한 리그·클럽 경력에서 쌓인 경험은 가장 돋보이는 설기현의 강점입니다.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레딩FC에 설기현의 노련함이 더해진다면 분명 전력 상승의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합니다.

■ 설기현 프로필
- 79년 1월 8일생, 184cm / 78 Kg
- 성덕초→주문진중→강릉상고→광운대
- 부인 윤미씨 사이에 1남(인웅) 1녀(예진)
- 98년 아시아청소년대표, 99년 세계청소년대표
- 국가대표 데뷔 : 2000년 1월23일 뉴질랜드전
-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 2006 독일월드컵 대표
- 로열 앤트워프(2001.7 / 벨기에)→안더레흐트(2001.7 / 벨기에)→울버햄프턴(2004.8 / 잉글랜드 챔피언십)→레딩FC(2006.7 / 프리미어리그)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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