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독도 표기 7일 만의 극적 반전 뒷 얘기

입력 2008.07.31 (14:31)

수정 2008.07.31 (19:15)

미국 연방 정부 기관인 미 지명위원회가 '한국령' 독도를 주인없는 섬인 '주권 미지정지역'으로 변경한 지 닷새째인 28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실에 이태식 주미 대사와 제임스 제프리 부보좌관이 마주앉았다.
독도 표기 변경 사실을 까맣게 모르다 언론 보도로 뒤통수를 맞은 이 대사가 다급하게 면담을 신청한건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하지만 제프리 부보좌관이 담당자라며 이 대사를 맞았다.
면담 분위기는 사뭇 비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이 대사는 물론 외교안보팀 전반에 대한 문책 여론이 빗발치던 터였다. 미국 정부 기류도 물건너간 문제라는 쪽이었다. 국무부 부대변인은 독도 표기 변경은 미국 정부 정책과는 무관하며 기술적 문제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미 지명위원회도 표기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끝난 일을 되돌렸다가는 문제가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였다.
하지만 이렇게 불가능할 것 같던 독도 표기의 원상회복을 이끌어낸 극적 반전의 일차적 계기는 바로 제프리 부보좌관과의 면담이었다.
이 대사는 제프리 부보좌관에게 독도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분명한 한국 영토임을 길게 설명했다.
'수십년을 같이 산 내 아내를 다른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자기 첩이라고 우긴다면 용납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이렇게 민감한 한일간의 문제를 왜 미국이 떠맡으려 나서느냐'고 경고했다.
묵묵히 이 대사의 설명을 듣기만 하던 제프리 부보좌관은 '나도 한국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부시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이 대사는 곧이어 국무부로 존 네그로폰테 부장관을 찾아가 똑같은 이유를 들어 독도 표기의 원상회복을 호소했다.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독도문제가 지닌 정치외교적 민감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면서 "특히 이번 조치가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했던 점을 인정하며, 어떤 조치가 가능한지 파악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네그로폰테는 실제 이 대사와 면담후 동아태국과 정보조사국, 법률사무실 등에 독도표기 변경에 대한 긴급 검토를 지시했다.
다음날인 29일(화)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연내 비준을 위한 정부.민간합동대책회의에 참석한 이 대사는 잠시 회의장에 들른 부시 대통령을 따라잡았다.
'의전상 결례인줄 알지만 화급한 문제여서 보고를 드려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부시는 뜻밖에도 "지리적인 문제지요.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선선히 응답했다. "라이스 장관에게 문제를 검토하도록 지시했으니 국무부와 잘 협의하라"는 권고까지 곁들였다. 제프리를 통한 설득이 부시에게 그대로 전달됐고 독도표기 변경문제가 반전의 변곡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오후 이뤄진 힐 차관보와의 면담에는 4-5명의 지리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우리측은 전날도 미국 지리전문가들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국무부측이 거부한 상태였다. 하지만 하루만에 지리전문가들이 나와 독도 표기 문제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였고 러시아령으로 명시된 쿠릴열도와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전문가들도 우리측 지적의 타당성을 인정했다.
토론을 주재한 힐 차관보는 '최고위층이 관심을 갖고 문제를 협의 중'이라며 '내일(30일)쯤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원상회복 결론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또다른 대목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30일 오후 1시에 시작된 연합뉴스 등 아시아 언론들과의 공동회견에서 독도 표기의 원상회복 결정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부시는 "데이터베이스를 1주일전 상태로 원상회복 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부시의 지시는 잠시 후 제프리 부보좌관을 통해 이태식 대사에게 통보됐고 이 대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공식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이 보고를 받은 지 만 이틀도 안돼 독도표기의 원상회복을 전격 지시한 것은 한국측 설명에 공감한 측면도 있지만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한국 방문을 의식한 측면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 사회가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로 홍역을 치른 가운데 미국의 독도 표기 변경으로 또 다시 격분에 휩싸인다면 자신의 방한 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은 물론 한미관계와 한미일관계 모두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부시는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가 미국 쇠고기 문제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마음의 빚'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부시의 독도 표기 원상회복 결단은 이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감내하면서도 미국 쇠고기 수입 약속을 번복하지 않은데 대한 보답의 성격도 있다고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분석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