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BA-KBA 갈등 ‘복싱 선수들만 피해’

입력 2009.06.12 (09:27)

수정 2009.06.12 (16:21)

국제복싱연맹(AIBA)과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KBA) 간 갈등에 애꿎은 한국 아마추어 복싱 선수들만 큰 피해를 보고 있다.
AIBA는 지난달 28일 KBA 소속 복싱 선수들과 임원들의 국제 복싱대회 출전을 금지한 데 이어 지난 10일 세계 각국 복싱연맹에 공문을 보내 KBA와 스포츠 교류를 할 경우 5천~1만 스위스프랑(약 580만원~1천16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AIBA가 사실상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고립시킬 수도 있는 사상 유례없는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한 배경에는 AIBA-KBA 간 갈등이 짙게 깔려 있지만 AIBA의 횡포에 가까운 '선 징계 후 조사', KBA의 타개책 마련 의지 부족 등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복싱계 내부에서는 일단 AIBA와 KBA 간 알력을 둘러싼 힘겨루기 양상이 사실상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크다.
징계를 내릴 때 '선 조사 후 징계'란 일반적인 원칙에서 벗어나 AIBA가 현지 조사도 벌이지 않은 채 중징계를 내린 점도 석연치 않지만 AIBA-KBA 간 알력 다툼이 한국 복싱 선수에 대한 피해로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유재준(62) KBA 회장 등 현 집행부가 지난 2006년 AIBA 회장 선거 때 우칭궈(63.대만) 현 회장을 지지하지 않고 반대파에 서면서 KBA가 중징계를 받게 됐다는 게 국내 복싱인들의 관측이다.
당시 KBA 전무였던 유재준 회장은 우칭궈와 경선을 벌였던 초드리(파키스탄)를 지지했는데 유 전무가 올해 새 회장으로 선출되자 우칭궈가 이후 한국을 적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즉 유 회장과 AIBA의 껄끄러운 관계가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재선을 노리는 우칭궈가 내년 10월~12월 치러질 AIBA 회장 선거를 대비해 자신을 지지했던 전임 KBA 집행부를 사전에 심어놓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 해도 KBA는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복싱 선수들이 피해를 보게 만들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1월 유 회장이 선출돼 새 집행부가 꾸려지면서 자리를 잃게 된 전임 집행부 임원이 지난 4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국내 선발전에 출전했던 선수의 계체량에 문제가 있다고 AIBA에 먼저 진정을 하는 등 KBA 내부 갈등이 사건을 키웠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가 파악한 결과 특정 선수의 계체량에서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미 AIBA가 징계를 내린 뒤였다.
게다가 AIBA의 제재가 내려진 뒤에도 KBA는 적정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AIBA 조치에 반발하고 해명만 할 뿐 정작 사태 해결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또 문제가 발생한 뒤 KBA는 적극적인 대화와 중재 등으로 곧바로 해결책 마련에 주력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AIBA가 KBA를 상대로 강력한 제재를 내린 피상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KBA가 지난달 아르메니아에서 열린 세계주니어복싱선수권대회에 자격이 없는 팀 닥터를 파견하고 지난 4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던 선수의 계체량에 문제가 있었다는 등 규정을 위반했다는 게 그 이유다.
이에 대해 KBA는 "AIBA가 지적한 문제의 선수의 계체량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서 "AIBA가 생각하는 팀 닥터와 한국 팀에서 동행한 닥터(물리치료 및 스포츠마사지사)는 전혀 다른 의미의 닥터인데 양측의 견해차에서 무자격 닥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특히 관행상 정식 메디컬 닥터가 아닌 통상 닥터로 불리는 물리치료사 또는 스포츠마사지사를 지난달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파견한 점을 문제 삼아 AIBA가 한국 선수들의 출전까지 금지한 것은 부당한 처사라는 불만까지 쏟아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도 "일반적으로 징계를 줄 때는 연맹 임원을 대상으로 삼지만 선수에게까지 징계를 내린 것은 이례적인데다 과도한 정도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싱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KBA가 전임 집행부가 "유 회장이 불법 선거를 통해 선출됐다"고 주장하고 AIBA에도 진정하는 등 내부 갈등이 폭발할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게 핵심적인 문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 회장은 "검찰 수사도 받았지만 선거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고 대한체육회도 "불법 선거는 없었다"고 밝혔다.
어쨌든 KBA가 AIBA와 대립각을 세운 채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결국 한국 복싱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돌아가게 됐다.
KBA는 지난 5월 국가대표를 선발하고도 현재 중국 주하이에서 열리는 아시아복싱선수권대회에 선수는 물론 임원을 단 1명도 파견하지 못했다.
KBA가 이른 시일 내 AIBA와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한국은 8월 말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릴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올림픽, 아시안게임 참가도 불가능하다.
뒤늦게 KBA가 대화 창구를 찾고 있고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중재에 나서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희망의 여지는 남아 있다.
또 AIBA가 열흘 내로 한국에 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이어서 이번 달 내로 어느 정도 진상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AIBA-KBA 간 갈등, 또 KBA 내부간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AIBA의 한국 아마 복싱에 대한 불신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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