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퀸의 힘든 숙제 ‘즐기는 스케이팅’

입력 2010.03.30 (07:12)

수정 2010.03.3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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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선수권대회는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치르겠습니다"(김연아)



"김연아가 경기를 즐기기를 바랍니다"(브라이언 오서 코치)



’피겨퀸’ 김연아(20.고려대)가 20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초반 부진을 딛고 값진 은메달을 따내며 한 시즌을 마감했다.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하나같이 ’즐기는 스케이팅’을 내세웠다.



이미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높은 부담감을 딛고 금메달을 목에 건 만큼 우승에 집착하지 않고 편안하게 경기를 즐기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경기를 즐긴다는 것은 실제로는 쉽게 와 닿지 않는 개념이다.



김연아 역시 올림픽이 끝나고 찾아온 허탈감에 시달렸고, "쇼트프로그램이 끝나고 기권할 생각까지 했다"며 여전히 부담을 느꼈다고 인정했다.



이는 그만큼 피겨 스케이터가 경기를 즐기기는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선배 스케이터들 "즐기는 스케이팅은 가능"



1984년과 1988년 사상 두 번째로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2연패를 달성했던 ’피겨 여제’ 카타리나 비트(독일)는 최근 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던 순간의 중압감조차도 즐거웠다"고 말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입장이기에 가능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선배 스케이터들은 한결같이 "즐기는 스케이팅은 가능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팀 선수단장으로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사공경원 대한빙상경기연맹 피겨 경기이사는 ’자신감’의 차원에서 즐기는 스케이팅을 정의했다.



"고된 훈련의 과정까지 즐겁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훈련을 견뎌낸 스케이터라면 그렇게 쌓은 실력을 펼쳐내는 경기가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설명이다.



사공 이사는 "관객이 많을수록 더욱 좋은 연기를 펼치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좌중을 장악하는 선수들이 있다"면서 "그런 선수들이라면 중압감이 느껴지는 큰 무대에서도 관객과 호흡하고 즐겁게 연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는 수많은 사람 한가운데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선다. 이 경기장 전체가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런 느낌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역 시절 ’미스터 트리플 악셀’로 이름을 떨쳤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감사’라는 키워드를 내놓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어려운 질문"이라고 운을 뗀 오서 코치는 "경기를 즐긴다는 건 지금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오서 코치는 "그렇기에 중압감을 느끼고 경기에 이기려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를 즐기려면 결과에 초연해야 할 것 같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집중한다면 승리욕과 즐기는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서 코치는 "선수 시절 나는 늘 스케이트를 탄다는 것에 감사했고, 그렇기에 항상 즐길 수 있었다"며 미소지었다.



◇김연아 "아직은 즐기는 과정"



그렇다면 김연아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진심으로 즐겼을까. 대답은 "아니오"였다.



김연아는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며 아쉬운 미소를 지었다.



"은메달이나 동메달도 상관없고 메달만 따면 된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막상 경기를 치르려니 즐기기는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는 것.



김연아는 "경기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대회에 출전한 것 자체를 즐겁게 생각하고 부담없이 하려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쇼트프로그램에서 결과가 좋지 않다 보니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전혀 즐기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오서 코치는 지난 4년을 돌아보며 "첫 2년 동안 김연아에게 훈련은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 김연아는 고된 훈련을 즐겼다. 그 과정에서 다른 스케이터들과 친해지며 사회적으로도 성장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김연아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알 수 없지만, 김연아는 "계속 경기에 나가거나 공연을 위주로 다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어떤 길이든, 스케이팅을 계속 하게 되는 만큼, ’스케이팅을 즐긴다’는 것은 김연아에게 앞으로도 계속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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