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⑪전월세 오딧세이아…지상의 방 한 칸을 찾아서

입력 2016.07.05 (14:54) 수정 2016.07.0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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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천지에 없는 지상의 방 단 한 칸


더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으리으리한 저택도 아니고, 서민용이라고는 하지만 방 두세 개 있고 아담한 거실 있는 아파트도 아닙니다. 그저 아내와 자식 함께 몸을 누이고 한데 엉켜서라도 잠을 청할 수 있는 지상의 방 단 한 칸입니다. 그 한 칸이 없어 시인인 가장은 잠 못 듭니다. 며칠 후면 방을 비워주어야 하는데, 벌어놓은 돈이 없으니 옮겨갈 단 한 칸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비를 믿고 천진하게 잠 든 아이들, 남편의 근심을 알지만 힘을 보탤 길이 없는 아내는 괜히 몸이 오그라들어 쪽잠을 잡니다.



가뜩이나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데 창밖에는 타들어가는 가장의 가슴에 불을 지피려 하는지 찬바람이 씽씽 불어댑니다. 시인은 이제 나이 지긋하신 분이니 아마도 1970년대나 그 이전의 풍경이겠지만, 지금도 이삿짐을 꾸리고 식솔들을 데리고 전세와 월세를 전전해야 하는 가장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서 빨리 원고지 한 칸이라도 더 메워 돈을 벌어야 이 지긋지긋한 셋방살이를 벗어날텐데, 원고지 한 칸만한 작은 방 한 칸 얻는 일은 힘겹기만 하고 원고지 한 칸이 건너지 못할 운명의 강으로 다가옵니다.

흔히 인간의 생존조건을 말할 때 '의식주'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순서가 '주의식'이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농업의 발달로 생산량이 늘면서 먹고 사는 문제는 많이 좋아졌고, 입을 옷도 넘쳐나는 게 요즘이고 보면, 현대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는 두 발 뻗고 잠잘 수 있는 집 마련입니다. 수입이 변변치 않는 문인이나 예술인들은 더욱 뼈저리게 이 집없는 설움, 정처없이 떠돌아야 하는 유목민의 애환을 절절하게 느끼나 봅니다.



이 시는 슬프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이 시의 화자는 전세방을 얻으려 여러 군데를 전전했지만 허탕을 친 모양입니다. 빚을 내서라도 변변한 창문 하나 없는 지하 방 한 칸이라도 얻어보려 했지만 허사였던 모양입니다. 시인은 아마도 이런 방에 들어가는 것이 관 속에 들어가는 듯한 비애를 느꼈나 봅니다. 세상에는 불이 켜지고 불이 꺼지는데 지하의 방은 점자처럼 스위치를 더듬어 밤이 오고 가는 것을 느껴야 하니 그곳은 관속과 다름없는 쓸쓸한 곳일 밖에요.

전월세 얻느라 결혼도 포기하는 젊은이들

그나마 전세는 좀 나은 편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도 초저금리 시대로 들어가면서 전세라는 제도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 신문사의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의 경우 월세의 비율이 38%나 됐습니다. 2012년까지만 해도 15.7% 수준이었으니까 불과 4년 만에 전세의 상당 부분이 월세로 전환한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전에는 집주인들이 목돈을 받아서 돈놀이도 하고, 은행에 넣어놓아도 제법 짭짤한 이자를 받으니 전세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금리가 1%대까지 내려온 상황에서는 더 이상 전세를 받아봐야 돈 굴리기도 마땅찮고 이자 소득은 쥐꼬리만해졌습니다. 전세금을 1억 받았다고 할 때, 10년 전만 해도 월 5-60만 원 정도 이자수입을 얻었지만, 요즘은 월 15만원 정도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전국적으로도 월세 비중이 2012년 22.5%에서 올해는 39.1%로 급증했습니다. 전세 가구는 약 350만 여 가구, 월세 가구는 무려 450여만 가구나 됩니다. 전월세 비율이 역전된 셈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전월세 비중이 더 높아, 이삿짐을 싸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올 6월 서울시의 조사결과를 보면, 서울에서 전월세를 사는 비율은 무려 59%, 자기 집에 사는 비율은 41%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젊은 30대의 경우는 무려 88%가 전세를 살거나 월세를 살고 있습니다.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은 10명에 한 명꼴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집값은 너무 올라 살 엄두를 낼 수 없고, 전세도 줄어들고 월세 비중은 자꾸 높아지니 돈 벌어 집세 내기 바쁘고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부동산 거래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집값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아파트 값은 평균 15.2% 올랐고, 이명박 정부 때는 6.8%,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올 1월까지 8.2%나 올랐습니다.



지난 5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서울시 인구가 1,00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는 기사였습니다. 얼핏 보면 과잉 인구로 몸살을 앓는 서울에서 지역으로 인구가 분산되는 바람직한 현상처럼 보입니다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역시 집 문제였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는 서울의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싼 수도권으로 이사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한 인터넷 언론사가 성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0.7%가 전·월세가 올라 이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응답자의 67%는 집 값과 전월세가 올라 경제적으로 빈곤해지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답했습니다. 58.6%는 집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집 문제로 인한 고통은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혹은 자녀를 갖기 꺼려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사는 곳을 달이 제일 먼저 뜬다고 해서 달동네라고 합니다. 시인은 달동네라는 달동네는 다 전전했는데 결국 이 달동네에서도 밀려나고 맙니다. 그가 견뎌 온 세월은 월세 독촉에 떠밀려 온 세월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랑도 잃고 돈 없는 설움만 사랑의 부산물로 남았습니다. 차라리 캄캄한 바다에라도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겠지요. 바다는 더 이상 월세도 전세 보증금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곳이 아닐테니까요

집은 사는(buy)이 아니라 사는(live) 곳



아직도 전월세를 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우리나라는 집이 절대적으로 모자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의 2014년 통계를 보면, 전국의 주택 수는 1,943만 채, 가구 수는 1,877만 호 입니다. 그러니까 집이 오히려 63만 채 더 많습니다. 이른바 주택보급률은 2014년 기준으로 103.5%에 달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집을 두세 채 혹은 수십, 수백 채 가지고 있는 다주택 소유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주택 소유자 가운데 13.6%는 2채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숫자로는 무려 172만 명이나 됩니다. 3채 이상 보유한 사람도 30만 명이 넘습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관 로비 의혹에 연루돼 구속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오피스텔 수백 채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관 로비 의혹에 연루돼 구속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오피스텔 수백 채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거액의 도박을 하다 구속된 기업인을 변호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받았던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온 국민을 분노와 허탈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는 재테크에도 귀재였던지 막대하게 불린 재산으로 오피스텔 수백 채를 샀다고 하니, 방 한 칸이 없어 변두리를 전전하는 전월세입자의 염장을 제대로 지른 셈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걸까요? 지금도 주택 임대차 보호법이나, 전세를 월세로 돌릴 경우 월세를 적정 수준에서 제한하는 이른바 '전월세 전환율 제도'를 두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주택 임대업의 82%가 미등록인 만큼 등록제를 통해 철저하게 세금을 물린다거나, 계약 기간에라도 금리 인하와 같은 변동 요인이 생기면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는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집은 더 이상 차익을 보고 사고 파는 사유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함 삶,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공공재에 가까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을 유지한다면, 집은 생활 목적의 소유만 인정하고 자산 증식 목적의 소유는 엄격하게 제한됩니다.

싱가포르 전경싱가포르 전경


이를테면 국가가 주택을 대부분 사들여서 실생활자에게 임대를 해주는 것이지요. 국토가 워낙 좁아 부동산에 시장원리를 도입할 경우 투기망국이 될 것이 뻔했던 싱가포르의 경우 '환매조건부 분양'제도를 통해 집에 대한 사적 소유를 거의 차단했습니다. 살다가 집을 옮길 경우 그 집은 싱가포르 정부가 다시 사들여 다른 사람에게 분양하는 시스템입니다.

지금도 싱가포르는 80%가 공공임대 주택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국가가 막대한 재정 부담을 져야 하고, 이런 제도가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반발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우리나라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장기 임대주택이나 영구 임대주택을 가능한 한 많이 지어야 합니다.

점점 심각해지는 부의 양극화, 노동소득과 불로소득의 괴리, 매년 사상최대로 늘어가는 천문학적인 가계빚, 봉급은 분명 늘어나는데 쓸 돈은 없는 서민들, 사랑하는 이와 결혼해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살고 싶은 젊은이들의 소박한 꿈을 앗아가는 헬조선..... 이 모든 것의 근저에 망국적 부동산 투기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25%로 내리자, 갈 곳 없는 돈들이 강남 재건축과 재개발 등에 몰리면서 잠시 주춤하던 부동산발 광풍이 다시 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토지 공개념 못지 않게 주택 공개념에 대한 보다 진지한 논의와 구체적인 법적, 제도적 실현을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자연 앞에 우리는 모두 전월세자

그러나 국가가 아무리 공개념 등을 앞세워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모두 똑같이 좋은 집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 박탈을 최대한 해소할 수 있을 뿐, 주거 조건의 절대적 평등을 이뤄내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나요? 제도적으로 주거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노력대로 하되, 좀 눈을 크게 뜨고 하늘과 숲과 강과 바다를 보면서 새로운 눈으로 전월세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직업보다 전월세를 많이 살고, 옥탑방이나 지하실 방을 전전해야 하는 시인들은 이렇게도 발상을 전환해봅니다. 눈물겹지만 그 눈물에서 아름다움과 선함이 묻어납니다.



사실 옥탑방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숨막히는 그 살인적인 환경 때문에 왠만큼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들어갈 엄두를 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옥상의 방을 얻으면 그 넓은 옥상이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이고, 나아가 뻥뚫린 시원한 하늘, 쏟아지는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비가 모두 자신의 소유라고 합니다. 주인도 가져갈 수 없으니 말이지요.

그런가 하면 우리 삶 자체가 자연이라는 절대적인 주인의 집에서 세들어 살다가는 전월세 같은 것이라고 깨달은 시인도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집이나 돈, 권력과 명성이 사실은 잠시 빌리는 것이고, 궁극에는 허망한 것이라는 불교적 사유를 연상케 합니다.



20대 젊은 시인은 자신이 하늘과 공기와 바람 백사장 이 모든 것을 돈 한 푼 안 내고 제 것인양 쓰는 양심불량 세입자라고 유쾌한 고백을 합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좀 정들만하면 느닷없이 이삿짐을 싸야 하고, 눈이 빠지도록 애면글면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잠자리 얻는데 써야 하는 이 고달픈 현실에서 시인들처럼 낭만적인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더러 낭만의 사유 속에 빠져야 합니다. 다행히 월세를 올리지도 않고, 방 빼라고 호통치지도 않는 이 아름다운 산과 바다, 강과 호수, 하늘과 바람, 나무와 새들에게 감사하면서 살아야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가 눈만 돌리면 펄럭이는 저 광란의 분양광고 플래카드를 보면서, 평당 5,000만 원이 넘는 아파트가 수백 대 일의 경쟁이 당첨 경쟁이 붙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시인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는 청맹과니일 리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모순 투성이의 현실 앞에 속절없이 꺾이려는 무릎을 다독여 또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써내려가는 시인의 눈에도 분명 눈물이 괴지 않았을까요? 그 감사한 자연의 풍광도 벌개진 눈 속에서 속절없이 흔들렸겠구요.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⑤ 최악의 종이자 최상의 군주‘돈’
⑥ 짜장면, 검은 면발의 치명적인 유혹
⑦ 비정규직, 그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에
⑧ 라면, B급 먹거리를 향한 A급 사랑
⑨ 자본의 제국, 끝없는 소비로 쌓아올리는 바벨탑
⑩ 커피 공화국, “커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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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⑪전월세 오딧세이아…지상의 방 한 칸을 찾아서
    • 입력 2016-07-05 14:54:39
    • 수정2016-07-05 15:05:27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망망천지에 없는 지상의 방 단 한 칸 더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으리으리한 저택도 아니고, 서민용이라고는 하지만 방 두세 개 있고 아담한 거실 있는 아파트도 아닙니다. 그저 아내와 자식 함께 몸을 누이고 한데 엉켜서라도 잠을 청할 수 있는 지상의 방 단 한 칸입니다. 그 한 칸이 없어 시인인 가장은 잠 못 듭니다. 며칠 후면 방을 비워주어야 하는데, 벌어놓은 돈이 없으니 옮겨갈 단 한 칸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비를 믿고 천진하게 잠 든 아이들, 남편의 근심을 알지만 힘을 보탤 길이 없는 아내는 괜히 몸이 오그라들어 쪽잠을 잡니다. 가뜩이나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데 창밖에는 타들어가는 가장의 가슴에 불을 지피려 하는지 찬바람이 씽씽 불어댑니다. 시인은 이제 나이 지긋하신 분이니 아마도 1970년대나 그 이전의 풍경이겠지만, 지금도 이삿짐을 꾸리고 식솔들을 데리고 전세와 월세를 전전해야 하는 가장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서 빨리 원고지 한 칸이라도 더 메워 돈을 벌어야 이 지긋지긋한 셋방살이를 벗어날텐데, 원고지 한 칸만한 작은 방 한 칸 얻는 일은 힘겹기만 하고 원고지 한 칸이 건너지 못할 운명의 강으로 다가옵니다. 흔히 인간의 생존조건을 말할 때 '의식주'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순서가 '주의식'이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농업의 발달로 생산량이 늘면서 먹고 사는 문제는 많이 좋아졌고, 입을 옷도 넘쳐나는 게 요즘이고 보면, 현대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는 두 발 뻗고 잠잘 수 있는 집 마련입니다. 수입이 변변치 않는 문인이나 예술인들은 더욱 뼈저리게 이 집없는 설움, 정처없이 떠돌아야 하는 유목민의 애환을 절절하게 느끼나 봅니다. 이 시는 슬프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이 시의 화자는 전세방을 얻으려 여러 군데를 전전했지만 허탕을 친 모양입니다. 빚을 내서라도 변변한 창문 하나 없는 지하 방 한 칸이라도 얻어보려 했지만 허사였던 모양입니다. 시인은 아마도 이런 방에 들어가는 것이 관 속에 들어가는 듯한 비애를 느꼈나 봅니다. 세상에는 불이 켜지고 불이 꺼지는데 지하의 방은 점자처럼 스위치를 더듬어 밤이 오고 가는 것을 느껴야 하니 그곳은 관속과 다름없는 쓸쓸한 곳일 밖에요. 전월세 얻느라 결혼도 포기하는 젊은이들 그나마 전세는 좀 나은 편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도 초저금리 시대로 들어가면서 전세라는 제도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 신문사의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의 경우 월세의 비율이 38%나 됐습니다. 2012년까지만 해도 15.7% 수준이었으니까 불과 4년 만에 전세의 상당 부분이 월세로 전환한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전에는 집주인들이 목돈을 받아서 돈놀이도 하고, 은행에 넣어놓아도 제법 짭짤한 이자를 받으니 전세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금리가 1%대까지 내려온 상황에서는 더 이상 전세를 받아봐야 돈 굴리기도 마땅찮고 이자 소득은 쥐꼬리만해졌습니다. 전세금을 1억 받았다고 할 때, 10년 전만 해도 월 5-60만 원 정도 이자수입을 얻었지만, 요즘은 월 15만원 정도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전국적으로도 월세 비중이 2012년 22.5%에서 올해는 39.1%로 급증했습니다. 전세 가구는 약 350만 여 가구, 월세 가구는 무려 450여만 가구나 됩니다. 전월세 비율이 역전된 셈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전월세 비중이 더 높아, 이삿짐을 싸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올 6월 서울시의 조사결과를 보면, 서울에서 전월세를 사는 비율은 무려 59%, 자기 집에 사는 비율은 41%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젊은 30대의 경우는 무려 88%가 전세를 살거나 월세를 살고 있습니다.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은 10명에 한 명꼴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집값은 너무 올라 살 엄두를 낼 수 없고, 전세도 줄어들고 월세 비중은 자꾸 높아지니 돈 벌어 집세 내기 바쁘고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부동산 거래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집값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아파트 값은 평균 15.2% 올랐고, 이명박 정부 때는 6.8%,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올 1월까지 8.2%나 올랐습니다. 지난 5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서울시 인구가 1,00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는 기사였습니다. 얼핏 보면 과잉 인구로 몸살을 앓는 서울에서 지역으로 인구가 분산되는 바람직한 현상처럼 보입니다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역시 집 문제였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는 서울의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싼 수도권으로 이사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한 인터넷 언론사가 성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0.7%가 전·월세가 올라 이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응답자의 67%는 집 값과 전월세가 올라 경제적으로 빈곤해지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답했습니다. 58.6%는 집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집 문제로 인한 고통은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혹은 자녀를 갖기 꺼려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사는 곳을 달이 제일 먼저 뜬다고 해서 달동네라고 합니다. 시인은 달동네라는 달동네는 다 전전했는데 결국 이 달동네에서도 밀려나고 맙니다. 그가 견뎌 온 세월은 월세 독촉에 떠밀려 온 세월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랑도 잃고 돈 없는 설움만 사랑의 부산물로 남았습니다. 차라리 캄캄한 바다에라도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겠지요. 바다는 더 이상 월세도 전세 보증금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곳이 아닐테니까요 집은 사는(buy)이 아니라 사는(live) 곳 아직도 전월세를 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우리나라는 집이 절대적으로 모자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의 2014년 통계를 보면, 전국의 주택 수는 1,943만 채, 가구 수는 1,877만 호 입니다. 그러니까 집이 오히려 63만 채 더 많습니다. 이른바 주택보급률은 2014년 기준으로 103.5%에 달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집을 두세 채 혹은 수십, 수백 채 가지고 있는 다주택 소유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주택 소유자 가운데 13.6%는 2채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숫자로는 무려 172만 명이나 됩니다. 3채 이상 보유한 사람도 30만 명이 넘습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관 로비 의혹에 연루돼 구속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오피스텔 수백 채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거액의 도박을 하다 구속된 기업인을 변호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받았던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온 국민을 분노와 허탈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는 재테크에도 귀재였던지 막대하게 불린 재산으로 오피스텔 수백 채를 샀다고 하니, 방 한 칸이 없어 변두리를 전전하는 전월세입자의 염장을 제대로 지른 셈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걸까요? 지금도 주택 임대차 보호법이나, 전세를 월세로 돌릴 경우 월세를 적정 수준에서 제한하는 이른바 '전월세 전환율 제도'를 두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주택 임대업의 82%가 미등록인 만큼 등록제를 통해 철저하게 세금을 물린다거나, 계약 기간에라도 금리 인하와 같은 변동 요인이 생기면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는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집은 더 이상 차익을 보고 사고 파는 사유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함 삶,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공공재에 가까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을 유지한다면, 집은 생활 목적의 소유만 인정하고 자산 증식 목적의 소유는 엄격하게 제한됩니다. 싱가포르 전경 이를테면 국가가 주택을 대부분 사들여서 실생활자에게 임대를 해주는 것이지요. 국토가 워낙 좁아 부동산에 시장원리를 도입할 경우 투기망국이 될 것이 뻔했던 싱가포르의 경우 '환매조건부 분양'제도를 통해 집에 대한 사적 소유를 거의 차단했습니다. 살다가 집을 옮길 경우 그 집은 싱가포르 정부가 다시 사들여 다른 사람에게 분양하는 시스템입니다. 지금도 싱가포르는 80%가 공공임대 주택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국가가 막대한 재정 부담을 져야 하고, 이런 제도가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반발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우리나라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장기 임대주택이나 영구 임대주택을 가능한 한 많이 지어야 합니다. 점점 심각해지는 부의 양극화, 노동소득과 불로소득의 괴리, 매년 사상최대로 늘어가는 천문학적인 가계빚, 봉급은 분명 늘어나는데 쓸 돈은 없는 서민들, 사랑하는 이와 결혼해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살고 싶은 젊은이들의 소박한 꿈을 앗아가는 헬조선..... 이 모든 것의 근저에 망국적 부동산 투기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25%로 내리자, 갈 곳 없는 돈들이 강남 재건축과 재개발 등에 몰리면서 잠시 주춤하던 부동산발 광풍이 다시 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토지 공개념 못지 않게 주택 공개념에 대한 보다 진지한 논의와 구체적인 법적, 제도적 실현을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자연 앞에 우리는 모두 전월세자 그러나 국가가 아무리 공개념 등을 앞세워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모두 똑같이 좋은 집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 박탈을 최대한 해소할 수 있을 뿐, 주거 조건의 절대적 평등을 이뤄내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나요? 제도적으로 주거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노력대로 하되, 좀 눈을 크게 뜨고 하늘과 숲과 강과 바다를 보면서 새로운 눈으로 전월세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직업보다 전월세를 많이 살고, 옥탑방이나 지하실 방을 전전해야 하는 시인들은 이렇게도 발상을 전환해봅니다. 눈물겹지만 그 눈물에서 아름다움과 선함이 묻어납니다. 사실 옥탑방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숨막히는 그 살인적인 환경 때문에 왠만큼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들어갈 엄두를 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옥상의 방을 얻으면 그 넓은 옥상이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이고, 나아가 뻥뚫린 시원한 하늘, 쏟아지는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비가 모두 자신의 소유라고 합니다. 주인도 가져갈 수 없으니 말이지요. 그런가 하면 우리 삶 자체가 자연이라는 절대적인 주인의 집에서 세들어 살다가는 전월세 같은 것이라고 깨달은 시인도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집이나 돈, 권력과 명성이 사실은 잠시 빌리는 것이고, 궁극에는 허망한 것이라는 불교적 사유를 연상케 합니다. 20대 젊은 시인은 자신이 하늘과 공기와 바람 백사장 이 모든 것을 돈 한 푼 안 내고 제 것인양 쓰는 양심불량 세입자라고 유쾌한 고백을 합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좀 정들만하면 느닷없이 이삿짐을 싸야 하고, 눈이 빠지도록 애면글면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잠자리 얻는데 써야 하는 이 고달픈 현실에서 시인들처럼 낭만적인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더러 낭만의 사유 속에 빠져야 합니다. 다행히 월세를 올리지도 않고, 방 빼라고 호통치지도 않는 이 아름다운 산과 바다, 강과 호수, 하늘과 바람, 나무와 새들에게 감사하면서 살아야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가 눈만 돌리면 펄럭이는 저 광란의 분양광고 플래카드를 보면서, 평당 5,000만 원이 넘는 아파트가 수백 대 일의 경쟁이 당첨 경쟁이 붙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시인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는 청맹과니일 리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모순 투성이의 현실 앞에 속절없이 꺾이려는 무릎을 다독여 또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써내려가는 시인의 눈에도 분명 눈물이 괴지 않았을까요? 그 감사한 자연의 풍광도 벌개진 눈 속에서 속절없이 흔들렸겠구요.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⑤ 최악의 종이자 최상의 군주‘돈’ ⑥ 짜장면, 검은 면발의 치명적인 유혹 ⑦ 비정규직, 그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에 ⑧ 라면, B급 먹거리를 향한 A급 사랑 ⑨ 자본의 제국, 끝없는 소비로 쌓아올리는 바벨탑 ⑩ 커피 공화국, “커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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