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 “집행부 장난에 놀아났다”

입력 2006.07.21 (07:12)

20일 오후 11시30분께 30여명의 노조원들이 건물 배관을 타고 아래로 내려온 뒤 마치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지친 노조원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이날 오후 9시30분께 노조의 자진해산이 해프닝으로 끝날 것으로 본 포스코 직원들과 전경들이 상당수 자리를 떠 한산한 분위기였던 경북 포항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1층 로비가 삽시간에 떠들썩 한 소리와 열기로 가득 찼다.
경찰은 이들 노조원에게 자신의 신상명세를 기록하게 하고 포스코 점거 사실을 인정하며 차후 조사에 응하겠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쓰게 한 뒤 곧장 귀가조치했다.
이들은 포스코 본사 건물 옆 문을 나선 뒤 두 줄로 늘어선 전경들 사이를 지나 점거가 풀렸다는 말을 듣고 포스코 뒷문으로 모여든 가족들의 품에 안겼다.
20일 오후 8시30분부터 공급된 전기로 충전한 휴대전화로 가족의 안부를 묻고 아직 위에 남은 동료와 정보를 주고받는 노조원들의 표정엔 패배의 무력감보다는 갑갑했던 농성으로부터의 해방감이 더 짙게 드러났다.
한 노조원은 "집행부 장난에 놀아났다"며 "위원장이 패배를 시인한 뒤 내려가려는데 경찰이 모두 진압.검거한다는 소문이 났던 것은 집행부가 자신들이 검거되는 것이 싫어서 조작했던 것"이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또 다른 노조원은 "관절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돼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이 떨어져 너무 고통스러웠다"밝힌 후 "16일부터 나오려 했지만 집행부가 막아 나올 수 없었다"며 자신과 같이 아파도 나오지 못했던 노조원들이 상당수였다고 전했다.
21일 오전 1시께 건물 밖으로 나온 한 노조원은 "지옥에서 탈출한 기분"이라며 "지금 남아있는 일부 과격파들이 건물에 불을 질러 2천명이 떼죽음할까 봐 그 동안 너무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노조원들은 "포스코와의 투쟁에 패배해 끝까지 남아 싸우지도 못해 부끄럽다"며 "그래도 언젠가 자식들만은 비정규직의 고통을 모르고 살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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