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흙 속의 진주 찾기’ 고심 중

입력 2008.02.20 (10:16)

수정 2008.02.2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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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년 동안 태극 전사들을 지휘했다.
그는 당시 올림픽과 아시안컵 등에서 한국 대표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천수(페예노르트), 이영표(토트넘), 설기현(풀럼), 김남일(빗셀 고베) 등 젊은 선수들을 발굴해 냈다.
7년 만에 다시 대표팀을 맡은 허 감독은 팀 재건을 위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특히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들을 과감히 대표팀에 발탁해 기회를 주면서 한국축구가 '제2의 박지성'을 맞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허 감독은 대표팀을 이끌고 중국 충칭에서 열리고 있는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 중이다.
허 감독은 20일 숙소인 충칭 칼튼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지난달 27일 소집 이후 한달 가까이 대표팀을 이끈 소회와 향후 선수 선발 및 팀 운영 구상 등을 밝혔다.

허 감독 부임 이후 벌써 많은 선수들이 A매치에 데뷔했는데

▲아직 잘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처음치고는 훌륭하게 해줬다. 박지성이나 이영표, 설기현도 처음에는 미숙했다. 시드니 올림픽 때는 왜 김남일을 빼지 않느냐는 비난도 많이 받았고, 박지성을 선발로 내세우자 원색적인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나도 청소년 대표 선수 시절 골키퍼보다 발이 느려 감독으로부터 '저 것도 선수냐'는 핀잔을 들었다.
이번 대표팀의 젊은 선수들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선수들은 몇 경기만 경험을 쌓으면 확 달라진다. 앞으로 대표팀에서 경쟁해 나갈 자질이 충분한 선수들이다.

젊은 피 실험은 계속되나

▲일단 분위기를 볼 때 한 가지는 성공한 것 같다. 각 프로 구단으로부터 전해들었는데 선수들의 자세가 달라졌다고 한다. 새로운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기존 대표 선수들은 경각심을 갖게 됐고, 어린 선수들은 기대를 품게 됐다. 효과를 보려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고르게 주어야 한다. 매번 똑 같은 선수만 대표팀 경기에 나서면 한국 축구의 경쟁력은 떨어진다.

선수 발탁의 특별한 기준은

▲내가 선수를 잘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호 대전 감독 등 프로에도 좋은 선수를 발굴해 내는 지도자들이 많다. 지도자라면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능력이 부족해 발휘를 못하는 것인지, 훈련이 안 된 것인지, 본인이 못 깨닫는 것인지 등을 봐야 한다. 자세히 지켜보고 선수들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선수들이 허 감독을 무서워 한다던데

▲주위에서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뭔가 풍기는 것이 있는가 보다. 프로, 대표 선수로서 꼭 해야 할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훈련장에서는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선수들은 유럽 등 축구선진국에 비해 기술이 앞선다고 볼 수 없는데도 개인 훈련이 부족하다. 피나는 노력 없이 기술 향상은 힘들다. 데이비드 베컴(LA갤럭시)의 프리킥도 훈련 없이는 안 되는 것이다. 나카무라 순스케(셀틱)가 팀 훈련이 끝나면 꼭 1시간씩 개인 훈련을 한다는 기사도 본적 있다. 우리 때도 개인훈련에 시간을 할애해 선수 개인별로 특징이 있었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선수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형 수비수의 발굴이 시급하다. 개인적 문제로 하차한 황재원의 재발탁 가능성도 있나

▲황재원은 우리가 내보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힘들고 동료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며 귀국 의사를 밝힌 것이다. 문제가 정리되면 재발탁을 막지는 않을 것이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 등 노장 수비수들의 후진을 양성하지 못해 지금까지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표팀 내 뿐만 아니라 밖에도 좋은 선수들은 꽤 있다. 이들이 대형 선수로 커 주길 바란다.

수비가 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태클 기술이다. 우리 선수들은 태클이 너무 약하다. 한 골을 막아내는 태클은 한 골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다. 태클 기술이 향상되면 수비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영리하게 수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비 기술은 우리의 숙제다.

훈련 방법이 효과를 보고 있는 듯한데

▲프로그램은 코칭스태프가 함께 짠다. 시간이 많지 않아 맞춤형으로 진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훈련 방법이 있고, 또 다양하게 응용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훈련을 하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 기자들이 한국의 강한 체력을 강점으로 꼽는다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중국과 1차전 후반 염기훈과 이근호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힘든 경기를 했다. 대표 선수라면 90분 내내 페이스에 큰 변화가 없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훈련 때 힘들면 쉬는 버릇이 있는데 그 때 고비를 넘겨야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선수라도 계속 만들어주지 않으면 못한다. 박지성이 우리 나라에서 뛰면서 그 선수 위주로 경기를 한다면 지금의 모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지도자는 똑 같은 능력이라면 당연히 체력이 좋은 선수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선착순 1등보다는 회복 능력이 좋은 선수가 필요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다른 선수들이 90분간 10㎞를 뛸 때 박지성은 12㎞를 뛴다고 한다. 회복이 안돼 헉헉거리는 선수와 바로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는 선수의 차이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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