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어디에?…크림반도의 ‘유령과의 전쟁’

입력 2014.03.04 (10:28)

수정 2014.03.04 (10:28)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남부의 발라클라바에 사는 러시아계 부부 올레그 셰브초프 부부는 지난 2일(현지시간) 세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하루 전 지역의 주요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러시아 군인과 장갑차 행렬을 따뜻하게 맞이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들 가족이 거리에 도착했을 때 러시아 군대는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의문만 남긴 채 자취를 감췄다.

셰브초프 부부가 목격한 것처럼 크림반도에서는 현재 '유령과의 전쟁'(phantom war)이 진행되는 모습이라고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INYT)가 4일 보도했다. 무장한 사람들은 종종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으며 총성조차 들리지 않는 등 이들은 보이지 않는 적과 마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 2차대전 초반의 거의 완전히 평화롭던 때와 같은 '가짜 전쟁'(phony war)의 모습은 아니고 무장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적들과 맞서고자 황급히 오가는 이상한 전쟁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크림반도 최대 항구인 세바스토폴에서는 막 구성된 친(親)러시아 성향의 민병대가 '파시스트'들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민병대는 이들 파시스트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권력을 장악했고 이제 러시아말을 쓰는 사람을 학살하기 위해 크림반도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민병대 지도자의 측근인 스타니슬라프 나고르니는 INYT에 "우리는 그들 누구도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TV에서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키예프의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들이나 그들의 지지자들은 이들 민병대의 생각과는 아주 다르다. 예컨대 러시아군이 세바스토폴의 우크라이나 해군사령부 본부를 공격하는 등 우크라이나군 병영으로 물밀듯 쳐들어올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양측 우려와 달리 세바스토폴에서 양 세력의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고, 데니스 베레조프스키 우크라이나 해군사령관이 친러시아인 크림 자치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일이 일어났다.

총 한 발 쏘는 일 없이 러시아와 그 동맹세력들은 크림반도 지역 안에서 우크라니아 지휘권의 완전 제거라는 최우선 목표를 손쉽게 이룬 셈이다.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애착은 남다르다. 그동안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친선의 표시로 1954년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긴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며 돌려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는 민족적 혹은 문화적 차이들이 지역민들과 언론들에 의해 부추겨지고 일부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민병대를 꾸리는 모습은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 해체 때 벌어지던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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