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⑩ 커피 공화국, “커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입력 2016.06.30 (15:43) 수정 2016.07.0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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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악마처럼 검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어제 길을 걸어가다 한 커피숍 유리창에 씌여진 문구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 커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표현이지요? 1775년 3월 23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파와 영국에 무릎을 꿇어 평화를 보장받자는 온건 파 정치가들이 팽팽하게 맞설 무렵, 페트릭 헨리가 했던 연설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자유가아니면 죽음을달라”고 외치는 패트릭 헨리의 연설 장면(1876년의 판화)“자유가아니면 죽음을달라”고 외치는 패트릭 헨리의 연설 장면(1876년의 판화)


"쇠사슬과 노예화란 대가를 치르고 사야 할 만큼 우리의 목숨이 그렇게도 소중하고 평화가 그렇게도 달콤한 것입니까?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마지막 문장을 패러디한 카페의 문구가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지금 우리나라는 커피공화국이 되었습니다. 겉은 빨갛고 씨앗은 검은 커피나무 열매 하나가 온 국민의 마음을 빼앗았으니까요.

사람들이 마시는 여러 가지 기호 음료 가운데 이렇게 빨리, 이렇게 많이 퍼진 음료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도 거리를 걷다 보면 두 집 건너 카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핏 마셔보면 쓰기만 한 이 검은 음료가 왜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요?

시인은 커피가 '그리스어로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합니다. 시구절 어디에도 그리스를 연상할만한 단서가 없어 갸우뚱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그 의도를 추측해볼 밖에요. 우선 시인은 어느 가을날 창밖의 나뭇잎들이 빨갛게 혹은 갈색이나 노란색으로 물든 풍경을 보면서 주전자에 물을 끓입니다. 흔히 가을이 되면 또 속절없이 지나가는 한 해 앞에 허무와 우수가 몰려옵니다. 어느새 찻물이 끓으면서 주전자에서는 뽀얀 안개같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바다를 항해하는 여객선의 엔진 소리 같이 들립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았던 ‘티파니에서 아침을’. 시인은 커피 향기를 맡으며 티파니에 다다르는 달콤한 환상에 빠진 것은 아닐까.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았던 ‘티파니에서 아침을’. 시인은 커피 향기를 맡으며 티파니에 다다르는 달콤한 환상에 빠진 것은 아닐까.


어느덧 시인은 그 여객선을 타고 뉴욕 맨해튼의 보석가게 '티파니에' 다다르는 달콤한 환상에 빠집니다. 우리에게는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았던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유명한 '티파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화려한 삶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커피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추억 혹은 이룰 수 없는 판타지로 안내하는 마법의 양탄자인 셈입니다. 희랍어로 말을 걸어온다는 말은 아마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커피의 매력, 오묘한 이끌림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희랍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인류 문명이 싹튼 그리스, 르네상스의 모태가 되었던 그리스, 온갖 흥미진진한 신들의 이야기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화의 나라 그리스...... 그리스는 분명 매력덩어리 나라이고, 바로 그런 신비와 매력을 지닌 것이 커피란 뜻이 아닐까요? 커피가 수 많은 차와 음료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료가 된 것도 시인의 이 상상력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우선 커피는 다른 음료는 따라올 수 없는 진하고 감미로운 향기를 지녔습니다. 막 볶아낸 원두나 곱게 간 분말이 풍기는 참기름 같은 고소한 향기에 기분이 들뜹니다. 보글보글 커피가 끓을 때 허공에 퍼지는 향기 역시 세상의 모든 시름을 지워버립니다.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기노라면 행복 엑기스가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이 듭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이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좀 복잡하지만, 짧지만 강렬한 느낌으로서의 행복,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적인 기쁨을 꼽으라면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실 때가 아닐까요?

"커피가 도래하도다,
그 근엄하고 유익한 물약이,
위를 낫게 하고, 천재를 한결 명민케 하며
기억을 되살리고 슬픔을 위로하며
원기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미치게 만들지는 않음이여 " - 17세기 유럽인


17세기 커피를 맛본 유럽인들은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졌나 봅니다. 위장병도 낫게 하고, 머리도 좋게 만들고, 슬픔은 위로하고 쇠잔한 기운은 북돋우는 만병통치약이었으니 말입니다.

요즘도 커피가 해로운지 이로운지를 놓고 학계와 의료계가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어 어리둥절합니다. 발암물질이라거나 당뇨병, 신경계통, 소화기계통 질환의 주범이라는 논문이 발표되는가 하면, 한두 잔의 커피는 오히려 면역력도 증강시키고 항암, 항산화 작용을 해서 노화를 방지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러니 커피는 그 본질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신비한 물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도 요즘 잘 가는 동네 카페에서 바리스타인 주인이 정성껏 내려주는 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정말 행복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시인처럼 르네상스의 발원지 이탈리아 피렌체의 시가지를 거니는 꿈을 꾸기도 하고, 세계 최초로 문을 연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의 테이블에 앉아 산마르코 광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뉴욕의 센트럴 파크 아름드리 나무 사이를 거닐기도 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카페 란트만에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의 정치가였던 탈레랑도 이렇게 커피를 예찬했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커피 소비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커피를 얼마나 마시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커피 시장은 매출액으로 따져 2015년에는 5조 4,000억 원이나 됐습니다. 2005년부터 10년간 한해 평균 15%씩 초고속 성장을 해왔습니다. 커피가 생산되지 않으니 전량 수입입니다.



10여년 전인 2004년 3만 톤을 조금 넘던 커피 수입량은 지난해 14만 톤, 금액으로는 6억 달러어치 가량을 수입했습니다. 불과 10년 만에 다섯 배가량 늘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 커피 전문점은 무려 5만개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것도 공식 커피 전문점만 헤아린 것이니까, 커피도 파는 제과점이나 편의점, 간이매점 등을 합한다면 훨씬 많은 숫자일 것입니다.

지난 2010년 우리나라 사람은 연간 311잔의 커피를 마셨는데, 2015년에는 무려 484잔을 마셨습니다. 일주일에 9잔 정도를 마신 셈입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제외한다면 어른들은 적어도 하루에 두 잔 이상 마셨다는 얘깁니다. 농수산부 추계로도 한 사람이 일주일에 쌀밥은 7번 정도 먹는데, 커피는 12잔을 마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커피 공화국이 맞지 않나요?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개화기인 1895년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종을 돕던 독일인 손탁 여사가 지금의 이화여고 자리에 '정동구락부'라는 커피숍을 냈다고 합니다. 고종 역시 커피에 매료돼 애호가였다고 하는데요, 지금도 고종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카페가 있을 정도입니다.

1961년에 촬영한 다방의 모습1961년에 촬영한 다방의 모습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천재 시인 이상이나 극작가 동랑 유치진, 영화배우 복혜숙 선생님도 다방을 열었습니다. 1945년 서울에 60개에 정도에 불과했던 다방은 1950년대는 1200개로 늘어났습니다. 1970년대에는 뜨거운 물에 간단히 풀어먹는 인스턴트 커피가 개발돼 커피 소비를 폭발적으로 늘렸고,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압구정동에 첫 원두커피 전문점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들어서면서 프랜차이즈 커피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커피 값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소비자 시민모임이 최근 발표한 주요 도시별 스타벅스 커피값을 보면, 우리나라는 아메리카노의 경우 4,100원으로 13개 도시 가운데 두번째로 비쌌다고 합니다.그러니까 점심으로 라면이나 된장찌개 같은 싼 것을 먹고 원두커피를 마신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도 한데요, 그래도 커피의 인기는 식을 줄 모릅니다.

커피 시장에 나온 다양한 커피들. 장시간에 걸쳐 내린 콜드 브루 커피(우)와 집에서도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는 캡슐 커피(좌). 커피 시장에 나온 다양한 커피들. 장시간에 걸쳐 내린 콜드 브루 커피(우)와 집에서도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는 캡슐 커피(좌).


요즘 들어서는 한 잔에 2만 원을 넘는 고가의 스페셜 커피가 나오는가 하면, 천 원짜리 한 장으로도 제법 괜찮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제품도 나오고 있어, 커피 시장에서도 양극화 바람이 거셉니다.
우후죽순으로 카페가 생겨나면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문을 여는 숫자만큼이나 문을 닫는 카페도 늘고 있습니다. 커피 열풍은 어디까지 갈까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은 중간 정도여서 더 많이 먹게 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카페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었다

약 1,000년 전 에티오피아 일대에서 양치는 목동에 의해 처음 발견된 뒤 이슬람의 수사들을 거쳐 커피는 유럽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커피의 각성효과와 그 검은 색깔 때문에 이교도가 마시는 악마의 물이라고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커피 맛을 본 교황이 '이 맛있는 커피를 이교도만 먹게 할 수는 없다'며 전격 허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커피는 유럽의 부르주아 상인은 물론 종교인, 예술인, 학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기호음료가 되었습니다. 좋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평생 신을 경배하며 성스러운 음악을 작곡했던 바흐였지만 그도 커피를 향한 사랑은 어쩔 수 없었을까요? 그가 만든 '커피 칸타타'의 아리아입니다. 커피라면 죽고 못 사는 딸과 이를 말리려다 손들고 마는 아버지의 코믹한 이야기를 다룬 이 칸타타의 아리아는 조수미 씨가 불러 더욱 유명하기도 합니다.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한' 커피라니!, 결혼은 안 할 수 있어도 커피는 안마실 수 없다니! 커피가 근대 유럽에서 얼마나 인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베토벤도 커피광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 자신이 직접 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흥미로운 것은 원두 개수까지 세어서 정확히 60알로 한 잔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커피가 없었다면 인류사에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 기록되는 그의 9개 교향곡이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보석 같은 기악곡과 협주곡 등이 탄생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사실 커피는 단순히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맛있는 기호품만은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음료이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교역을 통해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커피를 파는 곳이 카페였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귀족들끼리 저택에서 이른바 살롱 문화를 형성해 사교와 정보 교환, 연주를 즐기는 예술공간으로 활용했지만, 막 부상하기 시작한 상인 계급이나 지식인, 문인이나 예술가들은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들이 몰려든 곳이 바로 유럽의 주요 도시에 생겨난 카페였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최신 정보와 해외 동향을 주고받았고, 이곳에서 진리와 예술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때로는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한 혁명의 음모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한때 이 카페를 폐쇄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카페는 유럽 계몽주의 운동의 산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개화기나 전쟁 직후, 이른바 번화가의 다방을 중심으로 문인과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토론하고 논쟁하고 또 협업도 했으니, 카페나 다방은 변혁을 잉태한 새로운 사상의 해방구였다고나 할까요? 요즘에도 카페를 찾는 일부 사람들은 책과 노트북을 들고 가서 홀로 혹은 무리를 지어 공부도 하고 독서, 토론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불면의 밤을 지새는 시인들의 벗 커피

걸핏하면 밤을 새우기 일쑤인 문인과 예술인들에게도 커피는 빼놓을 수 없는 벗입니다. 담배를 왼손가락에 걸고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원고지를 메꿔가는 문인들의 사진을 보는 일도 흔합니다. 우리에게는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박목월 선생님도 커피 한 잔으로 숱한 불면의 밤을 새웠는가 봅니다.

원고지 한 장을 시로 메우기는 얼마나 어려울지요? 시는 써지지 않고 밤은 깊어가고 눈은 감기고 어깨는 저려올 때, 마시는 한 잔의 커피, 그 암갈색 커피에서 시인은 어쩌면 가장으로서 자신이 홀로 짊어져야 하는 부양의 무게와 고독을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커피는 여럿이 마실수록 좋다는 녹차와는 달리, 홀로 그것도 사방이 캄캄한 어둠에 포위돼 있는 밤에 마셔야 제맛이니 말입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커피가 단순한 기호음료를 넘어, 초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 보다 나은 세상을 열망하던 부르주아와 지식인, 예술인의 꿈과 희망을 담은 음료였듯이 오늘 우리의 커피도 새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달콤한 사유보다는 커피 맛처럼 쌉싸름하지만 묵직한 사유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도 쾨테와 바이런 나폴레옹이 드나들었다는 베네치아의 '플로리안'이나, 사르트르와 카뮈, 셍떽쥐뻬리가 단골이었다는 파리의 '레 되 마고' 같은 카페가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냥 커피에 열광하는 공화국이 되어서야 커피에 쏟아붓는 돈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⑤ 최악의 종이자 최상의 군주‘돈’
⑥ 짜장면, 검은 면발의 치명적인 유혹
⑦ 비정규직, 그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에
⑧ 라면, B급 먹거리를 향한 A급 사랑
⑨ 자본의 제국, 끝없는 소비로 쌓아올리는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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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⑩ 커피 공화국, “커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 입력 2016-06-30 15:43:53
    • 수정2016-07-01 09:49:23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커피, 악마처럼 검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어제 길을 걸어가다 한 커피숍 유리창에 씌여진 문구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 커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표현이지요? 1775년 3월 23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파와 영국에 무릎을 꿇어 평화를 보장받자는 온건 파 정치가들이 팽팽하게 맞설 무렵, 페트릭 헨리가 했던 연설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자유가아니면 죽음을달라”고 외치는 패트릭 헨리의 연설 장면(1876년의 판화) "쇠사슬과 노예화란 대가를 치르고 사야 할 만큼 우리의 목숨이 그렇게도 소중하고 평화가 그렇게도 달콤한 것입니까?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마지막 문장을 패러디한 카페의 문구가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지금 우리나라는 커피공화국이 되었습니다. 겉은 빨갛고 씨앗은 검은 커피나무 열매 하나가 온 국민의 마음을 빼앗았으니까요. 사람들이 마시는 여러 가지 기호 음료 가운데 이렇게 빨리, 이렇게 많이 퍼진 음료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도 거리를 걷다 보면 두 집 건너 카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핏 마셔보면 쓰기만 한 이 검은 음료가 왜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요? 시인은 커피가 '그리스어로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합니다. 시구절 어디에도 그리스를 연상할만한 단서가 없어 갸우뚱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그 의도를 추측해볼 밖에요. 우선 시인은 어느 가을날 창밖의 나뭇잎들이 빨갛게 혹은 갈색이나 노란색으로 물든 풍경을 보면서 주전자에 물을 끓입니다. 흔히 가을이 되면 또 속절없이 지나가는 한 해 앞에 허무와 우수가 몰려옵니다. 어느새 찻물이 끓으면서 주전자에서는 뽀얀 안개같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바다를 항해하는 여객선의 엔진 소리 같이 들립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았던 ‘티파니에서 아침을’. 시인은 커피 향기를 맡으며 티파니에 다다르는 달콤한 환상에 빠진 것은 아닐까. 어느덧 시인은 그 여객선을 타고 뉴욕 맨해튼의 보석가게 '티파니에' 다다르는 달콤한 환상에 빠집니다. 우리에게는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았던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유명한 '티파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화려한 삶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커피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추억 혹은 이룰 수 없는 판타지로 안내하는 마법의 양탄자인 셈입니다. 희랍어로 말을 걸어온다는 말은 아마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커피의 매력, 오묘한 이끌림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희랍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인류 문명이 싹튼 그리스, 르네상스의 모태가 되었던 그리스, 온갖 흥미진진한 신들의 이야기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화의 나라 그리스...... 그리스는 분명 매력덩어리 나라이고, 바로 그런 신비와 매력을 지닌 것이 커피란 뜻이 아닐까요? 커피가 수 많은 차와 음료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료가 된 것도 시인의 이 상상력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우선 커피는 다른 음료는 따라올 수 없는 진하고 감미로운 향기를 지녔습니다. 막 볶아낸 원두나 곱게 간 분말이 풍기는 참기름 같은 고소한 향기에 기분이 들뜹니다. 보글보글 커피가 끓을 때 허공에 퍼지는 향기 역시 세상의 모든 시름을 지워버립니다.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기노라면 행복 엑기스가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이 듭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이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좀 복잡하지만, 짧지만 강렬한 느낌으로서의 행복,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적인 기쁨을 꼽으라면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실 때가 아닐까요? "커피가 도래하도다, 그 근엄하고 유익한 물약이, 위를 낫게 하고, 천재를 한결 명민케 하며 기억을 되살리고 슬픔을 위로하며 원기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미치게 만들지는 않음이여 " - 17세기 유럽인 17세기 커피를 맛본 유럽인들은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졌나 봅니다. 위장병도 낫게 하고, 머리도 좋게 만들고, 슬픔은 위로하고 쇠잔한 기운은 북돋우는 만병통치약이었으니 말입니다. 요즘도 커피가 해로운지 이로운지를 놓고 학계와 의료계가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어 어리둥절합니다. 발암물질이라거나 당뇨병, 신경계통, 소화기계통 질환의 주범이라는 논문이 발표되는가 하면, 한두 잔의 커피는 오히려 면역력도 증강시키고 항암, 항산화 작용을 해서 노화를 방지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러니 커피는 그 본질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신비한 물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도 요즘 잘 가는 동네 카페에서 바리스타인 주인이 정성껏 내려주는 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정말 행복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시인처럼 르네상스의 발원지 이탈리아 피렌체의 시가지를 거니는 꿈을 꾸기도 하고, 세계 최초로 문을 연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의 테이블에 앉아 산마르코 광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뉴욕의 센트럴 파크 아름드리 나무 사이를 거닐기도 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카페 란트만에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의 정치가였던 탈레랑도 이렇게 커피를 예찬했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커피 소비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커피를 얼마나 마시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커피 시장은 매출액으로 따져 2015년에는 5조 4,000억 원이나 됐습니다. 2005년부터 10년간 한해 평균 15%씩 초고속 성장을 해왔습니다. 커피가 생산되지 않으니 전량 수입입니다. 10여년 전인 2004년 3만 톤을 조금 넘던 커피 수입량은 지난해 14만 톤, 금액으로는 6억 달러어치 가량을 수입했습니다. 불과 10년 만에 다섯 배가량 늘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 커피 전문점은 무려 5만개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것도 공식 커피 전문점만 헤아린 것이니까, 커피도 파는 제과점이나 편의점, 간이매점 등을 합한다면 훨씬 많은 숫자일 것입니다. 지난 2010년 우리나라 사람은 연간 311잔의 커피를 마셨는데, 2015년에는 무려 484잔을 마셨습니다. 일주일에 9잔 정도를 마신 셈입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제외한다면 어른들은 적어도 하루에 두 잔 이상 마셨다는 얘깁니다. 농수산부 추계로도 한 사람이 일주일에 쌀밥은 7번 정도 먹는데, 커피는 12잔을 마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커피 공화국이 맞지 않나요?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개화기인 1895년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종을 돕던 독일인 손탁 여사가 지금의 이화여고 자리에 '정동구락부'라는 커피숍을 냈다고 합니다. 고종 역시 커피에 매료돼 애호가였다고 하는데요, 지금도 고종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카페가 있을 정도입니다. 1961년에 촬영한 다방의 모습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천재 시인 이상이나 극작가 동랑 유치진, 영화배우 복혜숙 선생님도 다방을 열었습니다. 1945년 서울에 60개에 정도에 불과했던 다방은 1950년대는 1200개로 늘어났습니다. 1970년대에는 뜨거운 물에 간단히 풀어먹는 인스턴트 커피가 개발돼 커피 소비를 폭발적으로 늘렸고,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압구정동에 첫 원두커피 전문점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들어서면서 프랜차이즈 커피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커피 값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소비자 시민모임이 최근 발표한 주요 도시별 스타벅스 커피값을 보면, 우리나라는 아메리카노의 경우 4,100원으로 13개 도시 가운데 두번째로 비쌌다고 합니다.그러니까 점심으로 라면이나 된장찌개 같은 싼 것을 먹고 원두커피를 마신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도 한데요, 그래도 커피의 인기는 식을 줄 모릅니다. 커피 시장에 나온 다양한 커피들. 장시간에 걸쳐 내린 콜드 브루 커피(우)와 집에서도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는 캡슐 커피(좌). 요즘 들어서는 한 잔에 2만 원을 넘는 고가의 스페셜 커피가 나오는가 하면, 천 원짜리 한 장으로도 제법 괜찮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제품도 나오고 있어, 커피 시장에서도 양극화 바람이 거셉니다. 우후죽순으로 카페가 생겨나면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문을 여는 숫자만큼이나 문을 닫는 카페도 늘고 있습니다. 커피 열풍은 어디까지 갈까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은 중간 정도여서 더 많이 먹게 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카페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었다 약 1,000년 전 에티오피아 일대에서 양치는 목동에 의해 처음 발견된 뒤 이슬람의 수사들을 거쳐 커피는 유럽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커피의 각성효과와 그 검은 색깔 때문에 이교도가 마시는 악마의 물이라고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커피 맛을 본 교황이 '이 맛있는 커피를 이교도만 먹게 할 수는 없다'며 전격 허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커피는 유럽의 부르주아 상인은 물론 종교인, 예술인, 학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기호음료가 되었습니다. 좋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평생 신을 경배하며 성스러운 음악을 작곡했던 바흐였지만 그도 커피를 향한 사랑은 어쩔 수 없었을까요? 그가 만든 '커피 칸타타'의 아리아입니다. 커피라면 죽고 못 사는 딸과 이를 말리려다 손들고 마는 아버지의 코믹한 이야기를 다룬 이 칸타타의 아리아는 조수미 씨가 불러 더욱 유명하기도 합니다.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한' 커피라니!, 결혼은 안 할 수 있어도 커피는 안마실 수 없다니! 커피가 근대 유럽에서 얼마나 인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베토벤도 커피광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 자신이 직접 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흥미로운 것은 원두 개수까지 세어서 정확히 60알로 한 잔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커피가 없었다면 인류사에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 기록되는 그의 9개 교향곡이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보석 같은 기악곡과 협주곡 등이 탄생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사실 커피는 단순히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맛있는 기호품만은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음료이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교역을 통해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커피를 파는 곳이 카페였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귀족들끼리 저택에서 이른바 살롱 문화를 형성해 사교와 정보 교환, 연주를 즐기는 예술공간으로 활용했지만, 막 부상하기 시작한 상인 계급이나 지식인, 문인이나 예술가들은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들이 몰려든 곳이 바로 유럽의 주요 도시에 생겨난 카페였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최신 정보와 해외 동향을 주고받았고, 이곳에서 진리와 예술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때로는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한 혁명의 음모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한때 이 카페를 폐쇄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카페는 유럽 계몽주의 운동의 산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개화기나 전쟁 직후, 이른바 번화가의 다방을 중심으로 문인과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토론하고 논쟁하고 또 협업도 했으니, 카페나 다방은 변혁을 잉태한 새로운 사상의 해방구였다고나 할까요? 요즘에도 카페를 찾는 일부 사람들은 책과 노트북을 들고 가서 홀로 혹은 무리를 지어 공부도 하고 독서, 토론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불면의 밤을 지새는 시인들의 벗 커피 걸핏하면 밤을 새우기 일쑤인 문인과 예술인들에게도 커피는 빼놓을 수 없는 벗입니다. 담배를 왼손가락에 걸고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원고지를 메꿔가는 문인들의 사진을 보는 일도 흔합니다. 우리에게는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박목월 선생님도 커피 한 잔으로 숱한 불면의 밤을 새웠는가 봅니다. 원고지 한 장을 시로 메우기는 얼마나 어려울지요? 시는 써지지 않고 밤은 깊어가고 눈은 감기고 어깨는 저려올 때, 마시는 한 잔의 커피, 그 암갈색 커피에서 시인은 어쩌면 가장으로서 자신이 홀로 짊어져야 하는 부양의 무게와 고독을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커피는 여럿이 마실수록 좋다는 녹차와는 달리, 홀로 그것도 사방이 캄캄한 어둠에 포위돼 있는 밤에 마셔야 제맛이니 말입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커피가 단순한 기호음료를 넘어, 초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 보다 나은 세상을 열망하던 부르주아와 지식인, 예술인의 꿈과 희망을 담은 음료였듯이 오늘 우리의 커피도 새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달콤한 사유보다는 커피 맛처럼 쌉싸름하지만 묵직한 사유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도 쾨테와 바이런 나폴레옹이 드나들었다는 베네치아의 '플로리안'이나, 사르트르와 카뮈, 셍떽쥐뻬리가 단골이었다는 파리의 '레 되 마고' 같은 카페가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냥 커피에 열광하는 공화국이 되어서야 커피에 쏟아붓는 돈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⑤ 최악의 종이자 최상의 군주‘돈’ ⑥ 짜장면, 검은 면발의 치명적인 유혹 ⑦ 비정규직, 그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에 ⑧ 라면, B급 먹거리를 향한 A급 사랑 ⑨ 자본의 제국, 끝없는 소비로 쌓아올리는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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