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지 않게] “삼성전자 공장에선 골병 들어도 산재 신청 못합니다”

입력 2020.07.30 (15:09) 수정 2020.07.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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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하남산업단지에는 '그린시티'로 불리는 대규모 삼성전자 공장이 있다. 정식 명칭은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인데, 상시 직원만 4천 명이 넘는다.

이곳에서는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에 생산직 노동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 다수는 매일 정해진 공간에서 무거운 제품을 들고, 나르고, 조립하는 등 반복된 작업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목, 어깨, 허리, 팔, 다리, 손목, 발목 등에 부상을 달고 산다. 이른바 '근골격계 질병'이 만성화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해 '골병'이 들어도, 산재 신청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산재 신청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뭘까? KBS 취재진은 최근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노동자들을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 사측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산재 신청하면 여러모로 불리해"

14년 차 생산직 노동자 A 씨는 세탁기 조립만 10년 넘게 했다.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 동안 세탁기에 커버를 씌우고 나사를 체결하는 식이다.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대략 10초 당 세탁기 완제품 1대씩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휴식 시간에는 일명 '30초 클린 활동'이라는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게 A 씨 얘기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각종 질병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려니 하고 회사에 다녔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올해 2월 평소와 마찬가지로 작업하다 자재를 싣는 차량에 허리가 치인 게 발단이었다.

다음날 A 씨는 일어나지 못했다. 허리 통증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월차를 내고 병원에 갔고, 우리가 흔히 '디스크'라고 부르는 '신경뿌리병증을 동반한 요추 및 기타 추간판장애' 진단을 받은 뒤 허리 시술을 받았다.

한 달 뒤 A 씨는 회사 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과장은 A 씨의 근황을 묻다가 산재를 신청할 거냐고 떠보더니, 만약 산재를 신청하게 되면 여러모로 불리해질 것이라며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고과도 안 좋게 될 것이라며 조언인지 경고인지 모를 말도 했다.

그때까지도 산재 신청 생각이 없던 A 씨는 전화를 받고, "10년 넘게 피땀 흘리면서 일한 회사에서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는가 하는 분노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A 씨는 이를 계기로 산재를 신청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직속 상관의 힐난을 들어야 했다. 자신이 빠진 회식 자리에서 상관인 파트장이 'A 씨 산재 신청으로 인해 사유서를 썼다. 내가 피해를 많이 봤다'는 식으로 말한 것을 전해 들은 것이다.

A 씨는 "직장 내 왕따를 유도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항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 사원 대표자조차 "산재 생각도 말라"

입사 16년 차 노동자 B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B 씨는 세탁기, 에어컨 조립 작업 등을 하다 2017년 12월 병원에서 습관성 어깨 탈골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그 뒤에도 통증이 계속되자 산재 신청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고민하던 B 씨는 지난해 11월, 산재 신청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노사협의회를 찾아가서 사원 측을 대표하는 노사협의위원과 상담했다. 그러나 '생각도 하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B 씨는 노사협의위원의 냉담한 반응에 좌절했지만 이내 수긍했다고 한다. 과거에도 아픈 걸 참지 못하고 월차를 5일 쓰고 병원에 입원했더니 최하위 고과(D등급)를 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산재 신청은 못 한 채 올해 2월 다시 어깨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석 달 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한 통의 공문을 받았다.


'귀하는 삼성전자 직장가입자로 제조 라인에서 잦은 어깨 사용으로 10년 이상 어깨 통증이 지속돼 왔으며…(중략) 병원에서 수차례 건강보험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만약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요양비를 받을 수 있음에도 요양신청을 포기할 경우 건강보험공단 부담금 일체를 부당이득금으로 환수·고지하게 된다'고 고지했다.

즉, 국민건강보험공단은 B 씨의 질병이 산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산재 신청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쓴 의료비를 돌려받겠다는 경고성 내용이었다. 결국, B 씨는 산재 신청을 하기로 결정했다.

■ 근골격계 질병 다반사…산재 신청자는 극소수

일하다 아파도 산재 신청하기 어렵다는 얘기, '한국노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광주사업장 노동자 5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설문조사에 응한 노동자 53명 가운데 49명(92.5%)이 업무와 관련한 근골격계 질병으로 병원에서 진료 또는 치료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지금도 근골격계 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답변도 28명이나 됐다.

이처럼 많은 노동자가 근골격계 질병을 앓고 있지만, 그 누구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상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산재 처리에 대해 잘 모른다, 상사·담당 부서의 공상 처리 회유와 압박 때문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사측이 사실상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게 설문조사 결과의 요지인 셈이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창현 사람과산재 대표노무사는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의 많은 노동자가 계속 동일한 부위에 특정한 병이 발생했다면, 담당 파트장과 회사의 안전보건 담당자는 당연히 업무상 질병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창현 노무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산재 신청을 안내해 주지 않고 사측의 압력과 회유, 인사 고과의 불이익 때문에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을 못 하는 분위기가 조장됐다면 사실상 산재 은폐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대로 만약 삼성전자가 노동자들의 산재를 은폐하는 게 맞는다면 산업안전보건법 제170조 3항에 따라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 삼성전자 "산재 신청 불이익 주지 않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업무상 질병이나 병가 사용만을 이유로 하위평가를 부여하지 않으며 산재를 신청한다고 해서 임직원에게 불이익을 준 사례는 없다"면서 "업무상 사고나 질병 발생으로 임직원이 산재를 신청하는 경우, 사실관계 확인과 관련 서류 발급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직원들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사내에 근골격계 예방센터를 운영 중이며, 3년마다 전문기관의 점검을 통해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면서 회사가 산재를 축소하거나 은폐한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2,020명 가운데, 질병으로 숨진 사람은 1,165명이다. 질병으로 인한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는 15,195명이며,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제조업에 종사하는 생산직 노동자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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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30 15:09:32
    • 수정2020-07-30 19:00:55
    취재K
광주광역시 하남산업단지에는 '그린시티'로 불리는 대규모 삼성전자 공장이 있다. 정식 명칭은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인데, 상시 직원만 4천 명이 넘는다.

이곳에서는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에 생산직 노동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 다수는 매일 정해진 공간에서 무거운 제품을 들고, 나르고, 조립하는 등 반복된 작업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목, 어깨, 허리, 팔, 다리, 손목, 발목 등에 부상을 달고 산다. 이른바 '근골격계 질병'이 만성화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해 '골병'이 들어도, 산재 신청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산재 신청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뭘까? KBS 취재진은 최근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노동자들을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 사측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산재 신청하면 여러모로 불리해"

14년 차 생산직 노동자 A 씨는 세탁기 조립만 10년 넘게 했다.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 동안 세탁기에 커버를 씌우고 나사를 체결하는 식이다.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대략 10초 당 세탁기 완제품 1대씩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휴식 시간에는 일명 '30초 클린 활동'이라는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게 A 씨 얘기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각종 질병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려니 하고 회사에 다녔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올해 2월 평소와 마찬가지로 작업하다 자재를 싣는 차량에 허리가 치인 게 발단이었다.

다음날 A 씨는 일어나지 못했다. 허리 통증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월차를 내고 병원에 갔고, 우리가 흔히 '디스크'라고 부르는 '신경뿌리병증을 동반한 요추 및 기타 추간판장애' 진단을 받은 뒤 허리 시술을 받았다.

한 달 뒤 A 씨는 회사 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과장은 A 씨의 근황을 묻다가 산재를 신청할 거냐고 떠보더니, 만약 산재를 신청하게 되면 여러모로 불리해질 것이라며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고과도 안 좋게 될 것이라며 조언인지 경고인지 모를 말도 했다.

그때까지도 산재 신청 생각이 없던 A 씨는 전화를 받고, "10년 넘게 피땀 흘리면서 일한 회사에서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는가 하는 분노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A 씨는 이를 계기로 산재를 신청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직속 상관의 힐난을 들어야 했다. 자신이 빠진 회식 자리에서 상관인 파트장이 'A 씨 산재 신청으로 인해 사유서를 썼다. 내가 피해를 많이 봤다'는 식으로 말한 것을 전해 들은 것이다.

A 씨는 "직장 내 왕따를 유도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항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 사원 대표자조차 "산재 생각도 말라"

입사 16년 차 노동자 B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B 씨는 세탁기, 에어컨 조립 작업 등을 하다 2017년 12월 병원에서 습관성 어깨 탈골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그 뒤에도 통증이 계속되자 산재 신청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고민하던 B 씨는 지난해 11월, 산재 신청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노사협의회를 찾아가서 사원 측을 대표하는 노사협의위원과 상담했다. 그러나 '생각도 하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B 씨는 노사협의위원의 냉담한 반응에 좌절했지만 이내 수긍했다고 한다. 과거에도 아픈 걸 참지 못하고 월차를 5일 쓰고 병원에 입원했더니 최하위 고과(D등급)를 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산재 신청은 못 한 채 올해 2월 다시 어깨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석 달 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한 통의 공문을 받았다.


'귀하는 삼성전자 직장가입자로 제조 라인에서 잦은 어깨 사용으로 10년 이상 어깨 통증이 지속돼 왔으며…(중략) 병원에서 수차례 건강보험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만약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요양비를 받을 수 있음에도 요양신청을 포기할 경우 건강보험공단 부담금 일체를 부당이득금으로 환수·고지하게 된다'고 고지했다.

즉, 국민건강보험공단은 B 씨의 질병이 산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산재 신청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쓴 의료비를 돌려받겠다는 경고성 내용이었다. 결국, B 씨는 산재 신청을 하기로 결정했다.

■ 근골격계 질병 다반사…산재 신청자는 극소수

일하다 아파도 산재 신청하기 어렵다는 얘기, '한국노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광주사업장 노동자 5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설문조사에 응한 노동자 53명 가운데 49명(92.5%)이 업무와 관련한 근골격계 질병으로 병원에서 진료 또는 치료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지금도 근골격계 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답변도 28명이나 됐다.

이처럼 많은 노동자가 근골격계 질병을 앓고 있지만, 그 누구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상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산재 처리에 대해 잘 모른다, 상사·담당 부서의 공상 처리 회유와 압박 때문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사측이 사실상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게 설문조사 결과의 요지인 셈이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창현 사람과산재 대표노무사는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의 많은 노동자가 계속 동일한 부위에 특정한 병이 발생했다면, 담당 파트장과 회사의 안전보건 담당자는 당연히 업무상 질병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창현 노무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산재 신청을 안내해 주지 않고 사측의 압력과 회유, 인사 고과의 불이익 때문에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을 못 하는 분위기가 조장됐다면 사실상 산재 은폐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대로 만약 삼성전자가 노동자들의 산재를 은폐하는 게 맞는다면 산업안전보건법 제170조 3항에 따라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 삼성전자 "산재 신청 불이익 주지 않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업무상 질병이나 병가 사용만을 이유로 하위평가를 부여하지 않으며 산재를 신청한다고 해서 임직원에게 불이익을 준 사례는 없다"면서 "업무상 사고나 질병 발생으로 임직원이 산재를 신청하는 경우, 사실관계 확인과 관련 서류 발급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직원들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사내에 근골격계 예방센터를 운영 중이며, 3년마다 전문기관의 점검을 통해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면서 회사가 산재를 축소하거나 은폐한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2,020명 가운데, 질병으로 숨진 사람은 1,165명이다. 질병으로 인한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는 15,195명이며,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제조업에 종사하는 생산직 노동자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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