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죽지않게] 한쪽 팔 못 쓰게 됐는데…“공장 사장님, 고마워요”

입력 2020.11.19 (14:40) 수정 2020.11.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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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숨지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공식 집계로만 해마다 2천 명 안팎입니다. KBS는 지난 7월부터 <뉴스9>에 고정 코너 <일하다 죽지 않게>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산업재해 문제를 다각도로 심층 진단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다친 외국인 노동자는 7,211명, 숨진 노동자는 104명에 이릅니다. 산재 승인을 받은 경우만 이 정도니 실제로 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더 많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하면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다 한쪽 팔에 장애가 생긴 네팔 출신 노동자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 신청만 해줘도…"고마운 사장님"

A씨는 네팔에서 대학 강사로 일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친구 얘기를 듣고 한국행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자 한국 정부는 한 플라스틱 제조 업체를 A씨에게 알선했습니다. 네팔에서 받아본 고용 계약서에는 업체 이름과 근로 시간, 임금 등이 간략하게 적혀있었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공장 기숙사에 짐을 풀고 다음 날 아침 A씨는 바로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태어나 처음 기계 앞에 선 것이었습니다.

안전 교육은 없었습니다. 사장님과 부장님에게 인사하는 법, 밥 먹을 때 예절만 자세히 알려줬습니다.

작업 반장은 기계 전원을 켜고 끄는 방법만 알려줬습니다. 말은 안 통하고 일은 서툴렀습니다. 질문하면 "야, 빨리빨리 안 해?"라는 핀잔이 돌아왔습니다.


3년 동안 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A씨의 동료 여러 명이 다쳤습니다. 노후화된 기계는 자주 오작동했고 안전 센서는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사장님에게 여러 차례 "기계를 고쳐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사장님은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2017년 마지막 날, A씨는 근무를 마치고 기계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기계가 작동하면서 칼날이 A씨 팔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A씨는 37살에 왼팔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억울하고 화가 날 법도 한데 A씨는 돈을 벌게 해준 한국에, 산재 신청을 해준 사장님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사장님 진짜 마음이 좋아요. 산재 신청도 해주고 치료받게 해줬어요. 네팔 친구들 일하는 다른 공장, 산재 신청 안 해줘요. "

■ 소규모 공장에서 8명 다쳐…빈 자리는 다른 이주노동자로

KBS는 A씨가 일했던 공장의 최근 5년간 산재 발생 현황과 10년간 외국인 인력 배정 현황을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입수했습니다.


2016년 베트남 출신 여성과 네팔 출신 남성이 기계에 손가락을 끼었습니다. 2017년에도 네팔과 중국 출신 노동자 3명이 손가락 끼임, 절단 사고 등을 당했습니다. 2018년도 2건, 2019년 1건 부상 재해가 발생했습니다.

업체 측에 따르면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 15명에서 20명 정도입니다. 노동자 스무 명이 안 되는 작은 공장에서 5년 동안 일하다 다친 외국인이 8명이나 됩니다.

해당 업체의 외국인 고용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2014년 4명, 2015년 3명, 2018년 1명, 2019년 2명을 새로 고용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친 노동자가 치료를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빈자리를 새 이주노동자로 채운 셈입니다.

이렇게 동료들이 많이 다치는 업체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한국인이라면 당장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자유가 없습니다. '고용허가제'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옮기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또 반드시 사업주의 '허가'를 받은 뒤 지역 고용센터에 이직을 신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산재 다발 사업장'이라는 이유는 직장을 옮길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내 몸을 다쳐야만 비로소 그 직장을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네팔에서 한국 정부가 보내준 업체 정보만 믿고 일하러 온 A씨, A씨가 다쳐서 떠난 자리에 새로 들어온 또 다른 이주노동자 역시 사전에 이 공장이 '산재 다발 사업장'이라는 점은 몰랐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 합법적으로 직업을 알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고용센터는 그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 부상 재해 감점 '0점'…"누가 안전 설비를 개선하겠어요?"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사업장에 배정할 때 기준이 되는 '점수'가 있습니다. 점수가 깎이면 외국인 인력 배정 순서가 밀리기 때문에 사업주들은 이 점수에 예민합니다.


최근 산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탓인지 고용노동부가 올해 점수제 기준을 바꿨습니다. 기존에는 사망 재해가 발생하면 감점 1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감점 10점으로 대폭 강화했습니다. 산재 은폐에 대해서도 감점 1점에서 감점 3점으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부상 재해에는 감점 규정이 없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문의하자 "한때 부상 재해에 대해서도 감점 규정이 있었는데 사업주들이 감점을 피해가려고 산재 신청을 못 하게 막는 경우가 많았다. 부상 재해에 대한 감점 규정을 없애는 대신, 사업장 위험성 평가 인정을 받으면 가점 1점을 주는 쪽으로 바꿨다. 산재 예방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주노동자 8명이 다친 플라스틱 제조업체 역시 최근 10년 동안 감점을 받은 이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2014년 이주노동자들이 필수로 가입해야 하는 귀국비용 보험, 상해보험 등을 전원 가입해준 점으로 가점 1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해당 업체 관계자는 "그렇게 많은 노동자가 다친 줄 몰랐다"며 "손가락이 베이는 사고까지 전부 산재 신청을 하다 보니 많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공장을 지은 지 오래돼 설비가 노후화된 것은 맞다"며 "새 기계로 교체하고 있고 안전 관리를 강화해 올해는 산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부상 재해에 대해서는 감점 규정이 없어서 신규 인력이 계속 배정된다. 결국 산재로 이탈되는 노동자가 있으면 그 공백을 또 다른 신규 인력으로 메우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돌려막으니까 회사가 운영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센터를 "허술한 직업소개소"라고 비판했습니다. 최정규 변호사는 "국가가 이주노동자에게 직업을 알선하는데 계속 노동자가 다치는 사업장에 아무런 페널티도 주지 않고 인력만 소개해준다면 굉장히 위험한 구조다. 정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인과 달리 이주노동자는 자유로운 구직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고용센터를 통해 알선받은 업체에만 가서 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한된 상황 속에서 적어도 임금 제대로 안 주고, 폭언하고, 근로조건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는 '이직의 자유'는 부여돼야 한다고 인권단체들은 요구합니다.

지난 3월 이주공동행동 등 인권 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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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하다죽지않게] 한쪽 팔 못 쓰게 됐는데…“공장 사장님, 고마워요”
    • 입력 2020-11-19 14:40:15
    • 수정2020-11-19 14:54:34
    취재K
일터에서 숨지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공식 집계로만 해마다 2천 명 안팎입니다. KBS는 지난 7월부터 <뉴스9>에 고정 코너 <일하다 죽지 않게>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산업재해 문제를 다각도로 심층 진단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다친 외국인 노동자는 7,211명, 숨진 노동자는 104명에 이릅니다. 산재 승인을 받은 경우만 이 정도니 실제로 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더 많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하면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다 한쪽 팔에 장애가 생긴 네팔 출신 노동자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 신청만 해줘도…"고마운 사장님"

A씨는 네팔에서 대학 강사로 일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친구 얘기를 듣고 한국행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자 한국 정부는 한 플라스틱 제조 업체를 A씨에게 알선했습니다. 네팔에서 받아본 고용 계약서에는 업체 이름과 근로 시간, 임금 등이 간략하게 적혀있었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공장 기숙사에 짐을 풀고 다음 날 아침 A씨는 바로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태어나 처음 기계 앞에 선 것이었습니다.

안전 교육은 없었습니다. 사장님과 부장님에게 인사하는 법, 밥 먹을 때 예절만 자세히 알려줬습니다.

작업 반장은 기계 전원을 켜고 끄는 방법만 알려줬습니다. 말은 안 통하고 일은 서툴렀습니다. 질문하면 "야, 빨리빨리 안 해?"라는 핀잔이 돌아왔습니다.


3년 동안 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A씨의 동료 여러 명이 다쳤습니다. 노후화된 기계는 자주 오작동했고 안전 센서는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사장님에게 여러 차례 "기계를 고쳐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사장님은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2017년 마지막 날, A씨는 근무를 마치고 기계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기계가 작동하면서 칼날이 A씨 팔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A씨는 37살에 왼팔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억울하고 화가 날 법도 한데 A씨는 돈을 벌게 해준 한국에, 산재 신청을 해준 사장님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사장님 진짜 마음이 좋아요. 산재 신청도 해주고 치료받게 해줬어요. 네팔 친구들 일하는 다른 공장, 산재 신청 안 해줘요. "

■ 소규모 공장에서 8명 다쳐…빈 자리는 다른 이주노동자로

KBS는 A씨가 일했던 공장의 최근 5년간 산재 발생 현황과 10년간 외국인 인력 배정 현황을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입수했습니다.


2016년 베트남 출신 여성과 네팔 출신 남성이 기계에 손가락을 끼었습니다. 2017년에도 네팔과 중국 출신 노동자 3명이 손가락 끼임, 절단 사고 등을 당했습니다. 2018년도 2건, 2019년 1건 부상 재해가 발생했습니다.

업체 측에 따르면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 15명에서 20명 정도입니다. 노동자 스무 명이 안 되는 작은 공장에서 5년 동안 일하다 다친 외국인이 8명이나 됩니다.

해당 업체의 외국인 고용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2014년 4명, 2015년 3명, 2018년 1명, 2019년 2명을 새로 고용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친 노동자가 치료를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빈자리를 새 이주노동자로 채운 셈입니다.

이렇게 동료들이 많이 다치는 업체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한국인이라면 당장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자유가 없습니다. '고용허가제'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옮기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또 반드시 사업주의 '허가'를 받은 뒤 지역 고용센터에 이직을 신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산재 다발 사업장'이라는 이유는 직장을 옮길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내 몸을 다쳐야만 비로소 그 직장을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네팔에서 한국 정부가 보내준 업체 정보만 믿고 일하러 온 A씨, A씨가 다쳐서 떠난 자리에 새로 들어온 또 다른 이주노동자 역시 사전에 이 공장이 '산재 다발 사업장'이라는 점은 몰랐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 합법적으로 직업을 알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고용센터는 그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 부상 재해 감점 '0점'…"누가 안전 설비를 개선하겠어요?"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사업장에 배정할 때 기준이 되는 '점수'가 있습니다. 점수가 깎이면 외국인 인력 배정 순서가 밀리기 때문에 사업주들은 이 점수에 예민합니다.


최근 산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탓인지 고용노동부가 올해 점수제 기준을 바꿨습니다. 기존에는 사망 재해가 발생하면 감점 1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감점 10점으로 대폭 강화했습니다. 산재 은폐에 대해서도 감점 1점에서 감점 3점으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부상 재해에는 감점 규정이 없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문의하자 "한때 부상 재해에 대해서도 감점 규정이 있었는데 사업주들이 감점을 피해가려고 산재 신청을 못 하게 막는 경우가 많았다. 부상 재해에 대한 감점 규정을 없애는 대신, 사업장 위험성 평가 인정을 받으면 가점 1점을 주는 쪽으로 바꿨다. 산재 예방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주노동자 8명이 다친 플라스틱 제조업체 역시 최근 10년 동안 감점을 받은 이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2014년 이주노동자들이 필수로 가입해야 하는 귀국비용 보험, 상해보험 등을 전원 가입해준 점으로 가점 1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해당 업체 관계자는 "그렇게 많은 노동자가 다친 줄 몰랐다"며 "손가락이 베이는 사고까지 전부 산재 신청을 하다 보니 많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공장을 지은 지 오래돼 설비가 노후화된 것은 맞다"며 "새 기계로 교체하고 있고 안전 관리를 강화해 올해는 산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부상 재해에 대해서는 감점 규정이 없어서 신규 인력이 계속 배정된다. 결국 산재로 이탈되는 노동자가 있으면 그 공백을 또 다른 신규 인력으로 메우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돌려막으니까 회사가 운영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센터를 "허술한 직업소개소"라고 비판했습니다. 최정규 변호사는 "국가가 이주노동자에게 직업을 알선하는데 계속 노동자가 다치는 사업장에 아무런 페널티도 주지 않고 인력만 소개해준다면 굉장히 위험한 구조다. 정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인과 달리 이주노동자는 자유로운 구직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고용센터를 통해 알선받은 업체에만 가서 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한된 상황 속에서 적어도 임금 제대로 안 주고, 폭언하고, 근로조건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는 '이직의 자유'는 부여돼야 한다고 인권단체들은 요구합니다.

지난 3월 이주공동행동 등 인권 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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