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70년기획]⑨ “아버지를 그리고 생을 마감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입력 2021.02.09 (06:00) 수정 2021.02.1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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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재회하지 못한 이산가족이 5만 명이 넘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시간도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데요.
설을 맞아 그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작섬'에 갔다 3일 후에 집에 온다고 했는데"... 71년째 생이별

"시가지를 전부 다 폭격을 하니까 피해야 한다 해 갔는데 가보니까 큰 배가 있어, 거기에 7살짜리가 탔어요."

하루가 멀다고 폭격이 이어지던 1951년 1월 4일, 송창수 할아버지는 급히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평소에도 동네 뒷산에 숨었다가 돌아오길 여러 번, 이번엔 흥남부두 앞 '작섬'이란 섬으로 피했다가 사흘 뒤에 집에 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7살 소년이던 할아버지는 출타 중이던 아버지, 형, 누나와 떨어져,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한 어머니와 보름 된 여동생과 함께 LST(전차상륙함) 큰 배에 올랐습니다.


■ 가장이 된 7살 소년…"형님, 누님과 같이 완성하고 싶어요"

그런데 상황은 할아버지의 예상과 크게 달랐습니다. 피란민들이 탄 배는 570km 떨어진 거제 장승포항에 닿았고, 그때부터 난민 수용소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거제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가 편마비로 딱 드러눕게 됐어요. 내가 가장이 돼야 해요. 7살 소년가장이..."

밥하고 빨래하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땔나무까지 해야 했던 7살 소년.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와 형님, 누님이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가져온 '무궁화 자수화'를 꺼내보았습니다. 형님이 그림을 그리고 누님이 수를 놓은, 미완의 공동작품입니다. 이게 어떻게 짐 속에 들어있었는지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고된 피란 생활을 위로해준 보배같은 물건입니다.

" 형님, 누나 만나면 같이 색을 칠하면서 완성하고 싶은..."


■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아버지를 그리는 것"

송창수 할아버지에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또 있습니다. 유독 막내아들을 사랑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56살에 그림을 시작해 가족들을 한명 한명 그려나갔지만, 정작 아버지는 그릴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사랑을 많이 받아서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야 하는데... 단지 생각나는 건 아버지의 콧수염뿐입니다.

"아버지 사진이든지 뭐든지 아무것도 없어. 단지 생각나는 건 아버지 콧수염뿐.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버지를 그리고 생을 마감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버지를 그리고 또 고향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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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70년기획]⑨ “아버지를 그리고 생을 마감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 입력 2021-02-09 06:00:32
    • 수정2021-02-10 08:27:34
    취재K

편집자 주 :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재회하지 못한 이산가족이 5만 명이 넘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시간도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데요.
설을 맞아 그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작섬'에 갔다 3일 후에 집에 온다고 했는데"... 71년째 생이별

"시가지를 전부 다 폭격을 하니까 피해야 한다 해 갔는데 가보니까 큰 배가 있어, 거기에 7살짜리가 탔어요."

하루가 멀다고 폭격이 이어지던 1951년 1월 4일, 송창수 할아버지는 급히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평소에도 동네 뒷산에 숨었다가 돌아오길 여러 번, 이번엔 흥남부두 앞 '작섬'이란 섬으로 피했다가 사흘 뒤에 집에 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7살 소년이던 할아버지는 출타 중이던 아버지, 형, 누나와 떨어져,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한 어머니와 보름 된 여동생과 함께 LST(전차상륙함) 큰 배에 올랐습니다.


■ 가장이 된 7살 소년…"형님, 누님과 같이 완성하고 싶어요"

그런데 상황은 할아버지의 예상과 크게 달랐습니다. 피란민들이 탄 배는 570km 떨어진 거제 장승포항에 닿았고, 그때부터 난민 수용소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거제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가 편마비로 딱 드러눕게 됐어요. 내가 가장이 돼야 해요. 7살 소년가장이..."

밥하고 빨래하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땔나무까지 해야 했던 7살 소년.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와 형님, 누님이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가져온 '무궁화 자수화'를 꺼내보았습니다. 형님이 그림을 그리고 누님이 수를 놓은, 미완의 공동작품입니다. 이게 어떻게 짐 속에 들어있었는지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고된 피란 생활을 위로해준 보배같은 물건입니다.

" 형님, 누나 만나면 같이 색을 칠하면서 완성하고 싶은..."


■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아버지를 그리는 것"

송창수 할아버지에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또 있습니다. 유독 막내아들을 사랑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56살에 그림을 시작해 가족들을 한명 한명 그려나갔지만, 정작 아버지는 그릴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사랑을 많이 받아서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야 하는데... 단지 생각나는 건 아버지의 콧수염뿐입니다.

"아버지 사진이든지 뭐든지 아무것도 없어. 단지 생각나는 건 아버지 콧수염뿐.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버지를 그리고 생을 마감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버지를 그리고 또 고향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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