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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70년기획]⑩ “외할머니께 단팥죽 한그릇 대접하고 싶습니다”
입력 2021.02.10 (08:01) 수정 2021.02.10 (17:53) 취재K
편집자 주 :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재회하지 못한 이산가족이 5만 명이 넘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시간도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데요.
설을 맞아 그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시퍼런 산이 보이는데, 알고 보니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쌓아놓은 거더라고."

함경도 청진 시가 고향인 83세 김은숙 할머니. 어려서(7세) 고향을 떠나와 고향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뚜렷해지는 기억이 있는데요.

"청진시 바닷가에 엄마랑 간 적이 있는데, 시퍼런 물과 산이 보이는 거야. 알고 보니 그 산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들을 쌓아놓은 거더라고. 그만큼 정어리가 많이 잡혔던 거고, 어린아이 눈엔 그게 산처럼 높아 보였던 거야."

해방 후 남쪽에 먼저 내려간 아버지를 찾아 엄마와 단둘이 38선을 넘게 됐는데요. 남쪽으로 가는 길이 험난했던 그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38선을 넘는 순간 사람들이 지른 환호 소리도 아직 귓가에 생생합니다.

남쪽에서 모녀가 어느 정도 정착했을 때, 북에 사시던 외할머니가 막내딸인 엄마가 보고 싶어 다니러 오셨습니다. 기관지염을 앓고 계셔서 들킬 위험이 컸는데도 설탕을 입속에 녹이며 딸을 보러 내려온 할머니였습니다. 38선 통제가 심해져서 북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렸지만, 할머니는 아들 얼굴 한 번 보고 와서 남쪽에서 같이 살자며 집을 나서셨습니다. 그리고는 6·25전쟁이 터졌고, 결국 영영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 "단팥죽 한 그릇 대접하며 할머니 눈물 닦아드렸으면…."

홀로 남은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그리며 훌쩍일 때가 많았고, 어린 딸은 들썩이는 엄마의 어깨를 보며 함께 울었습니다. 6남매의 막내로 자라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엄마, 18살에 아버지와 결혼해 어린 딸과 같이 38선을 넘었지만, 외할머니의 빈자리가 컸던 것이었겠지요. 이제 그 시절 외할머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80대가 되어보니, 외할머니와 엄마의 아픔이 절절하게 와 닿을 때가 많아졌습니다. 한겨울 팥죽 장수가 지나갈 때면 어린 손녀딸에게 팥죽을 사 주시며 외갓집의 추억을 보태 주셨던 할머니.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직접 끓인 단팥죽 한 그릇 대접하며 할머니 눈에 어린 눈물 닦아드리고, 제 눈물도 닦고 싶습니다."

  • [이산70년기획]⑩ “외할머니께 단팥죽 한그릇 대접하고 싶습니다”
    • 입력 2021-02-10 08:01:21
    • 수정2021-02-10 17:53:40
    취재K
편집자 주 :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재회하지 못한 이산가족이 5만 명이 넘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시간도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데요.
설을 맞아 그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시퍼런 산이 보이는데, 알고 보니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쌓아놓은 거더라고."

함경도 청진 시가 고향인 83세 김은숙 할머니. 어려서(7세) 고향을 떠나와 고향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뚜렷해지는 기억이 있는데요.

"청진시 바닷가에 엄마랑 간 적이 있는데, 시퍼런 물과 산이 보이는 거야. 알고 보니 그 산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들을 쌓아놓은 거더라고. 그만큼 정어리가 많이 잡혔던 거고, 어린아이 눈엔 그게 산처럼 높아 보였던 거야."

해방 후 남쪽에 먼저 내려간 아버지를 찾아 엄마와 단둘이 38선을 넘게 됐는데요. 남쪽으로 가는 길이 험난했던 그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38선을 넘는 순간 사람들이 지른 환호 소리도 아직 귓가에 생생합니다.

남쪽에서 모녀가 어느 정도 정착했을 때, 북에 사시던 외할머니가 막내딸인 엄마가 보고 싶어 다니러 오셨습니다. 기관지염을 앓고 계셔서 들킬 위험이 컸는데도 설탕을 입속에 녹이며 딸을 보러 내려온 할머니였습니다. 38선 통제가 심해져서 북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렸지만, 할머니는 아들 얼굴 한 번 보고 와서 남쪽에서 같이 살자며 집을 나서셨습니다. 그리고는 6·25전쟁이 터졌고, 결국 영영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 "단팥죽 한 그릇 대접하며 할머니 눈물 닦아드렸으면…."

홀로 남은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그리며 훌쩍일 때가 많았고, 어린 딸은 들썩이는 엄마의 어깨를 보며 함께 울었습니다. 6남매의 막내로 자라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엄마, 18살에 아버지와 결혼해 어린 딸과 같이 38선을 넘었지만, 외할머니의 빈자리가 컸던 것이었겠지요. 이제 그 시절 외할머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80대가 되어보니, 외할머니와 엄마의 아픔이 절절하게 와 닿을 때가 많아졌습니다. 한겨울 팥죽 장수가 지나갈 때면 어린 손녀딸에게 팥죽을 사 주시며 외갓집의 추억을 보태 주셨던 할머니.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직접 끓인 단팥죽 한 그릇 대접하며 할머니 눈에 어린 눈물 닦아드리고, 제 눈물도 닦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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