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70년기획]⑥ “내가 짠 참기름을 전할 수 있다면…” 북녘 여동생에게 꼭 전하고픈 선물

입력 2020.10.03 (14:00) 수정 2021.02.1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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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만 있다가 오라고 한 게 70년

"어머니랑 아버지랑 쌀가마 짊어지어 줘서 보내면서 ‘열흘만 피난했다가 오라고’해서 사람들 따라서 나왔어요."

황해도 벽성군 추하면 출신인 고우균(84살)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난 날 밤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군이 개성까지 탈환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나선 14살 소년은 어느새 팔순 백발노인이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교동, 강화, 김포, 인천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온 뒤 그 뒤로 영영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겁니다.

"어머니는 나 비슷하게 생겼고 아버지는 조금 인물이 출중했어요." 아직도 부모님의 얼굴이 기억난다는 할아버지는 꿈에서라도 간절히 헤어진 부모님을 만나고 싶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자 할아버지는 앉은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방금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어머니 꿈은) 딱 한 번 꿈꾸고 안 꿔봤어요. 1957년도 인가로 기억하는데 꿈에서 어머니가 나를 본척만척해. 내가 울고 달려드니까 본척만척해. 그래서는 잠이 깨나고 그러고 나서는 영 못 꾸었어요." 어머니를 꿈에서 만나본 지도 60여 년. 이젠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집니다.


■ 위성사진 보고 마음 달래기도

"여기가 청단역이고... 여기에 집에 몇 개 더 생겼네."

할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고향인 벽성군 위성사진을 찾아봅니다. 고향 집 앞 큰길에서 가까운 '청단역'을 찾아 기억을 거슬러 가면 희미한 추억들이 또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떠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어린 시절 노닐던 고향 마을은 그리움 속 지도에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자꾸 왜 보냐면 어떻게 변했나 보려고. 거기(위성지도) 고향 땅에 우리 집까지 나와." 위성사진 속의 고향 집을 찾아가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애들 보고도 내가 죽고 없을 때는 고향에 가면 '우리 집이 여기다 요 위치에 있다.' 동네 그림을 그린 것도 있어요."

홀로 남한에 내려와 지내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 쉰이 넘은 두 아들 내외를 50m 거리 곁에 두고 떨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 동생에게 명절 선물 보낼 수만 있다면…

"그때는 어렸을 때니까 오누이가 그렇게 싸움을 많이 했어. 이상하게 나도 그게 생각나는데 왜 내가 그때 그렇게 여동생하고 싸움을 많이 했나." 어린 시절 그렇게 투닥거리던 세 살 아래 여동생은 70대, 살아있을 것이다 빌며 제일 만나고 싶습니다.

어머님이 참기름을 살짝 손에 묻혀서 송편 만들어 주던 그때의 맛과 향이 그대로 생각난다는 고우균 할아버지, 가게에서 갓 볶은 깨로 참기름을 짤 때마다 어머니의 기억이 소환되고, 또 여동생 생각이 난답니다.

"무엇이든 주고 싶어요. 내가 짜낸 참기름을 전해만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돼야지….".

이번 추석도 북녘 동생 손에 명절 선물이라도 좀 쥐어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저 바람으로 끝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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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3 14:00:54
    • 수정2021-02-10 08: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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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만 있다가 오라고 한 게 70년

"어머니랑 아버지랑 쌀가마 짊어지어 줘서 보내면서 ‘열흘만 피난했다가 오라고’해서 사람들 따라서 나왔어요."

황해도 벽성군 추하면 출신인 고우균(84살)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난 날 밤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군이 개성까지 탈환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나선 14살 소년은 어느새 팔순 백발노인이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교동, 강화, 김포, 인천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온 뒤 그 뒤로 영영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겁니다.

"어머니는 나 비슷하게 생겼고 아버지는 조금 인물이 출중했어요." 아직도 부모님의 얼굴이 기억난다는 할아버지는 꿈에서라도 간절히 헤어진 부모님을 만나고 싶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자 할아버지는 앉은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방금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어머니 꿈은) 딱 한 번 꿈꾸고 안 꿔봤어요. 1957년도 인가로 기억하는데 꿈에서 어머니가 나를 본척만척해. 내가 울고 달려드니까 본척만척해. 그래서는 잠이 깨나고 그러고 나서는 영 못 꾸었어요." 어머니를 꿈에서 만나본 지도 60여 년. 이젠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집니다.


■ 위성사진 보고 마음 달래기도

"여기가 청단역이고... 여기에 집에 몇 개 더 생겼네."

할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고향인 벽성군 위성사진을 찾아봅니다. 고향 집 앞 큰길에서 가까운 '청단역'을 찾아 기억을 거슬러 가면 희미한 추억들이 또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떠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어린 시절 노닐던 고향 마을은 그리움 속 지도에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자꾸 왜 보냐면 어떻게 변했나 보려고. 거기(위성지도) 고향 땅에 우리 집까지 나와." 위성사진 속의 고향 집을 찾아가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애들 보고도 내가 죽고 없을 때는 고향에 가면 '우리 집이 여기다 요 위치에 있다.' 동네 그림을 그린 것도 있어요."

홀로 남한에 내려와 지내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 쉰이 넘은 두 아들 내외를 50m 거리 곁에 두고 떨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 동생에게 명절 선물 보낼 수만 있다면…

"그때는 어렸을 때니까 오누이가 그렇게 싸움을 많이 했어. 이상하게 나도 그게 생각나는데 왜 내가 그때 그렇게 여동생하고 싸움을 많이 했나." 어린 시절 그렇게 투닥거리던 세 살 아래 여동생은 70대, 살아있을 것이다 빌며 제일 만나고 싶습니다.

어머님이 참기름을 살짝 손에 묻혀서 송편 만들어 주던 그때의 맛과 향이 그대로 생각난다는 고우균 할아버지, 가게에서 갓 볶은 깨로 참기름을 짤 때마다 어머니의 기억이 소환되고, 또 여동생 생각이 난답니다.

"무엇이든 주고 싶어요. 내가 짜낸 참기름을 전해만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돼야지….".

이번 추석도 북녘 동생 손에 명절 선물이라도 좀 쥐어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저 바람으로 끝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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