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70년기획]⑫ “어머니께 닭개장 한 그릇 대접할 수 있다면”

입력 2021.02.12 (08:00) 수정 2021.02.1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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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재회하지 못한 이산가족이 5만 명이 넘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시간도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데요.
설을 맞아 그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마지막 인사가 된 "잠시만 피했다 오라"

6·25전쟁이 언제 끝날지 막막하기만 하던 1951년 3월 황해도 연백. 18살이던 장순옥 할머니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젊은이들은 인민군에 차출된다'는 소문에, 다섯 아들을 일찍 앞세우신 어머니는 둘밖에 안 남은 딸 중 하나가 또 어떻게 될까 봐 ‘잠시만 피했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당시 57세였던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막내가 한 음식 참 맛있구나"… 어머니께 닭개장 한 사발 대접했으면….

남한에 홀로 피란 와 고된 생활을 이어갈 때, 불현듯 생각난 이모네 집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경상북도 풍기입니다. 푸르른 연백평야에 앞바다에서 제철의 싱싱한 물고기들을 먹을 수 있었던 고향 땅과 달리, 첩첩 산에 둘러싸인 풍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달리진 환경에 입에 맞지 않는 음식.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음식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유달리 음식 솜씨가 좋아 연백에서도 여기저기 솜씨를 뽐내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께 막내딸은 변변히 밥한 상 차려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엄마가 맛있는 게 있으면 ‘ 나는 싫어하는 것이니. 너 먹어라.’ 하며 건네주시면 맛있게 먹던 기억 밖에. 어머니도 드시고 싶었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왜 엄마는 정말 싫어한다고 생각했을까. 이제서야 그 마음이 헤아려집니다.

어머니와 헤어진 지 어느덧 70년. 살아 계신다면 127세가 되는 어머니께 평소 좋아하고 잘하셨던 '어머니표 닭개장' 한 사발 차려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막내가 한 음식 참 맛있구나, 내 입맛에 맞는구나’ 이 말씀 한마디 듣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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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70년기획]⑫ “어머니께 닭개장 한 그릇 대접할 수 있다면”
    • 입력 2021-02-12 08:00:38
    • 수정2021-02-12 08:05:19
    취재K

편집자 주 :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재회하지 못한 이산가족이 5만 명이 넘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시간도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데요.
설을 맞아 그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마지막 인사가 된 "잠시만 피했다 오라"

6·25전쟁이 언제 끝날지 막막하기만 하던 1951년 3월 황해도 연백. 18살이던 장순옥 할머니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젊은이들은 인민군에 차출된다'는 소문에, 다섯 아들을 일찍 앞세우신 어머니는 둘밖에 안 남은 딸 중 하나가 또 어떻게 될까 봐 ‘잠시만 피했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당시 57세였던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막내가 한 음식 참 맛있구나"… 어머니께 닭개장 한 사발 대접했으면….

남한에 홀로 피란 와 고된 생활을 이어갈 때, 불현듯 생각난 이모네 집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경상북도 풍기입니다. 푸르른 연백평야에 앞바다에서 제철의 싱싱한 물고기들을 먹을 수 있었던 고향 땅과 달리, 첩첩 산에 둘러싸인 풍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달리진 환경에 입에 맞지 않는 음식.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음식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유달리 음식 솜씨가 좋아 연백에서도 여기저기 솜씨를 뽐내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께 막내딸은 변변히 밥한 상 차려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엄마가 맛있는 게 있으면 ‘ 나는 싫어하는 것이니. 너 먹어라.’ 하며 건네주시면 맛있게 먹던 기억 밖에. 어머니도 드시고 싶었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왜 엄마는 정말 싫어한다고 생각했을까. 이제서야 그 마음이 헤아려집니다.

어머니와 헤어진 지 어느덧 70년. 살아 계신다면 127세가 되는 어머니께 평소 좋아하고 잘하셨던 '어머니표 닭개장' 한 사발 차려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막내가 한 음식 참 맛있구나, 내 입맛에 맞는구나’ 이 말씀 한마디 듣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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