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늘에서 보고 계신가요”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금메달의 주역인 박경모(33.인천계양구청)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지난 5∼6월 한 달 가까이 활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암으로 투병하는 부친 박하용씨 걱정 때문이었다.
2남4녀 중 맏아들인 박경모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각별한 구석이 있었다.
충북 옥천 이원초등학교 4학년 때 활을 잡은 이래 어느새 24년째. 박경모에게 185㎝, 76㎏의 당당한 체격을 물려준 아버지는 장남의 곁에 늘 조용히 서있었다.
아들이 고교 최고의 궁사로 불릴 때나 1993년 제37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 금, 단체 은메달을 휩쓸며 세계적인 궁사로 떠올랐을 때나 실업팀에서 7년 가까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박경모는 활을 쏠 때 생각이 많은 `장고(長考)'형이다. 잘 할 때에는 상관없지만 한두 번 실수로 지적을 받으면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기 마련. 1994년 아시안게임에서 개인.단체전 2관왕에 오른 뒤부터 알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진 그는 국내대회 개인전 64강에서 탈락할 정도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방황하는 아들을 대회장 한쪽에서 조용히 지켜볼 뿐 말이 없었다.
1995년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박경모는 1999년 인천 계양구청으로 옮긴 뒤로도 1년 이상 하위권에서 헤맨 끝에 2001년 국가대표에 다시 뽑히며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 후 8년째 대표팀에 있으면서 2001, 2003,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이끌었다.
박경모에게 이번 베이징대회는 마지막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올림픽 이후 은퇴와 코치 변신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
이런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는 아들이 베이징올림픽 2관왕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2006년 월드컵 파이널 초대 챔피언에 오르며 `단체전용'이라는 딱지를 떼어낸 박경모도 아버지 생전에 올림픽 금메달 두 개를 목에 걸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올림픽 개막을 기다리지 못하고 6월10일 세상을 떠났다. 그때 마음으로 다짐한 금메달 두 개 중 한 개를 목에 건 박경모의 마음은 벌써 15일 남자 개인전 결승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