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이승엽, 영웅 ‘한가족’ 되다

입력 2010.12.20 (17:38)

수정 2010.12.2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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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와 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박찬호(37)와 이승엽(34)이 일본 오릭스에서 동료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내년 시즌부터 현실이 된 것이다.

올해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에서 아시아 투수 최다승(124승) 금자탑을 세운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지난 2003년 56개의 아치를 그렸던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이 한 팀에서 뭉치게 된 이승엽이 먼저 오릭스에 입단하면서 첫 단추가 끼워졌다.

이승엽이 지난 10월 부진한 성적 탓에 요미우리와 재계약에 실패하자 오릭스에 입단해 실추된 명예 회복에 나섰던 것.

올 시즌 홈런 5개 등 타율 0.163, 11타점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던 이승엽이 재기의 칼을 갈기 위한 무대로 오릭스를 선택했던 것이다.

올 시즌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렸던 박찬호 역시 피츠버그와 재계약이 여의치 않고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이 제시한 조건도 만족스럽지 않아 일본 무대로 선회해 결국 오릭스 유니폼을 선택했다.

박찬호와 이승엽이 대표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함께 뛴 건 4강 진출 감격을 누렸던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유일하다.

1994년 계약금 120만달러를 받고 LA 다저스와 계약한 박찬호는 1997년 시즌 14승, 1998년 15승을 수확했고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한국의 우승에 앞장섰다.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이승엽은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히지 못했지만 이듬해인 1999년 54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국내 최고의 거포로 우뚝 섰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이승엽이 대표팀의 주포로 동메달 사냥에 앞장선 반면 박찬호는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았다.

박찬호와 이승엽이 투.타에서 맹활약하며 힘을 합친 건 2006년 WBC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2006년 제1회 WBC에서 한국 대표팀의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맹활약했고 이승엽도 5개의 홈런을 치며 홈런왕과 타점왕까지 거머쥐었다. 한국은 투.타 쌍두마차로 나선 박찬호와 이승엽의 활약 덕에 4강 진출 감격을 누릴 수 있었다.

2001년 시즌 후 5년간 6천500만달러의 FA 대박을 터뜨리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옮겼던 박찬호는 샌디에이고와 뉴욕 메츠, LA 다저스, 필라델피아, 뉴욕 양키스를 거쳐 올 시즌 중반 피츠버그에 이적해 통산 124승(98패)째를 올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작성했던 종전 아시아 투수 최다승기록(123승)을 갈아치웠다.

롯데 지바를 거쳐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옮긴 이승엽은 그해 41홈런 등 타율 0.323, 108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이승엽은 최고의 활약 덕에 4년간 30억엔이라는 초대형 잭팟을 터뜨렸다.

이승엽은 그러나 무릎 수술 여파로 2008년에는 홈런 8개 등 타율 0.248, 27타점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지난해에도 허리 통증이 겹치면서 16홈런 등 타율 0.229에 그쳤고 계약 마지막 해인 올 시즌에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한때 화려했던 `야구 인생'을 이대로 끝낼 수 없었던 박찬호와 이승엽은 누구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메이저리그 잔류를 포기하고 일본에 진출한 박찬호와 `나를 버린 요미우리가 후회하도록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던 이승엽이 처음으로 함께 호흡을 맞출 오릭스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며 부활의 노래를 부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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