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했으면…’ 코끼리 명장, 단 1승에 눈물

입력 2013.04.17 (07:41)

수정 2013.04.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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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매, 그리고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16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6-4로 이겨 개막 13연패 사슬을 힘겹게 끊고서 흩뿌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 '코끼리' 김응용(72) 감독의 눈물이 연일 화제다.

경기 후 TV 인터뷰에 비친 김 감독의 눈가에 젖은 이슬을 보고도 '설마 진짜 눈물이었을까'라고 반신반의하던 팬, 구단 관계자가 적지 않았으나 김 감독이 그간 경기 내용을 돌아보며 "울만도 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눈물 논란은 일단락됐다.

한국시리즈에서 10번이나 우승한 김 감독은 공개석상에서 단 한 번도 감격의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적지 않은 감독이 아쉬운 눈물을 흘렸으나 승자 김 감독은 초지일관 프로의 비정함으로 그 눈물을 애써 무시했다.

그러던 김 감독이 정규리그 단 한 경기 승리에 붉게 충혈된 눈을 만인에게 들킨 것이다.

그는 야구인생에서 가장 어렵게 얻은 이날 승리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했고 고희를 넘은 나이에 '야구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강력한 카리스마'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김 감독마저 변하게 한 세월이 그래서 무섭다.

눈물이라는 감성이 2013년 김 감독을 상징하는 새로운 코드로 자리매김했다면 그전까지 김 감독의 '액션'은 폭력에 가까웠다.

프로가 출범한 1982년, 미국에서 혼자 유학하다가 감독으로 불러주는 곳이 없어 아무도 몰래 귀국해 야구장을 전전하던 김 감독은 1982년 말 약체 해태 타이거즈에서 감독을 제의하자 군말 없이 받아들이고 프로에 입문했다.

이듬해 한국시리즈 첫 정상에 오른 이래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사령탑에서 물러날 때까지 해태에서 9번, 삼성에서 1번 등 총 10차례 축배를 들고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우뚝 섰다.

개성 강한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데 김 감독의 제스처는 필요악으로 작용했다.

역대 감독 중 최다승(1천477승)을 거둔 그는 가장 많은 5번의 퇴장을 당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선수에 대한 불만은 언론을 교묘히 활용하는 대신 심판에게 적극 항의해 폭언, 몸싸움, 선수단 철수 등 다양한 사유로 퇴장당했다.

심판에게 항의하러 나온 사이 이를 곱지 않은 시선을 바라본 팬에게서 참외를 머리에 맞아 코치들의 부축을 받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김 감독이 더그아웃을 나올 때면 응원팀에서는 박수가, 상대편에서는 야유가 쏟아지기 다반사였다.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던 김 감독은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으려고 더그아웃에서 돌발 행동도 감행했다.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쓰레기통을 박차거나 의자를 집어던져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김 감독의 카리스마에 눌린 선수들은 정신을 다잡고 집중력을 발휘해 기대에 부응했다.

김 감독이 매사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것은 아니다.

득점 찬스에서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면 더그아웃 감독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성냥개비를 부러뜨려 그 잔해만 수북이 쌓일 때도 적지 않았다.

2001년 지휘봉을 잡은 삼성에서 대타 작전에 성공하고 득점을 올렸을 때 혼자서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고개를 숙인 채 몰래 손뼉을 치던 장면이 아들뻘 선수들에게 발각돼 인구에 회자하기도 했다.

2004년 SK와의 경기에서 빈볼 시비 끝에 상대팀 외국인 선수가 방망이를 들고 삼성 더그아웃에 난입하자 도망가지 않고 팔로 상대 선수의 머리를 휘감아 레슬링 기술인 헤드록을 구사해 쫓아낸 일도 있다.

코끼리 팔에 머리를 내준 선수는 구토 증세를 호소하며 혼쭐났다.

김 감독의 지인들은 "여린 성품을 감추고자 위압적인 행동을 하곤 한다"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김 감독이 프로에서 쌓은 10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워낙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있던 결과라고 박한 평가를 하기도 한다.

호불호가 양극단으로 갈리는 상황이나 현재 최고령 김 감독이 흘린 눈물이 야구팬에게 색다르게 다가온 것만큼은 분명하다.

9년 만에 현장 사령탑으로 복귀한 최약체 팀 한화에서 어렵사리 거둔 첫 승리라 당사자나 보는 이나 감회가 남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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