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70년기획]④ “70년 만의 해후입니다”…초상화로 만난 어머니

입력 2020.10.01 (14:00) 수정 2021.02.1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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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있다 오겠다'는 약속, 못 지켰습니다.

심왕식 할아버지가 고향 함경북도 길주를 떠난 건 18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UN군이 중공군 참전으로 후퇴를 결정하면서, 당시 청년이었던 할아버지도 UN군을 따라 고향을 나오게 됐습니다.

“작전상 후퇴라니까 한 3일만 있으면 돌아올 겁니다.” 집을 나설 적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부모님께 올렸던 이 말,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됐습니다.

헤어질 당시 아버지는 52살, 어머니는 44살. 기껏 사흘 남짓일 줄 알았던 이별은 장장 70년이 됐고, 이제 심왕식 할아버지의 연세는 1950년 12월, 그때의 아버님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아버님 사진 하나 갖고 나왔는지를 모르겠어요.” 난리 통에도 아버지의 사진은 하나 챙겼습니다. 떠돌아다니던 시절에도 늘 몸에 간수했고, 어떤 때는 급하니까 종이로 싸서 신발 깔창 밑에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가족이 그리울 때 꺼내보는 유일한 흔적.


■ 꿈에서조차 70년 이별 어머니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게 어머니죠. 항상 어머니. 어머니만큼 소중한 분이 어디 있어요.”
“꿈에서는 좀 만나보셨어요?”
“한 번도 못 봤어요. 꿈에라도 한 번 봤으면 하는데 한 번도 못 봤어요.”

셋째 아들이 집을 나설 때, 문 앞에서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닦던 어머니.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제작진은 심 할아버지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어머님의 초상화를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어르신은 어머니의 얼굴 구석구석을 묘사했고, 한국화 작가 유둘 씨가 심 할아버지의 얼굴 속에 반반씩 담겼을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살폈습니다. 다행히, 한 장 갖고 있던 아버지의 사진이 어머님 얼굴을 복원하는 데에 많은 단서를 줬습니다.


■ "70년 만의 해후입니다."

“지금, 가슴이 울렁거려요. 지금”

그림 작업이 끝나고 하얀 천 뒤에 감춰진 어머님 얼굴을 보기 직전, 심왕식 할아버지의 얼굴은 상기됐습니다.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하는 그 목소리도 떨렸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조심스레 천을 내린 뒤 마주한 어머님의 얼굴.

심왕식 할아버지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소리가 나는 울음도 없었고, 줄줄 눈물이 흐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침묵 속에 담긴 슬픔에 취재진 역시 아무 말을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

“70년 만의 해후입니다.” 첫마디였습니다. “어머니 모습이 들어있어요.”


(완성된 어머니의 초상화는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기억으로 살아난 어머님 초상화, 심왕식 할아버지는 아버님의 흑백 사진과 나란히 걸어두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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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70년기획]④ “70년 만의 해후입니다”…초상화로 만난 어머니
    • 입력 2020-10-01 14:00:48
    • 수정2021-02-10 08: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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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있다 오겠다'는 약속, 못 지켰습니다.

심왕식 할아버지가 고향 함경북도 길주를 떠난 건 18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UN군이 중공군 참전으로 후퇴를 결정하면서, 당시 청년이었던 할아버지도 UN군을 따라 고향을 나오게 됐습니다.

“작전상 후퇴라니까 한 3일만 있으면 돌아올 겁니다.” 집을 나설 적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부모님께 올렸던 이 말,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됐습니다.

헤어질 당시 아버지는 52살, 어머니는 44살. 기껏 사흘 남짓일 줄 알았던 이별은 장장 70년이 됐고, 이제 심왕식 할아버지의 연세는 1950년 12월, 그때의 아버님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아버님 사진 하나 갖고 나왔는지를 모르겠어요.” 난리 통에도 아버지의 사진은 하나 챙겼습니다. 떠돌아다니던 시절에도 늘 몸에 간수했고, 어떤 때는 급하니까 종이로 싸서 신발 깔창 밑에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가족이 그리울 때 꺼내보는 유일한 흔적.


■ 꿈에서조차 70년 이별 어머니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게 어머니죠. 항상 어머니. 어머니만큼 소중한 분이 어디 있어요.”
“꿈에서는 좀 만나보셨어요?”
“한 번도 못 봤어요. 꿈에라도 한 번 봤으면 하는데 한 번도 못 봤어요.”

셋째 아들이 집을 나설 때, 문 앞에서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닦던 어머니.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제작진은 심 할아버지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어머님의 초상화를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어르신은 어머니의 얼굴 구석구석을 묘사했고, 한국화 작가 유둘 씨가 심 할아버지의 얼굴 속에 반반씩 담겼을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살폈습니다. 다행히, 한 장 갖고 있던 아버지의 사진이 어머님 얼굴을 복원하는 데에 많은 단서를 줬습니다.


■ "70년 만의 해후입니다."

“지금, 가슴이 울렁거려요. 지금”

그림 작업이 끝나고 하얀 천 뒤에 감춰진 어머님 얼굴을 보기 직전, 심왕식 할아버지의 얼굴은 상기됐습니다.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하는 그 목소리도 떨렸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조심스레 천을 내린 뒤 마주한 어머님의 얼굴.

심왕식 할아버지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소리가 나는 울음도 없었고, 줄줄 눈물이 흐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침묵 속에 담긴 슬픔에 취재진 역시 아무 말을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

“70년 만의 해후입니다.” 첫마디였습니다. “어머니 모습이 들어있어요.”


(완성된 어머니의 초상화는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기억으로 살아난 어머님 초상화, 심왕식 할아버지는 아버님의 흑백 사진과 나란히 걸어두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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